낙태의 기록

생각하다임신과 출산임신중단권낙태의 경험

낙태의 기록

Jane Doe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안녕하세요, 저는 ‘자의에 의한 성교’를 했던, ‘임신에 대한 미필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던 여성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합법적이지 않은 낙태를 함으로써 ‘낙태율 급증, 여성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 훼손, 생명 경시 풍조 확산’에 일조한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애인과의 섹스였고, 피임을 제대로 했건 말건 임신을 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생명’을 자의적으로 없애버린 범죄자입니다. 강간에 의해 생긴 아이는 없애도 되고, 사랑하는 사이에서 만들어진 아이는 없애면 안 된다며, 살아도 되는 아이와 죽어도 되는 아이를 나누던 분들, 모두모두 안녕하십니까?

임신을 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까. 임신 테스트기에 두 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던 그 날부터 시작해야겠다. 생리할 때가 지났지만, 워낙에 생리 주기가 불규칙했던 나는 이번에도 그런 거겠지 생각하고 있었다. 생리 주기가 얼마나 불규칙적이었냐면, 2~3달에 한 번도 안 하는 날도 있었고, 생리가 끝난 지 보름도 지나지 않아 시꺼먼 피가 흘러나오거나 하는 일이 굉장히 잦았다. 

그래도 애인과 지속적으로 섹스를 하고 있었기에 생리가 시작되지 않으면 으레 하는 일이 임테기로 임신인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그 전까지 항상 테스트기에는 한 줄이 떴고, 이번에도 임신이 아니구나, 가슴을 쓸어 내리며 다음 생리를 기다리는 식이었다. 그리고 어느 해 8월의 둘째 주 목요일 저녁, 나는 처음으로 임신테스트기에서 두 줄을 보았다.

일러스트레이션:솜솜

피임을 제대로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피임을 제대로 했다 하더라도 그걸 믿어줄 사람이 몇이나 되며, 결과적으로 임신을 했으니까. 하지만 나는 변명을 해야겠다. 애인과 섹스할 때는 꼭 콘돔을 꼈고, 내가 경구피임약을 먹지 못했던 건 부작용 때문이었다. 이렇게라도 변명을 하는 건 “피임을 제대로 안 하니까 임신을 하지!” 하는 비난을 받고 싶지 않아서다. 섹스와 임신은 비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지만, 나처럼 ‘문란한 여성’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니까. 나는 피임을 했지만 임신을 했다. 사실 앞의 말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임신을, 했다.

그리고 '낙태'를 했다

화장실에서 내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애인은 어떻게 됐냐고 조심스럽게 물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빨간 두 줄을 보여줬다. 나를 옭아매는 새빨간 줄을. 애인은 굉장히 조심스럽게 어떻게 하고 싶냐고 물었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지워야지.”

나는 결혼할 생각도 없었고, 아이를 낳을 생각은 파리 발바닥의 먼지만큼도 없었다. 나에게 섹스란 쾌락을 위한 것이지 임신을 위한 수단이 아니었다. 그래도 그 시기에 섹스를 한 사람은 애인 밖에 없었기 때문에 내 몸에 있는 그 작은, 아주 작은 세포 덩어리가 누구의 유전자를 물려받았는지는 분명했다. 도대체 나한테 왜? 지금? 갑자기 이런 일이 닥치는 거야? 울며 불며 난리를 칠 수도 있었지만, 나는 오히려 냉정해졌다. 내 인생이고, 내 삶이고, 내 몸이었으니까. 내가 스스로 결정해야만 했으니까.

애인과 같이 저번 생리 일자를 더듬더듬 떠올려보니 대충 아무리 길어도 임신 주수가 7주는 넘지 않았다. 6~7주 정도. 이 정도면 약물로도 충분히 낙태를 할 수 있었다. ‘낙태’ 대신에 ‘임신 중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이건 나의 ‘낙태’의 기록이다. 나는 임신 중단권이 주어지지 않은 여성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낙태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여성인 나의 결정권보다 혼자서 살아갈 수도 없는 태아의 생명권이 우선되는 이 사회에서. 나는, 낙태를, 했다.

가능성에 대비하기

갑작스러웠지만 나는 굉장히 냉정했고, 이성적이었다. 애인과 함께 우선적으로 찾은 것이 우먼온웹(Women on Web)이었다. 이미 트위터에서 보았던 터라 가장 먼저 우먼온웹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우먼온웹은 낙태가 불법인 나라에 거주하는 경우에 일정 금액의 기부금을 내고 ‘미프진’이라고 흔히 이야기하는 미프프리스톤과 미소프로스톨을 받을 수 있는 단체다. ‘낙태 유도제는 임신 후 9주 이내에 복용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좋으며, 빠르면 빠를수록 낙태 성공률이 높습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임신 기간 계산기도 같이 보였다.

약 25가지의 질문에 대답하고, 기부금을 내고 나면 정식 면허를 가진 산부인과 의료진이 제공하는 낙태 유도제를 수령할 수 있었다. 그 질문들에는 원하지 않는 임신인지, 낙태 후의 감정에 대처할 수 있는지, 외부로부터의 강압이나 강요가 아닌 자의에 기반한 결정인지, 응급처치가 가능한 전문병원에 한 시간 이내로 도착할 수 있는지, 낙태 유도제 복용 시에 곁에서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 특정 질병이나 질환을 앓고 있는지 등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의사에 따른 결정인지와 건강에 대한 문제였다. 낙태가 아닌 여성 본인의 결정에 따른 임신 중단을 지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먼온웹 홈페이지

그리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낙태 수술을 해 주는 병원들을 찾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는 우먼온웹에서 보내 준 의약품을 제대로 수령하긴 했지만, 세관에서 걸리면 통과가 안 된다는 이야기도 많이 보았던 터라 모든 가능성에 다 대비해 놓아야 했다. 자칫하다 시간이 더 지나버리면 약물로 낙태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었다. 일본으로 가서 수술을 받고 온다는 이야기도 보였다. 

그래도 내 경우는 굉장히 다행이었던 게, 임신 사실을 알고도 애인이 도망가거나 잠적하지 않았고, 애인이 나의 낙태를 금전적으로 지원해 줄 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가족과 함께 살지 않고, 애인과 동거를 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만에 하나 약물로 낙태가 불가능해진다면 애인은 나를 일본으로 보내 수술을 받게 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것

혹자는 내게 조금이라도 죄책감이 들지 않았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이런 대답은 누군가에게 굉장히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전혀 죄책감이 들지 않았다. 나와 애인은 태아를 ‘그것’이라고 불렀다. 내 몸을 떠나서는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세포 덩어리에게 굳이 생명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임신한상태를 일종의 ‘질병’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 질병을 일으키는 원인은 너무나도 분명해서, 그 원인만 제거하면 ‘나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태아’, ‘임신’, ‘낙태’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나는 이 부분에 대해 애인에게 굉장히 감사하고 있다. 이 덕분에 내가 정신적으로 덜 힘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이 과정은 생명을 지우는 일이 아니었기에, 나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었다. 애인 역시도 나에게 죄책감이나 모성애 따위를 강요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축복일 임신이, 나에게는 피임의 실패일 뿐이었으니까.

그렇게 하룻밤은 지옥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붙들며 보냈다. 그리고 그 다음 이주일은 정말로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지옥이었다. 임신테스트기로 확인하기 며칠 전부터 몸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었다. 어지럽고, 메스껍고, 식욕이 없고, 조금만 움직여도 힘이 부쳤다. 원래 멀미를 전혀 안 하는데도 어지럽고 구역질이 올라와 차를 타고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그리고 일요일 저녁부터는 문자 그대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아니, 먹을 수가 없었다. 음식 냄새를 조금 맡기만 해도 구역질이 올라왔고, 음식을 먹으면 그대로 다 토해냈다. 따뜻한 음식은 따뜻하기 때문에, 차가운 음식은 차갑기 때문에 역겨웠고, 그렇게 좋아하던 고기는 보기만 해도 역해서 화장실로 가 구역질을 했다. 

먹은 게 없으니 나오는 것도 없었지만, 내 몸 안에 있는 그 세포 덩어리는 그렇게 나를 죽여갔다. 나중에는 물을 조금만 많이 마셔도 마신 물조차 다 토해내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전에 입던 바지는 허리춤에 주먹이 쑥 들어가고도 남았다. 회사를 다녔더라면 당장에 쓰러져서 죽었겠구나, 싶었다. 아니, 그랬더라면 나도 모르는 새에 자연스럽게 유산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내가 이런 고통을 느낄 필요도 없지 않았을까.

나는 매일 밤을 죽기를 기도했다. 우울증이 더 심해졌지만, 정신과에 갈 수도 없을 만큼 몸이 망가져 있었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있었고,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를 정도였다. 혼자서는 방에서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 힘들어서 벽을 붙들고 걸었다. 하지만 사람은 생각보다 쉽게 죽지 않더라. 정말로 죽을 만큼 힘들고 아팠지만, 죽지는 않았다. 나는 매일같이 침대에 누워서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통 없이 죽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다른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죽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살아도 된다고 

그렇게 죽지 못해 살았던 이주일이 지나고, 8월의 넷째 주 수요일에 우먼온웹에서 보내 온 소포를 수령했다. 누군가는 일주일만에도 수령했다던데, 나는 왜 오래 걸렸나 확인해보니 인도에서 한참을 머물러 있다가 출발한 거였다. 그 의약품이 든 작은 소포는 내게 살아도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네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네 결정이 제일 중요해. 그깟 세포 덩어리 때문에 네 삶을 포기하지 마. 그게 네 삶을 망치게 두지 마. 그 소포가 내게 그렇게 이야기했다.

애인은 금요일 날 연차를 썼다.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몰랐기 때문에 주말까지 상황을 지켜볼 수 있도록. 약은 미프프리스톤 한 알과 미소프로스톨 6알이 들어 있었고, 미프프리스톤을 목요일 오전에 복용했다. 미소프로스톨은 미프프리스톤 복용 24시간 이후에 복용해야 했다. 미프프리스톤을 복용하고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싶었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사실 몸이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었기 때문에 몸의 변화를 내가 눈치채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일러스트레이션:솜솜

어찌됐건, 애인과 함께 금요일 오전에 미소프로스톨 4알을 혀 밑에 놓고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이 때 생기는 침을 삼키는 건 괜찮았는데, 30분이 지나고 남은 잔여물을 삼킬 때는 고역이었다. 갑작스럽게 약물이 넘어가자 구역질이 시작됐고, 억지로 삼켜보려 했지만 막을 수 없었다. 애인은 그릇을 가져와서 그곳에다 뱉어 내라고 했고, 나는 혹시나 이걸 삼키지 않으면 낙태가 안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 코를 막고 내 토사물을 다시 삼켜야만 했다. 울면서 약을 삼키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애인이 옆에서 계속 다독여줬지만,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분명 같이 섹스를 했는데 이 고통은 왜 온전히 나만 짊어져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4시간 뒤에 다시 미소프로스톨 2알을 복용할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얼마 안 있어 복통이 시작되었다. 내가 지금껏 겪었던 생리통은 전혀 고통의 축에도 끼지 않았다. 배가 찢겨 나가는 고통이었다. 진통제를 먹어도 된다기에 미리 먹어 두었는데도, 효과가 전혀 없었다. 두통과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을 다 잊게 만들 정도로 그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온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러 나왔다. 진짜 이러다가 기절하는 게 아닐까 싶은 통증이 4시간동안 끝없이 지속되었다. 액체로 되어 있어서 효과가 빠르다는 진통제를 먹어봐도 금방 토해내서 다시 복용하기를 반복했다. 진통제를 복용법에 맞춰서 적정량을 먹을 정신이 아니었다. 4시간 동안 그렇게 진통제를 먹고 토해내고, 또 먹고 토해내는 것을 반복했다.

고통의 4시간이 지나고, 미소프로스톨 2알을 다시 혀 아래에 넣었다. 아까와 마찬가지 방법으로 30분이 지나고 잔여물을 삼켰다. 도대체 언제쯤 출혈이 시작되는 걸까 했는데, 몇 분 지나지 않아 갑자기 무언가가 와르르 쏟아져 내렸다. 생리할 때 굴 낳는 느낌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 ‘굴’이 몇 배는 더 커졌고, 한꺼번에 빠른 속도로 갑자기 쏟아졌다. 다행히 출혈이 시작될 것에 대비해 패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았다.

'그것'

그건 작았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어 보였는데, 머리에 눈으로 추정되는 까만 점이 있는, 작은 포유동물의 무언가 같았다. 딱히 사람처럼 보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붉은 분홍빛에, 물고기 냄새 같은 물 냄새가 났다. 옆에는 태반인지 모를 분홍색 덩어리가 있었는데, 나중에도 비슷한 핏덩어리들이 계속 쏟아져 내려서 그게 태반인지는 확실하게 구분이 되지는 않았다. 한참 살펴보다가 너무 신기해서 애인을 불렀다. 이렇게 확연한 낙태의 증거가 나올 줄 몰랐던 애인도 신기해하며 다행이라고, 이제 금방 낫겠다며 좋아했다. 그리고 그건 패드와 함께 돌돌 말려 쓰레기통에 버려졌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것이 나오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복통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 두통과 메스꺼움과 어지러움도 멈췄다. 식욕도 다시 돌아왔다.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다. 애인은 한참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한 나를 위해 단호박죽을 끓여줬고, 나는 한 그릇을 금방 비워냈다. 복통은 간헐적으로 지속됐지만, 그리 심하지 않은 생리통의 느낌이어서 견딜 만 했다. 제일 견디기 힘들었던 건 배고픔과 핏덩어리들이 계속해서 내 질로 와르르 쏟아지는 일이었다.

나는 그 이전에도 탐폰을 쓰고 있었고, 패드형 생리대는 거의 쓰지 않았던 터라 낙태를 위해 패드를 따로 사야 했다. 애인은 흡수가 잘 되면서, 생리할 때 패드를 쓰면 외음부가 짓무르는 나를 위해 부드러운 패드를 찾았고, 덴마크에서 만들어진 산모 패드를 사왔더랬다. 

사실 출산 이후에 산모 패드를 써야 한다는 걸 몰랐던 나는 이런 게 다 있다며 신기해 했는데, 오버나이트 생리대보다도 크고, 훨씬 두툼하면서 부드러웠다. 무엇보다 엄청난 양이 쏟아지는데도 새지 않고 다 흡수를 한다는 게 놀라웠다. 안 좋은 점이 있다면 크기나 두툼함에 비해 접착력이 비교적 약한 편이었고, 날개가 없어 고정이 잘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덕분에 하루 종일 끊임없이 피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외음부가 짓무르지 않았다.

내 몸 되찾기

식욕이 다시 돌고, 메스꺼움이 사라지자 제일 먼저 생각난 게 고기였다. 일주일에 7일을 고기를 먹는 내가 2주일이나 고기는 볼 수조차 없었으니, 좋아하던 돼지갈비가 생각났다. 애인은 걱정됐는지 다음 날 먹으러 가자고 했지만, 나는 꾸역꾸역 안 된다는 애인을 붙들고 금요일 저녁에 돼지갈비를 먹으러 갔다. 물론 위가 줄어들어 있어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지경이었다. 그 세포 덩어리가 몸 속에 있는 동안은 내 몸이 내 것이 아니었다.

며칠 동안은 예전의 체력을 회복하고자 최대한 많이 먹었다. 애인은 열심히 고기를 사줬고, 나는 열심히 고기를 먹었다. 몸이 아프지 않으니 날카로웠던 성격도 많이 누그러졌다. 그런데 출혈이 멈추질 않는 게 문제였다. 우먼온웹에 의하면 출혈은 2주 정도 지속될 수 있다는데, 나는 한 달이 넘게 출혈이 계속되었다. 2주 동안은 피가 너무 많이 흘러 나와서 과다출혈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는데, 샤워를 하다 바닥을 보면 시뻘건 핏덩어리가 피와 함께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그래도 2주가 지난 뒤에는 출혈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아서 산모 패드 대신에 좀 더 얇은 패드형 생리대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리가 끝날 때처럼 미미한 출혈이 계속되었고, 약 한 달 반이 지나고서야 완전히 끝났다.

"낙태"의 기록

이게 나의 낙태의 기록이다. 잊고 살려고 노력했지만,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너무 선명하게 기억나서 조금 울었다. 이 글을 검토하려 다시 읽는 것조차 조금 힘들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운이 좋았다. 애인이 적극적으로 옆에서 도와주었고, 우먼온웹 같은 단체에 대한 지식이 있었고, 낙태 때문에 감정적으로 힘들지도 않았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낙태에 대해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강간에 의한 임신이거나, 애인이 연락을 끊어버리거나, 금전적으로 힘들어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거나, 낙태와 관련한 지식이 없어서 약을 구할 방법을 모르거나, 태아에게 죄책감을 느끼며 감정적으로 굉장히 힘들어 하거나. 

그렇기 때문에 임신중단권에 대한 논의는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 더 많은 여성들이 더 안전하게 자신의 몸을 지켜낼 수 있도록, 낙태에 대해 죄책감만 강요하는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같이 한 행동에 대해 한 쪽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지는 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도록, 보다 더 많은 정보가 공유되어서 여성들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그리고 여성들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제공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겠다.

안녕하세요, 저는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던, ‘자의에 의한 낙태’를 했던 여성입니다. 낙태를 하면서 일말의 죄책감도 가지지 않아 ‘생명 경시 풍조 확산’에 일조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낙태를 함으로써 저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훼손’시키지 않을 수 있었던 사람입니다. 임신을 할 일이 없고, 출산을 할 일이 없고, 낙태를 할 일이 없으면서 남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시는 분들, 모두모두 안녕하십니까? 저는 당신들이 안녕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많은 여성들의 안녕을 바랍니다. 제가 낙태한 아이가 베토벤이었을 수도 있다구요? 어머, 헛소리 하지 마세요. 베토벤은 이미 죽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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