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야 사는 여자들 3. 백래시의 한복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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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야 사는 여자들 3. 백래시의 한복판에서

탱알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절실하고 절실한

여성 일반의 역량미달과 부적격성이라는 핑계는 여성의 생애 주기마다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을 세운다. 직장 내 성폭력은 그 수없는 허들 가운데 하나였다. ‘미투’ 운동에 용기를 얻은 여성들이 저마다 성폭력 경험을 고백하고 나섰을 때, "그런 '더러운 꼴'을 보고도 왜 일터에 남아있었냐"고 묻는 사람들을 보았다. 성폭력으로 인한 정신적 피해가 그렇게 크다면, 다음날 또다시 일터에 나가 가해자와 얼굴을 맞대고 일할 생각이 들었겠냐는 것이다. 

"왜 사라지지 않았냐"는 질문은 이상하다. 위계에 의한 각종 학대와 수모를 버텨낸 역사를 훈장으로 여기며 공감을 요구하는 남자들이 여성에게는 자리를 지킨 이유를 추궁한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끝장이 난 삶을 증명해야만 진정성을 인정해주겠다며 피해자를 심문한다. 나는 그들이 기대하는 바대로 성폭력 피해 이후 밥줄을 놓아야 했던 여자들의 기록도 숱하게 읽었다. 그중 일부는 그토록 갈망하던 일과 절연한 기억을 뼈아프게 적어내리고 있었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필드를 떠나게 된 여자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결과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모른다. 누군가에게는 같은 조건의 남성보다 몇 배의 공을 들여야만 얻을 수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 잃어버릴지 예측할 수 없는 그 자리가 인생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나는 아직도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 내가 그토록 열렬히 익힌 지식을 써먹는 꿈을 꾼다. 가정 밖에도 소속될 공간이 필요하다. 각종 서류 직업란에 나를 무직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다. 내 이름으로 된 계좌에 월급이 찍히길 원한다. 이 욕구들이 채워지지 않아 늘 불안하다. 그럼에도 기혼여성의 경력단절은 '예쁜 아기를 바라보며' 버틸 만한 상태로 추정된다. 삶의 터전으로서의 직업 개념이 여성에게는 덜 유효하므로, 여성에게는 직업이 좀 없어도 괜찮을 거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말이다.

백래시의 한복판에서

동족의 체면을 유지하면서 자연스럽게 여자를 축출할 방법을 궁리해온 남자들은 미투 운동에서도 명분을 발견한다. 여성이 남성의 호의를 불편해하기 때문에, 여성이 남성의 미래를 위태롭게 만들기 때문에, 이제부터는 좀 대놓고 울타리를 쳐서 ‘성추문’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단세포적 발상에는 남성중심 조직문화에 균열을 일으키는 여성들을 향한 보복의지가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대응을 ‘펜스룰’로 호명하는 일은 여성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늘 그곳에 있었던 여성 배제의 관행을 ‘미투가 판치는’ 시류에 맞춰 새롭게 도입한 규칙으로 가장하기 때문이다.

‘회식에서 빼 주겠다는데 왜 화를 내냐’고 묻기 전에, 회식도 업무의 연장이라는 말이 직장인의 전폭적인 공감을 얻게 된 배경을 살펴 보자. 한국식 비즈니스에서 핵심 거래가 성사되는 공간은 사무실 밖이다. 남자들이 몰려다니는 ‘담배타임’이나 핵심 멤버만 남긴 N차 회식은 사회생활의 소문난 비결이다(덕분에 남성은 회식에 바득바득 참여하고, 곤죽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시고, 배우자에게 육아를 ‘독박’ 씌우며 밤을 새울 수 있었다). 유대관계와 사내정치가 쌓이는 곳, 그 음성적 회의에 참여하길 원하는 여성은 흡연 여성이나 주당 여성에 대한 편견에 굴하지 않으면서 넉살좋게 어울리는 대장부여야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한 여성이 얼마나 우리의 비밀을 잘 지켜줄 수 있으며 사상을 깊게 공유하는지 시험하는 명예남성 테스트의 최종 관문은 성매매다. 고위직을 쟁취했거나 그에 근접했던 여성들의 룸살롱 회식 경험담을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남성 대상 성접대 업소에 여성을 초대하는 이 황당무계한 의식은, 신뢰할 만한 동료를 판별하는 리스머트지가 ‘남성성 증명하기’ 그 자체인 호모소셜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전시한다. 이 안락한 기울기를 유지하기 위해 올바른 선택지는 의도적으로 거부된다. 정말로, 여성의 성폭력 피해 고발은 기형적인 노동문화를 성찰하고 개선하는 분기점이 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사무실 밖 테이블을 치우기보다 그 자리를 금녀 구역으로 지정하기를 선택했다.

진정한 여성의 새로운 조건

여성을 탈락시킬 목적으로 고안된 거름망은 날로 조밀해진다. 결혼/가족 계획을 조사하던 여성 대상 조직 적합성 평가는 이제 ‘성폭력에 둔감할 것’, ‘미투 운동에 회의적일 것’ 같은 개인적 감각과 신념의 층위까지 파고들었다. 이미 오래 전 사라진 커뮤니티 ‘메갈리아’를 멸칭으로 전유한 ‘메갈’ 낙인은 페미니즘 아젠다와 조금이라도 관계한 여성을 광범위하게 공격하는 용법의 임의성과 편의성을 인정받아 폭발적으로 확산되었다. 메갈 창작자를 색출하는 일이 소비자의 정당한 권리행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과, ‘메갈과는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입장이 윤리적 결단이라고 착각하는 기업 내 결정권자의 적극적 동화로 여성의 생계에는 새로운 위협이 생겼다.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여성의 삶에 아무런 관심도 없는 여자임을 증명하라고 한다.

온라인 상에서 여성주의적 발언을 공유하거나 소녀들을 임파워링하는 폰케이스를 홍보하는 것 같은 아주 사소한 수행만으로도 ‘메갈 혐의’가 입증되는 오늘날의 페미니스트 심판은 여성을 향한 표적수사로 진행된다. 안티페미니스트들이 확성기를 잡은 2D 업계에서 상당한 여성 창작자가 몇 년에 걸쳐 집요한 사이버불링에 시달리고, 사측으로부터 해명 요구 및 계약 해지 통보를 받는 와중이었다. ’82년생 김지영’ 책 실물을 사진 한 귀퉁이에 노출시킨 모 걸그룹 멤버를 향해 -밥줄을 끊어주겠다는 협박이 되기를 목표한- 탈덕 선언이 빗발치기 얼마 전이었다. 

네이버 웹툰 ‘덴마’를 연재 중인 남성 만화가 양영순은 인스타그램에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빨래하는 페미니즘’ 등 6권의 페미니즘 독서 기록을 업데이트했다. 그러나 ‘자칭 독자’들이 그의 SNS 계정에 인신공격성 코멘트를 남기거나, 웹툰 플랫폼에서 별점 테러를 시도하거나, 연재처에 작가를 자르라고 항의하는 장면은 없었다. 작품의 톤을 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게 변화시키려는 작가의 노력이 곳곳에 묻어나도, 작가를 ‘형’이라 부르며 관성적 섹드립에 깔깔대는 남성향 팬덤 문화는 건재하다.

‘페미니즘을 안 해도 되지만 해도 되는’ 남자들의 세상이 얼마나 태평한지 상상해 본다. 여성들은 생존을 위해 페미니즘을 선택하고도, 바로 그 이유로 안전을 위협당하는 아이러니에 직면해 있다. 페미니즘 교육을 연구하는 여성 교사는 민원 세례를 받고, 페미니즘 이슈를 기사화한 여성 기자에게는 욕설이 쏟아진다. 여성인권에 관심을 표현한 여성 셀레브리티를 사형해달라는 생떼가 국민청원이라는 이름으로 청와대에 전달된다. ‘소녀전선’ 일러스트레이터 퇴출 사건은 여성의 신념을 노동권 박탈의 기회로 이용하고자 하는 안티페미니스트들의 내심을 비춘다. 작품 내용보다 작가의 SNS 활동이 단죄 근거로서 더 유효할 때, '반사회적 사상'이 문제라는 주장은 허울로 밝혀진다. 그들은 메갈 서사를 유통시키는 콘텐츠는 견뎌도, 이너서클 밖에서 몫을 챙기는 반역자는 참아주지 못한다. 그들은 여성의 사회적 명줄이 얼마나 연약한지 유희하듯 실험하고 있다.

사라져야 사는 여자들

록산 게이는 에세이 '헝거'에서 과체중 여성을 향한 지독한 경멸에 어떤 함의가 담겨 있는지 다음과 같이 통찰한다. 

소녀들은 어린 시절부터 배운다. 날씬하고 아담해야 한다고. 자리를 많이 차지해선 안 된다고. 남자들 눈에 보기 좋아야 한다고. 사회에서 받아들일 만해져야 한다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알고 있다. 우리는 점차 작아지고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이 문장들에서 팔을 들어올릴 수도 없을 만큼 자그마한 기성 여학생 교복, 수선한 아동복을 입고 무대에 오르는 여성 아이돌 가수들, ‘절식’ 없이는 달성 불가능할 성인 여성의 미용체중 기준표, 그리고 다 열거할 수 없는 사례들의 긴밀한 연관관계를 발견한다. 가냘프고 공격력이 없으며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성이 ‘사랑스럽다’는 선전은 여성의 육체적 강인함을 과잉물로 취급하는 지점에서 극적인 효과를 발휘해 왔다. 여성은 부술 수 없는 -록산 게이의 표현을 빌리자면- '요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이 언제든지 함락당할 수 있는 허술한 기지일 때, 남성은 여성의 몸이라는 전쟁터에서 지키거나 파괴하는 역할을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리를 많이 차지해서는 안 되고” “사회에서 받아들일 만해져야” 한다는 수칙은 여성의 신체는 물론 사회적 자아에도 무리 없이 적용된다. 그곳이 어디건 여성에게는 남성이 불쾌하지 않을 만큼의 공간만이 허용되어 왔다. 남성들은 여성의 목소리가 너무 크지 않기를, 여성이 조직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않기를, 여성에게 업무적으로 좋은 기회가 돌아가지 않기를 바란다. 그 존재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화병이나 정물화처럼 사무실 풍경에 스며들기를 기대한다. 여성이 일시적으로 누리고 있던 작은 몫이 아까워지는 즉시 반납을 요구하려면, 여성은 반드시 열등하고 무책임하며 무능력해야 한다. 남성에게 항거할 수 없는 육체를 가지고, 남성에게 도전하기엔 미약한 생존 기반을 가진 여성은,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자취를 감춰도 이상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사라지기 직전까지 작아져야 한다. 작아지길 거부한다면 사라져야 한다. 남성은 그렇게 주도권을 잡는다.

여성에게 자리를 달라는 외침은 여성을 긍휼히 여겨 파이를 나눠달라는 눈물젖은 호소가 아니다.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평가해 이제는, 제발 좀 앞으로 나아가자는 합리적 외침이다. 여성에게 출산을 부추겨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도모하자는 프로파간다는 가능한 모든 비판을 받아 왔다. 지금 당장 이 사회에서 낭비되는 여성 인력을 외면하면서 더 많은 남성 노동인구를 유치하려는 포부에 사로잡힌 이들이야말로 남성 연대의 가장 적극적인 주동자이자 공범자다. 정부가 그토록 골몰하는 인구절벽보다 더 절박한 급선무는 여성이 강탈당한 선택지들을 되돌려받는 것이다. 누구도 여성에게 이해를 종용하거나, 물러서라고 강요하거나, 포기를 강제할 수 없어야 한다. 이제는 여성이 스스로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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