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직한 지 3년 이내인 사람들에게 “요즘 인생의 재미가 뭐에요?” 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나도 그랬다. 문득 내 인생의 재미를 잘 모르겠어서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면 그 사람도 내 마음 속의 표정을 거울처럼 짓곤 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힘든가보다. 어느 여름날, 한참 연상의 선배가 같은 질문을 했다. 그래도 PT를 꾸준히 다니면 최소한 한 가지는 대답할 수 있다. “운동이요! 저 요즘 PT 다녀요.” “그래? PT 비싸지 않아? 얼마 정도 해?” “1시간에 5만원이요. 비싸요. 저 이제 PT푸어에요.” “와, 생각보다 비싸구나.” “네. 여성 전용 헬스장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헐, 왜 헬스장이...
난생 처음 취직이라는 걸 하고 6개월이 지났을 때 내 건강 상태는 최악이었다. 분명 세상에서 제일 가볍다는 노트북을 샀건만, 출근길 가방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사실 숨만 쉬어도 힘들었다.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를 달고 살았다. 입 안이 죄다 헐어서 염증 구멍이 숭숭 뚫렸다. 근육이며 뼈, 내장에 스며있는 ‘건강’이 하루하루 빠져나가는 게 실감났다. 전신이 안쪽부터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느낌이었다. 저질 체력이라는 말도 부족했다. 마이너스 체력이었다. 범인은 사회 초년생의 생활습관이었다. 출근, 외식, 야근, 술, 스트레스. 내 일상의 뉴 페이스들은 빠르게 건강을 갉아먹었다. 입사 첫 한 달은 그야말로 매일매일 술을 마...
“일단 인바디부터 할까요?” 트레이너란 만나자마자 사람을 저울 위에 올리는 직업이다. ‘인바디’라고 불리는 기계에 양말을 벗고 올라가라고 한다. 원래도 체중을 잘 안 재는데 매번 신발, 양말 벗으라고 하는 게 그렇게 귀찮을 수가 없다. 아주 오랜만에 재 본 나의 무게는 생각보다 묵직했다. 트레이너는 ‘과체중’이라고 진단했다. 무게보다 중요한 건 체지방이라면서 세 개의 막대그래프에 형광펜으로 겹겹이 동그라미를 쳤다. 인바디 측정표. 헬스클럽의 세계에 발을 담가 본 이라면 익숙할 그것. “회원님, 여기 보시면요. 체중, 근육, 지방 순서로 그래프가 있죠? 근데 체중은 많고, 근육은 적고, 지방은 너~무 많아서 그래프 끝...
헬스장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나오는 좁은 복도를 따라 가면 여러 장의 사진들이 줄지어 붙어 있다. 머리가 없는 여자들의 몸이다. 모두 스포츠 브라와 트레이닝복을 입고 배를 드러냈다. 두 장이 한 세트다. 같은 사람인데 왼쪽보다 오른쪽이 더 마르고 탄탄하다. 나는 헬스장에 갈 때마다 이 사진들이 무섭다. 전부 머리가 없고 목에서 뚝 잘려 있기 때문이다. 라커룸으로 향하는 5분, 복도 자체가 나에게 말하는 것 같다. ‘눈, 코, 입은 필요 없어. 뇌도 필요 없어. 너는 몸이야. 여기는 몸만 존재하는 곳이야.’ 이 복도는 사실 ‘명예의 전당’이다. 사진이 붙은 사람들은 원래는 ‘왼쪽 몸’이었다. 그러나 가혹한 PT...
트레이너가 종종 양말을 벗고 올라가게 하는 기계, 인바디의 측정 결과에는 BMI라는 것이 나온다. 다이어트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거나 자신이 비만일까봐 두려워하는 여성이라면 한 번쯤 봤을 단어다. 체질량지수(Body Mass Index)라고 하는데, 정확히는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숫자 다. 미국 질병관리본부(CDC)에 따르면 높은 BMI는 높은 체지방량을 의미할 수 있지만, 이것만으로 개인의 건강이나 체지방량을 진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취주의적인 세상은 뭘 해도 목표를 요구한다. 요즘 운동을 한다고 말했을 때도 이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 “식스팩 만들 거야?” “몇 kg 뺄 거야?” 나에게 운동은 집안일과 같다. 집안일에는 목표가 없다. 나는 다이어트를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고, 보디빌딩을 목표로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일상을 조금 더 활력있게 유지하려는 갈망에서 운동을 한다. 가급적 정돈된 집을 유지하려 애쓰는 사람처럼. 애석하게도 이런 경우, 집안일과 마찬가지로, 운동의 효과는 주로 운동의 부재로 증명된다. 너무 바쁘거나 아파서 1주일 이상 운동을 하지 못하면 그제서야 꾸준한 운동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눈에 보이는 성취...
‘스몰 토크(Small Talk)’. 오늘 날씨 좋죠. 어디 다녀오세요? 식사는 하셨고요? 맛있게 드세요. 만나서 인사하고 떠드는 익숙한 관용구들, 별 생각 없이 나누는 의미 없는 말들. 무해하지만 무의미한 말을 적당히 다정하게 주고 받는 것. 한국에서 스몰 토크를 나누는 대상으로는 길 가다 우연히 만난 지인, 회사에서 스쳐 지나가는 직장 동료 정도가 떠오른다. 서비스업 종사자와의 스몰 토크는 흔치 않다. 미용실 정도가 예외일까. 예전에 미국에 온라인 사이트 회원가입과 관련한 사무적인 전화통화를 하는데, 잠시 기다려달라고 하더니 일을 처리하는 동안 “서울은 날씨가 어때요?”라고 물어서 굉장히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대...
'국민이 정치에 피로를 느낀다’라는 말은 상투적 표현인 줄만 알았다. 진짜로 정치가 내 신체에 꽤나 장기적인 피로를 투척하는 날이 오다니. 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벌써 6주 가량 토요일마다 광화문에 가서 촛불이 되고 목소리가 되었다. 청와대의 한 재택근무 전문가가 100m 앞까지 다가온 촛불에도 꿈쩍도 하지 않는 동안, 내 관절은 한계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버틸만 했다. 나 말고도 12시간 가까이 아스팔트를 뛰어다니는 선배, 동료 기자들이 있기에 웬만한 우는 소리는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3주째부터 오른쪽 무릎이 이상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굽혔다 펴면 뚝, 뚝하고 무서운...
원래 하던 이야기를 이어 가야 하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니는 무거운 여자의 여정에 잠시 약간의 성취가 있어 보고하고자 한다. 내과의사, 외과의사 모두 살을 빼야 한다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했고 이대로 무게를 좀 덜어 내려는 과정에서 아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름다움을 위한 다이어트인지, 건강을 위한 관리인지 회색 지대에 부딪히겠지만, 아직 나는 여전히 아주 무거운 여자고 그 무게가 힘겹다. 그러나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듯 약 두 달 간의 노력 후 정신상태가 몰라보게 개선되었다....
뚱뚱한 사람에 대한 혐오(펫 셰이밍)는 여남 모두에게 일어나는 일인 것 같지만, 사실 세상의 시선은 뚱뚱한 남성에게 훨씬 너그럽다. 44, 55, 66밖에 선택의 여지가 없는데다 내 돈 내고 내 옷 사러 갔는데도 마치 그쪽에서 내게 옷을 팔아 준 듯한 고마움을 느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여성복과 달리 좀더 유동적이라 모욕을 느낄 일이 보다 적은 남성복 시장이 그렇고, 풍성한 몸집을 가진 남자는 있어도 날씬하다 못해 말라깽이가 아닌 여자는 후덕한 어머니나 할머니 역할이 아니면 찾아보기 힘든 연예계가 그렇다. 무거운 남자들은 여전히 섹시하다고 여겨지며, 로맨스의 주인공으로 활약한다. 헐리우드 배우 중에도 비교적 뚱뚱한 편인 폴...
무거운 여자로 살면서 느끼는 불편함 중 하나는 ‘무겁게 살아가는 것’에는 꽤나 돈이 든다는 것이다. 그나마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운영하는 66100같은 사이트가 있어 다행이지만, 보통 체격의 여성은 온라인 마켓에서 ‘프리사이즈’ (전혀 프리하지 않은 주제에 왜 이 옷들을 그렇게 부르는지! ‘프리사이즈’란 44-66의 보통 체격 여성이 무리 없이 입을 수 있는 옷 사이즈를 원하지만 프리의 의미가 심하게 왜곡되었다) 옷을 그보다 훨씬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데 체격이 큰 여성들을 위한 옷은 일단 비용을 더 들여야 한다. 온라인 마켓에서도 플러스 사이즈를 구비한 곳이 점점 늘어나고는 있지만, XL, XXL 사이즈는 당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