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여자가 되면 25. 꾸미지 않을 자유를 위해

생각하다다이어트

무거운 여자가 되면 25. 꾸미지 않을 자유를 위해

김현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10세 여성 아동의 80퍼센트 이상이 다이어트를 해 본 경험이 있고, 2010년 경부터 청소년들의 주머니 사정으로도 살 수 있는 로드샵 화장품이 부지기수로 쏟아져 나왔던 데다, 요즘에는 심지어 어린이들이 어른과 똑같이 ‘관리’ 받을 수 있는 ‘키즈 스파’ 역시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어느 교복 브랜드에서는 교복 안에 틴트를 넣을 수 있는 주머니가 달려 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고 또다른 브랜드에서는 몸에 밀착되는 라인을 살렸다며 ‘코르셋’교복이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다.

이런 겉모양이 그 사람의 모든 가치를 대변하는 사회, 여성에게 돈도 벌어오고 미모까지 유지하기를 요구하는 이런 사회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지 않도록, ‘꾸밀 자유’보다 ‘꾸미지 않을 자유’를 갖고 싶어 고통스러운 이런 문화를 후세대에게 물려주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외모 불안에서 벗어나자

2004년 작품이지만 아직까지 하이틴 무비의 명작으로 남아 있는 영화 <퀸카로 살아남는 법Mean girls>를 보면, 어릴 때부터 여성은 날씬하고 예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세뇌를 받고 그 세뇌가 제시하는 목표에 충실히 도달하는 것에 온 힘을 다하는 어여쁜 여고생 3인방이 나온다. 삼총사 중 한 친구의 집에 놀러가서 방 벽 하나를 완전히 차지할 것처럼 커다란 거울을 보며 소녀들은 자신의 외모에 대한 불만을 하나하나 털어놓는다. 아마 그것은 그들이 진정으로 자기 외모의 어느 부분에 불만을 가져서 그랬다기보다는, 일종의 의식일 것이다.

거울이라는 자본주의의 신 앞에서 이들은 차례대로 죄상을 고백한다. 전능자이시여, 저는 허벅지가 너무 굵음을 회개합니다! 저는 먹으면 먹는 대로 살이 붙는 걸 알면서도 초콜릿을 먹어 2kg가 찌고 말았음을 회개합니다! 전능자이시여, 어제는 햄버거를 먹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소녀들은 돌아가면서 고해성사를 하고, 이 과정에서 일종의 종교적 체험을 하며, 이 의식을 함께 함께 해 일종의 종교적 고양감을 느끼며, 서로간의 연대(애증과 적대 관계를 포함한)가 더욱 강고해진다. 그러나 이 때 주인공인 케이디는 도대체 지금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저렇게 예쁘고 고운 아이들이 굳이 전신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의 몸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일까? 혼란스러운 케이디를 세 소녀들이 빤히 쳐다본다. 우리는 이렇게 다 고해성사를 했는데 우리 무리에 들어오고 싶은 너 역시 이 의식에 동참해야 하지 않느냐는 압력이다.

그제야 케이디는 자신도 회개할 것이 없는지 머리를 굴리다가 “난 아침에 일어났을 때 구취가 아주 끔찍해”라고 겨우 회개할 만한 결점을 찾아낸다. 삼총사는 썩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것 을 고해성사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물론 케이디도 완벽한 미모를 갖추지는 않았다. 그러나 거기에 별 불만이 없다. 아마도 어린 시절 엄마의 립글로스를 훔쳐 바르고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노는 삶보다 너른 초원에서 동물들을 보며 자라 온 삶을 살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미국 고등학교에 편입해 여성아이들이 일상적으로 거울을 통해 자기 외모를 볼 때마다 자동으로 쏟아내는 자기혐오 발언에 깜짝깜짝 놀란다.

아름다운 소녀들도 자기 몸의 불만을 100개 정도는 가뿐히 쏟아낼 수 있을 정도로 미美의 신, 혹은 자본주의의 신은 소녀들을 가혹하게 조련하고, 중세의 수도자들처럼 말총 속옷을 입고 채찍으로 제 머리를 때리는 것 같은 속죄 행위를 강요한다. 이를테면 “난 어제 너무 많이 먹었어! 오늘은 하루 종일 굶을 거야. ” “중요한 데이트까지 일주일 남았는데 어제 기름진 멕시코 음식을 잔뜩 먹었네? 완하제나 설사약을 가져다 먹고 일주일 동안 굶으면 될 거야! ” “엄마나 이모처럼 되기 전에 눈가 주름을 미리 예방해야 하는데 무슨 제품이 좋을까? 벌써부터 희미한 주름이 보이는 것 같아!”

불안 = 돈

영화는 이 모든 관습에서 자유롭던 케이디가 잘나가는 미녀삼총사에 끼어들기 위해 자신을 바꾸는 과정을 보여준다. 수수한 옷에서 원피스로, 수수하게 묶어 올린 생머리에서 컬업한 웨이브 헤어로. 그리고 케이디는 바로 인기 있는 소녀가 된다. 이렇게 변모하기 전에 케이디는 너무나 위험한 여성이었다. 자기 외모에 불만이 없는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여성의 신체를 눈, 코, 입, 다리, 허리, 가슴, 이런 식으로 분절해서까지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이미지를 주입하는 세상에서 이런 여성은 산삼보다 귀하다. 이런 여성들은 다이어트 산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시장에 가장 위협적인 존재이기도 하다.

이 산업은누군가 불안하고 불만족스럽기 때문에 돈을 써서 그 생명을 유지한다. 소소한 미용 용품 소비부터 성형수술대에 눕는 것까지 여성의 불안에 기인한 소비로 7조 6천 억원(2017년 한국 기준)이나 되는 경제 효과가 생기고, 그와 관련된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자리가 생긴다. 결국 다이어트 하는 여성들을 시장의 입장에선 황금알을 낳는 암탉들인 셈이다. 이 산업이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여성이 자기 몸을 끊임없이 불만족스럽게 느껴야 한다.

그래서 이들은 계속 속삭인다. 요즘 너도 나도 다 하는데 쌍꺼풀이라도 수술 좀 해야 되지 않겠어? 네 허벅지 봐, 코끼리 다리 같아. 살 좀 빼야 되지 않을까? 요즘 그냥 먹기만 하면 운동 안 해도 살이 한 달에 10kg 빠지는 특별한 약품이 있다는데... 아, 이거 다 FDA 승인 받은 거야! 무거운 몸 때문에 절박한 마음이 된 여성들은 그 말도 안 되는 기적의 약품처럼 수상쩍은 그런 제품을 구입하고, 별로 효과를 보지 못한 것 같아 문의하면 상품을 팔 때와는 전혀 다른 차가운 태도로 “고객님이 열심히 하지 않으셔서 그래요. ” 정도 이상의 대꾸를 하지 않는다. ‘네 탓, 네 탓, 다 네 큰 탓이로소이다’인 것이다.

일러스트 이민

몸과의 불화 끝내기

여성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외모에 단점을 찾아내고야 만다. 증상이 심해지면, 단점을 찾지 않고서는 안심이 안 될 지경이다. 자신의 용모를 편안하게 느끼는 여성은 극히 드물고 이 불안에 기생하는 산업은 평온하게 잘 살던 여성들까지 당장 폭삭 늙은 돼지가 될 것만 같은 불안감을 심어 주기 위해 있는 힘껏 노력한다. 이들은 너무나 고단수라, 웬만큼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휩쓸려 버리기 십상이다.

거울을 보며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해’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예뻐’ 라는 식으로 주문을 거는 간지러운 짓 은 정말 특별하게 긍정적인 몇 사람이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를 포함한 평범한 여성들은 정육점에서 고기 부위를 살피듯 이 안창살 봐, 이 팔뚝살 봐, 허벅지 더 굵어졌어... 하고 자신의 몸을 해체하여 뜯어보며 불만족을 극대화한다. 이 불만족의 굴레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그 내 나의 신체에 대해 짧게 명상하고 감사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내가 썼던 내 몸에 보내는 감사는 이러한 것들이었다.

내 손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게 해 준다!
내 다리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 준다!
내 발은 요즘 취미를 붙인 마라톤을 달릴 수 있도록 나를 든든히 받쳐 준다!
내 팔은 귀여운 강아지나 고양이, 가족,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충분히 껴안아 줄 수 있다!

내 몸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를 써 보자. 아주 간단해도 좋다. 여성과 몸의 불화를 세심하면서도 악랄하게 조장하는 사회에서, 아주 짧은 칭찬이라도 내 몸에 건네는 것은 나와의 불화를 종식시키고 늘 내 마음 같지 않아 속상했던 내 몸과 화해하는 작지만 큰 발자국이다. 게다가 나의 몸과 적대적으로 다툴 것인지, 동반자로써 함께 삶을 살아나갈 것인지 고민하는 갈림길에 수도 없이 놓이게 될 때 당당한 미래를 찾아나가는 여정의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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