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자신이 훌륭하고 투철한 페미니스트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나은 페미니스트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며 살아왔다. 그런 삶의 태도에서 약간 찔리는 것은 탈코르셋 운동에 완전히 발을 담그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홀복’이라 불리는 타이트한 원피스를 입고 한 시간씩 메이크업을 하던 옛날과는 완전히 결별했지만, 평소에는 자외선 차단제 하나만 바르고 다니다가도 사람을 만날 일이 생기면 그래도 뭔가 얼굴에 찍어 바르는 것을 단념하지 못하는 자신이 다소 한심하게 여겨질 때가 종종 있다. 그래도 예전에 1시간 걸려서 메이크업 할 것을 20분도 안 되게 줄기는 했다. 아이라인에서 속눈썹까지 어마어마하게 정교한 공을 들이던 것을 자외선 차단제 위에 잡티를 가리는 컨실러만 대강 펴 바른 뒤 블러셔나 브론징 등의 색조 화장은 아예 생략하고, 옅은 색깔의 아이섀도만 슬쩍 바르거나 그것도 종종 생략하고 아이라인 없이 속눈썹에 두어 번 마스카라를 칠해 주는 것으로 외출 준비가 끝나게 되었으나 이것도 다 먼저 탈코르셋을 선언한 페미니스트들 덕분이다. 외출할 일이 있으면 9cm 이하의 하이힐은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어딜 가나 운동화를 신고 씩씩하게 누비게 되었으니 탈코르셋은 건강에도 좋다! 그러나 외관상으로는 조금씩 코르셋을 벗고 있다고 해도, 내 마음에는 아주 오랫동안 나를 꽉 조여 왔던 코르셋이 여전히 팽팽하게 나를 묶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마음속 코르셋
그것을 깨달은 계기는 내가 올해 알게 되어 아주 예뻐하게 된 어느 동생 때문이었다. 나보다 10살쯤 어린 20대의 한창 젊은이인 그 친구 - S라고 하자 - 는 마른 몸을 가지고 있다가 사춘기에 들어서서 갑자기 폭발적으로 살이 찐 나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었고, 중학생 때부터 내 책이나 에세이를 읽어 온지라 서로 친근감을 느껴 짧은 시간 내에 많이 가까워졌다. 명문대학을 나와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S는 명민한 두뇌와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좀 전형적인 표현이지만 그야말로 ‘장래가 촉망되는’ 인재다. S와 나는 1-2주에 한 번은 만나 운동 이야기, 연애 이야기, 여성으로써 살아가는 이야기 등을 나누곤 하는데 S는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너무나 바빠 규칙적으로 운동할 시간을 확보하기가 힘들고 건강한 끼니를 챙겨 먹을 여유 또한 없다. 게다가 개인 병원에서 처방받은 우울증 약의 부작용으로 조금 토실토실한 편인데, 그렇지만 그로 인한 성인병 등의 증상은 전혀 없으니 건강상의 문제는 없다.
내가 한창 무거웠을 때는 본래 작지 않은 눈이 살에 파묻혀 작아졌었다. 그러나 S는 볼살이 토실토실해도 초롱초롱하고 커다란 눈을 가지고 있다. 감탄한 나는 말했다. “S야, 너 살 빠지면 정말 예쁘겠다! 지금도 눈이 그렇게 큰데 살 빠지면 얼마나 더 클까! ” S는 그럴까요? 아 꼭 빼야겠다, 하며 활짝 웃었지만 시간이 지난 후 생각해 보니 나도 모르게 무거운 상태는 개선되어야 한다, ‘모든 여성은 날씬해지고 싶어하며 또한 날씬해질 수 있다’는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에 깊이 젖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거로 한참 더 시간을 돌려 생각해 보면, 대학 때 나의 과 직속 후배이자 절친한 단짝이기도 했던 J는 스물서넛, 한창 나이의 여자애인데도 전혀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고 사내아이처럼 짧은 커트머리에 벙벙한 상의, 유행이 한참 지난 힙합 바지를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녔다. 그러면서 남학우들이 지나가는 여성이나 연예인의 외모를 품평하는 대화가 오갈 때마다 어느 남자 못지않게 야멸차면서도 정확한 ‘얼평’을 하곤 했다.
나는 남자들 사이에 끼어 그렇게 모질도록 혹독하게 같은 여자를 평가하는 J의 그런 모습이 불편했고, 그런 대화를 한다고 해서 J가 남자들의 ‘얼평’에서 면제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J에게 남자들 사이에 끼어서 여자들 품평하지 말라고, 그렇다고 해서 남자들이 자기네들 속에 너를 끼워 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냥 너를 ‘끼워 주는’ 척 하는 것일 뿐 네가 없는 자리에서는 너 역시 얼평의 대상이 될 거라고 지적했고, 네가 피부가 이렇게 좋고 이목구비도 예쁜데 웬만하면 살을 빼 보지 그러느냐, 나도 옛날에 한 덩치 해 봤는데 살 빼는 게 여러 모로 살아가는 데 좋더라고 경험에서 우러나온 진심어린 충고를 했다. 안 그래도 건강 이상 위험이 있을 정도로 과체중이기도 했고. 20대 초반 여성답게 내심 연애도 하고 싶고 예쁜 옷도 입어보고 싶었던 J는 나의 충고에 따라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나는 내가 다이어트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J에게 열렬히 전수했으며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대신 빠른 속도로 산보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등 J의 감량을 위해 노력했다.
지금도 J는 한창 체중이 많이 나갈 때보다는 10KG 이상 감량한 체중을 유지하고 있지만, 요즘 유행하는 케톤 다이어트라든가 ‘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 등에 종종 도전하곤 한다. J가 살을 뺀 후 남자친구도 생겼고, 연애 전선에 뛰어들 수 있게 된 것을 당시 20대 초반이던 나는 매우 기쁘게 여겼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사내아이처럼 자유로운 차림을 하고 있던 J를 내가 여성들의 코르셋 속으로 강제로 밀어 넣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예들이 쇠사슬을 오랫동안 차고 있게 되면 서로 자신의 쇠사슬을 자랑하게 되고, 나아가서 쇠사슬을 차고 있지 않은 사람을 비웃게까지 된다는 말이 있는데 나 역시 내가 차고 있는 쇠사슬을 J에게 자랑스럽게 보여 주고, J역시 쇠사슬에 묶이라고 강요한 꼴이 아니었을까. 지금 J는 몰라보게 여성스러운 차림으로 다니지만, 이미 탈코르셋 상태에 있던 J를 달달 볶아 내가 쇠사슬을 채워 버린 게 아닐까. 나는 J에게 물어 보고 싶었지만, 어떤 대답이 나올지 무서워서 아직 차마 묻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비만 혐오
그리고 나는 지금 S에게도 비슷한 짓을 하고 있었다. S역시 미용보다는 약한 체력 보강을 우선으로 하여 운동을 다니고 있는데, 살이 빠지면 예쁜 옷도 입고 싶고 데이트도 하고 싶다는 소박한 희망을 가지고 있다. 나는 30대 후반의 내가 입기에는 너무 귀엽고 청순한 원피스 등을 S에게 주면서 봄까지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데이트를 하라고 독려했고, 마침 관심이 있는 남자가 있는 S는 환하게 웃으며 봄까지 꼭 살 빼서 이 샤랄라한 옷들을 입고 데이트에 성공하겠노라고 다짐했다. 흔히 페미니스트들이 경멸조로 ‘사탕껍질’이라고 부르는 그런 옷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나는 S에게 일하는 여성이 건강상 꼭 먹어야 할 영양제 등을 추천하며 조금 주기도 했고, 내가 효과를 본 다이어트 셰이크를 몇 통 나눠 주었다. 그리고 보통 두유보다 칼로리가 현저히 낮은 두유를 추천하며 한번 마셔보라고 한 병 안겨 주었고, 저칼로리에 바질씨드가 들어 있어 몇 개 먹고 물을 마시면 단것에 대한 욕망도 가라앉고 배고픔이 대폭 감소하는 효과를 내 몸으로 실험해서 효과를 검증한 다이어트 캔디 역시 몇 봉 주었다. 살을 빼야 하는데, 라고 말하는 S에게 점심을 든든히 먹고 저녁으로 다이어트 셰이크를 먹으면 어때? 하고 심상하게 제안했다가 그렇게 하면 영양상 균형이 깨져 버린다는 S의 말에 나는 잠시 정신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도 일종의 팻 셰이밍(비만 혐오) 행위가 아닌가? 나의 의식의 흐름을 추적해 보니 이랬다.
S는 한창 젊은 20대의 꽃다운 여성이다 -> 이 나이는 인생에서 가장 예쁠 때다 -> 그런 나이에 예쁜 얼굴까지 지녔는데 통통한 것은 너무 아깝다 ->= 살을 빼서 예뻐지는 건 무조건 좋은 일이다
나도 모르게 이런 결론을 내리고 있는 거였다. 여성은 모두 아름답고 날씬해지고 싶어하고, 그런 미모를 갖춘 것이 좋은 거라는 생각이 몇십 년 동안 내게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 때문에 몸매 말고도 다양한 장점을 갖추고 있는 S의 다른 고민거리나 흥미, 관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숨 쉬듯 자연스럽게 몸매 이야기로 ‘고나리질’을 내가 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이 외모로 억압받는 것에 대해 누구보다 반대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S나 J등 다른 여성들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게 너무나 몸에 익어서 내가 여성 억압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이렇게 팻 셰이밍이 내게 강하게 자리잡고 있어서, 앞으로 사람들과 교제할 때 용모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을 만났을 때 어머 살 빠진 것 같다, 하고 말하고 안 보는 사이 살이 좀 오른 사람을 보면 얼굴 좋아졌네, 뭐 좋은 일 있어? 하는 식으로 일상적인 인사조차 외모와 관련되어 있다. 그런 말이 나오려 하면 지퍼를 잠그듯 의식적으로 입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정신의 탈코르셋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일단 국내 화장품 커뮤니티 중 가장 규모가 큰 메이크업 동호회에서 탈퇴했다. 그 다음으로 모 포털 서비스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이어트 카페에서도 탈퇴했는데, 한때 다이어트가 힘들고 의지가 사그라들 때마다 이 카페에 게시판에 회원들이 자신이 닮고 싶은 몸매라고 올리는 비현실적인 몸매를 가진 여성들의 사진을 보며 의지를 불태우곤 했었다. 하지만 그런 여성들은 전 세계 인구의 2%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회원탈퇴 버튼을 눌렀다. 다시는 이런 카페에 가입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의 용모를 언급하며 인사를 하는 일을 그칠 것이다. 이 코르셋은 마치 내 살가죽에 녹아 달라붙어 있는 것 같아 떼어내기 쉽지 않겠지만, 피나는 고통을 참고서라도 떼어내야 결국 나도, J도, S도, 다른 모든 여성들도 평온해질 수 있을 테니 반드시 떼어내야 한다. 꼭 이 코르셋을 벗고야 말겠다고, 지금까지 내가 해 온 무심한 짓들에 대한 부끄러움과 함께 그렇게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