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좋아하고 편하게 여기는 때는 과연 언제일까. 그런 때가 과연 있기는 할까. 재치 있는 문체로 많은 독자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황제와 여기사>라는 소설의 주인공인 기사 폴리아나는 오랜 군생활로 인한 스트레스로 몇 년 동안이나 월경이 끊겼다가 어떤 이유인지 불순이 치료돼, 몇 날 며칠 동안 생리대를 댄 채 누워 있으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온갖 짜증을 부린다. 시녀들은 그런 폴리아나에게 전혀 화를 내지 않는데, 신경질을 부리는 폴리아나가 얼마나 힘들까 오히려 동정하면서 생리가 시작되기 전 자신들의 몸을 추억한다. 사실 그건 모든 여성에게 돌아가고 싶은 기억일지도 모른다. 여자니까 얌전해야 한다며 남자아이보다 활동상 제약이 가더라도, 생리하지 않는 몸이 얼마나 자유로웠는지! 나 역시 내가 내 몸을 좋아하고 몸을 편안하게 느꼈던 기억은 초등학교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초경을 시작하기 전에 내 몸은 나를 방해하지 않았고, 원하는 대로 실컷 먹어도 고맙게도 그것을 모두 소화시켜 주었고, 이거 먹는다고 살찌는 거 아닐까 하는 근심 따위 하지 않아도 좋았다.
뷰티 시크니스
그러고 보니 십여 년 전 기륭전자 투쟁 현장의 릴레이 단식에 참여했다가 내 최고점 몸무게의 절반도 안 되는 38kg까지 몸무게가 빠졌을 때 그때서야 와우, 이제야 더 이상 살 뺄 필요가 없겠군! 싶긴 했다. 물론 이것이 극단적인 기아의 결과이고, 곧 본래 체중을 회복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당시에는 그렇게 말랐지만 기본 떡대가 있던지라 이쑤시개나 꼬챙이같이 빼빼 말랐다기보단 여분의 지방이 모두 사라져 그저 날렵하게 보이는 몸을 아주 편하게 느꼈다. 당시 투쟁현장에는 화장실이 따로 없어 용변이나 몸을 씻는 등의 용무를 보려면 인근의 오피스 빌딩들 화장실을 몰래몰래 이용해야 했는데, 부피가 아주 작아진 몸을 잘 접으면 화장실에서 밀대걸레를 빠는 공간에서 목욕까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정상의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아주 잘 알았다. 여성이 마르면 마를수록, 세상에서 자리를 적게 차지할수록 찬양받는 세상이다 보니 혹시라도 내가 무의식 중에서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싶을까봐 정신 똑바로 차리려고 애썼다. 165센티미터가 넘는 성인 여성이 30kg대의 몸무게라니, 이런 건 거식증 상태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사람들을 말하는 ‘프로-아나pro-anorexia’들에게나 있을 법한 일이었다.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의 저자 러네이 엥겔른은 자신의 강의를 듣는, 정상 체격을 가진 수많은 여학생들이 비정상적인 영양 부족 상태에 있거나 포토샵으로 깎아내어 현실적으로 있을 수 없는 모습을 한 여성들의 이미지를 보고 그것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한숨을 쉬면서 ‘오늘 저녁은 굶어야만 하겠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증상에 ‘뷰티 시크니스’라는 용어를 붙였다. 안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경중의 차이가 있을 뿐 ‘뷰티 시크니스’를 앓으면서 살아가기 십상인데, 초등학생 수준의 저체중 상태를 내 자신이 혹시라도 동경할까봐 두려웠다. 자연스럽게 나는 얼마 안 되어 10kg 이상 몸무게를 회복했고, 많이 먹으면 바로 찌고 적게 먹고 운동하면 바로 빠지는 정직한 체질 덕분에 건강한 식습관과 운동 습관을 갖도록 애썼으며 그 결과에 대체로 만족했다.
내 몸 데리고 다니기
그래도 무거운 여자가 되기 전에는 어딘가 내 몸을 데리고 다니기 쉬웠다. 하지만 무거운 여자가 된 후, 내 몸을 어딘가 데리고 가려고 하면 큰 결심을 하고 나를 살살 달래야 했다. 내 안의 또 다른 나는 내 몸을 조금도 움직이기 싫어했다. 그냥 내 몸을 침대의 부착물로 여겨 달라고 호소했다. 밖에 나가봤자 상처 입는 일뿐이었다. 인터넷에는 임산부 뱃지를 착용하고 있어도 자리를 양보 받지 못했다고 하소연하는 임부들이 넘쳐나는데, 그런 사연들이 무색하게 임신도 하지 않은 내가 지하철에 타면 사람들은 흠칫 놀라면서 여남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벌떡 일어나 나에게 자리를 권했다. 처음에는 손사래를 치며 저는 임신한 게 아니라고 했지만, 나중에는 부끄럽고 민망해 그냥 입 다물고 털썩 앉은 채 부끄러움을 되씹곤 했다. 오랫동안 알던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은 마치 내가 끔찍한 흉터라도 생겼거나 중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하나같이 나를 붙잡고 물었다.
너 도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됐니?
그런 질문을 받기 싫어 사랑하는 사람들조차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내 몸을 그렇게 만든 것은 바로 나이기 때문에 누구의 탓도 할 수 없었고, 나가서 맛있는 것 먹자, 재미있는 것 하자, 하고 살살 달래다가도 산에서 방금 내려온 멧돼지 같은 꼴로 무슨 맛있는 걸 먹고 재미있는 걸 해? 하고 또 다른 내가 외치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내 몸을 내가 편안하게 여기거나 좋아하긴 커녕, 외모중심주의를 타파해야 한다고 늘 주장하던 나 역시 그것이 내 문제가 되었을 때 당당하고 씩씩하게 대 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국 교포들이 만든 해외 브랜드 forever21이 망해서 홍대 오프라인 매장에서 레깅스를 500원에 파는 등 눈물의 고별 세일을 하고 있는데, 그걸 보자 나는 옛날에 나에게 종종 밥 잘 사주던 남자가 폭싹 망한 걸 보는 듯한 야릇한 기분에 빠졌다. 2000년대 후반쯤에 한국에 수입된 forever21은 미국 브랜드답게 대담한 디자인이 많았는데, 그때 한창 날씬했던 나는 노출이 많은 섹시한 디자인의 옷을 실컷 사들였다. 오프라인 매장 역시 자주 방문했지만 인터넷 쇼핑도 많이 했다. 3만원 이상 구매하면 무료 배송이라 타 쇼핑몰들보다 배송비 부담이 적었고 세일 폭 역시 컸다.
얌전하고 보수적이고 소위 ‘여리여리’하며 ‘여자여자’한 옷들이 주류를 이루는 한국 여성복 시장에서 번쩍번쩍 빛나는 세퀸 원피스라던가 등이 완전히 파인 백리스 드레스 같은 옷들을 1, 2만원 대에 구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기에 나는 참새방앗간처럼 그곳을 드나들었다. 그렇게 모은 옷들로 옷장을 가득 채워 놨다가 외출할 일이 있으면 한껏 입고 싶은 대로 입고, 매끈한 하이힐을 골랐다. ‘코르셋’이나 ‘탈코르셋’같은 것을 모르던 시절이니 그 이야기는 잠시 접어 두기로 하자. 어쨌든 가볍던 시절 나에게 외출은 신나는 것이었다. 한껏 나에게 그날 가장 어울리는 예쁜 옷에 몸을 꿰어 넣고 심혈을 기울여 마스카라를 칠한 후 나비 날개라도 걸친 양 신나게 집을 나서는 그런 일이었다. 그러나 90kg 가까운 무거운 여자가 된 후, 외출은 마치 천형天刑에 가까운 어떤 것이 되었다.
옛날에는 내가 옷을 골랐지만 이제는 옷이 나를 골랐다. 세퀸 원피스니 백리스 드레스니 하는 것은 차마 버릴 수 없어서 먼지 낀 박스에 처박아 둔 지 오래였다. 나를 받아 주는 옷, 내가 들어갈 수 있는 옷이라면 황송하게 입어야 했다. 그 옷이 예쁜지, 나를 예쁘게 보이게 해 주는지 따위는 너무나 사치스러운 생각이었다. 나를 받아 주는 옷이면 무조건 좋은 옷이었다. 한때 외출이 내게 소풍 같은 거였다면, 이제 외출은 나가지 않을 핑계를 어떻게 해서든 찾고 싶은 무엇으로 바뀌었다. 오랜 트위터 지인과 늘상 곧 만나서 술 한 잔 하자는 약속을 했지만 그 약속은 어째 현실로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로 내가 자꾸 약속을 미루게 되었는데, 이 무거운 몸을 약속장소로 데리고 나가 이것이 저입니다, 하고 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남자든 여자든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은 것은 사람의 본능이니까. 사실 지금 이게 나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몇 달 안에 살을 쫙 뺄 수도 없으니, 결국 무거운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지인을 오프라인에서 만나 수다를 떨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지인 역시 지금이 태어나서 인생 최고 몸무게라 나와 직접 만나는 것에 부담을 느껴서 살 좀 빼고 만나려고 약속을 미뤘다는 거였다. 그 사람 뿐 아니라 자신의 친구들 모두 태어나서 지금 최고 몸무게를 찍은 사람이 아주 많다고 했다. 나도 그랬고 나와 함께 사는 언니, 그리고 나와 친한 동생 역시 지금 몸무게의 최고점을 찍고 있었다.
찌느니 트럭에 치이겠다고
혹시 이건 어떤 징조 아닐까? 빙하기가 다시 도래한다거나 큰 재난이 닥쳐 오고 있는 게 아닐까? 우리의 몸은 우리보다 현명하니 그 역경을 견딜 수 있도록 혹시 지방을 저장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것 아니겠느냐고 했더니 지인은 그럴싸하다며 웃었다. 그러면 날씬한 사람들은 다 죽고 드디어 우리들의 세상이 오겠지요? 하고 웃다가 우리는 ‘트럭 조사’ 이야기로 넘어갔다. ‘트럭 조사’ 이야기는 미국에서 시행한 어떤 설문조사 이야기인데, 현재 몸무게에서 50KG이 찌겠느냐, 트럭에 치이겠느냐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떤 종류의 트럭이죠? 픽업 트럭인가요, 더 큰가요? ”
“얼마나 입원해 있어야 하죠? ”
“영구적인 장애가 생기거나 하나요? ”
나라도 50K가 지금 여기에서 더 찌는 것은 두렵긴 하다. 그래서 물어볼 것 같다. 몇 톤 트럭이죠? 얼마나 다치나요? 후유증은 많이 남나요? 우리가 날씬한 사람들보다 유일하게 유리할 경우가 있다면 그건 아마 건물붕괴 등으로 인해 고립되었을 때 등의 극한 상황일 것이다. 체지방이 별로 없는 날씬한 사람들은 몸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 없어 순식간에 죽어가겠지만 몸에 체지방을 잔뜩 지방하고 있는 우리들이 낙타처럼 몸에 저장하고 있는 지방을 사용하면서 끈덕지게 살아 있다가 끝내 구조되고 말 것이다! 그리고 생존자 인터뷰를 할 때 우리가 의지, 가족에 대한 사랑, 이런 대답을 하려고 할 때 옆에서 의료진이 차갑게 대답할 것이다.
생존자들은 비축하고 있던 잉여 체지방에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무거운 우리들은 뚱뚱해서 살아남았다고, 살아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놀림거리가 될 것이라고 지인과 나는 크게 웃었다. 이렇게 무거운 친구끼리 모여서 자책하지 않고 절망하지도 않고 우리들의 몸에 대해서 농담할 수 있는 것은 좋다. 하지만 무거운 우리들에 대해서 자학하는 농담을 하지 않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무거운 여자는 자기 자신을 자랑스러워하거나 사랑스러워해서는 안 된다는 세상이 심어 준 무섭도록 오랜 습관 때문인지 자꾸만 스스로에 대해서 농담을 하려고 하면 자학적이 되어 버리는데, 그것을 어떻게 그치느냐 하는 것이 최근 나의 큰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