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식증이란 단순히 못된 식습관이 아니다. 식사 시간에만 수면 위로 떠오르는 병이 아니라, 끊임없는 갈등이자 내적인 전쟁이다. 자신이 자신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한 것으로, 마음의 병이라고 엠마는 적었다. 평범한 것을 평범하게 먹지 못하는 병.
음식을 보면 겁이 나
엠마가 거식증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 이유 중 가족들을 더 이상 자신의 병증으로 근심하거나 슬퍼하도록 만들고 싶지 않은 게 큰 몫을 차지했다. 엠마가 한창 거식증을 앓던 대학 시절,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엿듣게 되었다. “쫄쫄 굶는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내가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 된 것 같아요. “ 그 당시에 엠마는 거식증을 멈추고 싶어도 어떻게 그만둬야 할지 방법을 알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난 동생을 끌어안자, 동생은 작은 새처럼 뼈밖에 남지 않은 엠마의 몸이 뚝 부러지고야 말 것 같은 두려움과 각종 복잡한 감정에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앞서 이야기한 빅투아르의 경우에도 그가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먹지 않았을 때 가까이에서 지켜본 어머니가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
엠마의 아버지는 하루 온종일 일을 한 후에도 지친 몸을 이끌고 막스 앤 스펜서에 가서 엠마를 위한 맛있는 간식을 사 가지고 왔다. 물론 엠마는 거기에 손도 대지 못했다.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있을 때 그는 거식증이 정말 미웠다. 자신도 함께 어우러져 맛있는 것을 즐기고 싶은데, 블랙 커피가 든 잔만 들고 서성거리는 자신이 가족들과 겉도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 누군가 케이크 한 조각을 권하면 어찌할 바를 몰랐고, 권하지 않으면 화가 나는 모순적인 감정에 시달렸다. 엠마는 거식증이 주던 쾌감을 담담히 설명한다. 엔도르핀과 아드레날린이 충분해진 느낌, 음식이 들어가지 않고 비어 있는 몸이 아주 깨끗하고 건강하게 느껴지는 기분, 이런 느낌들 때문에 신바람이 나고 성취감과 통제력이 느껴진다. 허기는 마치 마약과 같았다. 엠마는 자신이 아는 쾌감 중 허기의 쾌감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배가 고프면 무기력해지는데, 거식증에 걸린 때 마치 슈퍼맨이 된 것 같았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심리와 포기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엠마는 음식을 보면 겁에 질렸다. 절대로 무너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를 축소시키지 말 것
거식증은 오랫동안 골 빈 여자들의 실없는 고민이나 10대 소녀들이나 걸리는 병으로 취급되어 왔지만, 사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 엠마는 거식증을 살인마라고 부른다. 거식증보다 사망률이 높은 정신 질환은 없으며, 거식증 환자의 20퍼센트가 합병증이나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죽지 않더라도 뼈가 망가지고 불임이 된다. 게다가 거식증은 아주 재발률이 높은 병이다. 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식이장애협회인 비트beat에서 추산한 바에 의하면 완전히 치유된 거식증 환자의 비율이 46퍼센트이고 점차 좋아지고 있는 환자의 비율이 1/3 정도 되지만, 나머지 20퍼센트는 회복률이 50%도 안 되는 만성 질환자다. 회복률이 반도 안 된다는 것은 다른 질환에 비해 매우 충격적인 수준이다. 그리고 ‘완전히’ 치유된 거식증 환자의 비율을 완전히 신뢰할 수가 없다.
엠마의 생각으로는 거식증에는 ‘완전 회복’이라는 게 없기 때문이다. 흉터가 깊은 병이기 때문에 거식증 환자 특유의 사고방식은 평생 환자를 따라다닌다고 그는 이야기한다. 이렇게 위험성이 높은 병인데도 식이장애는 여성들 스스로 자초한 자업자득이라는 취급을 받는다. 그들을 정량화된 아름다움의 기준에 맞추게끔 몰아붙이는 사회의 책임은 없고, 모든 건 아름다움을 목표로 하는 유치하고 골 빈 여성들의 책임이라는 식으로 문제를 축소시킨다.
먹고 싶으면 먹을 수 있는 사람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페이지 중 하나는 음식을 대할 때, 혼자나 여러 사람과 식사를 할 때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한 장면이다.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 여성들은 기름을 두르지 말고 야채를 쪄주세요, 식후 디저트는 필요 없어요,같은 식으로 음식을 두려워한다. 식이장애 환자들이 갖는 공통적인 감정은 ‘죄책감’이다. 맛있는 음식을 보고 먹어 버리면 또, 또 내가 죄를 지었다는 식이고 그런 음식을 보고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면 자신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고 인생에 대한 철저한 통제력을 지녔다며 필요 이상의 자부심을 갖게 된다.
그러나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뭔가 먹고 싶으면 먹는다. 타인이 무엇을 먹는가에 대해서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햄버거에 프렌치 프라이 세트가 먹고 싶으면 고민 없이 바로 먹으며, 식후 디저트가 먹고 싶으면 그렇게 한다. 대부분의 남성들은 배가 고프면 먹고, 배가 부르면 먹는 것을 중단한다. 햄버거를 먹고 배가 부르면 프렌치 프라이를 고스란히 남긴다. 이런 점에서는 남성이 음식과 보다 자연스러운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성들에게 뭔가 부족한 점이 있어서 음식과 불건전한 관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애당초 남성과 여성에게 주어지는 사회적 압력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남자는 통통한 배를 하면 곰돌이라는 얘기를 듣지만, 여성은 임신했냐는 비아냥을 듣기 십상이다. 엠마는 아버지와 남동생을 보며 먹고 싶으면 먹고, 배가 부르면 그만 먹는 그들을 몸서리치게 부러워했다.
잘 먹고 마르고 예쁘고 유능해야 한다고?
점점 보이는 이미지가 전부가 되는 세상에 살면서, 여성들은 직업적으로도 유능하면서도 아름다워야 한다. 나이를 먹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여성들은 ‘자신을 방치하고 포기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적절한 나이에 임신을 하되, 아이를 낳자마자 후딱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래서 식사를 죄악시하며 ‘조금 먹는 방법’을 연구하게 된다. 모델 엘리자베스 헐리는 어느 레스토랑에 가더라도 자신이 쓰는 유아용 식기와 수저를 가져가서 그것으로 음식을 먹고, 늘 거식증 소문이 도는 데이비드 베컴의 아내 빅토리아 베컴은 생선과 데친 야채만 먹다가 그 다음에는 파인애플만 먹기도 했고, 언제나 조그만 저울을 가지고 다니면서 식당에서 나온 음식의 무게를 면밀히 잰다고 한다. 그리고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뭐든 반으로 잘라서 절반만 먹고 나머지 절반은 주방으로 돌려보내는 습관이 있다고 한다. 엠마 역시 티스푼보다 조금 큰 은수저로만 식사를 했다. 엘리자베스 헐리나 빅토리아 베컴처럼 가느다랗고 늘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저런 괴상해 보이는 짓까지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런 여자, 즉 힘껏 몸매 관리를 하는 여자를 보고 싶어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잘 먹는 소녀들’ 등의 먹방 방송이 한창 유행했던 것처럼, 사람들은 가냘프고 아름다운 여성이 입을 쫙쫙 벌리며 ‘아재’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배불리 먹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잘 먹으면서도 살이 전혀 찌지 않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가 좋은 예인데, 그는 매년 오스카 시상식이 끝나면 햄버거를 먹는 습관이 있다. 육감적이면서도 늘씬한 몸매의 그녀가 햄버거를 베어 무는 사진은 타블로이드 잡지 등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사람들은, 특히 남자들은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깨작거리는 여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여성들의 입에서 ‘다이어트’라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 지긋지긋하고, 자신과 함께 맥주를 들이키고 음식을 복스럽게 잘 먹으면서도 날씬하길 바란다. 영화 <나를 찾아줘>의 주인공 에이미가 전형적으로 이런 여자다. 몸매 관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감추어야 쿨하고, 그런 ‘쿨 걸’이 되어야 하는 여성들은 체중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을 감춘다.
하도 여성들이 무엇을 먹는가에 관심이 집중되다 보니, 최근 헐리우드에서는 DIPE라는 단어가 생겼다고 한다. Documented instance of public eating이라는 이 단어의 뜻은 ‘공개 식사 인증 사례’의 약자다. 그래서 여배우들은 고도의 이미지 전략으로 푸짐한 파스타나 큼지막한 베이컨 샌드위치를 신나게 해치우면서 살이 찌지 않는 스스로의 모습을 홍보한다. 그들은 건강하고 쿨해 보인다. 물론 그들도 그 맛있는 음식들을 먹지 않을 때에는 케일이나 샐러리만 씹을 수도 있고, 분명 몇 만 달러를 받는 개인 트레이너가 있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대중에게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베이컨을 먹으면서도 날씬한 연예인들을 보면서 여성이 스스로에게 주는 수치심은 더욱 커질 뿐이다.
다이어트 = 종교
내가 다이어트라는 세계에 뛰어든 지도 어느새 20년 가까이 되어 간다. 나도 먹지 않아야 할 음식을 먹었을 때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다이어트와 종교가 기묘하게도 아주 닮은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이어트 카페나 커뮤니티에서 여성들은 일단 천로역정처럼 결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목표를 선언한다(168CM인데, 43KG까지 빼고 싶어요!). 자신이 그날 먹은 음식의 칼로리를 체크하는 것은 마치 지은 죄를 하나하나 고백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매일매일 고난의 행군을 한다. 그러나 어느 날 식단과 운동 플랜을 지키지 못한 날에 죄책감에 가득 차 대중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 저는 죄를 지었어요! 양념통닭에 생맥주를 먹고 꼬치구이도 참지 못하고 먹어 버렸습니다! 저도 죄를 지었습니다! 생리 전이라 너무 단 게 땡겨서 초콜릿 큰 거 하나를 다 먹었고 쿠키 한 상자도 먹어치웠습니다! 그러면 마치 신부나 목사들이 하듯이 ‘다이어트 멘토’들이 보속을 내려 준다. 믿음이 약한 자여, 내일 하루 종일 굶고 회사에서 집까지 걸어가십시오. 찐 야채만 먹고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을 50분 뛰십시오. 그러면 그대의 죄가 사하여질 것입니다! 일단 먹는 것은 죄다. 먹지 않고 지방질 없이 가냘픈 몸매는 인체의 본능에서 승리한 깨끗하고 죄 없는 영혼이다.
원하는 만큼 체중을 뺀 사람은 자신의 체험을 공개하는데, 이 광경은 마치 교회에서 존경받는 신도가 자신이 어떻게 구원받았는지 ‘간증’하는 모습과 똑같이 닮았다. 저는 이러이러한 방법을 써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다시는 구원받지 못한 죄인이었던 옛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구원을 받아 깨끗한 몸이 되고 나니, 그토록 살찌는 음식을 뱃속에 처넣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들은 구원을 애타게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멘토가 되어 신앙생활의 길잡이가 되어 주고, 실제로 이룰 수 없어 보이는 목표를 신앙의 힘이 있으면 할 수 있다며 믿음생활을 독려한다. 이들이 넘어질 때마다 교묘한 방식으로 이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까지 비슷하다. 그러면 먹는 것은 왜 여성들에게 죄가 되었을까? 지방이 없는 여성의 몸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그런데 왜 지방은 혐오의 대상이 되었을까? 식이장애에 대한 글이 길어졌는데, 여기에 대해 알아볼수록 너무나 많은 수의 여성이 이 병에 의해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감이 한몫을 했다. 다음 편에서 엠마의 이야기를 끝내고, 최근 내 능력에서 한참 벗어나는 장편 원고를 쓰던 중 정도가 약한 거식증에 걸렸던 내 경험을 털어놓고서 <무거운 여자가 되면>을 맺기로 한다. 부디 기다려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