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여자가 되면 15. 황금돼지

생각하다다이어트운동

무거운 여자가 되면 15. 황금돼지

김현진

일러스트레이: 이민

무거운 여자로 살면서 느끼는 불편함 중 하나는 ‘무겁게 살아가는 것’에는 꽤나 돈이 든다는 것이다. 그나마 플러스 사이즈 모델이 운영하는 66100같은 사이트가 있어 다행이지만, 보통 체격의 여성은 온라인 마켓에서 ‘프리사이즈’(전혀 프리하지 않은 주제에 왜 이 옷들을 그렇게 부르는지! ‘프리사이즈’란 44-66의 보통 체격 여성이 무리 없이 입을 수 있는 옷 사이즈를 원하지만 프리의 의미가 심하게 왜곡되었다) 옷을 그보다 훨씬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데 체격이 큰 여성들을 위한 옷은 일단 비용을 더 들여야 한다. 

온라인 마켓에서도 플러스 사이즈를 구비한 곳이 점점 늘어나고는 있지만, XL, XXL 사이즈는 당연한 듯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 옷감 값이 더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가볍게 입을 티 쪼가리 같은 걸 사려고 해도 무거운 여성은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한다. 오프라인 매장에 가면 ‘저희 매장에는 손님 사이즈가 없다’며 냉대를 받는다. 의류 메이커들은 의도적으로 큰 사이즈의 옷을 내놓지 않는다고도 한다. 무거운 체격을 지닌 여성들이 그들의 옷을 입으면 브랜드 이미지에 손상이 간다나? 우리는 날씬한 여자만 손님으로 취급하겠다는 것이다.

살찐 죄?

‘헝거’와 ‘나쁜 페미니스트’등의 책을 쓴 작가 록산 게이는 무게도 많이 나가지만 키도 190센티미터인 아주 큰 여성이다. 그녀는 비행기에 탑승할 때마다 기본 안전띠가 맞지 않아 여분의 벨트를 요구해야 하는데, 아무리 이 점을 예약할 때 항공사 측에 미리 알려도 승무원들이 그 벨트 문제로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다고 한다. 무거운 여성이 공개적으로 모욕을 당하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토록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말 그대로 ‘살찐 죄’다. 그래서 체격이 큰 사람들의 경우 아예 자신 옆의 한 자리를 추가로 사 버리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한다. 무겁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의 2배나 되는 비용을 지불해야 불편 없이 이동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뚱뚱하고 건강한 사람이 운동을 많이 하는 마른 사람보다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건강과 체격의 밸런스를 잘 맞춘 소위 ‘건뚱’한 사람은 다소 드물다. 내 경우에도 그랬지만, 몸에 낀 지방질은 병을 가져왔다.가장 흔한 것이 고혈압, 콜레스테롤이 혈관에 찐득찐득 달라붙는 고지혈증, 지방간, 당뇨 같은 성인병들이다. 이 병들은 앓고 있는지 검사하는데 일단 적지 않은 돈이 들고, 치료하는데 추가적으로 많은 돈이 들어간다. 

나 역시 올해 초 받은 건강검진에서 고혈압만 빼고 거의 모든 종류의 비만이 유발할 수 있는 질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비상이 걸렸다. 다행히 지난 몇 달간 정말 열심히 몸관리를 한 결과 표준 체중보다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 빼고 건강 면에서는 걱정할 필요 없는 건강체라는 판정을 받아 성인병에서는 자유로워졌지만, 온 몸에 덕지덕지 병이 붙어 있을 때는 예약을 잡아 병원을 방문하고 처방받은 약을 구입해 먹는 것에 시간과 비용을 많이 들여야 했다.

일러스트 이민

살찐 탓?

2018년 말 추산해 본 결과 한국의 다이어트 산업은 10조 원 규모라고 한다. 특히 너무 고생스럽지 않고 차라리 돈을 들여 빠른 효과를 보길 원하는 여성들에게 판매되는 다이어트 식품이나 보조제는 거의 사기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성분표기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마황처럼 의료적으로 허용되지 않은 성분이 첨가된 경우도 많다. 살을 빼주는데 특효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홍보하는 한 시리얼 브랜드의 식품성분표를 읽어 보면 탄수화물에다 당을 더한 고칼로리의 설탕과자나 마찬가지다. 그들이 말하는 다이어트 효과를 보려면 새 모이만큼만 먹어야 한다. 무슨 음식을 먹어도 그 정도만 먹는다면 당연히 살이 빠질 것이다. 그렇지만 늘씬한 모델을 내세워 대대적인 광고를 하여 보는 이를 혹하게 한다. 정신과에서 처방받을 수 있는 식욕억제제는 배를 덜 곯는 기분 대신 내내 입을 마르게 하고 불안, 초조한 컨디션을 견뎌야 한다. 

이런 장사꾼이 이용하는 것은 무거운 여성들(무거운 남성들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건 아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무거운 여성이 받는 억압에 댈 게 아니다. 무거운 남성에게 우리 사회는 체격이 듬직하다, 풍채가 좋다, 곰돌이, 상남자 등 어떻게든 좋은 소리를 해 준다.)의 간절한 마음이다. 조롱당하고 멸시당하는 육체를 가진 사람의 애타는 탈출 욕구, 온통 살로 된 감옥에 갇힌 죄수처럼 이 감옥에서 어떻게든 나가고 싶은 고통스러운 마음을 정확히 꿰뚫어보고는 신통방통한 비결을 찾은 양 여성들을 다이어트 산업의 소비자로 만든다. 잘 되지 않으면 그냥 여자 탓을 하면 된다. 당신이 의지가 충분히 강하지 않아서 그렇다, 근성이 없어서 그렇다. 살 찐 것도 내 탓, 살 못 빼는 것도 내 탓, 모든 것은 무거운 여성의 책임이다.

이젠 정말 살을 빼겠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헬스장에 가면 요즘은 하나같이 코치들이 PT를 권한다. 어떨 때는 PT고객이 아닌 사람은 손님으로도 생각하지 않아 아예 안중에도 없는 느낌이다. PT는 한 번에 최소 4-8만원이다. 일주일에 3회 PT를 받는다면 한 달에 80-100만원까지도 지불할 각오를 해야 한다. 요즘은 비용이나 시간도 그렇고 남들에게 운동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홈트’, 즉 홈 트레이닝을 하기도 하지만 운동과 친하지 않은 무거운 여성이라면 능률적으로 ‘홈트’를 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헬스 자전거, 러닝머신이나 로잉머신처럼 집 안에서 운동할 수 있는 기구를 구입하기도 하는데 여기에도 20-100만원 정도 비용이 소모되고 덩치가 큰 것들이라 집안에서 여분의 공간까지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요가원에 다니려면 한 달에 최소 20만원 정도는 지불할 수 있어야 하고 플라잉 요가 등 좀 특별한 운동의 경우 비용이 훌쩍 올라간다. 요즘 유행하는 필라테스 역시 요가 못지않은 비용이 든다.

일러스트 이민

황금돼지

무거운 여성의 삶에는 이렇게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 살을 자기가 찌워 놓고 어쩌라는 거냐고 할 수도 있지만, 건강에 문제가 없는 한 여성에게 다양한 체형이 허용되는 사회라면 굳이 들이지 않아도 되는 돈일 수도 있다. 살을 빼야 하지만 저렇게 투자할 비용이 없는 내가 22KG를 뺐고 앞으로도 14KG정도를 더 빼야 하는 현재 들이고 있는 비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PT받을 필요도 없고 어딘가에 가입해야 하는 것도 아닌 간편한 운동을 찾다가 달리기를 선택했고, 러닝화를 구입했다. 두 켤레를 샀는데, 발 사이즈가 220-225사이즈라 온라인 쇼핑몰에서 팔리지 않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한 족이 내 발에 맞는 경우가 종종 있어 정가가 16만원 정도 하는 러닝화들을 19000원씩에 구입했다. 달리기 앱은 ‘런데이’라는 무료 어플을 다운받아 사용했고, 초보 러너 단계를 지난 다음에는 ‘나이키 러닝 클럽’이라는 앱을 쓰고 있는데 이것 역시 무료다.

홈트레이닝을 하기 위한 아령은 원래부터 집에 있어서 따로 돈이 들지 않았고, 중고서점에서 피트니스 교본을 6000원 주고 구입했다. 흔히 ‘코어’라고 표현하는 몸의 중심 근육을 키우기 위해 필라테스 클래스에 다니고 싶었는데 마침 집 근처에 구민체육회관이 있어 필라테스와 요가 클래스에 등록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강좌를 듣는데 복수 수강의 경우 할인 혜택 등을 받아서 한 달에 약 8만원 정도의 비용을 낸다. 달릴 때와 실내 운동을 할 때 모두 입을 수 있는 운동복과 스포츠 브래지어를 사는데 10만원 정도가 또 들었다. 이 체육회관에 야외 트랙이 딸려 있어 러닝을 하기 위해 장소를 찾아 헤맬 필요가 없는 것도 큰 장점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내가 주민으로서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설의 근처로 이사 오게 되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우연히 찾아온 행운이다. 러닝화 구입 같은 것도 마찬가지로 운이 크게 작용했다. 이런 환경이 맞아떨어지지 않은 무거운 여성이라면 그 몇 배나 돈을 지불해야 할 것이다. 뚱뚱한 건 돈이 든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게, ‘뚱뚱한 건 돈이 된다’. 말 그대로 장사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그야말로 ‘황금돼지’로 보일 것이다.

사실 사회는 무거운 여성이 살을 빼는 것을 그런 척을 하되 진심으로 바라지는 않는다. 그래야 무거운 여성들이 계속 나도 날씬해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돈을 쓰기 때문이다. 다이어트 쉐이크를 먹어 볼까, 디톡스가 유행이라는데 레몬디톡스 세트를 파네? 회사로 매일 배달해 주는 다이어트 식단의 도시락이 있네? 이 옷 너무 예쁜데 내 사이즈는 없어, 그렇지만 지금 사 놨다가 살 빠지면 입자! 무거운 여성들이 없다면 경제 효과는 크게 사그라들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쓰면 쓸수록 귀한 손님 대접을 받는데 비해 무거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산업은 무거운 여성을 고객으로 존중하지 않고 도무지 답이 안 나오는 돼지 취급을 하며 그 여성이 자신의 몸을 싫어하고 부끄러워하고 수치심을 느끼도록 온갖 애를 다 쓴다. 손님이 왕이라는데 이렇게까지 손님에게 고자세로 장사하는 분야도 드물 것이다. 자기를 비하하지 않고 존엄성을 지키면서 다이어트하기란, 정말 너무나 힘들다. 나는 오늘도 그 한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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