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여자가 되면 23. 무거운 여자의 하루

생각하다

무거운 여자가 되면 23. 무거운 여자의 하루

김현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무거운 여자의 하루는 어떨까? 적어도 유쾌하지는 않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리얼리티 쇼 <도전 슈퍼모델>의 사회자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미국의 모델 타이라 뱅크스는 ‘팻 수트’ 체험을 한 적이 있다. 178센티미터의 늘씬한 모델이며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트>등의 잡지에서 섹시한 자태를 자랑하는 미인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녀는 300파운드, 약 136킬로그램의 여성으로 보이도록 특수 분장, 즉 ‘팻 수트’를 착용한 한 후 평소처럼 낯익은 거리에 나섰다. 그리고 그녀는 깜짝 놀라고 만다. 조금 과장하자면 살면서 백만 번은 다녀 본 익숙한 거리와 친근한 동네가 차마 한 발자국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들의 반응이 차갑고 쌀쌀맞아 공포스러운 곳으로 변한 것이다. 타이라 뱅크스는 이 경험에서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136킬로그램까지는 아니었지만 90KG에 육박하는 무거운 여자였던 시절 나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거운 여자의 하루를 구성해 보자. 밑줄 친 말은 내가 직접 들었거나, 무거운 여자들이 나에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거나, 무거운 여자가 쓴 책에서 본 이야기들이다.

경멸할 자유

무거운 여자는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경멸을 받고, 그가 무거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마주치는 모든 사람들은 그를 경멸하거나 비난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도 한 이야기지만, 다양한 체형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이 단지 자신의 악의를 풀기 위해서 무거운 여자에게 아는 사람이고 모르는 사람이고 할 것 없이 비난을 던지고는 ‘자신은 저 무거운 여자가 살을 빼도록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이라며 무슨 선행을 베푼 듯이 생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들의 변은 하나같이 이렇다. 상처받아야 자극이 되어서 살을 빼지! 그런 사람이 무거운 여자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출근 시간에 무거운 여자가 버스나 지하철에 타면, 승객들은 무거운 여자를 보고 얼굴을 찌푸린다. 어떤 사람은 옆의 일행에게 귓속말을 하지만 다 들린다.

저런 여자들은 굳이 출근 시간에 안 나오면 안 되나? 자리를 몇 인분 차지하는 거야, 민폐야 민폐. 

무거운 여자는 그런 말을 애써 못 들은 척한다. 하지만 무거운 여자에게 친절한 사람도 있는데, 굳이 베풀지 않아도 되는 친절이라 이 친절은 무거운 여자를 더욱 부끄럽게 한다. 무거운 여자는 임산부 뺏지도 달고 있지 않고 자리를 양보해 줬으면 하는 눈치도 준 적이 없는데 무거운 여자의 배를 본 사람들은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하곤 한다. 무거운 여자는 처음에는 아니 저는 임신한 게 아니고... 라고 손을 내젓지만 저는 임신한 게 아니고 그저 뚱뚱할 뿐이에요, 라고 말하는 것이 더 부끄럽다. 그래서 무거운 여자는 처음 한두 번은 사양하다가 나중에는 그냥 털썩 앉아 임산부인 척 편하게 간다. 안 그래도 더덕더덕 붙은 살들이 무릎이며 발목에 가는 하중 때문에 무리를 주어 표준 체중의 사람보다 무거운 여자를 훨씬 빨리 지치게 하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이민

지겨운 꼬리표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는 것은 물론이고, 남들은 춥다면서 옷을 껴입고 있는 방 안에서 지방으로 된 패딩을 입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 무거운 여자는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지만 그 모습이 결코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부끄럽고 곤란하다. 버스나 지하철에 빈 자리가 있어 앉으려 하면 저 무거운 몸을 하고서도 편한 것을 밝히니 게으르기 짝이 없다는 눈총을 받는다. 설사 그런 눈총이 아니었다 할지라도 저도 모르게 무거운 여자는 위축되어 단순한 눈짓도 자신을 향한 비난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무거운 여자의 무거움에 체형, 환경, 이러저러한 각종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여러 요인 따위는 조금도 고려되지 않고 무거운 여자에게는 그저 ‘자기관리에 실패한 여자’라는 꼬리표만 붙게 된다.

만일 무거운 여자가 회사에 다닌다고 하자. 사무실 사람들은 그가 하는 모든 일을 그가 무거운 여자라는 점과 연관시킨다. 조금만 일이 느려도 거 봐라 몸놀림이 굼뜨다, 살을 좀 빼야 빠릿빠릿하게 움직이지 않겠느냐, 하고 무거운 여자에게 모두들 충고나 관심을 가장한 훈계를 아끼지 않는다. 잡담 시간에도 무거운 여자의 무게는 모든 사람들이 심심하면 입에 올려 씹고 뜯고 즐기는 오징어다리 같은 오락거리가 된다. 그래가지고 시집이나 가겠느냐, 너무 뚱뚱하면 애도 못 낳는다, 여자로 태어나서 꽃다운 시절을 한번 보내 봐야지 언제까지 않겠느냐 너만 보면 답답하다, 누구를 소개시켜 주고 싶어도 외모 때문에 좋은 사람이 있는데도 선뜻 소개할 수가 없으니 살 좀 빼라, 잘 보면 이목구비가 예쁜데 살에 파묻혀 있는 것 같으니 살을 빼면 예뻐질 것이다 그런 게 바로 안 긁은 복권이니 힘 좀 내서 다이어트 좀 해 봐라, 요모조모 실컷 떠들고 난 후에는 그래도 우리니까, 당신을 아끼니까 이런 소리 해 주는 거라고 무거운 여자에게 잔소리를 실컷 해 놓고 생색까지 낸다.

모욕은 일상

점심시간에 함께 식사라도 하게 되면 무거운 여자의 젓가락이 어디로 향하는지 살피고 무안을 주는 사람이 꼭 있다. 비엔나 소세지? 지금 그런 걸 먹어? 정신이 있어 없어? 그런 음식을 먹으니까 살찌지. 살 빼려면 기름 적게 넣고 무친 나물 같은 걸 먹어야 해. 지금 부대찌개 시킨 거야? 그거 칼로리가 얼만지 알아? 얼마나 살찌는데 겁도 없이 그걸 시켜? 밥 한 공기 다 먹은 거야? 최소한 세 숟갈은 덜어야지. 살 빼려면 밥도 반 공기만 먹어야 되는데 넌 참 태평하다. 너 그거 반의 반만 먹어. 저렇게 먹으니까 살이 찌지. 지적질은 끊이지 않는다. 만약 무거운 여자가 체중을 좀 조절해 보기 위해 다이어트 도시락을 싸오거나 야채 위주의 다소 빈약한 메뉴를 택했다고 하자. 그런다고 해서 사람들이 입을 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야, 코끼리 비스켓이네? 그거 가지고 식사가 되겠어? 하긴 살 좀 빼긴 빼야지 잘 생각했어, 이제 좀 여자가 되려나 보네. 그 덩치에 그 음식 가지고 유지가 되겠어? 그거 먹고 나서 이따 탕비실에 숨어서 막 뭐 먹는 거 아니야? 이런 일상적인 모욕들이 무거운 여자의 삶을 가득 채운다.

식사를 마치고 함께 커피라도 테이크아웃하려면 무거운 여자는 아메리카노나 0칼로리의 차 종류 이외에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다. 케익이나 쿠키 같은 것을 먹으려 하면, 넌 그런 거 먹으면 안 돼. 이거 다 널 위해서 하는 소리다? 언젠가 우리에게 고마워할 날이 있을 걸? 음료 역시 달콤한 휘핑 크림이 잔뜩 올라간 커피나 우유 거품이 들어간 라떼, 혹은 부드러운 핫 초콜릿 같은 것을 고르면 사람들은 지금 그게 입에 들어가냐는 표정으로 그런 걸 먹으니까 살이 찌지! 라고 범행 현장을 잡은 것처럼 의기양양하다. 결국 무거운 여자가 자신이 정말 먹거나 마시고 싶은 것을 택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사무실에서 누군가 간식을 돌려도 꼭 한 마디 하는 사람이 있다. 쟤는 주지 마, 살 빼야 되잖아. 거기서 나도 먹겠다고 덤벼들면 정말로 아귀 취급을 받기 때문에, 무거운 여자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별로 먹고 싶지 않다고 대답하곤 한다. 때로는 약 올리듯, 선심 쓰듯 먹고 싶지? 먹고 싶지? 그냥 먹어! 하고 눈 앞에 간식을 내미는 사람들도 있다. 무거운 여자가 그것을 사양하면 그들은 에이 집에 가서 양푼으로 밥 비벼서 끌어안고 먹을 거 다 알아, 하고 재미있지 않은 농담을 하곤 한다. 이것이 포인트다. 무거운 여자를 가지고 하는 농담에 무거운 여자는 결코 웃을 수 없다. 모두가 재미있어야 농담인데, 당사자는 재미있지 않으니 폭력이다. 인격적 학대다. 그러나 여러 번 언급했다시피 한국 사회는 무거운 여자를 모욕하는 것을 폭력이라 인지하지 않고 살 빼라는 ‘독려’라고 착각한다.

일러스트 이민

도대체 어쩌라고

요즘은 ‘탈코르셋’ 열풍이 불고 있지만 무거운 여자도 간혹 화장을 할 때가 있다. 화장을 해도 무거운 여자는 놀림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냐, 얼굴 면적이 넓어서 파운데이션 금방 다 쓰겠다... 그러나 무거운 여자가 화장을 하지 않는다고 하자. 그러면 그것은 또 그것대로 욕을 먹는다. 여자인 것을 완전 포기했구만, 얼굴이 무기야, 양심도 없다 저렇게 살쪘는데 어떻게 쌩얼로 다닐 수가 있냐 완전 시선 공해야. 꾸미면 돼지 주제에 꾸민다고 욕을 먹고 안 꾸미면 돼지 주제에 꾸미지도 않는다고 또 욕을 먹는다. ‘프리사이즈’라고 표기된 옷은 절대 ‘프리’하지 않다. 예쁘고 몸에 맞는 옷을 찾으려는 무거운 여자의 소망은 단지 소망일 뿐이다.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 동대문 패션상가나 백화점 매장 등을 나다녀 봐도 점원들에게 ‘우리 매장에는 손님 사이즈가 없다’라고 박대 받는 일은 일상이다. 그런 창피를 당하기도 지겨우니 인터넷으로 주로 옷을 사게 되는데, X사이즈부터는 추가 요금을 받는 곳이 허다하지만 그거라도 만들어 주는 게 감지덕지라 어쩔 수 없이 그런 옷들을 사게 되고, 무거운 여자로 사는 데에는 추가로 비용이 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옷들이 도착했는데 옷이 예쁜 경우는 거의 없다. 무거운 여자들의 미적 감각은 아예 무시하는 것인지, 멋은 살 뺀 다음에 내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누가 입어도 여리여리할 박시한 핏’이라며 커다란 푸대자루에 소매를 두 개 달아놓고는 그걸 옷이라고 판다. 기가 막히지만 무거운 여자는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받아주는 옷’을 입는 수밖에 없으므로 때문에 일단 몸에 맞으면 그저 감지덕지하며 입는다.

퇴근 후 사람들과 술자리라도 있다고 하자. 무거운 여자가 맛있어 보이는 안주라도 하나 집어먹을라치면 사방에서 잔소리가 쏟아진다. 지금 너 그게 입에 들어가냐! 술을 마신 사람들은 취기가 돌면 더욱 무례해진다. 가끔 전혀 상관없는 옆 테이블에서 무거운 여자를 보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릴 때도 있다. 야, 시선 공해다 시선 공해. 어떻게 저러고 밖에 나다니냐. 나 같으면 그냥 이 세상 안 살고 만다. 저게 여자냐 코끼리지. 어휴, 저런 여자는 줘도 안 먹어. 때때로 남자들만 있는 테이블에서 벌칙 게임으로 무거운 여자의 전화번호를 따 오는 것을 벌칙으로 내세운 오락거리로 삼는 적도 있다. 무거운 여자에게는 얼마든지 무례해도 된다는 어떤 합의라도 무거운 여자 몰래 이루어진 것만 같다. 살 빠지는 한약이나 이것만 먹으면 체지방이 쫙쫙 빠진다는 알약 따위가 어리석은 짓이라는 것을 무거운 여자들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이 그런 것들을 사게 만든다. 지난 2013년에는 위 용량을 줄여 인위적으로 다량의 음식 섭취가 불가능하게 하는 수술인 ‘위 밴드 수술’을 받은 고도 비만 여성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살을 빼기 위해 바야흐로 목숨까지도 거는 시대가 된 것이다. 무거운 여자는 목숨까지 걸고 ‘무거움’에서 탈피해야 하는 지경이 되었다.

아직 사람이 아닌 무엇

무거운 여자가 살을 빼기 위해 운동을 하면, 그것도 조롱거리가 된다. 헬스클럽의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기라도 하면 와, 러닝머신 부서지겠다, 하는 소근거림이 쉽게 들린다. 심지어 개나 소나 운동 좀 합네 하는 사람들은 무거운 여자의 운동과 식생활에 저마다 한 마디씩 훈수를 놓는다. 운동을 하지 않으면? 그것도 욕을 먹는다. 저렇게 엉덩이가 무거워서 어떡할 거야, 쟤는 평생 저렇게 살려나봐. 무거운 여자의 친척이나 친지들도 무거운 여자의 직업적 성취나, 학업 성취나, 개인적인 발전 같은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다. 오랜만에 만나면 그들은 모두 똑같이 말한다. 살은 언제 뺄래? 그들은 무거운 여자에게 그것 말고는 궁금한 것이 없다. 무거운 여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꿈을 꾸고 있는지, 어떤 단기적 목표와 중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이 없다. 그럴 때 무거운 여자는 자기 자신이 곧 살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무거운 여자의 무거움만 보는 이들에게 무거운 여자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흐물거리는 지방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 지방을 제거한 다음에야 정상인들의 사회에서 인간 취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보는 무거운 여자는 이런 존재다. 사람이되 아직 사람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 존재.

그러나 무거운 여자 역시, 그 자체로 온전한 인간이다. 나 역시 그랬기에 무거운 여자들의 마음을 알고 있는데, 우리 무거운 여자들은 자꾸만 이 세상에 미안해한다. 죄송해요, 제가 너무 커다랗죠. 제가 너무 자리를 많이 차지하죠.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보기 흉해서. 무거운 여자에게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모욕을 처단하기 위해서는 일단 미안해하는 일부터 중지해야 한다. 내가 뭘 먹든, 어떻게 움직이든, 어떻게 화장을 하거나 안 하고 무슨 옷을 입든 그들에게는 나를 심판할 권리가 없다. 무겁다고 미안해하지 말자. 혹시나 건강이 상했다면 나 자신에게 미안해한다면 모를까, 나를 제외한 그 누구에게도 미안해하지 말자. 이것이 무거운 여자가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놀림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점을 자각하기 위한 첫 발자국이다.  

김현진님의 글은 어땠나요?
1점2점3점4점5점
SERIES

무거운 여자가 되면

몸에 관한 다른 콘텐츠

콘텐츠 더 보기

더 보기

타래를 시작하세요

여자가 쓴다. 오직 여자만 쓴다. 오직 여성을 위한 글쓰기 플랫폼

타래 시작하기오늘 하루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