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십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나는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아름다움의 테두리 안에 속하기 위해 애썼고,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스스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 채찍질을 했다. 이 문장이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곧 이유를 말씀드리겠다. 알코올 의존증으로 치료받았을 정도로 술에 의지하고 있었으니 간혹 술을 마시는 건 어쩔 수 없어서 종종 폭음을 했고, 그랬던 다음날이면 철저히 3끼 다 금식을 했고 죽도록 운동을 했다. 물과 아메리카노 , 허브티 이외에는 칼로리를 지닌 어떤 음료도 마시지 않았으며 백미밥도 먹지 않았고 수제비나 칼국수 혹은 짜장면이나 짬뽕 또는 만두나 떡볶이, 전 같은 밀가루 음식과 일체의 과자나 빵, 라면 같은 별식이나 가벼운 과자나 초콜릿 같은 간식도 절대 입에 대지 않았다. 피자나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는 물론이고 파스타처럼 기름진 서양 음식도 모두 금지였다. 돈가스나 통닭이나 탕수육 같은 튀김류도 사양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물, 술, 밥밖에 먹는 게 없다며 경악했다. 그나마도 여섯 시 이후에는 약속이 있을 때 이외에는 먹지 않았다. 먹어도 가벼운 거식증 증상으로 토해내 버리기 일쑤였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공복 시에 반드시 어떤 것이든 유산소 운동을 1시간 이상 수행했다. 텔레비전을 보면서도 버리는 시간이 아까워 반드시 아령이나 밴드 등 근력 운동을 하면서 볼 정도였고, 4, 5킬로미터 정도의 웬만한 거리는 다 걸어 다녔다.
립스틱 페미니스트
옥수동에 살면서 교대역에 있는 회사를 다닐 때는 6시에 일어나 동호대교를 건너 빠른 걸음으로 출근했고, 바빠서 아침에 걸어가지 못한 날은 반드시 걸어서 귀가했다. 집에 돌아가면 1시간 정도 근력운동을 빼먹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관리하는데 비해 165cm의 키에 52-54kg 정도 몸무게가 나가서, 노력을 들이는 만큼 내 몸이 응답해준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사회가 요구하는 아름다움의 요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겪은 고초는 다른 여성들의 경험과 전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페미니스트이기 때문에 더 아름다워야 한다’라는 강박에 시달린 건 아마 페미니즘 조류 중 ‘립스틱 페미니스트’에 해당될 것 같다. 나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페미니즘을 접해서 한국의 1, 2, 3세대 페미니즘을 모두 목격했는데 자라면서 너무나 빛나는 페미니스트 선배들이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데도 말 대기 가장 쉬운 고작 ‘외모’를 가지고 하찮은 인간들이 야비한 모욕을 받는 것에 너무 화가 났다. 아마 그들 중에는 남자가 많았을 것이다. 키보드로 재잘거리는 제깟 것들보다 훨씬 많이 배웠고 훨씬 선량하며 훨씬 세상을 바꾸려는 선한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게 흠 잡을 게 없으니 외모 따위로 함부로 놀리고 조롱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그때부터 나는 예뻐지고 싶다, 가 아니라 예뻐져야 한다, 로 노선을 바꾸었던 것 같다.
페미니스트 선배들 중 많은 수가 화장기 없이 성별을 알 수 없는 편하고 펑퍼짐한 옷을 입고 다녔던 건 사실이지만, 고작 그런 이유만으로 그들을 ‘남자가 없어서 미쳐버린 여자들’ ‘예쁜 여자는 절대로 페미니스트 될 일이 없다’라고 단정하는 인간들에게 몹시 화가 났다. 이를테면 이것은 나의 사적 복수였다. ‘페미니스트는 다 쿵광쿵광 멧돼지에 못생겨서 남자가 관심을 안 가져 주니까 굶주려서 페미니스트가 된 것이다’라는 그들의 자신만만한 몰이해에 깊은 칼자국을 내주고 싶었다. 페미니스트를 그렇게 싫어하는 인간들이 페미니스트를 보고 발기라도 한다면 정말 기분이 엿 같겠지, 자기모순이 일어날 테니까. 그럼 내가 그렇게 해주마. 결국 나는 고행에 가까운 외모관리에 돌입하여 상당히 성공을 거뒀고, “너 같은 애가 왜 페미니스트 같은 걸 해?” 라는 멍청한 남자들의 질문에 “응, 너 같은 애들 때문에 해. ” 라고 여유 있게 대답할 수 있었다.
또한 남자들이 ‘된장녀’라며 자신을 위해서는 사치하면서 데이트 비용을 많이 내지 않는 여성들을 비난하는 것이 지겨워 남자가 다 돈을 내는 일은 없게끔 신경을 썼다. 그러자 겉으로는 자기만의 신념에 차 보이는 남자들이 외모가 사회의 기준에 부합하는 페미니스트, 그리고 저들의 기준에서 ‘개념녀’를 목격하자 언제 페미니즘 비난을 했냐는 듯 원래 남녀는 평등해야 하고 여성들이 지금껏 차별받아 온 것이 사실이고 자신도 ‘올바른’ 페미니즘에는 찬성이라며 젠틀맨으로 돌변하는 모습이 고소했다.
자기모순으로
가득찬 반증
그 고소함을 누리기 위해 나는 매일 식사를 조절했고 50kg이하 혹은 초반대의 몸무게를 유지하기 고행을 거듭했고 파리 다리처럼 마스카라를 진하게 발랐으며 유사시에는 기상예보 캐스터들이나 입을 법한 홀복(44반이 넘으면 옷에 입장 자체가 불가능하다)을 차려 입었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들은 나에게 상당한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같은 여성들의 시선이었다. 남성의 시선으로 구성된 사회적 시선이 요구하는 외모 기준을 맞추는 것도 고생인데 같은 여성의 기준까지 고려해야 했으니 두 배로 힘들었다.
“쟤는 페미니스트라면서 왜 화장해?” “쟤는 페미니스트라면서 왜 저렇게 하늘하늘한 원피스 입어? ” “페미니스트라면서 왜 다이어트해? ” 차마 이게 저의 페미니즘입니다, 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는 없어서 나는 속만 앓았다. 이거 나 좋자고 하는 일 아니라니까요, 저도 맨날 이렇게 관리하는 거 쉽지 않아요, 나름대로 가부장제에 복수하는 중입니다, 제깟 놈들이 페미니스트를 보고 하반신이 반응해 버렸을 때 자가당착에 빠져 괴로워하고 해 주고 싶다고요, 너는 다른 페미들이랑은 좀 다른 것 같다며 접근하는 놈들을 시원하게 차버려서 우리가 남자가 없어서 이런다는 소리를 쏙 들어가게 해 주고 싶어요. 이렇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나 역시 자기모순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이야기를 꺼내 놓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페미니스트들이 남자에 굶어서 저렇게 미쳐버렸다” “페미니스트들은 모두 쿵쾅쿵쾅 못생긴 멧돼지들이다”라는 악의적인 주장에 대한 살아 있는 반증으로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러려면 정말이지 아주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