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여자가 되면 9. 순종하라

생각하다결혼과 비혼

무거운 여자가 되면 9. 순종하라

김현진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결혼'식'은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결혼식을 마쳤다. 정말 실컷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결혼식이었다. 틈만 나면 한쪽 무릎을 꿇고 결혼해줘! 를 외치는 나에게 자신은 확고한 독신주의자라며 선을 긋던 (전)남편은 나의 열렬한 청혼에 결국 굴복했다. 그가 예스를 외친 다음부터 모든 일이 아주 신속히 돌아갔다. 내 청혼을 승낙한 바로 그날 저녁 따로 사시는 자기 부모님을 찾아 뵙자며 그는 바로 부모님 집으로 내 손을 잡고 들이닥쳤고, 평생 결혼 생각이 없던 아들이 목사의 딸을 신붓감이라고 데리고 오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전)시부모님은 할렐루야! 를 외치며 내 손을 꼭 잡고 바로 결혼을 승낙했다. 그 뒤로 모든 것이 일사천리였고, 나는 그야말로 땡전 한 푼 안 들이고 결혼했다. 그러면서도 전혀 눈치 보이지 않도록 시가 쪽에서는 친척들 예단을 본인들 돈으로 돌리고는 나에게 꼭꼭 비밀로 하는 등 여러 가지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기존의 결혼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 신랑 역시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입장하는 등 내 멋대로 꾸민 결혼식에도 전혀 반대가 없었다.

조금 이상했던 것은 남편이 시부모를 대하는 상당히 거칠고 막된 태도였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부모님은 그런 그에게 그저 귀엽다는 듯 허허 웃을 뿐이었다. 나중에 이혼한 후 예술인 복지재단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인 예술인 심리상담을 진행할 때 상담사는 분명히 그 부부에게도 내가 모르는 비밀이 있을 거라고 확신하며 말했다. 하긴, 어느 가정이나 벽장에 해골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나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집안에 해골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 벽장 정도가 아니라 해골로 가득 찬 지하실이 있었을 것 같다. 내가 깜깜한 바보라서 보지 못했거나, 억지로 보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붉고도 붉은 경고등이었는데, 내가 바보 등신이었던 것이다. 결혼식은 참 좋았다. 지금 떠올려봐도 결혼식은 재미있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결혼을 준비하며 나는 44kg까지 살이 빠졌는데, 그건 힘들어서 빠진 게 아니라 행복해서 빠진 거였다. 얼마 전까지 내 몸무게의 절반 가량이다. 행복하면 포동포동 살이 오르는 체질도 있지만 나는 행복하면 가슴이 두근거려 밥이 안 먹히고 기운이 펄펄 나서 안 먹고도 날아다니는 타입이었다. 그래서 신이 나서 뛰어다니는 바람에 살이 팍팍 빠졌다.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드는 웨딩드레스를 입을 수 있었고, 식 이후에도 44kg를 유지하지는 못했지만 40킬로대에 머물렀다. 바꿔 말하면, 내가 90kg에 가깝도록 무거워진 까닭은 불행 때문이다. 내 불행은 무슨 환전을 하듯 고스란히 지방으로 바뀌어 내 몸에 착착 달라붙었다. 점점 나는 미쉐린 타이어 마스코트처럼 변해갔다.

일러스트 이민

순종하라

결혼식이 끝나자 곧장 가부장제가 시작되었다. 유명한 싯귀처럼, 잔치는 이제 끝난 거였다. 나의 부친이 목회자였다고 언급했지만 보수적인 기독교 교단의 성차별 문제는 상당히 심각하다. 내 주위에는 그다지 결혼한 사람이 없었고, 결혼에 대해 말해 줄 내 주위 어른들은 거의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이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결혼한 여자의 제 1의 계명은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것이라고 외쳤다.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이듯 남편이 가정의 머리이니 남편을 몸이 머리를 섬기듯 잘 섬기라는 것이었다. 그것이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비결이라고 다들 말하며 책까지 선물했다. 

남편은 모든 것을 컨트롤하려는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고, 그런 천성이 그가 언제나 좋은 업무고과를 받는 데 큰 기여를 했다. 결혼 후에 나는 그의 동등한 파트너가 아니었다. 그가 컨트롤해야 하는 주변 환경이었다. 한 예를 들자면, 내가 그에게 뭔가 잘못을 했다. 대단하지 않고 사소한 문제였기 때문에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는 엄청나게 분노했고 나에게 자신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라고 명령했다. 

그때까지의 나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뭘 집어던지고 꿇긴 뭘 꿇어 이 미친놈아, 당장 이혼이야, 하고 뛰쳐나가는 것이 나에게 어울리는 일이었지만 그때 머릿속을 온통 차지한 것은 앞서 썼던 그 뭐랄까, 망할놈의 ‘인싸’가 되고 싶은 본능이었다. 남들 사는 것처럼 살고 싶다는 헛꿈이었다. 먼저 결혼한 기독교인 부부들이 남편에게 섬기고 순종하라는 말이 머릿속을 왱왱 맴돌았다. 그렇다. 나는 꿇으라니 꿇었다. 그게 맞는 줄 알았다. 내가 잘못한 건 사실이었고, 그렇게 해서 화가 풀린다면 그렇게 해야지 싶었는데 한참을 그렇게 있어야 했다. 한 시간도 넘게 무릎을 꿇고 앉아 있으니 화가 좀 풀렸으니 이제 일어나도 좋다고 했다. 너무 오랫동안 익숙하지 않은 자세로 있어서 걷지 못하고 절뚝거렸다. 

다음날 회사 점심시간을 틈타 남편은 나를 태우고 정형외과에 갔다. 무릎 인대가 좀 늘어났다고 했다. 의사가 어쩌다 이랬냐고 물으려는 참에 남편은 큰 소리로 말했다.

제 아내가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헬스장에서 스피닝(여럿이서 헬스싸이클을 비트 강한 음악에 맞춰 강사의 지도에 따라 타는 강도가 강한 운동을 말한다)을 너무 과도하게 하더니 이렇게 됐지 뭡니까 선생님? 잘 좀 고쳐 주세요!

너도 똑같은 인간이야

일러스트 이민

기가 찼지만 할 말이 없었다. 보호대를 감고 절뚝거리며 회사로 돌아왔는데, 팀장이 갈구기 시작했다. 또 내가 뭔가를 실수한 모양이었다. 10만원에 어디에 쉼표를 찍어야 되는지도 모르고 엑셀이나 파워포인트 하나 할 줄 모르면서 행정직 준공무원으로 뽑힌 내가 내 주제를 모르고 그 회사에 지원한 모양이었다. 숫자에 완전 꽝인데 1년에 몇 억 하는 예산을 다루려니 실수할 데가 너무나 많았다. 그리고 남편이 내 실수를 고스란히 감당해 주고 남모르게 내 일을 처리해 주어 그는 안 그래도 고질적인 인력부족에 시달리는 회사 내에서도 거의 1.8인분의 일을 하는 셈이었다. 내가 0.2인분이나 제대로 감당했는지도 사실은 별 확신이 없다. 사람들이 내가 입사비리로 입사했다고 생각해도 별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홍보팀에서 사외보를 만들었기 때문에 원고 청탁 등에서 그 동안 작가로써 쌓아온 인맥을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 0.2인분을 했을 것 같은데, 고위직 상사들은 내가 그런 인맥을 지닌 것과 회사에 다니면서도 일간지 몇 군데에 지면을 가지고 있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러워하고 더 열심히 하라며 격려해 주었지만 바로 직속 상사는 그 모든 것을 너무나 아니꼬워했다. 한번 사람을 안 좋게 보려면 끝없이 안 좋게 보게 되는 것처럼, 내가 홍보팀 일을 순조롭게 할 수 있도록 인맥을 가져서 잘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겪어야 할 고난을 겪지 않고 제 인맥에 기대 편하게 회사 생활을 한다고 여기는 것 같았다. 절뚝거리며 회사로 돌아오니 팀장의 앙칼진 외침이 귀를 찔렀다.

네가 뭘 잘못한 것 같아?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뭘 잘못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떠올리려 해도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시덥잖은 이유였다. 그러나 회사가 인생의 거의 전부일 정도로 헌신하던 그에게는 대단한 이유였을 것이다. 그는 가장 나이 어린 팀장으로서의 자부심이 넘쳤고, 술도 회사 사람들하고만 마셨고, 심지어 주말에 회사 사람들과 같이 놀러 다닐 정도로 회사원으로서의 자아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였으니 빽으로 입사한 것 같은데다 회사원으로서의 역량이 명백히 부족한 내가 당연히 미웠을 것이다. 그런 부족한 지점을 인맥으로 살짝살짝 메꾸는 것 같았을 테니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하지만 아무리 내가 미웠어도 그렇지, 잘못한 것을 모르겠어서 고개만 숙이고 있는 나에게 그는 쏘아붙였다.

잘못한 것 모르겠어? 그럼 잘못한 거 생각날 때까지 저기 가서 벽 보고 서 있어! 

이 무슨 어린이집 같은 처벌이란 말인가. 내 귀를 의심했지만 그녀는 당당히 벽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아마 원래의 나라면 직장 내 괴롭힘이라며 반발했을 것이다. 최근에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도 도입되는 상황이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불과 몇 년 전의 일이었다. 성질 같으면 잘못한 것은 잘못한 것이고 내가 유치원생으로 보이냐며 반발했겠지만 회사 대표님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직장에서 큰소리를 냈다가 대표님 등에 업고 그런다는 소리를 듣고 그분께 폐를 끼칠까봐 차마 그러질 못했다. 점심시간이 되어 그가 밖으로 쌩하니 나갈 때까지 나는 벽을 보고 서 있었다. 보호대를 찬 무릎이 아려 왔다. 그는 내가 보호대를 차고 있거나 절뚝거리고 있는 것 따위는 깨끗이 무시했다. 한 시간도 넘게 그렇게 벽을 보고 서 있었고, 지나가는 사원들이 도대체 왜 저러고 있는지 몰라 다들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아무리 벽을 보고 있어도 내가 잘못한 것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 내가 다 잘못했겠지 뭐. 완전히 ‘태어나서 미안합니다’ 모드였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안 대표님은 네가 바보냐,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왜 들이받지 않았냐고 답답해하셨지만 나로서는 별 수 없었다. 남편은 벽을 보고 서 있는 나를 보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질 정도로 화를 냈지만, 내 마음 속에는 그에게 차마 할 수 없는 말만 가득했다.

'너도 똑같은 인간이야.'

그땐 몰랐다. 지옥은 이제 겨우 시작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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