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여자가 되면 6. 누구나 달리는 생물

생각하다운동

무거운 여자가 되면 6. 누구나 달리는 생물

김현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원래 하던 이야기를 이어 가야 하지만,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니는 무거운 여자의 여정에 잠시 약간의 성취가 있어 보고하고자 한다. 내과의사, 외과의사 모두 살을 빼야 한다는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했고 이대로 무게를 좀 덜어 내려는 과정에서 아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아름다움을 위한 다이어트인지, 건강을 위한 관리인지 회색 지대에 부딪히겠지만, 아직 나는 여전히 아주 무거운 여자고 그 무게가 힘겹다. 그러나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있듯 약 두 달 간의 노력 후 정신상태가 몰라보게 개선되었다. 

승리

일러스트 이민

오늘은 조금 고무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그간 무거운 나와의 투쟁에서 어느 정도는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이다. 4월 말경, 태어나서 최고로 증가한 몸무게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어느 다이어트 어플리케이션을 유료 결제했다. 만만치 않은 돈이었지만 식단 작성 등 프로그램을 착실히 따르면 80퍼센트의 페이백을 해 준다는 세일즈에 낚인 거였다. 앱 내부 메신저를 이용해 코치와 소통할 수도 있었다. 

지인과 얘기를 나누었다. 현재 자신도 태어나서 최고 몸무게인데, 자신의 친구들도 다 그렇다는 거였다. 왜 이럴까 하다가 나는 어떤 징조 아니겠느냐고, 빙하기가 다시 도래한다거나 큰 재난이 닥쳐 올까봐 우리의 몸은 우리보다 현명하니 그 역경을 견딜 수 있도록 지방을 저장하고 있는 게 아니겠느냐고 했더니 그는 그럴싸하다며 웃었다. 그러면 날씬한 사람들은 다 죽고 우리들의 세상이 오겠지만... . 미국에서 시행한 어떤 조사에서 50KG이 찌겠느냐, 트럭에 치이겠느냐를 선택하라고 했을 때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어떤 종류의 트럭이죠? ” “얼마나 입원해 있어야 하죠? ” 나라도 50K가 지금 여기에서 더 찌는 것은 두렵긴 하다. 어쨌든 그 어플리케이션을 충실히 실행한 후 8주가 되었는데, 현재 14KG을 감량했다.

감량폭이 크긴 하지만 워낙 웬만한 씨름선수만한 덩치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내가 제일 무거운 여자인 것은 마찬가지다. 물론 다이어트 어플리케이션이 감량에서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아니고, 내가 평생 할 줄 몰랐던 운동을 시작한 것이 감량에 큰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달리기’다. 

러닝화부터 싸들고
갈 것 같아

일러스트 이민

꼭 인도에서 조깅을 하는 외국 백인들을 보며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여행갈 때도 러닝화를 싸들고 가서 꼭 달리고야 마는 사람들을 볼 때 속으로 굳이 저래야 하나, 생각했던 나였는데 달리기 5주차에 접어든 지금은 나라도 어딜 가든 러닝화부터 싸들고 갈 것 같다. 옷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고, 대신 괜찮은 운동복이나 러닝화, 땀을 흘려도 지워지지 않는 썬블록으로 관심이 옮겨갔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달리기 앱은 30분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상태를 목표로 8주간의 훈련을 시켜 주는데 무료 앱치고는 정말 괜찮은 앱이다. 1분 달리고 2분 걷는 식의 인터벌 트레이닝으로 점점 달리기에 몸이 익숙해지도록 코칭을 해 준다. 지금은 3분 달리고 2분 빨리 걷는 식으로 5주차에 접어들었다.

이 앱은 주 3회 달리는 것을 가정하여 만들어진 앱인데, 나는 그냥 일주일에 7일 달린다. 음식이 위 안에 있을 때 몸을 격하게 움직였다간 토하기 십상이라 마침 이사 온 집 근방에 있는 트랙에서 눈뜨자마자 달리러 간다. 그렇게 30분간 인터벌 트레이닝을 한다. 

처음에는 다친 발목을 진찰하러 갔던 의사가 관절에는 달리기가 가장 좋다는 조언을 해 주어 그럼 관절이나 강하게 해 볼까, 하는 시들한 마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는데 흠뻑 빠지고 말았다. 뭐가 좋으냐고 물으면 어떤 이유로 좋은지는 대답할 수가 없지만 꾸준히 앓고 있던 우울증이 상당히 개선되었다. 우울증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이 계시다면 꼭 달리기 훈련을 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다. 달리면서 머릿속에 온갖 골치 아픈 생각이 사라지고, 그저 오른발 왼발을 번갈아 땅을 박차는 동작만이 남는다.

달리는 생물

<본 투 런>등의 책을 보면 인간은 원래 달리는 생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열을 배출하면서 동시에 달릴 수 있는 동물은 인간뿐이라서 장거리 달리기가 인간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달리기라고 한다. 치타나 다른 빠른 동물들은 체외로 열을 방출하면서 뛸 수가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달리고 나면 뻗어 버린다고. 타라우마족이라는 부족은 사슴이나 가젤 등을 사냥할 때 몇 백 킬로미터를 뒤쫓아 달려 사냥감이 지쳐 쓰러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냥감을 확보한다. 게다가 그들은 맨발로 달리고, 나이가 60대에 접어들었을 때 가장 잘 달릴 수 있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 

그래서 나도 하루는 트랙에서 맨발로 달려 보았지만 얇은 운동화를 신다가 러닝화를 구입해 신었을 때 그 날아갈 듯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 그냥 러닝화를 택했다. 달리기는 특별한 장비나 기술이 필요 없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다. 초반 비용은 러닝화 19,000원(인터넷 운동화 전문 사이트에서 1족 남은 것을 폭탄 세일해서 샀다), 블루투스 이어폰 29,900원이다. 그리고 내 몸뚱이만 있으면 된다.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이 귀가 솔깃할 이야기는 달리기가 식욕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책에서 그렇게 읽었고 나 역시 예전만큼 많이 먹고 싶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달린 후에 잔디밭에서 옆구리 운동과 스쿼트를 100번씩 하고, 집으로 돌아와 싸 놓은 가방을 챙겨 다시 나간다. 5.3KM 떨어져 있는 서대문도서관에 가기 위해서다. 이 때는 빠르게 걷지만 필 받을 때는 한참을 달리기도 한다. 돌아올 때도 걸어서 돌아오니 왕복 10KM는 넘게 걷는 셈이다. 그 밖에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려고 애를 썼다. 4월 23일 설치한 만보계 앱이 내가 그동안 800KM를 걸었다고 어제 알려 주었으니 열심히 쏘다닌 셈이다.

누구라도 달릴 수 있다

일러스트 이민

거기다 월, 수, 금은 집 앞 구립체육센터에서 가르치는 필라테스 클래스에 등록했고 화, 목, 토는 집 근처의 기구 필라테스 센터에 큰 맘 먹고 등록했으니 일주일에 하루만 빼고 필라테스를 하는 셈이다. 예전에 요가를 해 본 적이 있어 비슷한 운동이려니 했더니 웬걸, 수영과 피겨 스케이트만큼이나 다른 운동이었다. 속근을 마구 쥐어짜는 것이 필라테스였다. 

먹는 것 역시 탄수화물을 최소화하고 꼭 필요할 때는 복합 탄수화물을 섭취하고, 저칼로리에 고단백 음식을 연구해 직접 만들어 먹는다. 하루에 1, 2끼 정도 먹는 것 같다. 14KG정도 뺐다지만 아직도 비만이고, 20KG는 더 빼야 한다. 그래도 평생 할 수 있는 달리기라는 운동을 발견하게 된 것이 큰 수확이다. 마음의 병에 걸린 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다. 실제로 내가 2주에 한번 방문하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도 몰라보게 좋아졌다, 사람이 정돈된 느낌이 난다며 3주에 한 번 와도 좋다고 하셨으니 외부에서 보기에도 발전이 있었던 셈이다. 

물론 필라테스 수업에서도, 어떤 자리에 가도 여전히 나는 그 중에서 가장 무거운 여자다. 그래도 조금씩 건강해지고 있는 무거운 여자다. 이렇게 조금이나마 내가 재활하고 있다는 것을 보고할 수 있어 약간은 기쁘다. 달리면서 점점 더 몸과 마음이 건강해졌으면 좋겠다. 달리기를 멈추지만 않는다면 아마 그렇게 될 것이라 믿는다. 이렇게 무거운 여자도 달릴 수 있다! 그렇다면 누구라도 달릴 수 있다! 나처럼 무거운 자신에게 지친 분들에게 함께 달리자고 권하고 싶다. 달리는 동안, 내가 지고 있는 무거움들이 약간씩은 사라질 것이다. 내가 장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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