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여자가 되면 16. 살만큼 붙은 편견에 대해

생각하다다이어트

무거운 여자가 되면 16. 살만큼 붙은 편견에 대해

김현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무거운 여자로 살기’에는 비용도 많이 들지만,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 한다. 이를테면 모욕 같은 것들. 그런데 모욕감처럼 ‘KIBUN'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무거운 여성이라는 이유로 실제 피해를 입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물론 ‘무거운 남성’도 있겠지만, 그들이 받는 피해는 무거운 여성보다 훨씬 경미하다. 무거운 남성은 불룩 나온 배도 ‘인격이 훌륭하다’며 올려쳐주는 농담을 받고, 곰돌이같다. 듬직하다, 풍채가 좋다 등 사회에서 온통 ‘뚱뚱하다’를 돌려 말해 주느라 바쁘다. 물론 무거운 여성은 그런 배려를 받지 못한다. 미국 웨스턴미시건 마크 로흘링 교수의 연구 결과, 직장에서 무거운 여성이 남성보다 심한 차별을 받는다고 한다. 무거운 여성은 연봉이 깎이는 반면 듬직하고 무게 있어 보이는 무거운 남성은 오히려 보너스를 받는다는 것이다. 무거운 여성은 그냥 뚱뚱한 여성에 불과하지만 무거운 남성은 사람이 좋아 보이고 뭔가 안정감을 주는 것이다.

전과보다 나쁜 비만

일러스트 이민

미국 비만인협회의 발표에 따르면 무거운 사람에 대해 사람들은 흔히 ‘개선 의지가 없다, 의욕이 없으며 게으르다, 경쟁심과 호승심이 부족하다, 반항적 기질이 있으며 꼼꼼하지 못하다’라는 여기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무래도 우리나라보다는 다양성 면에서 조금 나은 나라일 미국에서도 ‘비만인 차별’은 성차별, 연령차별에 이어 차별 정도가 심하기로 3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인종차별보다도 비만인 차별이 더 심한 현실이다. 비만 여성은 말하자면 우리 사회의 보이지 않는 계급에서 불가촉천민인 셈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지만, 아름다운 여성과 사회적 아름다움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용모를 가진 여성이 피고인으로 재판을 받을 경우 배심원단은 미인에게 그녀가 소위 골드 디거gold digger, 남성의 돈을 뜯으려는 여자가 아니라는 보장이 있다면 미인이 아닌 여성보다 현저히 형량을 덜 주었으며(미인이 골드 디거라는 증거가 있을 경우 유일하게 배심원들의 판결은 혹독해졌는데 이것 역시 생각할 거리가 있는 것 같다), 벌금 역시 적게 내야 한다고 했으며 유죄 아닌 무죄 판정을 내린 배심원 또한 압도적으로 많았다고 한다. 

웬만하면 감옥에 갈 일까진 없으니 일상에서 가장 외모로 인성이 판단되는 현장인 직장 면접 자리는 어떠할까. 이것 역시 로흘링 교수의 연구로 2명의 직원을 채용하는 자리에서 동일한 자격을 갖춘 전과자,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지원자, 비만인이 지원할 경우 탈락하는 것은 비만인이라고 한다. 비만인 것은 전과가 있는 것보다 나쁜 것이다! 보통 체중의 지원자는 비만인 지원자보다 초봉의 14퍼센트가 더 높았고, 합격률 역시 14.7 퍼센트 더 높았다고 한다. 이러한 시작 단계에서 쌓여나가는 사소한 차별이 차곡차곡 누적되어 2, 30년간 재직한 후 보통 체중의 노동자와 비만인 노동자의 성취도나 승진 정도를 보게 된다면 단지 무거운 사람이라는 이유로 보통 체중의 노동자보다 비만인 노동자가 직장에서 인정받고 존중받는 확률이 다소 낮으리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무거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굴레는 이렇게 삶 전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아름답다'의 족쇄

일러스트 이민

다양한 체형과 인종의 여성들을 등장시켜 모든 여성이 아름답다는 메시지를 주어 화제에 올랐던 ‘도브’사의 광고를 나는 처음에는 신선하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광고가 신선하기는 커녕 유해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체형의 너도 아름답다, 이렇게 생긴 너도 아름답다, 왜 하필 그놈의 ‘아름답다’라는 이야기를 여성이 반드시 듣고야 말겠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여성 슈퍼히어로가 등장한 영화 <캡틴 마블>에서 주인공 캡틴 마블은 자신의 힘을 자각한 후 오랜 스승이자 적수에게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증명할 필요가 없어. ” 라고 내뱉는다. 이 장면은 많은 여성들의 심금을 울렸는데, 이처럼 우리도 아름답다는 말을 굳이 들을 필요가 없다! 모든 여성이 아름답다는 찬사를 기대하니 무거운 여성들을 보통 체격의 여성들 사이에 다양성을 위해 슬쩍슬쩍 끼워 넣어 어떤 정치적 공정함을 패션 아이템처럼 장착하고, 적선하듯 뚱뚱한 당신 역시 있는 그대로 아름다워요, 라고 말해 주는 것을 우리 무거운 여성들은 바라지 않는다.

여성들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싶어 목을 맨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나 세상은 기본적으로 여성이 아름답다는 말에 목말라 있을 것으로 간주하고, 저렇게 ‘너는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그러니 우리 회사에서 만든 상품을 사렴!)’이라는 메세지와 ‘왜 비만 상태를 개선하지 않느냐’라는 메세지를 동시에 발신한다. 사람들이 비만 여성에 대해 가장 깜짝 놀라는 경우는 무거운 여성이 자신의 몸을 편안하게 여기고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다. 무거운 여성이 초조해하고 자신의 몸을 미워해야 그것을 정상이라고 친다. 그러나 무거운 여성이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여기고, 무거운 몸을 가지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면 사람들은 그의 긍정적인 자기 이미지를 부수기 위해 온 힘을 다한다. 외모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면서 그것이 저 사람이 살을 빼기 위한 동력을 준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좋은 일을 했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이 이토록 많은 나라에서, 무거운 자기 몸을 편하게 여기는 여성은 너무나 사람들의 이해 범위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어떤 괴물처럼 여겨진다.

그만 죄송해 하기 운동

일러스트 이민

어쩌면 무거운 여성이 이런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낼 수 있는 작은 균열은, 말끝마다 다이어트 해야 되는데, 제가 뚱뚱해서, 하며 ‘죄송해’하는 것을 그만두는 일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것은 혁명이다. 사람들은 무거운 여성이 늘 자신의 덩치에 대해서 세상에 미안해하기를 바라며, 그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거운 여성이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먹을 것을 포함해 인생을 있는 그대로 편안하게 즐기며 당당한 태도를 지니고 무거운 자신을 미워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무슨 괴물을 본 것처럼 깜짝 놀란다. 그리고 그에게 왜 당신이 그렇게 태평해서는 안 되는지, 얼마나 여성으로서의 직무에 태만한지 등등 한마디로 당신의 체격 때문에 당신이 얼마나 불행해야 하는지를 납득시키려 하고 기어코 그를 불행하게 만들어야 모든 일이 제대로 돌아간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자신의 체격에 대해 전혀 미안해하지 않는 무거운 여성들이 점점 많아진다면 어떨까. 위풍당당하게 삶을 있는 그대로 즐기고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무거운 여성들을 매일 만날 수 있다면 어떨까. 이런 여성이 많아진다면 적어도 놀이터에서 놀던 여섯 살짜리 여자 아이들이 다이어트해야 한다며 근심하는 광경은 적어질지도 모른다. 먼저 나부터, 사람들에게 제가 살을 빼야 해서, 이런 말들을 그만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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