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2000년대 중반에는 모두가 ‘된장녀’를 찾아 돌을 던질 준비가 얼마든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돌을 맞지 않기 위해 ‘개념녀’를 자처했던 여성 역시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여성의 개인적인 취향들마저 그것이 남성들의 마음에 흡족하게 여겨질 때 ‘개념녀’라는 호칭을 하사 받았는데, 나는 그것이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성애자 여성인 나는 한창 파토스가 끓어 넘치던 시절이라 조금만 마음에 들면 아무하고나 데이트를 했다. 오토바이를 좋아해서 오토바이를 배우고 싶어하는 남성들에게 가르쳐 줄 수 있을 만큼 오래 타 왔고, 반주와 낮술을 좋아했으며, 순댓국과 선지해장국을 사랑했고 겉으로는 초라해도 싸고 맛있는 노포를 사랑했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이런 나의 취향을, 어떤 남성들은 자신을 향한 ‘예쁜 짓’으로 여기고 너무나 기특하게 생각하며 나를 어여삐 여기는 것이었다.
분명 이 여성도 실은 여성답게 분위기 좋고 멋진 곳을 좋아할텐데 센스가 있어서 싸고 맛있는 지저분한 곳을 찾으면서 털털하게 구는구나,당연히 이런 곳들이 싫을 텐데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구나, 하고 그들은 내가 준 적 없는 감동을 받곤 했다. 40년 된 순댓국집과 30년 된 돼지갈비 집에서 한 잔 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를 보며 그들은 너무나 흐뭇한 표정으로 말했다.
넌 다른 여자들하고는 달라.
이것은 대부분 가스라이팅으로 이어졌다. 다른 여자들과 다른 너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오직 나뿐이다, 나만이 너의 진가를 알 수 있다, 내가 아닌 다른 남자들은 너의 가치를 모를 테니 넌 나에게 잘해야 한다, 로 귀결되는 지긋지긋한 가스라이팅. 여성들은 보통 와인에 파스타 같은 음식을 파는 고급스럽고 외관이 예쁜 곳에 가고 싶어하고 패밀리 레스토랑 같은 데 가자고 하는데 너는 그런 애들과 다르다며 그들은 오버해서 감동하거나, 혹은 감동하는 척을 했다. 내가 마음속으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고 싶지만 자신을 생각해서 이런 것을 좋아하는 척하는 것이라고 넘겨짚던 이들도 적지 않았다. 어떻게 자라나면 저렇게 마치 자신이 태양왕 루이14세라도 되는 것처럼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일까? 그들이 말하는 ‘예쁘고 털털한’이란 ‘예쁘고 돈이 덜 드는’ 것이므로 그들이 그토록 침을 튀기며 나를 ‘개념녀’라고 찬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페미니스트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다’라는 것을 알려 주겠다는 나의 결심은 당시 어느 정도는 성과를 거두었다. ‘너 같은 페미니스트도 있구나’라는 그들의 칭송은 결국 여성들을 분리해서 통치하는 전략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페미니스트들이 너희가 생각하는 대로 못생기고 남자가 없어서 그렇게 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린 것만으로 족했다.
코르셋 꽉 조이는 시대
된장녀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몇 년 후, 할리우드 스타들의 파파라치샷에서나 보던 ‘스키니진’이 대한민국에 상륙했다. 허리부터 발목까지 레깅스처럼 쫙 붙어 하반신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이 팬츠는 여성들에게 ‘하비’, 즉 ‘하체비만’이라는 새롭게 등장한 단어로 골머리를 앓게 했다. 그러면서 여성이 귀걸이를 하면 1.5배 예뻐 보인다, 치마를 입으면 2배 예뻐 보인다, 화장을 하면 2.5배, 쌍꺼풀이 생기면 3배, 머리를 기르면 6배, 살 빼면 12배 예뻐진다나 하는 말도 한창 유행하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코르셋’ 꽉꽉 조이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나 역시 주체적 코르셋을 꽉꽉 조였다. 그 무렵 나는 고속터미널 지하상가에서 주로 쇼핑을 했는데, 25사이즈의 청바지만 구입하겠다는 거창한 결심을 한 후 집에 있는 큰 사이즈의 옷들은 죄다 버렸다. 이를테면 돌아갈 수 있는 다리를 불태워 버린 것이다. 입을 옷이 없으면 출근도 할 수 없고 밖에 나갈 수도 없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청바지들에 ‘입장’할 수 있도록 자신을 있는 힘껏 다그쳤다.
‘몸매가 최고의 패션이다’’얼굴이 패션이다’라는 말도 당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는데 이쯤 되면 내가 옷을 입는 게 아니라 옷이 나를 입는 지경이었다. 조금이라도 많이 먹은 날이면 나는 가슴을 졸이며 ‘청바지님’이 나를 받아 줄 지 말지 덜덜 떨었다. 겨우 지퍼가 올라가고 단추가 잠기면 무슨 간택이라도 받은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지는 게임
나는 스스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한지 아주 오래 되었으므로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굳은 오해에 조금이라도 균열을 내기 위해 딴에는 공공을 위한 다이어트를 한 셈이었다. 하지만 루키즘으로 맞서는 건 어차피 지는 게임이었고, 나의 모순된 외모관리의 의미를 타인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어느 진보적인 잡지의 창간 기념 파티가 있던 날 나는 소위 ‘홀복’을 입고 참석했는데, 이건 룸살롱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입는 옷을 말하는 것이다. 입으면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그런 옷을 나는 여러 벌 가지고 있었다.
‘홀복’이라고 해서 반드시 룸살롱에서 일하는 여성들만 입는 옷은 아니고 남성들의 흔한 ‘분리 통치’처럼 저런 직업을 가진 여성을 일반 여성과 구분하기 위한 용어이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빠른 설명을 위해 흔히 쓰이는 대로 ‘홀복’이라 표기한다. 44반 이상만 되면 지퍼가 올라가지 않는 이놈의 옷들은 얼핏 야하고 노출이 몹시 심할 옷들일 것 같지만 디자인 자체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여성스러운 블라우스에 무릎까지 오는 타이트 스커트 등 매우 보수적이고 단정한 스타일이다. 대신, 입으면 숨도 쉴 수 없다고 말했듯이 네 몸에 있는 굴곡은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독하게 몸매를 드러낸다.
나는 특별한 날이면 이 ‘홀복’을 꽤나 애용했는데, 그 날 역시 화사한 ‘홀복’을 입고 속눈썹을 강조한 메이크업을 한 후 그 자리에 참석했다. 그날 호주제 폐지 운동이 한창일 때 자주 보았던 페미니스트 선배와 마주쳤다. 그 선배를 보던 당시 나는 늘 청바지에 트레이너 차림에 오토바이를 늘 타고 다녔다. 물론 오토바이는 여전히 타고 다녔지만 그날 타고 오지 않은 것뿐이었다. 선배 언니는 조금 취한 것 같았는데, 나에게 연신 술을 따라주더니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정말 실망이다. 너 옛날에 오토바이 타고 터프하게 다니지 않았어? 그런데 이렇게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에 굴종하는 스타일로 변했을 줄은 몰랐어. 완전히 사회적으로 남성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미의 기준에 완전히 굴복하고 있잖니? 왜 그렇게 세상이 원하는 아름다움의 잣대에 너를 맞추니?
첫째는 페미니스트들는 이렇고 저래야 한다는 그 선입관을 깨부수고 싶고요, 두 번째는 예쁜 옷을 입으면 기분이 좋잖아요, 페미니스트는 자기 마음에 드는 옷을 입을 자유도 없습니까, 라고 나는 속으로 몇 번이나 생각했지만 이미 많이 취한 선배 언니에게 그런 대답을 할 수가 없어 나는 그냥 머쓱하게 웃고 말았다.
그런데 같은 자리에 있던 남성 기자들 때문에 분위기가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들은 물론 악의는 없었겠지만, 선배 언니에게 에이 질투해서 그런다, 질투해서 그러지? 하며 가볍게 약을 올렸고, 선배 언니의 얼굴은 확 붉어졌다. 나는 안 해도 되는 말을 촉새같이 해 버린 그들에게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그 중에서 내가 가장 어렸기 때문에 언니의 비난이나 남성 기자들의 장난스런 조롱에 불쾌한 티를 낼 수가 없어 맥주잔 가장자리만만 매만지고 있었다.
이미 많이 취해 있었던 선배 언니는 질투는 무슨 질투, 사회가 바라는 여성의 모습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모습이 안타까워서 그런다며 한창이나 나에게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충고했다. 그 자리를 견딜 수 없어진 나는 살그머니 자리를 떴는데, 이내 언니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네가 지금 그러고 가버리면 내가 도대체 뭐가 되니? 빨리 돌아와! 변명은 됐고 빨리 와!
하지만 페미니스트간의 우애와 단결이 중요한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날 그 대의를 차마 따를 수 없을 만큼 너덜너덜 지쳐 버려서 대강 핑계를 대고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갔다. 언니가 원망스럽거나 밉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걸까, 하고 몹시 혼란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