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여자는 집에 한 사람만으로 족한데, 내가 요즘 정신과 약을 바꾸면서 그에 잘 적응하지 못해 매일 하던 아침 공복시간에 30분간 달리기, 50분간의 근력 운동, 50분간 필라테스, 2만보 걷기라는 엄격한 계획을 실행하지 못하면서 살이 도로 조금 찌고 스트레스를 받는 와중에 우리 집에 무거운 여자가 한 사람 더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 두 마리, 친한 언니와 그녀의 남편, 그리고 내가 18평 정도의 집에 살고 있는데 개 1마리가 비만, 나 역시 과체중, 언니 역시 고도비만이다. 무거운 존재가 집에 너무 많다.
나는 요즘 그나마 나아진 상태라 침대에만 들러붙어 있는 시기는 지났지만, 키도 170센티미터가 훨씬 넘는 언니가 거의 1톤에 가까운 무게가 되어 하얀 시트를 깐 킹사이즈 침대에만 납작 붙어 있는 모습은 빙산 위에 누워 있는 바다사자 같다. 그렇지만 함부로 언니에게 지금 뭐 하는 거냐, 나와서 같이 움직이자, 이런 권유를 하기에는 조심스럽다. 그건 권유가 아니라 ‘닦달’로 들릴 것이다. 내게도 누워 지낸 시간들이 있고, 그 시간들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누운 채로 숨이나 겨우 쉬면서 살아 있는 것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우울과 비만
몇 년 전 일을 그만둔 언니는 바로 집 몇 미터 앞 편의점에 가는 심부름도 나를 시킨다. 거의 현관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안 움직인 채 매일을 보내고, 남편의 저녁을 차려 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장을 봐야 할 때면 내 오토바이를 이용한다. 그것도 직접 오토바이를 모는 것이 아니라 오토바이를 몰 줄 아는 나를 이용해 시장을 본다. 웃으면서 기사 딸린 오토바이가 있으니 너무나 편하네! 라며 겨우 시장을 봐 가지고 와서 저녁을 차린다. 다행히 형부는 아침을 먹는 습관이 없어서 저녁 한 끼만 차리면 된다. 언니를 지금 태만하다며 탓할 수 없는 이유는 지금 언니가 앓고 있는 우울증과 비만이 깊이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나 역시 내 몸무게와 우울이 마치 등을 맞대고 붙어 있는 샴 쌍둥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로 달라붙어 있었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다. 언니보다 우울증 증상이 좀 더 심했던 나는 개인 병원 몇 군데를 떠돌면서 그때그때 땜빵으로 진료 받는 것을 그만두고 몇 년 전부터 대학병원 전문의를 찾아가 진료를 받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끈기 있게 선생님 한 분과 호흡을 맞춰 나가면서 최근에야 어떤 파트너쉽이 생겨났고, 그러고 나서 진료에 많은 발전이 생겨났다. 우울증은 마음의 감기라고 흔히 말하지만 감기가 덧나면 큰 병이 나는 것처럼, 우습게 보고 신중하게 돌보지 않으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된다. 언니는 우울증을 거의 나만큼 오래 앓았는데도 지금까지도 그냥 진료비가 싼 개인병원을 이용하고 있었다.
올 초에 나와 함께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던 언니의 건강 상태는 좋지 않다. 게다가 최근 이유를 알 수 없이 간 염증 수치가 높게 나와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언니가 술을 마시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매일 일하느라 파김치가 되는 형부는 언니가 그렇게 무기력해 있는 모습을 보면 당연히 속이 상한다. 그래서 출근하기 전 잠기운을 떨치지 못하고 있는 언니에게 몇 번이나 잔소리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누워만 있으면 당연히 기운이 없지, 힘내서 좀 움직여, 매일 똑같은 소리를 하는 형부의 답답한 마음을 나 역시 잘 안다. 게다가 형부는 내가 최근 약 100일간 상당히 체중을 줄인 것을 아주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서 언니에게 처제 좀 따라해 봐, 하는 잔소리까지 추가하는 바람에 내가 아주 곤란하다. 따라할 힘이 있다면 진작 따라했을 것이다.
형부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만 한국은 참 웃기는 사람들의 나라다. 무거운 여자가 있으면 그 여자에게 누구나 모욕을 줄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여자가 단지 무거운 여자라는 이유로 그 여자의 인격도 모독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이 자신이 가진 천부의 권리라도 되는 듯이 여긴다. 그래서 무거운 여자를 모욕하고 인격에 상처를 낸 다음 자신이 그 여자가 살을 빼게끔 원동력 역할을 했다며 뿌듯하게 여기기까지 한다. 비만 여성 혐오는 이처럼 심각한 수준이다. 그렇다면 무거운 여자를 보았을 때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DO
맛있는 음식을 함께 즐기기
쟤는 뚱뚱해서 살 빼야 할 테니까 맛있는 거 안 먹을 거야, 하고 지레 짐작하지 말고 그의 의사를 물어보라. 그가 맛있는 것을 즐기고 싶어한다면 함께 즐기라. 그리고 저러니까 뚱뚱하지, 하며 흉보지 말라.
야외 활동하기
무거운 여자가 그러고 싶어한다면 함께 활기차게 산책하며 이야기하자. 쟨 움직이기 싫어할 거야, 라는 과도한 배려에 불편해하는 무거운 여자가 상당히 많다.
다이어트와 건강 관리 경험담 나누기 (단, 무거운 여자가 원할 경우)
당신에게 체중 관리 경험담이 있고 무거운 여자가 그것을 듣고 싶어한다면 당신의 경험담을 들려 주라. 단, 연예인 누가 어쨌다더라 내 친구 언니의 사촌언니가 어쨌다더라(생판 모르는 남)는 카더라 이야기 말고 자신이 확실하게 체험해서 효과를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해 주자.
DON'T
복스럽게 먹네! 는 칭찬이 아니다.
먹는 것도 참 복스럽네! 는 칭찬이 아니라, ‘돼지가 참 돼지처럼 먹네, 꿀꿀꿀’이라는 말이다.
살 빼라는 ‘고나리’질
자기 몸은 자기가 제일 잘 안다. 그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어도 자기 몸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저 몸을 하고 웃고 있네, 내가 한 마디 해줘야겠다, 하고 당신이 생각하며 겨우 한 마디 했더라도 그 한 마디들이 모여 이미 그에게는 여러 사람의 여러 마디가 쌓이고 쌓여 있을 것이다.
이런 거 먹어도 돼? OR 넌 이런 거 먹으면 안 돼!
무거운 여자라고 해서 먹을 것 앞에서 무조건 이성을 잃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무거운 여자가 무겁게 된 데에는 아주 여러 가지 요인이 있고, 탐식은 그 중 여러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하다. 당신이 무거운 여자의 식성까지 걱정해 줄 필요는 없다. 이런 질문이나 명령은 좌중 앞에서 그의 뺨을 후려치며 ‘이 무거운 여자야!!!’하고 외치는 것이나 다름없다. 가끔 무거운 여자의 디저트 접시를 빼앗으며 경찰처럼 정의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데, 무거운 여자도 삶을 즐길 권리가 있다. 주책스러운 사람이 되지 말자.
살만 빼면 예쁠 텐데, 넌 안 긁은 복권이야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무거운 여자는 자신의 진짜 인생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무슨 마뜨료시카 인형처럼 진짜 자신이 지방 덩어리 속에 파묻혀 있어서 그 지방을 헤치고 진짜 자신을 꺼내라는 주문으로 들을 것이다. 무거운 여자 역시 당신처럼 지금을 살고 있다.
괜찮아, 통통해도 예뻐
그 여자가 통통한데 왜 당신이 괜찮은가? 아주 무례한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너 자신을 사랑하렴!
당신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무거운 여자는 원래 자기 자신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데 사랑해도 된다고 당신이 생색을 내며 그런 말을 해 준다고 느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