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남편을 피해 회사에서 시간을 보냈지만 전남편은 회계 담당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한 예산을 집행한다 해도 최종 검수를 위해서 늘 그를 마주쳐야 했다. 그 때마다 그를 죽이고 싶다는 욕망이 뾰족하게 튀어나와 그걸 진정시킬 때까지 손이 덜덜 떨렸다. 심각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고는 잠을 잘 수가 없었고 마지막 개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정을 깨면 안 된다고?
참 좋은 개였어, 무척 소중했어, 하고 미소를 지으며 그 개를 떠올릴 수 있게 된 건 5년이나 지난 올해 들어서였다. 그 동안 내내 내 심장은 동맥을 꿰뚫린 듯 피를 흘리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내출혈이 있거나 말거나 나의 이혼을 막으라고 하나님에게 계시를 받았다는 J씨와 그녀가 소개한 M목사는 나에게 가정을 지키라고 전화로, 카톡으로 내내 지령을 내렸다.
나도 그렇게까지 판단력이 흐린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판단력이 흐릴 수밖에 없었다. 나의 어머니는 내 결혼생활의 문제에 대해 할 말이 없었는지 단 한 마디도 해 주지 않았고, 누구라도 매달릴 사람이 필요하던 차에 손을 내민 것이 J씨와 M목사였다. 지푸라기 하나라도 필요한데, 하나님을 등에 업고 이야기하는 그들의 말은 내게 힘이 셌다. 그들이 열렬히 하는 말은 단 한 가지였다. 가정을 깨선 안 된다.
그 때 즈음 나와 친분이 있던 회사 대표님은 내가 도저히 업무를 더 수행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판단하셔서 사직을 권유하셨고, 집을 나와 살 수 있도록 월세 보증금을 빌려 주셨다. 대표님 말고도 자신의 집에 머무르라는 권유를 서너 명이나 해 주어 눈물이 났다. 나는 작은 원룸을 얻었고, 친구에게 까만 강아지를 선물받았다. 그러나 내 마음의 구멍은 도무지 메워질 것 같지 않았다. 매일매일 개가 죽던 순간이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이 증상은 이후 몇 년 간 계속되면서 상담치료를 받아 조금 완화되기 전까지 내 삶을 신나게 망가뜨렸다.
나와 상관없는 문제
내가 아예 원룸까지 얻어 살림을 끌고 나온 것을 본 J씨는 경악을 하며 무조건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집에 들어가서 뭘 하느냐고, 그는 나를 인간 취급도 안 한다고 묻자 무조건 하나님께 맡기고 신혼집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나 죽었네, 하고 집에 붙어 있으라는 거였다. 그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니 그렇게 해야지 어떡하겠나, 하고 생각하고는 신혼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지는 몰라도 내가 원하는 길은 아니었다. 내가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자 전남편의 가학적인 성향이 여지없이 드러났다.
말랑말랑한 먹잇감을 찾은 것처럼 잔인하게 변한 그는 내가 사랑한 남자와는 180도 다른 인간이었다. 원래도 성욕이 강한 그는 나를 급기야 ‘사용해서’ 섹스를 했다. 나는 일단 이혼을 원치 않는 입장이고 그는 말끝마다 이혼해 달라고 하면서 왜 나에게 성관계를 요구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거부하기도 뭣하고, 그냥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 남에게 일어나는 것 같았다. 진짜 나는 내 몸에서 빠져나와 천장에 둥둥 떠서 기계적인 섹스를 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J씨는 가정을 온전하게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믿음이 없는 남편을 구원받게 할 기회라며 소중한 영혼을 건질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납작 엎드리라고 말했지만, 실제로 납작 엎드려 보니 모멸감이 너무도 심했다. 결국 행위가 끝나고 그에게 그토록 이혼을 해달라고 하면서 왜 나와 섹스를 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싸늘하게 대답했다. 나가서 하면 돈 주고 해야 되잖아, 이 미친년아. 왕년에 열렬히 성매수한 남자의 대답다웠다.
그 순간 가정을 지키고 말고 이 새끼가 구원을 받고 말고는 나와 전혀 상관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J씨는 급기야 남편을 만났고, 그를 설득해 기독 부부상담을 받아 보기를 권유했다. J씨가 결혼생활에서 이혼의 위기에 있을 때 이 기독 상담 센터를 찾아가 부부상담을 받았고, 그 상담이 성공적으로 끝나 지금 이혼 위기를 넘기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며 자신이 체험한 만큼 자신 있게 부부상담 받기를 권했다. 나는 그때 무엇도 거절할 힘이 없었기 때문에 그 역시 승낙했다.
그리고 그 때 즈음 J씨를 영원히 상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대화가 있었다. 네 개보다 네 남편이 백배천배 더 중요해. 예수님은 네 개보다 남편을 훨씬 더 사랑하셔. 욕할 힘도 없어 그냥 그녀와 연락을 끊었고, M목사는 나에게 사람만 영혼이 있고 개는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너는 다시 네 개를 만날 수 없단다, 라고 말했다. 나는 생각했다. 둘 다 죽어버려. 그렇지만 부부상담이란 걸 받긴 받았다. 함께 받은 것은 아니고 각자가 별도로 한 사람에게 상담을 받았는데, 상담자는 중년의 여성 목사였다. 아버지를 비롯해 목사들에게 심한 편견을 가질 수밖에 없던 나는 이 사람 역시 나에게 납작 엎드리라 말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몇 번의 상담을 한 후 이 목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가망 없다. 이혼해라. 목사인 내가 이혼을 권할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너도 감이 오지 않느냐.
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남자다.
성경에도 남편에게 버림받은 아내는 죄가 없다. 그러니 죄의식 갖지 말고 이혼해라.
J씨는 펄펄 뛰었다. 이 센터의 방침이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이혼을 막는다는 것이었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는 것이었다. J씨가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곳에서 이혼을 하라고 했을 정도면 남편도 정말이지 어지간한 인간인 모양이었다. M목사 역시 목사라는 사람이 이혼을 하라고 할 수가 있느냐고 말했지만 나는 드디어 제정신인 목사를 만났다 싶어 그 분의 말을 듣기로 했다. 그 전에 남편을 만나 위자료를 요구했다. 나는 내 영혼의 반을 잃었고 실직까지 했다, 그렇지만 서울에 방 하나는 얻어서 살아야 할 것 아니냐, 그 정도 돈은 내놔라. 남편은 코웃음을 쳤지만 나는 설득을 되풀이해 자필 서약서를 받았다. 드디어 희대의 망혼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는 계속해서 먹었다. 불면증은 점점 심해졌고, 배부르게 먹은 다음 찾아오는 만복감과 졸림을, 평화와 안온함으로 완전히 혼동하고 있던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