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탈혼기 5. 나가 계시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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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탈혼기 5. 나가 계시라고 할까요?

Jane Doe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그 상황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때 누구라도 엉망이 되어버린 집 모양을 보고 이 상황을 알아차려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쓰러졌다는 사실에 집중했을 뿐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없어보였다. 난생 처음 들것에 올려졌다. 주변에 다행히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누구라도 나를 알아볼까 두려워 몸을 바짝 웅크렸다. 그 모습을 보고 구조대원들은 놀라며 내게 물었다.

“괜찮아요? 많이 아픈가봐요.”

우습게도 나는 이 상황이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더 깊이 몸을 웅크렸다. 마침내 들것에 눕혀진 내가 구급차에 올랐다. 제발 나는 나 혼자만 구급차에 타길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보호자’인 B를 나와 함께 구급차에 태웠다. 그들이 조금만 주의 깊게 현장을 살폈다면 그들은 B와 나를 구급차에 함께 태우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당장 그를 나와 분리시켜달라는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은 내가 다니던 집 근처 산부인과로 나를 옮겼다.

“오면서 확인했는데 혈압이 많이 낮습니다.”

“의식은요? 산모님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종종 이런 일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순간 나는 혈압이라도 낮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내 비참한 상황을 쉽게 알지 못할 것이다. 의사는 간단한 진찰을 한 뒤 내가 과로 비슷한 것으로 인해 저혈압이 왔고 그로 인해 쓰러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에게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간호사들에게 수액을 놓아주라는 처방을 내린 뒤 자리를 떴다. 구급 대원들은 상황이 정리되었다고 판단했는지 곧바로 병원을 떠났다.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게 됐다. 여전히 그는 그 모든 상황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간호사 한 명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수액을 내 팔에 꽂아주었다. 그리고 내게 가까이 오더니 조용히 말을 걸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혹시 남편 분 나가 계시라고 할까요?”

“...네?”

“이런 상황으로 오시는 분들이 좀 있어서요.”

다정한 말투였다. 그리고 이 상황을 알아차린 첫 번째 사람이었다. 나보다 언니로 보이는 간호사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참았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의연하게 행동하고 싶었다.

“괜찮으시다면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같이 있으시기 싫으시면 나가서 대기하시라고 말씀 드리려고요.”

나는 말을 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보호자분은 밖에서 대기해 주시겠어요?”

B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닫고 나갔다. 간호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종종 이런 일이 있어요. 잠깐 수액 맞고 주무시고 계세요. 아무 생각 하지 마시고 푹 쉬셔야 해요.”

나는 고개를 다시 끄덕거렸다. 간호사는 내게 이불을 덮어준 뒤 그 역시 밖으로 나갔다. 문이 철컥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밖의 소음에 집중했다. 그리고 곧 이 곳의 방음이 시원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을 베개에 묻었다. 조용히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지난 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며 나는 그때서야 조금 편히 울 수 있었다.

놔주면 안 돼?

잠시 후 간호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제 처치가 끝났으니 별 문제가 없으면 집에 돌아가도 된다는 말을 했다. 문을 열고 병실을 나섰다. 이번에도 역시 그는 마치 반성문을 쓰기 위해 기다리는 학생마냥 풀죽은 채 앉아있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화가 났다.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놓은 주제에 이제 와서 미안한 기색을 보이는 B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B를 본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병원을 나섰다.

“어디 가는 거야?”
“...”

“집에 가야지. 택시 타고 가자.”

“...”

“내 말 안 들려?”

B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았다. B는 아무 말도 없는 내게 계속 택시를 타고 집에 가자고 말했다. 여전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곧 나는 B가 슬슬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집에 가자고!”

그 때였다. 그가 또 다시 내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뿌리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놔.”

나는 지쳐있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나를 보거나 혹은 내 상황을 알아차리지 않기를 바랄 뿐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가 나를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B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택시 타고 집에 가.”

“싫어.”

“아 왜 싫은 건데?”

왜 싫은지 그는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슬슬 사람들의 눈초리가 느껴졌다. 나는 화가 나고 부끄러웠다. 이 상황에서도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B가 너무 싫었다. 나는 울면서 소리쳤다.

“그냥 날 좀 놔둬!”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려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B는 더 나를 꽉 붙잡고 있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어떻게 해도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다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내 손목을 잡은 채였다.

“나 그냥 놔주면 안 돼?”

남편 되십니까?

달래 듯 말해봤지만 이제 그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위협을 느꼈다. 그 때 누군가가 나와 B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 상황을 이상하게 보던 사람들이 있던 것이다. 그 누군가는 경찰이었다.

“경찰입니다. 신고가 들어와서요.”

그때서야 B는 내 손목을 놓았다. 나는 그가 내 손목을 놓자마자 그대로 뒤도 보지 않고 뛰었다. 한참을 뛰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만삭에 가까운 임산부가 뛰어봤자 속도가 날 리가 없었다. 나는 숨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차오를 때 쯤 달리기를 멈췄다. 그리고 그때 쯤 누군가가 나를 뒤쫓아 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신고 받고 출동했던 경찰입니다. 혹시 몇 가지 여쭤 봐도 될까요?”

나는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울먹거리며 대답하기 싫어 꾹꾹 누르며 간신히 대답했다.

“...왜요?”

“간단한 겁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왜요?”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방금 선생님과 계시던 분이 남편분이시라던데 맞습니까?”

“그게 왜요?”

“그 분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확인을 해야 합니다. 맞습니까?”

경찰들은 나를 끈질기게 쫓아왔다. 마침내 나는 그들에게 대답했다.

“네, 맞아요. 그래서요?”

그들은 내 대답을 듣자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 집으로 올라갔다. 한참 뒤 B가 집에 돌아왔다. B는 또 다시 내게 사과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고 아마도 나는 다시 그를 용서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 일이 있은 뒤로는 B와 내가 다투는 일은 줄어들었다. 나는 그에 대해, 특히 그의 일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두 달 정도가 더 지난 뒤, 나의 아이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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