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상황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그때 누구라도 엉망이 되어버린 집 모양을 보고 이 상황을 알아차려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사람들은 내가 쓰러졌다는 사실에 집중했을 뿐 주변을 둘러볼 여유는 없어보였다. 난생 처음 들것에 올려졌다. 주변에 다행히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누구라도 나를 알아볼까 두려워 몸을 바짝 웅크렸다. 그 모습을 보고 구조대원들은 놀라며 내게 물었다.
“괜찮아요? 많이 아픈가봐요.”
우습게도 나는 이 상황이 너무 부끄러웠다.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더 깊이 몸을 웅크렸다. 마침내 들것에 눕혀진 내가 구급차에 올랐다. 제발 나는 나 혼자만 구급차에 타길 바랐다. 하지만 그들은 ‘보호자’인 B를 나와 함께 구급차에 태웠다. 그들이 조금만 주의 깊게 현장을 살폈다면 그들은 B와 나를 구급차에 함께 태우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 역시 당장 그를 나와 분리시켜달라는 말은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은 내가 다니던 집 근처 산부인과로 나를 옮겼다.
“오면서 확인했는데 혈압이 많이 낮습니다.”
“의식은요? 산모님 괜찮으세요?”
“...괜찮아요.”
종종 이런 일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대답했다. 순간 나는 혈압이라도 낮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내 비참한 상황을 쉽게 알지 못할 것이다. 의사는 간단한 진찰을 한 뒤 내가 과로 비슷한 것으로 인해 저혈압이 왔고 그로 인해 쓰러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아이에게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간호사들에게 수액을 놓아주라는 처방을 내린 뒤 자리를 떴다. 구급 대원들은 상황이 정리되었다고 판단했는지 곧바로 병원을 떠났다.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있게 됐다. 여전히 그는 그 모든 상황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간호사 한 명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수액을 내 팔에 꽂아주었다. 그리고 내게 가까이 오더니 조용히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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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남편 분 나가 계시라고 할까요?”
“...네?”
“이런 상황으로 오시는 분들이 좀 있어서요.”
다정한 말투였다. 그리고 이 상황을 알아차린 첫 번째 사람이었다. 나보다 언니로 보이는 간호사였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하지만 다시 참았다. 별 것 아닌 것처럼 의연하게 행동하고 싶었다.
“괜찮으시다면 그냥 아무 말 하지 않을게요. 하지만 같이 있으시기 싫으시면 나가서 대기하시라고 말씀 드리려고요.”
나는 말을 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가 내 어깨를 토닥였다.
“보호자분은 밖에서 대기해 주시겠어요?”
B가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닫고 나갔다. 간호사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종종 이런 일이 있어요. 잠깐 수액 맞고 주무시고 계세요. 아무 생각 하지 마시고 푹 쉬셔야 해요.”
나는 고개를 다시 끄덕거렸다. 간호사는 내게 이불을 덮어준 뒤 그 역시 밖으로 나갔다. 문이 철컥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밖의 소음에 집중했다. 그리고 곧 이 곳의 방음이 시원치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얼굴을 베개에 묻었다. 조용히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지난 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벌어진 일들을 떠올리며 나는 그때서야 조금 편히 울 수 있었다.
놔주면 안 돼?
잠시 후 간호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이제 처치가 끝났으니 별 문제가 없으면 집에 돌아가도 된다는 말을 했다. 문을 열고 병실을 나섰다. 이번에도 역시 그는 마치 반성문을 쓰기 위해 기다리는 학생마냥 풀죽은 채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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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났다. 나를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놓은 주제에 이제 와서 미안한 기색을 보이는 B를 용서할 수 없었다. 나는 B를 본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병원을 나섰다.
“어디 가는 거야?”
“...”
“집에 가야지. 택시 타고 가자.”
“...”
“내 말 안 들려?”
B의 말에 아무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았다. B는 아무 말도 없는 내게 계속 택시를 타고 집에 가자고 말했다. 여전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곧 나는 B가 슬슬 화가 난 상태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집에 가자고!”
그 때였다. 그가 또 다시 내게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내 손목을 잡아당겼다. 뿌리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하나였다.
“...놔.”
나는 지쳐있었다. 더 이상 그 누구도 나를 보거나 혹은 내 상황을 알아차리지 않기를 바랄 뿐 아무 생각도 없었다. 그가 나를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B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 택시 타고 집에 가.”
“싫어.”
“아 왜 싫은 건데?”
왜 싫은지 그는 정말 몰라서 묻는 걸까. 슬슬 사람들의 눈초리가 느껴졌다. 나는 화가 나고 부끄러웠다. 이 상황에서도 좀처럼 물러서지 않는 B가 너무 싫었다. 나는 울면서 소리쳤다.
“그냥 날 좀 놔둬!”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려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B는 더 나를 꽉 붙잡고 있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어떻게 해도 그는 손을 놓지 않았다. 지칠 대로 지친 나는 그의 손을 뿌리치다 결국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내 손목을 잡은 채였다.
“나 그냥 놔주면 안 돼?”
남편 되십니까?
달래 듯 말해봤지만 이제 그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위협을 느꼈다. 그 때 누군가가 나와 B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 상황을 이상하게 보던 사람들이 있던 것이다. 그 누군가는 경찰이었다.
“경찰입니다. 신고가 들어와서요.”
그때서야 B는 내 손목을 놓았다. 나는 그가 내 손목을 놓자마자 그대로 뒤도 보지 않고 뛰었다. 한참을 뛰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만삭에 가까운 임산부가 뛰어봤자 속도가 날 리가 없었다. 나는 숨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차오를 때 쯤 달리기를 멈췄다. 그리고 그때 쯤 누군가가 나를 뒤쫓아 온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신고 받고 출동했던 경찰입니다. 혹시 몇 가지 여쭤 봐도 될까요?”
나는 왜 내가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울먹거리며 대답하기 싫어 꾹꾹 누르며 간신히 대답했다.
“...왜요?”
“간단한 겁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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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선생님과 계시던 분이 남편분이시라던데 맞습니까?”
“그게 왜요?”
“그 분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확인을 해야 합니다. 맞습니까?”
경찰들은 나를 끈질기게 쫓아왔다. 마침내 나는 그들에게 대답했다.
“네, 맞아요. 그래서요?”
그들은 내 대답을 듣자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않았다. 나는 혼자 집으로 올라갔다. 한참 뒤 B가 집에 돌아왔다. B는 또 다시 내게 사과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났고 아마도 나는 다시 그를 용서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 일이 있은 뒤로는 B와 내가 다투는 일은 줄어들었다. 나는 그에 대해, 특히 그의 일에 대해서 아무런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별 탈 없이 두 달 정도가 더 지난 뒤, 나의 아이가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