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탈혼기 7. 내 잘못이 아니었다

생각하다탈혼결혼과 비혼

A의 탈혼기 7. 내 잘못이 아니었다

Jane Doe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그래도 내가 그때까지 그와의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 적어도 한 가지 위안할 수 있는 것이 있었다. 나는 B에게 맞지 않았다. B는 내 손목을 잡고, 억지로 나를 꽉 안아 일어나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고, 물건을 집어던진 적도 있었고, 나를 협박한 적도 있었고,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고, 자살하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적어도 B는 나를 때리지는 않았다. 그때 폭력이라는 것이 상대를 때려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미리 인지했다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겨우 아이가 태어난 뒤에야 깨달았다. 

B의 행동이 아이에게 위협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나서야 나는 그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와 가정을 이루어 살면서 내 아이에게 좋은 환경을 줄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과연 내가 결혼을 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나는 결혼으로 얻은 것이 없었다. 누군가는 아이를 얻었으니 되지 않았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이는 내가 그와 결혼하지 않았어도 내 선택으로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여자 혼자서 아이를 얻는다는 이유로 그 이상의 부정적인 시선을 함께 얻어야겠지만 말이다. 반면 잃은 것은 많았다. 나는 따뜻한 집을 잃었다. 내 존엄성을 잃었다. 게다가 친구도 잃었다. 그는 내가 남자인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도 극도로 싫어했다.

꼭 연락을
하고 지내야 해?

나는 남자인 친구가 많은 편이었다. 그리고 B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와 사귀는 내내 그는 내 남자인 친구들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내가 만나는 친구들 중에는 B의 친구이기도 한 사람들도 꽤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B와 결혼한 뒤 그와 함께 알고 지내던 친구들의 연락은 서서히 끊겼다. 곧 이어 B는 그가 잘 모르는 내 친구들과의 관계를 간섭하기 시작했다.

”아직 K형이랑 연락해?”
“응, K가 너는 잘 지내냐고 묻더라.”

B의 표정은 어쩐지 밝지 않았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K형이랑 꼭 연락을 하고 지내야해?”
“...뭐?”
“아니, 결혼까지 했는데 K형이랑 따로 만나야 할 이유가 있냐고. 그 형이 인생에 도움이 될 사람도 아니잖아.”

내게는 K와 꼭 만나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K를 만나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그렇다고 K를 만나지 않을 이유도 없잖아?”
“내가 싫어.”
“뭐?”
“내가 싫다고. 네가 K를 만나는 게 싫어.”

B는 내가 K를 만나는 것이 싫다고 했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B는 그저 그가 싫다는 이유로 내 주위에 있던 친구들의 연락을 하나 둘 씩 끊어갔다. 처음에는 그의 태도가 화가 났다. 물론 그 일로 나와 B는 다툼을 반복했다. 결국 그와의 싸움이 싫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친구들과의 연락을 하나 둘 끊어갔다. 나는 점점 고립되었다. 나는 B와 있었던 일들을 탈혼이라는 결정을 하기 전 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아왔다. 심지어 엄마, 아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어찌 되었건 B와 함께 살아야 했고 그러므로 B는 내가 안고 가야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게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 같았다. 탈혼 후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하자 돌아온 친구들의 반응은 놀라웠다. 그 누구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내가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다들 나와 B가 잘 살고 있으려니 했을 것이다. 그렇다. 타인에게 말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B가 싫어한다는 이유로 나는 결혼한 이후 쭉 고립되어 있었다.

그게 백 번 나아

하지만 탈혼이라는 결정을 내린 뒤에는 그 모든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고민했다. 대체 가족이란 뭘까.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B와의 결혼으로 내가 얻은 게 뭘까. 내가 B와의 결혼을 그만 두고 나온다면 어떤 변화가 내게 오게 될까. 확실히 나는 그 전까지는 B의 문제를 고치는 방법만 생각했다. 그러나 B의 문제를 고치는 것 대신 B와 그의 가족들을 내 인생에서 지우게 된다면? 내 인생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대신 ‘애 딸린 이혼녀’라는 타이틀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 

그런들 뭐 어떤가. 불행한 가족으로 사는 것보다 그저 그런 애 딸린 이혼녀의 삶이 백 번 나았다. 물론 아이에게도. 나는 그 일이 일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주말, 나는 아이를 안고 집을 나섰다. 그때의 일로 B는 나와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근처에 있는 예전의 내 집으로 향했다. 나는 먼저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이혼을 해야 할 것 같아.”

나는 엄마에게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해왔다. 몇 번 울먹이기도 했던 것 같다. 엄마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은 B의 가족들이 내게 횡포를 부린 일 뿐이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엄마는 가슴을 쳤다.

“어떻게 그렇게 될 동안 말 한마디를 안했니, 말도 많은 애가.”

그때 엄마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사실 그 일들은 내 잘못이 아니었다. 부끄러울 일도 아니었다. 빨리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 일은 말도 많은 애가 그 누구에게도 꺼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였다. 나는 내가 겪고 나서야 그것을 알았다. 

그래, 이혼해.

나는 엄마에게 모든 이야기를 한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미 내가 출근한 뒤에는 엄마 아빠가 아이를 봐주시는 상황이었기에 더 필요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더 지났다. B는 여전히 나와 아이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도 며칠이 더 지났다. B에게 먼저 연락한 것은 나였다. 나는 B에게 근처 카페로 나와 달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B에게 이혼이라는 말을 꺼냈다.

“난 너와 결혼하고 난 뒤 행복했던 적이 별로 없어.”
“...나도 그래.”

B 역시 지지 않고 대꾸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난 일단 너희 가족들이 나에게 했던 행동, 네가 이렇게 무책임하게 아무런 경제활동도 하려 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나와 내 아이에게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것. 이 3가지가 고쳐지지 않는다면 너와 계속 같이 살기 힘들 것 같아.”
“...그래.”
“응, 그래서 그 3가지를 고칠 수 없다면 난 이혼하는 게 나을 것 같아. 물론 아이의 친권과 양육권은 모두 내가 가져갈 거야. 어떡할래?”

나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녹음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B의 마음이 바뀐다면 상황이 나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B는 순순히 대답했다.

“그래. 이혼해.”

이미 예상한 바였지만 허탈하리만치 쉬운 대답이었다. 단, B는 이 사실을 자신의 가족에게 본인이 직접 알리겠다고 했다. 또한 지금 살고 있는 집의 계약기간이 끝날 때까지 그 집에서 자신이 혼자 생활할 것이라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그 집을 없애고 싶었지만 그가 그렇게 하겠다고 하니, 그저 그러라고 했다.

절차

합의 이혼 절차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간단했다. 그저 신분증을 관할 지역에 있는 법원에 간 뒤 서류를 내고 친권, 양육권, 양육비와 면접교섭 등에 대한 사실을 합의한 대로 적어내면 그만이다. B는 주 1회 한 시간씩 아이를 보러 올 것이며 월 50만원의 양육비를 지급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뭐라도 한 마디 했다가 그가 이 이혼을 어그러뜨릴지 모른다는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사히 서류를 내고 나와 B는 각자 돌아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서류를 낸 뒤 약 한 달 동안의 유예기간이 있고, 자녀가 있는 부부의 경우는 그 기간이 석 달로 늘어난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미성년 자녀가 있는 나와 B는 함께 교육까지 받으러 가야했다. 물론 잠깐 비디오 틀어주는 것에 그치는 단순한 교육이었지만 괴로운 시간이었다. 이미 모든 것을 정리했는데도 B의 모습을 다시 봐야 한다는 것이. 다행히 그 일 이외에는 그를 마주치는 일은 없었다. 나는 더 바쁘게 일했고 더 열심히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는 그 일이 있은 이후, 단 한 번도 아이를 보겠다며 찾아오는 일이 없었다. 석 달이라는 짧지만 긴 기간 동안 적어도 아이를 보겠다며 한 번은 오지 않을까 하며 마음을 졸였건만, 그 걱정이 무색할 만큼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나의 일상은 반복되었다. 그저 B와 B와 살던 집이 사라졌을 뿐이다. 내 아이는 나 그리고 나의 엄마, 아빠와 함께였다. 하지만 종종 동네에서 그와 비슷한 사람을 보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갑갑했다. 언제 그와 마주칠지 모른다는 생각에 손이 떨렸다. 하지만 그런 기분들은 금방 괜찮아졌다. 적어도 이제 나는 그 위협으로부터 멀어졌다. 아직 법적으로 정리는 되지 않았지만, 확실히 그는 내 인생에서 멀리 떨어져있다. 그 사실이 너무나 홀가분했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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