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탈혼기 6. 탈혼을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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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의 탈혼기 6. 탈혼을 결심하다

Jane Doe

일러스트레이터: 이민

아이가 태어나고 난 뒤 나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한참 아이를 돌보다 시계를 보면 완벽히 생소한 숫자가 보였다. 갓 태어난 아이는 좀처럼 시간을 맞춰 잠을 자지 않는다. 당연히 아이를 보는 나 역시 시도 때도 없이 깨어있어야 한다. 아기가 잠시 잠에 들면 아직 완벽하게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일으켰다. 나는 무엇을 하든 그때 해야 했다. 뭘 먹는다든가, 씻는다든가 전화기를 꺼내어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타임라인을 뒤져보는 것들 말이다. 나의 아이가 태어난 때는 겨울이었다. 나는 따듯한 방에 갇혀 아무데도 갈 수 없었다. B는 나의 산후 조리를 도와줄 도우미 분과 나의 엄마가 집에 와 있으면 곧장 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리고 그분들이 돌아가고 난 뒤, 나의 전화를 받고 다시 집에 돌아왔다. 

집에 있는 것을 즐기지 않는 나는 그 시간들이 상당히 괴로웠다. 여름이었다면 그래도 유모차를 끌고 아파트 단지라도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겨울은 나와 아이 모두에게 혹독했다. 나는 그저 아이를 안고 창밖을 바라보며 갑갑함을 달래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더 지났다. 문제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그 정도는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느껴질 만한 것들이었다. 그렇게 슬슬 회사로 복직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나는 휴직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수입이 줄어든다는 사실이 불안해 미칠 지경이었다. 다행히 근처에 살고 계시던 나의 엄마가 아이를 돌봐주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육아 문제가 해결되었다. 나는 아이를 낳고 정확히 석 달 뒤에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A씨 진짜 복직 빨리 했다. 몸은 좀 괜찮아? 애기 눈에 밟혀서 어떡해.”
“네, 사실 회사에 있는 게 몸은 더 편해요. 저희 엄마가 봐주셔서 안심도 되고요.”
“그래? 그럼 A씨 어머니께 얼마나 드려?”“아, 그게... 많이는 못 드리죠.”

내가 번 돈은 생활비만 감당하기에도 빠듯했다. 당연히 나는 엄마에게 엄마의 노동에 상응하는 돈을 줄 수 없었다. 괴로웠다. 아무리 엄마가 괜찮다고 해도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그가 경제적인 능력이 없다는 사실에 또 한 번 좌절해야했다. 아이가 태어났지만, 당연하게도 그의 삶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버거운 일상이
쳇바퀴처럼 돌았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아침 일찍 일어나 아이를 부모님 집에 맡기고 출근길 지하철에 오른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점심을 먹는다. 조미료 범벅인 식당 밥이 질린다며 투덜거렸던 과거는 온대간데 없다. 누군가 차려준 밥은 이제 항상 맛있다. 일부러 혼자 밥을 먹으러 나가게 됐다. 보고 싶었던 영상을 돌려보며 혼자 먹는 밥은 귀했다. 한 시간 남짓 짧은 점심시간을 보낸 뒤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아 일을 하고 퇴근 시간이 되면 곧장 짐을 챙긴다. 퇴근길 인파 속에서 지하철을 탄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드러누워 티비를 보던 소소한 일상의 게으름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나는 곧장 다시 부모님 집으로 향해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집에서 나와 아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를 향해 묻는다.

저녁에 뭐 먹을까? 뭐 시켜먹을래?

물론 집은 치워지지 않은 상태다. 부랴부랴 대충 배달 음식을 시켜먹고 아기를 안고 밀린 집안 살림을 함께 한다. 그리고 나면 새벽. 아이가 잠들면 함께 침대에 눕는다. 곧 아기가 울며 보챈다. B는 예전부터 늘 잠이 많았다. 그는 아기가 울며 보채도 잘 일어나지 않았다. 잠귀가 밝은 나는 대부분 먼저 일어나 아기를 안거나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았다. 눈도 잘 뜨이지 않는다. 기계적으로 아기를 흔들거나 젖을 먹일 뿐이었다. 다음 날 눈을 뜨면 오늘이 어제인지, 아니 오늘이 오긴 한건 지 헷갈릴 지경이 되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꼬박꼬박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다시 아이를 데리고 부모님 집에 가야 했고, 지긋지긋한 출근길 지하철을 타야 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나는 출산 직후 직접 관리하던 월급 통장을 B에게 넘겼다. 내가 100일도 지나지 않은 아기를 돌보며 살림을 신경 쓰기 어렵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는 흔쾌히 생활비 관리를 맡겠다고 했다. 복직을 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B가 알아서 모든 살림을 하고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나는 알았어야 했다. B의 경제적인 능력을 전혀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이상한 점을 처음 알아차린 것은 우연치 않게 우편함을 확인하면서였다. 나는 그에게 생활비 관리를 맡긴 이후로 우편함은 쳐다보지도 않고 있었다. 일이 벌어진 것은 자정이 지난 시각, 좀처럼 잠에 들지 않는 아기를 안고 산책을 한 뒤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나는 유난히 우리 집에 우편물이 많이 쌓여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우편물을 꺼내어 집으로 올라왔다. 그는 우편물에 대해 별 말이 없었다. 나는 잠든 아기를 침대에 눕혔다. 그리고 함께 앉아 그동안 왔던 우편물을 확인했다. 

“잠깐, 이게 뭐야? 관리비 미납 통지서?”
“아, 맞다. 관리비를 깜빡 안 냈어.”
“뭐? 관리비를 왜 안 낸 거야. 자동이체 해놓으면 되잖아. 대체 얼마나 밀린 거야?”
내가 가져온 6개의 봉투는 총 6개월을 의미했다. 그는 내가 아이를 낳고 그리고 복직할 동안 단 한 번도 관리비를 내지 않았다. 물론 수도세와 난방, 가스 요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것들이 6개월 동안 쌓여 내 월급의 반에 가까운 돈이 되어 있었다. 눈앞이 아득해졌다. 
“자동이체 신청 안했어?”
“깜빡 했는데...”
“아니, 깜빡할게 따로 있지 이럴 거면 대체 왜 생활비 관리를 맡겠다고 한 거야? 지금 네가 하는 일이 뭐가 있다고!”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하고 있는 게 뭐가 있냐는 말에 그는 화가 났을 것이다. 사실 화가 나서 할 수 있는 말은 다 할 생각이긴 했지만 조금 두려워졌다. 물론 싸움은 더 커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상황이 달랐다. 아이가 깨서 우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이를 보기 위해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한참동안 바깥이 조용했다. 다시 아이가 잠든 것을 확인 한 뒤 거실로 나왔다. 그는 조용히 뭔가를 적고 있었다. 그가 적고 있는 것을 얼핏 보았다. 유서였다. 또 한 번 그때의 기억이 내 머릿속을 점령했다. 그의 무책임함에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나는 그가 쓴 유서를 찢어버렸다. 

“...왜 찢어? 내가 지금 하는 행동들이 다 우스워? 그냥 넌 네 말이 다 맞는 줄 알지? 내 기분은 생각이나 해봤어?”

“그러는 너는 내 기분을 생각해봤어? 돈벌고 애 키우고, 애 키워주는 우리 엄마 아빠한테 해 드릴 수 있는 건 없고 뭐 하나 나한테 도움도 안 되면서 큰 소리만 치는 네 부모님에 동생 꼴을 죄인처럼 봐야하는 나는?”

“말 다했어? 그래 그냥 끝내자.”

“그래. 그냥 나가, 네 마음대로 해. 다만 아이 볼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

“왜? 나는 아이 볼 자격도 없어? 안 돼! 절대 안 돼!”

그 다음은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저 이 일은 그가 어떻게 해서든 밀린 관리비를 해결하는 것을 약속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끝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나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었다. 물론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하나였다. 아주 쉽고 어려운 결정. 나는 늘 후회한다. 왜 그때 그 결정을 빨리 할 수 없었는지. 그래서 왜 또 다른 상처를 만들어야 했는지. 

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으로 분명하게 탈혼을 결심했던 날은 어느 명절이었다. 이미 B의 가족들을 만나는 일은 내게 지옥 같았다. 어쩐지 그 이후로 그들은 조금이나마 내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들이 내 눈치를 보는 것과는 별개로 나에게 꾸준히 못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가족들을 만나고 온 다음에는 늘 그에 대한 이야기로 말다툼을 했다. B는 나의 가족에게 자신은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는데 왜 나는 그게 안 되냐고 물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명절이면 나와 B는 둘 다 각자의 이유로 기분이 나빴다. 이번에도 당연히 B는 폭발했다. 문제는 하필이면 그가 운전 중이었다는 것이다. 나는 운전석 뒷좌석, 아이는 카시트에 앉아 있었다. B는 나와의 말다툼 도중 소리를 지르며 액셀을 밟고 과격하게 핸들을 돌렸다. 순간 이러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아이까지 모두 말이다. 나는 필사적으로 외쳤다.

“멈춰! 멈춰! 멈추라고!”

B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소리를 지르고 아이는 울었다. 나는 몇 번 더 B에게 제발 멈춰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비로소 그가 차를 멈추었을 때, 나는 그대로 아이를 카시트에서 꺼내 안고 차에서 내렸다. B가 길거리에 그대로 차를 방치한 채로 그가 나를 붙잡으러 왔다. 뒤에서 경적소리가 났다. 그는 이번에도 내 손목을 잡았다. 

“제발 가. 이번에는 나도 가만히 안 있을 거야. 가.”

그가 또 다시 내 손목을 잡아 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놔. 손 놓지 않으면 소리를 지를 거야.”

계속해서 경적 소리가 이어졌다. 경적 소리는 더 커졌다. 그는 결국 그 소리에 못 이겨 내 손을 놓고 다시 차로 돌아갔다. 나는 아이를 안고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명절이 늘 그렇듯 이 큰 도시는 평소보다 사람이 적었다.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이제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 상태가 계속되면 절대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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