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탈혼기 13. 조정

생각하다이혼소송

A의 탈혼기 13. 조정

Jane Doe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변호사가 조정실 문을 두드린다. 들어간다. 나는 그 뒤를 따라 조정실에 들어갔다. B와 그 변호사가 맞은편에 앉아 있다. 잠시 용기를 내어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B 그리고 그 옆에 그의 변호사인 중년의 남자가 앉아있다. B는 예전과 변함없는 모습이었다. 나와 변호사는 자리에 앉았다. 조정위원이 말한다.

시작해도 되겠지요?

드디어 조정이 시작되었다. 

여의치 않았을 테지

일러스트 이민

조정위원: 자, 여기에 오시기까지 참 어려운 일들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죠? 사실 젊은 나이에 아이를 키우고 같이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둘 다 최선을 다하려고 했지만 그게 여의치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작부터 조정위원이 그 일을 대충 뭉그러뜨려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 아쉬운 것은 나지 조정위원은 아니니까. 확실히 기분은 나쁘지만, 저 정도는 그냥 그 나이대의 어르신이 생각하는 방식 정도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기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지금 내 눈앞에 꼴도 보기 싫은 B가 있기에 내가 조금 예민해졌다고 생각하면서.

조정위원: …그래서 양측 모두 어려운 점이 있었겠지만, 상황을 쭉 보면 어쨌거나 금전적으로나 다른 것들로 보나 생각해보면 더 고생한 쪽은 아마 A씨 일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선에서, 그 것으로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금전적으로 보상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B측 변호인: 잠깐만요. 그런데 지금 저 쪽 요구가 말도 안 되지 않습니까? 3000만원을 내 놓으라니 이 건 말도 안 됩니다.

조정위원은 그에게 진정하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리고 익숙하다는 듯 대꾸한다.

조정위원: 그래서 지금 이 자리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B씨 측이 그 정도의 재산분할이나 위자료를 지급할 여유가 없다는 말씀이시죠?

B측 변호인: 그렇습니다. 집을 구했을 때 쓴 돈이나 그런 것들은 전부 지금 B씨의 부모님 돈입니다.

B: …저, 그리고 경제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집에서의 가사 노동이나 그런 부분에 대해서도 감안을 해주시면……,

노력하는 사람한테

일러스트 이민

B가 가사노동의 가치에 대해 언급한다. 그는 나와의 결혼생활 내내 가사노동을 게을리 했다. 혼자 있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아이를 낳고 산후조리를 하고 집에 돌아 왔을 때는 얼마나 오랫동안 방치되었는지 모를 설거지에 곰팡이까지 피어있었으니까. 대체 왜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냐고 화를 내는 내게 그는 도리어 아이 방은 치워 놓았는데 왜 그 부분은 칭찬해주지 않았냐며 화를 냈었다. 그 이후로도 나와 B는 가사노동을 싸웠던 적이 꽤 많았다. 그리고 대부분 그 끝은 내가 청소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고. 여기서 나는 끼어들지 않을 수 없었다.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내가 꺼낼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였다.

A: 가사노동 거의 안 했습니다.

A측 변호인: 게다가 A씨가 일하고 있는 동안에는 A씨의 부모님께서 아이 양육을 전담하셨습니다. A씨가 여유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모님께서 돈도 거의 받지 않으시고 말이죠.

B측 변호인: 그래서, 뭐 어떡합니까! B씨가 지금 돈이 없는데. 당연히 여유가 됐으면 그 부분 부담을 했겠지만, 지금 B씨 상황이 그렇지 않습니까?

B: 네, 제가 아직 직장을 못 구했기 때문에 여유가 없어서……,

B가 곧바로 그의 변호사가 하는 말에 덧붙여 말했다. 나는 B의 말에 몹시 화가 났다. 그는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직장을 구하기 위한 시도조차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내가 애써 찾아온 추천 자리조차 거절했던 그였다.

A: 못 구했다고요? 저랑 같은 조건인데 B가 그 정도 돈 버는 게 불가능하다고요?

나는 화가 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B가 돈을 벌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내 말을 듣자 갑자기 조정위원이 발끈 하며 말했다.

조정위원: 잠깐만요,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 안 됩니다. 요즘 청년 실업 문제도 심각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노력하겠다고 하는 사람한테 말을 그렇게 하면 씁니까? 책임을 안 지겠다는 말이 아니잖아요.

조정 위원은 어쩐지 내 얼굴보다 더 언짢은 모습이었다. 그에게 마치 청년실업을 겪는 가족이라도 있었던지 반응이 상당했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도 시원치 않았는지 조정위원은 급기야 나를 혼냈다.

조정위원: 절대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힘든 사람에게 그러면 안 됩니다!

A: ……,죄송합니다.

나는 조정위원의 심기를 거스르고 싶지 않아, 애써 사과했다. 힘든 사람이라. 그래, 조정위원의 눈에 B는 뭐라도 해보려다 제대로 되지 않아, 그 화를 못 이겨 내게 조금 과한 행동을 한 불쌍한 누군가의 아들이었겠지. 상황을 보던 내 변호사가 말을 했다.

A측 변호인: 그만큼 A씨는 힘들었습니다. 같은 분야의 일을 하는데 취업을 도와준다고 해도, 심지어 B씨의 일을 A씨가 도와준 적도 있는데 B씨는 일을 성실히 하지 않았고요. 게다가 B씨의 가족들은 그런 A씨를 함부로 대하기까지 했습니다.

변호사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고 꽤 설득력 있었다. 그러나 조정위원의 태도는 우리의 기대와는 사뭇 달랐다.

조정위원: 그 것은, 물론 잘 한 행동은 아닙니다만……, 아들이 갑작스럽게 결혼을 하고 그러면 부모 된 입장에서 서운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조정위원은 그들을 부모 된 입장에서 이해한다고 했다. 나 역시 부모 된 입장이지만 나는 아니었다. 나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동시에 중년을 넘긴 듯 보이는 조정위원이 무엇을 이해했는지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게 중요해?

일러스트 이민

A측 변호인: 그 뿐이 아닙니다. 이 일에 과거에 A씨가 낙태를 했다는 식의 황당한 말을 써놓은 것은 정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지금 B씨 측이 아무 상관도 없고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대체 몇 개나 했는지 아십니까?

내 변호사는 분위기를 바꿔보려 애쓰는 듯 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정위원은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B가 자신의 변호사에게 신호를 보냈다. B는 뭐라고 변호사에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변호사가, 아니 변호사의 입을 빌려 B가 말했다.

B측 변호인: 그건 A씨 본인이 그런 경험이 있었다고 친구들이 있는 자리에서 이야기 했답니다. 필요하다면 그 말을 들은 친구를 증인으로 데려올 수 있다고……,

조정위원: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뭘 증인을 데려와요? 그게 중요한 겁니까?

조정위원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이번에도 나는 조정위원의 행동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이 역시 중년을 넘긴 여성인 그에게서 나올 수 있을만한 반응이었다.

B측 변호인: 아 됐고, 그럼 그래서 그쪽이 원하는 게 뭡니까?

A: 전 B씨가 내용증명대로 이행해주길 바랍니다. 분명 위자료 주겠다고 했으니까요.

B측 변호인: 하, 거 참 잘 모르나본데, 자, 잘 들어보라고. 그 돈은 터무니가 없다니까. 뭘 몰라서 그러나.

B의 변호사는 날 가르치려 든다. 심지어 중간 중간 그는 내게 삿대질을 해댔다. 그의 행동에 대해서 나는 분명히 지적하고 싶었다. 하지만 막 그의 행동을 저지시키려는 찰나 내 머릿속이 내 행동을 검열을 시작했다.

‘내가 여기서 저 사람에게 그만 하라고 한다면, 분명 조정위원은 중년 남성에게 할 말을 다 하는 예의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분명 내가 B의 부모에게 그런 식으로 행동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게 되지 아닐까?’

한번 시작된 생각은 나를 옭아매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그 사실들을 다 따진다면 내가 성격이 나빠 보이겠지? 이 세상에는 B의 부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을 수 있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내가 처음 그 조정위원 앞에서 그때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다 눈물이 났던 이유를 알아차렸다. 내가 그때 서글펐던 것은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처음이어서, 그 이야기가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눈물을 흘릴 만큼 서러운 이유는 결국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하는 내 모습이었다. 나는 피해자다. 나는 피해자다워야 했다.

A: …저, 저는……,

그때 나는 나 자신이 비참해 견딜 수 없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내가 할 말을 할 수 없는지. 분명 이 일들은 내 잘못이 아닌데 왜 내가 이렇게 고개를 숙이며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바보같이 눈물이 났다.

A: 저……, 그……,

분명히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 데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한마디라도 더 하면 내가 운다는 사실을 들킬 것 같았다. 그땐 정말 나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졌다. 비참했다. 하지만 지금 지나서 생각하니 정말 잘 한 일이었다. 난 그때 불쌍해 보여야 했으니까. 나의 변호사는 나를 달래며 그때처럼 내게 휴지 뭉치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조정위원도 나를 안쓰럽게 지켜보는 눈치였다.

조정위원: 그래, 정말 많이 힘들다는 것, 잘 압니다. A씨 지금 이 상황이 힘들면 잠시 나가셔도 됩니다.

나는 내 변호사를 보았다. 그는 내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나가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A: …죄송합니다.

심장이 끊임없이 뛰었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의자가 드르륵 거리는 소리를 냈다. 나는 조정실을 나왔다. 텅 빈 복도, 나는 다시 조정실 옆에 놓인 기다란 의자에 앉았다. 곧 다시 내가 있던 곳에서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없는 자리에서 무슨 이야기가 오갈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바짝 귀를 기울여보려고 했지만 다른 조정실에서 오고가는 이야기들과 겹쳐 잘 들리지는 않았다. 나는 포기하고 의자에 앉았다.

‘그래, 내가 저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해도 달라지는 건 없겠지. 아니 오히려 나빠질 수도 있으니까.’

나는 눈을 감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리는 것을 들으며 내 변호사가 날 부르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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