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각각의 다른 문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외침들은 다행히도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어쩐지 이 곳에 있는 자신이 상당히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내 등 뒤로 놓인 조정실에서는 나 없이 그 사건에 대한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B는 아마도 그의 변호사와 함께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내 변호사와 위자료 금액을 놓고 다툴 것이다.
‘나 대체 여기 왜 온 거지?’
이 사건에서 목소리를 높여야 할, 피해를 보상받아야 할 사람은 바로 나다. 하지만 나는 내 고통을 읍소하는 것 외에 별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사람들이 기대하는 피해자의 모습이 되어야 했다. 내게는 항변할 권리가 있지만 그 권리는 내가 가진 피해자로서의 모습을 희석시킨다. 나는 조정위원에게 철저히 연민받아야 할 존재였다. 매사에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고, 꽤 강한 정신력을 가진, 독립적이며 목소리가 큰, 부당한 일에 입을 다물지 않고 문제를 만드는, 토론을 즐기는 나는 거기에 없어야 했다. 혹시 모를 말로 쓸데없이 조정위원의 비호감을 살 필요는 없으니까.
여린 사람
나는 그냥 B의 행동에 큰 상처를 입은 여린 사람이어야 했다. 물론 그 누구도 내가 꼭 그래야만 한다고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래야 했다. 혹시 모르니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북받치는 감정에 의존하여 그 고통들을 표현하는 것. 그리고 그 것을 최대한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인 눈물을 쏟는 것 뿐 이다. 나는 평소 이런 상황에서 눈물을 흘리는 일을 바보 같다고 생각해왔다. 우는 것으로는 아무 문제도 해결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놀랍게도 그 것은 이 자리에서 꽤 효과가 있었다. 적어도 그 결과 나는 B의 변호사의 낯에 당황이 스치는 것을 봤으니까.
‘잘했어. 따진다고 될 문제가 아니야.’
문제는 내 자존심이 그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 했다는 것, 그래서 그 최선의 선택은 차마 이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나오는 것. 자신의 일을 제대로 말할 수 없어 밖으로 나온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 뿐이었다. 조정이 진행 될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나 자신이 이 자리에서 얼마나 하찮은 사람인지 느끼는 것 뿐 이었다.
A님, 잠시만요.
끝도 없는 자괴감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나를 부른 것은 나의 변호사였다. 그가 조용히 문을 열고 나온 것이다.
저쪽에서 위자료와 재산분할 금액을 제시했어요. 위자료 1000만 원에 재산분할 500만 원으로 해서 마무리를 짓자고 하네요.
내가 처음 생각했던 금액의 절반 정도 되는 금액이었다. 동시에 내가 눈 빠지게 인터넷으로 검색했던 재판으로 받을 수 있는 가장 낙관적인 금액이기도 했다. 솔직히 그 금액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묻는다면 나는 보잘것없는 금액이라고 말하겠다. 게다가 소송에 들인 비용을 뺀다면 1000만 원 남짓.
변호사님은 그 정도면 어떻다고 생각하세요?
내가 변호사에게 되물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내게 대답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쪽에서 어느 정도 양보한 금액이라고 생각해요.
그래, 그렇겠지. 법적인 기준으로 내가 받을 금액의 최대치니까.
잠시만 생각 좀 해볼게요.
내겐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보다 허무한 이 일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어차피 지금 B씨가 재산이 없어서 재판으로 가더라도 재산 분할은 나오지 않을 확률이 커요. 사실 가정법원에서 이 정도의 사건은 금액이 작아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도 않고요. A씨께서 재판에서 끝을 내야겠다고 생각하시는 게 아니라면 저는 이쯤에서 받아들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내가 고민하는 내색을 비치자 변호사가 설득하듯 말했다. 나는 지난번부터 쭉 신경 쓰였던 변호사의 가방을 떠올렸다. 끈이 끊어질 것처럼 위태롭게 보이던 그 가방. 서류뭉치로 가득한 가방 속 일부를 차지하던 내 서류들. 오늘 이 일이 이렇게 끝나고 나면, 그 가방은 조금 더 가벼워질 것이다. 게다가 사실 이 타협점은 내가 알아본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결론이기도 했다.
네, 그럼 그렇게 합의할게요.
허무한 결과
변호사는 내 대답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와 내 변호사는 함께 조정실로 다시 들어왔다. 내가 돌아오자마자 조정위원은 내게 물었다.
잘 이야기가 되셨나요? 그럼 그 대로 합의 하는 것으로 하면 되겠습니까?
...네.
잘 결정했어요. 이런 좋지 않은 일로 앞날이 창창한 젊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시간을 끄는 것도 좋지는 않지 않습니까? 참, 어쨌거나 A, B씨 모두 이 일로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제 각자 정리 할 것은 정리하고 다들 하는 일들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제 조정을 마치고, 판사님께 조정을 통해 합의한 내용을 올린 뒤에 이번 일을 끝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짧고도 길었던 소송이 일단락되었다. 남은 것은 판사 앞에서 조정을 통해 합의 내용을 확인하여 올리는 형식적인 절차뿐. 조정위원의 인사말이 끝난 뒤 조정실에 있었던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 어딘가 이 모든 일의 마무리가 시원치 않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이 사건을 배정받은 판사 앞에서 위 내용들을 확인하면 나는 더 이상 B를 마주 칠 이유가 없다. 이제 드디어 끝이다.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니 갑갑했던 기분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다.
유책배우자
조정위원은 간단히 설명한 뒤 곧바로 문을 두드렸다. 문 너머에서 그리 많지 않은 나이로 추정되는 남자의 짧은 대답이 들렸다. 대답을 들은 조정위원이 문을 열었다. 그 방에는 양 옆으로 길게 놓인 회사 회의실 같은 테이블과 무거운 의자가 있었다. 판사에게 인사를 한 뒤, 그 테이블에 B와 변호인, 그리고 나와 내 변호인이 각자의 자리에 마주보고 앉았다.
테이블에는 인터넷에서 여러 번 보았던, 하지만 내겐 무의미한 양육비 환산표가 붙어있다. 나는 무거운 의자를 옮겨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혹시라도 그와 눈을 마주치고 싶지 않았으므로 그 표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각자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 한 뒤 판사는 말했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두 분 다 정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디서 교본이라도 하나 만들어 뿌리는지, 이 사건과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발언의 첫 문장이 놀랍게도 똑같다. 이 상황에서도 눈치 없이 쓴웃음이 나려 했다. 나는 애써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자, 그럼 합의문 내용 확인하겠습니다. 원고 B는 피고 A에게 금 1500만 원을 지급한다. 소송비용은 각자 부담하는 것으로 한다. 지급일은...
판사가 합의문을 읽어주던 그때, 갑자기 내 머릿속에 번뜩 전구가 켜지듯 하나 떠오른 것이 있었다. 그 것은 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이 명백한 유책배우자일 경우 이혼 시, 합의이혼으로 충분히 끝낼 수 있는 건을 소송을 해서 끝내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상대의 유책을 명백하게 증명해 줄 자료의 필요성이었다. 법원에서 명백하게 시시비비를 가려놓은 그 증명이 언젠가 필요하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지금이 아니면 이제 내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다. 나는 용기를 냈다.
저, 이 합의문 내용에 이 결과가 B의 유책사유로 인한 것이라는 내용을 명시할 수 있을까요?
내 변호사는 나의 행동에 조금 놀란 눈치였다. 변호사와 아무 상의가 없던 내용이어서 그런지, 이 문제로 합의가 미뤄질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인지는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판사는 내게 물었다.
다른 내용에는 이의가 없으시고 상대가 유책사유가 있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싶다는 말씀이시죠? 원고 측 의견은 어떻습니까?
B와 B의 변호사가 서로 조용히 속삭였다. 난 생각했다. 나의 변호사도 그렇듯 분명 B의 변호사 역시 이 일로 지금의 결과를 바꾸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리고 나의 예상은 맞았다.
네, 그렇게 합시다.
모든 일을 마치고 나온 뒤 다시 나와 변호사는 법원 로비에 섰다. 변호사가 웃으며 말했다.
잘 끝나서 다행이에요. 종종 본인이 유책배우자라는 사실을 합의문에 적는 건 절대 안 된다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거든요. 저쪽이 아직 젊은 편이라 재혼 생각이 없어서 잘 모르나 싶어요. 저희는 잘 된 일이죠.
...그간 고생 많으셨어요.
변호사는 내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에 응했다. 우리는 짧게 악수를 한 뒤 그렇게 법원 로비에서 모든 일을 끝내고 등을 돌렸다. 나의 위자료와 재산분할 소송은 끝이 났다. 그리고 드디어 나의 진짜 탈혼도 끝이 났다.
에필로그
나는 여전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 조금 더 넓은 집을 찾아 이사했다. 아이는 이사 온 곳에서 운 좋게 꽤 괜찮은 기관에 다니게 되었다. 그리고 나와 우리 엄마와 아빠는 함께 화목한 가족 안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나는 여전히 일하고 있다.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아빠가 벌어야 하는 만큼의 돈을 벌고 있다.
누군가는 내가 싱글맘으로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을 걱정한다. 아이에게는 아빠가 필요하다던가, 롤모델이 될 성인 남성이 필요하다던가 하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물론 ‘애 딸린 이혼녀’의 금전적인 문제를 걱정해주는 사람들도 종종 마주친다. 나는 그 때마다 난 가족과 함께 아이를 양육하고 있고, 아직 현업에서 일하는 건강한 우리 아빠가 좋은 성인 남성의 롤모델이 되고 있으며, 내 수입은 일반적인 아빠의 그 것과 다를 바 없음을 매번 이야기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내게 재혼을 권한다. 아직 젊은 내가 뭐가 모자라 혼자 살아야 하느냐면서. 나는 내 상황은 전혀 모자라지도 않고 혼자 살지도 않는다고 답한다. 그렇게 말하면 보통 더는 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이야 내가 알 길은 없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나는 너무나 편안하게 살고 있다.
꽃뱀 소리 들어가며 받은 1500만 원의 돈은 현재 은행에 조용히 잠들어있다. 처음에는 그 돈으로 아이와 함께 여기저기 여행을 다닐 생각을 했지만, 아직 아이가 어리니 조금 기다리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B는 그 후로 약 반 년 정도 양육비를 보내고 아이를 보러 찾아왔다. 하지만 그 이후 양육비가 끊기고 점점 연락을 하지 않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에는 거의 연락이 오지 않는다. 대부분 몇 년 내로 그렇게 된다고 하더라. 그리고 예외 없이 이 경우에도 정말 그렇게 됐다.
한때는 내가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했는지 생각했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화가 났다. 하지만 잠깐이었다. 결국 나는 이 일을 겪고 강해졌고 또 이 경험은 내 주변 친구들에게 꽤나 의미 있게 작용했다.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이 일이 있은 뒤로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별 일 없이 산다. 난 그저 평범하게 내 가족과 내 아이를 키우며 내 일을 하고 산다. 사람들이 뭐라 하건 지금 나는 탈혼하고 아주 잘 살고 있다. 가끔 그 때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나긴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이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전혀 고맙지는 않지만 결과적으로 그 일 덕분에 내가 성장했다는 생각까지 하곤 한다. 그저 내 인생에 그런 일이 있었을 뿐이고 그 일은 다양한 각도로 나를 내 삶과 생각을 변화시켰다. 그 뿐이다. 나는 별 일 없이 산다. 아주 잘 산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