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소위 빡세게 ‘업업’하고 다녔던 나는 지금 완전히 탈코르셋을 하지는 못했지만 가끔 특별한 날, 내가 하고 싶을 때만 메이크업을 하고 보통 자외선 차단제만 바르고 다니고 있으니 탈코르셋 운동이 내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요즘은, 내가 20대 시절에 ‘업업’하고 다녔던 것이 무척 후회스럽다. 그때는 내가 했던 것이 소위 ‘주체적 꾸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니 그것은 남성의 시선으로 정의되는 사회에서 남성들에게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고 싶은 발버둥이었다. 무엇보다 괴로운 것은 내 발버둥이 다음 세대 여성의 코르셋을 더 조이는 결과에 일조했다는 점이다.
검정 마스크를 쓴 청소년들을 보고 단체로 감기가 유행하나, 하고 생각했는데 메이크업을 하지 않는 날 마스크를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일체의 피부화장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어른들은 ‘대학 가면 살 빠진다’ 라는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해 주었다. 그래서 친구들과 귀갓길에 실컷 떡볶이나 분식을 신나게 먹는 작은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10대 여성들은 ‘꾸밀 자유’를 허락받은 것이 아니라 ‘꾸미지 않을 자유’를 박탈당한 것 같다. 내가 몇 년 전 녹즙배달을 할 때 어느 중학교에도 배달을 나갔는데, 잘사는 동네답게 영양 상태가 좋아 보이는 남학생들은 훤칠하니 키가 컸다. 그런데 아무리 중학생이라 해도 여학생들은 하나같이 체구가 작고 가느다란 팔다리를 지니고 있었다. 왜인지 궁금해 살며시 선생님이나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아주 ‘빡세게’ 하고 있었다.
어떻게 하면
그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다. 미국 전국섭식장애협회는 미국 여성의 1-2%(150-300만 명)이 거식증을 앓고 있고, 이들이 대개 청소년기에 거식증을 앓게 되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것은 미국 국립보건원의 통계와도 일맥상통했다. 미국 국립보건원의 발표에 의하면, 15-24세까지의 여성들 중 거식증으로 사망하는 것이 다른 그 밖의 원인을 모두 합친 것보다 약 12배 높아, 10년에 0.56퍼센트가 거식증으로 사망한다고 밝혔다. 미국 여성을 가장 많이 죽이는 것이 거식증이라는 얘기다.
내 주변에 외모 코르셋을 조이는 청소년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독자 여러분 주위에 이런 것으로 방황을 겪는 청소년들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뒷 세대를 자유롭게 해 주기 위해 어떤 말을 건넬 수가 있을까? ‘넌 있는 그대로 예뻐’라는 말을 했다간 그청소년들의 비웃음만 살 것 같다. 그놈의 살이란! 내가 살을 생각하는 만큼 공부를 했더라면 지금쯤 철학 학사쯤은 방통대로 땄을 것이다. 칼로리를 세면서 고민하지 말고, 온갖 이상한 원푸드 다이어트 방법 같은 걸로 내 몸에 생체실험을 하지 말고 적게 먹고 운동을 철저히 하는 간단한 방법을 택했더라면 어땠을까.
일단 거울 속에 비친 내 몸을 볼 때 나도 모르게 부정적인 언사가 나오는 것을 자제하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된다. 난 너무 뚱뚱해, 돼지야, 다 틀렸어 대신 ‘아직은’ 완벽하지 않다라고 몸을 편하게 느끼도록 다른 말을 써 보라고 얘기하자. 33사이즈나 44사이즈가 현실적으로 건강하고 예쁜 몸이 맞는지, 내가 건강하고 스스로를 예쁘게 느끼게 만드는 몸이 무엇인지, 패션 잡지나 텔레비전에서 벗어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후에 스스로의 몸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건네게 도와 보자.
쟤는 저렇게 날씬한데 나는 왜 이러지? 하고 자동적으로 자신과 텔레비전 안의 가느다란 아이돌을 비교하게 되는데, ‘마르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라는 걸 상기시키자. 말랐기 때문에 돈을 벌고 마르지 않았을 경우 혹독하게 살을 빼라는 ‘관리’를 받는다. 아마 보통의 청소년들도 그런 직업을 가졌다면 마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특히 요즘 걸그룹들은 00KG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미션’을 수행해야 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체중을 달아 보는 모욕적인 과정을 거쳐야 하며, 몇 킬로 왔다갔다 하는 것이 수입과 바로 상관이 있으니 안 마르고 어떻게 견디겠는가.
가짜에 속지 마
그리고 청소년에게 대중매체의 가녀리고 마른 이미지는 그것이 속임수이며 가짜 이미지라는 것을 함께 이야기해 보자. 최근 프랑스에서는 상업 모델 이미지에 보정을 하는 것을 법적으로 금지했다. 이런 움직임이 많아야 할 테지만 미디어들은 날씬하고 아름다운 연예인들을 보여주며 우리들도 그처럼 되고 싶다는 욕망을 갖게 하는데 온 힘을 다한다. 그러한 욕망이 있어야 우리가 소비주체가 되어 그들처럼 되기 위해 돈을 쓰며, 그래야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이어트에 대한 여성의 욕망은 결코 실현되어서는 안 된다. 여성이 자신에 대한 혐오를 그만두고 있는 그대로의 제 몸을 편안하게 느끼게 된다면 그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악몽 같은 일일 테다.
여성이 자신의 몸과 타협하면 이들이 밥 굶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니, 이들은 절대로 여성이 자기 몸에 만족하지 못하도록 끝없이 새로운 목표를 제시한다. 가시처럼 말라야 아름답다고 하거나, 요즘 미인대회 대신 유행하는 ‘피트니스 모델’처럼 날씬하되 우락부락하지 않을 정도의 근육을 가져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문이 늘어난다. 어떻게 하든 넌 부족해. 충분히 아름답지 않아. 배가 나왔어. 여성은 열심히 운동을 해야 하지만 승모근이 발달하면 안 돼. 호리호리 날씬해야 하지만 힙은 쫙 올라간 ‘애플힙’을 가져야 해.
여성의 몸을 분절하고 파편화하여 재단하고 평가하는 이 냉혹한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 여성은, 즉 모델 사이즈는 전세계 인구의 2%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워 보이는 체형은 거의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의 힘이다. 그러나 시장은 ‘당신도 노력만 하면 그런 여성이 될 수 있다, 당신이 지금 도넛 같은 뱃살을 두르고 있는 것은 당신의 의지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라고 충고하는 듯 비난하면서 모든 것을 여성이 지은 ‘죄’의 결과인 것처럼 엄중하게 꾸짖으며 더욱 노력하기를 강제한다.
마지막으로, 청소년에게 외모 코르셋 조이기를 멈추게 하는 가장 좋은 첫걸음은 나의 몸과 화해하는 것이라는 진실을 나누어 보자. 나의 외모 자기비하를 멈추면 끝없는 돌림노래처럼 이어지는 서로의 외모 자기비하를 멈출 수 있다. 대신 새로운 돌림노래를 내려보내야겠다. 내 몸은 나의 적이 아니다. 나의 편이다. 내가 내 몸과 듬직하게 같은 편이 되어야 한다. 나와의 싸움을 멈추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