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투아르는 매력적인 미소와 그동안 그토록 가꾸어 온 마른 몸 때문에 누구나 인정하는 모델계의 유망주가 되었고, 여러 명품 브랜드에게 러브콜을 받았다. 그는 첫 시즌에 22개의 쇼에 섰고, 그 중에는 알렉산더 맥퀸처럼 일류 디자이너들이 수두룩했다. 보통 패션모델은 무표정한 얼굴로 런웨이에 서는 오뜨꾸튀르, 즉 하이 레벨 모델과 대중에게 훨씬 더 친근한 역할을 수행하는 커머셜 모델로 나뉜다. 빅투아르의 에이전시 사람들이나 패션쇼 도중 만난 사람들은 그가 하이 레벨 모델에 맞는 어떤 품격을 갖추었다는 데에 모두 동의했다. 쇼에 선 순간의 황홀함이 사라지고 바깥에 나오자 수없이 플래시가 터지며 “빅토르, 여길 봐요, 웃어 봐요!” 하며 카메라맨들과 관객들이 빅투아르의 이름을 연호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이 뭐냐는 질문에는미국에 도착하자마자 산 랄프로렌의 아동복 라인의 원피스라고 대답하자 그들은 조금 웃기는 했지만 그렇게 작은 옷에 들어갈 수 있는 빅투아르의 하늘하늘한 몸매를 부러워했다. 빅투아르를 본 누구나 그러했듯이.
그러나 빅투아르는 너무 오래 굶으면서 멋진 자신의 몸 안에 있는 마음이 늘 불안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납덩이를 삼킨 것처럼 온갖 약을 들이부은 속은 완전히 뒤죽박죽이었다. 파리 패션위크를 위해 떠나는데 익숙한 괴물이 나타났다. 식이장애 때문에 고생해 본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 번을 들어보았을 그 작은 목소리 - 넌 살이 찔 거야! - 그 목소리는 고작 사과 세 알과 포도 한 송이를 먹으려고 하는 빅투아르에게 아무도 널 선택하지 않을 거야, 파리 패션위크는 다 망했어, 라고 속삭였다.
빅투아르는 가지고 있는 완하제가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 있게 밀라노 쇼에 도착하지만, 스타일리스트와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모델은 마네킹에 불과하다는 것을 체험한다. 화장품을 거칠게 펴 바르고 머리카락을 사정없이 잡아당기고 무턱대고 턱을 잡아 끌어내리거나 올리고, 마치 생명이 없는 인형 취급을 받는 것에 빅투아르는 경악한다. 그들의 손에서 패션모델들의 몸은 그야말로 물화物化되어 버렸다. 패션모델의 화려한 삶을 꿈꾸었지만 그 꿈에 이런 모습은 들어 있지 않았다. 거식증 역시 그랬다. 끔찍한 부록이었다. 빅투아르는 패션모델이었으니 더욱 높은 기준에 괴로워했겠지만, 모델이 아닌 여성들도 식이장애에 걸려 죽어가고 있는 지금, 이것을 여성 살해(페미사이드)라 칭한다면 무리일까.
'끝내주는 몸매'
언제까지 굶기만 할 수는 없어서 빅투아르는 점차 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고작해야 생선찜 한 조각과 야채에 불과했는데, 그의 눈에 이 소박한 음식은 끔찍스럽게 양이 많아 보였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도 안 된다는 것을 머리로 알면서도 그 작은 목소리가 빅투아르에게 넌 이러다가 틀림없이 곧 거구가 된다며 닦달해서, 완하제를 먹었지만 듣지 않아 49kg에 가까워졌다. 178cm에 49kg인 것이다. 그러나 만족하지 못하는 빅투아르는 그 ‘살’들을 빼기 위해 죽도록 노력을 했고, 파리에 있는 소속 에이전시를 찾아갔을 때 오랜만에 만나는 직원들에게 일제히 박수를 받았다. 스탭들은 모두가 얘가 살을 얼마나 뺐는지 이것 봐, 참 예쁘지? 라고 칭찬을 받아 뿌듯하고 행복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2kg이 늘고 49.1kg가 되자 다시 빅투아르 내부의 어딘가에서 절망감이 고개를 쳐들었다. 작은 목소리 역시 가세했다. 넌 더 이상 옷에 들어갈 수 없어. 파리 패션쇼는 33사이즈가 아니면 안 돼, 너는... 너는... 너는... 2kg을 빼기 위해 그는 완하제 이상의 효과가 있는 약물을 찾기 시작했고, 관장제에 생각이 미쳤다.
사람들은 빅투아르에게 너 같이 끝내주는 몸매를 가질 수 있다면 살인이라도 하겠다며 부러워했고, 빅투아르는 자신이 거대하다고 생각하며 거울에 자신의 ‘끝내주는 몸매’를 비추어 보았다. 가느다란 팔과 다리, 허벅지 사이에는 빅투아르가 좋아하는 )( 괄호 모양의 거대한 구멍, 완전히 납작해져서 갈비뼈가 고스란히 보이는 배, 푹 꺼진 눈이 있었다. 패션계 사람들의 취향이 이렇다면 그에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빅투아르의 ‘끝내 주는 몸매’를 보고 환호하는 사람들은 아직 스무 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빅투아르의 뱃가죽이 늘어져 주름이 지는 것도, 엉덩이 아래에 깊게 잡힌 주름도, 물컹물컹한 허벅지와 힘없이 늘어지는 팔뚝도 보지 못했다. 심지어 그가 고개를 숙이면 턱이 두 겹이 되는 것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그저 마른 나뭇가지처럼 가느다란 그의 몸매에 감탄할 뿐이었다.
빅투아르는 팔뚝의 털을 제모해야 함께 일할 수 있다는 피드백을 한 브랜드에서 듣고 난 후에야 건강포털에서 체모의 이상 발달이 무슨 징조인지 검색해 보았고, 거식증에 대해 알게 됐지만 자신은 결코 그런 병에 걸리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자신은 조금 먹긴 하지만 먹기는 하며, 나는 환자가 아니라 모델이기 때문에 옷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자기 관리를 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했다. 빅투아르는 거식증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디자이너들에게 캐스팅(일종의 면접을 이렇게 부른다)을 다니다가 동료 모델에게서 섬뜩한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참가했던 뉴욕 패션쇼에서 한 모델이 워킹을 한 후 백스테이지로 돌아와 푹 쓰러져 죽었다는 것이다. 그는 열일곱 살이었는데 심근경색으로 숨을 거뒀다.
빅투아르는 끔찍한 이야기를 머리에서 떨쳐버리려고 케이크를 굽는 습관이 생겼다. 물론 그가 먹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관장약이 효과를 발휘해 몸무게가 늘지 않게 도와줬지만, 사무치게 배가 고픈 순간이면 늘 달콤한 케익을 구워 그 냄새를 음미했다. 12구짜리 머핀 틀에 그가 먹을 수 없는 요거트, 초콜릿 칩, 버터 등을 듬뿍 넣다 보면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만든 음식을 가족들이 먹는 모습을 보며 빅투아르는 마음이 흐뭇해졌다. 이것은 거식증의 아주 전형적인 증상 중 하나다. 칼로리가 높고 침이 떨어지도록 맛있는 음식을 요리하되, 나는 손에 대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즐겁게 먹는 것을 보면서 위안을 얻는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시절을 겪었는데 사람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름을 느끼며 한편 음식에 대한 탐욕을 이겨내는 자기 자신을 몰래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다.
음식을 먹을 자격
빅투아르에게 패션쇼에 서는 것은 마치 마약처럼 흥분되고 매혹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행복하면서도 불행했으며 완전히 지쳤으면서도 활기에 넘쳤다. 쇼에 서면서 어시스턴트가 사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빅투아르에게 한두 개 먹는다고 돼지가 되는 게 아니라며 감자튀김을 권했다. 그 어시스턴트는 자신이 모델들의 다이어트에 반대한다고 이야기했지만 빅투아르의 생각에 감자튀김은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독이었고, 빅투아르는 같은 숙소를 쓰다 탈락한 두 모델들이 왜 탈락했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체중. 화보 사진을 찍은 다음 보정 과정을 보고 싶어 모니터를 보면 디자이너는 빅투아르의 뺨, 허벅지, 가슴에 살을 붙였고 도드라져 나온 가슴뼈를 지웠다. 목숨을 걸고 마른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렇게 마르는 데 성공하니 이제는 인위적으로 살을 붙이는 거였다! 그리고 보정이 된 자기 모습이 훨씬 예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 날 캘빈 클라인의 광고 촬영을 위해 스튜디오로 가 보니, 너무나 먹음직스러운 뷔페가 차려져 있었다. 햄이 너무나 먹고 싶어 입에 넣었다. 자신과 함께 촬영을 하기로 한 남자 모델은 몰래 각설탕을 하나 먹다가 빅투아르를 마주치자 제발 에이전시에 말하지 말아달라고 애걸했다. 완하제를 가져오지 않은 채 햄, 살구, 먹고 싶은 음식을 홀린 듯이 먹어치운 빅투아르의 소화기관은 갑자기 많은 음식이 들어오자 요동을 쳤다. 잠시 쓰러져 잠들었다가 옷을 입기 위해 거울을 보니 팬티 위로 배가 불룩 솟아 있었는데, 마치 텔레비전에서 본 기아 상태의 어린이들처럼 팔다리는 가늘고 배는 불룩한 바람에 원래 입기로 한 옷이 아닌 다른 풍성한 옷을 입게 되었다. 그때 즈음을 떠올릴 때 빅투아르는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 집으로 돌아와 관장약을 먹고 화장실에서 먹은 걸 내보내면서 빅투아르는 이렇게 배우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 햄이니 하는 것을 먹고도 살이 1g도 찌지 않은 것에 고무되어 그는 더 이상 먹어대는 것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밑 빠진 독처럼 먹고 또 먹었다. 하지만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만 그렇게 했는데, 사람들이 볼 때 뭔가를 먹는 것이 부끄럽고 뭔가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것 역시 모든 식이장애 환자들이 흔하게 겪는 증상이다. 먹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누군가에게 먹는 모습을 보였다간 바로 수치심에 사로잡히는 것. 이러한 현상은 한마디로 ‘자신은 음식을 먹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완하제와 관장약 때문에 빅투아르는 하루의 절반을 화장실에서 보냈다. 배와 엉덩이가 아프고 구역질이 계속 치밀었다.
또다른 쇼에 준비된 뷔페에서 이번에는 먹음직스러운 호박 파이 한 조각을 먹었다. 작은 목소리는 또다시 빅투아르를 닦달하기 시작했지만 그는 먹는 게 좋았고 먹는 것을 사랑했다. 빌어먹을 작은 목소리가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을 내버려 두길 바라며 빅투아르는 먹었다. 거식증 환자에 대한 흔한 오해가 바로 이런 것이다. 거식증 환자들에게 이렇게 질문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왜 먹을 것을 싫어하세요? ” 거식증 환자들은 먹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사랑하고 찬양한다. 늘 먹을 것 생각을 한다. 증상이 심해지면 종일 내가 먹을 수 없는 맛있는 먹을거리에 대해 생각하고, 세상이 내게 불공평하다는 심한 박탈감을 느낀다. 먹었지만 약물의 도움을 받아 빅투아르는 몸매를 유지했고, 몸, 식욕, 체중,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완벽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전능감을 느꼈다. 다른 사람들도 접시를 깨끗이 비우는 그를 보며 먹어도 1g도 찌지 않는 사람이 있다더니 정말 있다며 빅투아르를 행운아라고 불렀다. 빅투아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대답했다.
입 닥쳐!
그리고 빅투아르는 일종의 ‘신체이형장애’를 앓게 된다. 이 증상은 자신이 정상적인 몸을 가졌는데도 흉하고 추하고 못났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빅투아르 역시 몸에 낀 ‘거대한 지방질’을 거울을 볼 때마다 발견했다. 그런 것 따위 있을 리가 없는 몸무게인데도. 작은 목소리도 신체이형장애가 심해지는 것을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중얼거렸다. 넌 뚱뚱해, 그만 처먹어, 너무 뚱뚱하다고... 빅투아르는 살도 뺄 겸, 작은 목소리를 듣지 않을 겸 큰 보폭으로 마구 걸었다.
어머니는 빅투아르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눈물을 흘렸지만 빅투아르는 아직도 지워내야 할 지방질이 많다고 어머니에게 몸을 보였다. 48.5kg이 너무 뚱뚱하다고 생각한 그는 관장제를 찾다가 어머니에게 들켜 한바탕 몸싸움까지 벌였다. 거기 분명히 존재하면서도 빅투아르는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없었다. 지금 그와 함께 있는 것은 모두 나쁜 것뿐이었다. 증오, 분노, 지방, 죽음. 잔뜩 먹고 완하제와 관장제를 써도 효과가 없어져 54kg까지 몸무게가 늘었다. 사고력까지 완전히 상실한 그는 종일 침대에 누워 있다가 관장제, 진정제, 완하제를 사러 약국에 갈 때만 일어났고 갖은 거짓말을 해서 약을 사 모았다. 그 무렵의 크리스마스 가족 파티가 어땠는지 전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남아 있는 것은 먹고 또 먹은 기억뿐이었다.
<보그>에서 그를 표지모델로 쓰겠다고 연락이 왔지만 58kg인 자신은 할 수 없다, 모델 일을 그만두겠다, 이제 끝이다, 라며 전화를 끊어 버렸다. 작은 목소리가 소리쳤다. 넌 거대해, 괴물이야, 남에게 보일 수 있는 꼴이 아니야. 64kg까지 체중이 늘었고, 작은 목소리는 완전히 빅투아르를 소유한 듯 고함을 쳐댔다. 넌 뚱뚱해, 못생겼어, 넌 아무것도 아닌 실패작이야. 먹어, 먹으라구. 그게 네가 할 수 있는 전부잖아? 그 소리에 시달리던 빅투아르는 결국 집안을 돌아다니며 약이란 약은 다 모았고, 그것을 죄다 삼켰다.
그리고, 모든 것이 멈추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