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찌고 나서야 한국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약간 깨달았다. 가장 많이 나갈 때가 거의 90kg였니 성인이 되고 최저 몸무게였던 38kg의 두 배가 넘는 수치를 기록한 셈이다. 날씬하고 나름 예쁘장할 편일 때도 남자들의 가스라이팅이 계속되었다.
희한하게도 몸이 날씬할 때나 뚱뚱할 때나 가슴은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고 항상 참 한결같은 aa컵이었는데, 가슴이 크지 않을 것이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이리저리 활동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가슴이 육중하게 움직이면 좀 불편할 것 같았고 너무나 풍만하고 아름다운 가슴을 지닌 친구가 어깨와 허리가 아프다며 괴로워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그렇게까지 아쉽지는 않았다. 혹시 가슴을 강조하는 옷차림을 하고 싶으면 등이나 겨드랑이에서 소위 ‘영혼’까지 죄다 끌어 모아 주는 속옷도 잘 나와서 별 문제가 없었고, 큰 가슴을 가진 친구들이 하나같이 포르노에 나오는 것처럼 가슴 사이로 성기를 마찰시켜 달라는 요구를 받고 어이없어하는 것을 보아 가슴이 커도 이건 나 좋은 게 아니구나, 싶었다. 워낙 더위를 많이 타서 여름철에는 최소한으로 입고 싶었고, 몸이 날렵하고 가슴이 납작하면 노출도가 좀 있는 옷차림을 해도 그렇게 성적인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점을 마음껏 활용했다.
이목구비도 부리부리한 편이라 청순하고 얌전한 차림새가 별로 어울리지 않아서 메이크업이고 옷차림이고 자유분방하게 내 멋대로 즐겼는데 – 한때 사귀었던 17살 연상의 남자친구는 내 옷차림을 보고 한숨을 쉬며 누가 널 보고 대학생이라고 생각하겠니, 캘리포니아 콜걸이라고 생각하지... 라며 한탄한 적도 있긴 했다 – 그런 점에 끌려 애초에 나에게 접근한 남자들은 늘 번번이 말이 달라졌다. 달라지면서 하는 말들도 하나같이 똑같았다.
있잖아, 네가 사실 그렇게 예쁜 편은 아니야(처음에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면 좀 싸 보인다고 할까?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 요즘도 너한테 접근하는 남자들 꽤 있잖아. 그런데 그런 남자들 말이야, 다 한 번 하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남자들은 다 그래. 하지만 난 달라. 나는 너를 진정으로 좋아해. 그렇지만 내가 아닌 다른 남자들은 다 네가 하고 다니는 거 보면서 잘 줄 것 같아서, 그런 점 때문에 너한테 끌리는 거야. 너 이 점 잘 알아야 된다?
젊으나 늙으나, 많이 배웠거나 아니거나, 무슨 일을 하거나, 정말 남자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똑같이 말했다. 한두 명이 이러는 것이 아니니 처음에는 정말인가, 내가 싸 보이는구나, 하며 자기검열을 했다. 하지만 얌전하고 단정한 옷차림은 나에게 어울리지도 않았고,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캘리포니아 창녀’ 스타일이 내 취향엔 딱이었다.
처음에 어릴 때 한두 번 그런 소리 들을 때에는 그렇구나, 내가 싸 보이는데도 그런 나의 외양을 보지 않고 내 마음만을 보다니 이 남자는 좋은 사람이구나, 하며 감동을 받아 보려 애썼다. 하지만 전혀 감동이 오지 않았고, 점점 한두 명이 이런다는 건 뭔가 수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후려치기’ 라는 훌륭한 단어를 알게 되었다. 여성의 자존감을 후려쳐서 값을 깎아 자신이 주도권을 차지하려는 이 ‘후려치기’를, 그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미리 과외라도 받은 것처럼 능숙하게 할 수 있었다. 도대체 어떤 비결로 그들이 여기에 이렇게 능한지 알 수가 없다!
증오와 질시의 대상,
젊은 여자
어떤 사람들은 예쁘장한 젊은 여자를 증오하고 질시한다. 애드거 앨런 포우가 일찍이 ‘아름다운 여상의 파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시적인 주제’라고 말했던 것처럼, 젊은 여성의 파멸을 바라는 이들이 있다. 미국 팝스타 브리트니 스피어스야말로 이런 현상을 자신의 인생으로 증명하는 인물이다. 사람들은 브리트니가 어렸을 때는 성적으로 대상화했고, 그가 성인이 되었을 때는 그를 희화화하고 조롱했다. 2007년 그래미 무대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만큼 살이 쪄 있었고, 부담스러운 몸을 노출이 심한 의상에 억지로 구겨 넣은 채 로봇보다도 어색하게 춤을 췄다. 이 무대는 대중에게 정말로 심한 조롱거리가 되었고, 라스베이거스에서 술에 취한 채 학교 동창과 결혼했다가 48시간에 파혼한다거나, 갑자기 지나가던 길에 있는 미용실에 들어가 바리깡을 빌려 자신의 머리를 박박 밀어 버린다거나,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고 여자친구가 한 명의 아기를 더 임신하고 있던 케빈 페더라인이라는 한심한 인물과 결혼식을 올릴 때마다 대중은 열광했고 타블로이드지는 날개 돋힌 듯 팔렸다. 정말로 끔찍한 것은,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언제 자살할지 날짜를 맞히는 도박 사이트가 등장해 사람들이 진지하게 돈을 걸었다는 것이다.
다행히 지금 브리트니 스피어스는 음악적으로 재기했고, 세기말과 초를 장식한 요정 같은 가녀림을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아이를 몇 명이나 낳은 엄마다운 당당한 자태로 무대를 장악하고 있다. 정말로, 그가 죽지 않아 참 다행이다. 죽었다면 사후 그는 또 얼마나 이용당했을까. 젊은 여성의 파멸하는 광경은 과거 마녀를 화형하는 장면이 마을 축제가 되었던 것만큼이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엔터테인먼트다.
젊은 여자를 이토록 미워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살아 본 적도 없으면서, 그들의 삶은 남자들이 떠받들어 주고 원하는 것이 손에 척척 들어오는 ‘꽃길’일 거라고 확신한다. 그런 막연한 믿음 때문에 ‘된장녀’니 ‘김치녀’니 하는 멸칭이 그토록 강력하게 여성들을 옭아매었고, 매력적인 여성들을 ‘후려치기’해서 자신이 쉽게 조종할 수 있는 상태로 만들고 나면 ‘개념녀’라는 헌사를 내리며 치하했다.
‘된장녀’가 되어도 인생에 별 지장 없고, ‘개념녀’가 되어도 인생에 별 좋을 것 없다는 것은 살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되었다. 예쁜 여성의 삶은 ‘후려치기’ 당하고, 스토킹당하고, 구애를 안 받아주면 증오를 받고, 평균적 외모를 가진 여성은 나니까 너랑 사귀어 준다며 너 정도 되는 애는 봐줄 것 없으니 내 말이나 잘 들으라며 이용당하기 십상이었고, 뚱뚱한 여성은 놀림감이 되고 모욕당했다. 게다가 뒷배를 봐줄 가부장이 없는 젊고 예쁘장한 여자의 인생은 무슨 공공재처럼 모든 사람이 자유이용권이라도 끊은 듯 그를 말과 손으로 주물럭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