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여자가 되면 11. 이혼은 사악하다?

생각하다결혼과 비혼

무거운 여자가 되면 11. 이혼은 사악하다?

김현진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주의: 이 글은 반려동물 학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러스트 이민

어릴 때부터 이복 누나를, 자라면서 학교의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면서 누군가가 어떨 때 고통을 받는지 섬세하게 체크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온 전남편은 나의 약점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남편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나 개가 혹시나 살 가망성이 있는지가 먼저였다. 경찰에 신고했고, 24시간 진료하는 동물병원을 찾아 개를 살릴 수 있는지 확인했지만 개는 이미 차갑게 굳어 있었다. 의사는 화장장과 직접 연결해 주겠다고 했고, 나는 개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후 경찰서로 갔다. 마침 동물학대죄가 신설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그러나 경찰은 동물학대죄는 생각보다 가볍다고 했다. 법적으로 개를 나의 재산으로 치기 때문에, 재물손괴죄가 좀 더 무거웠다. 나는 두 죄목 모두 남편을 고발했고 남편은 경찰서에서 심문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내가 먼저 집으로 돌아왔다. 개의 피가 마루에 말라붙어 있는 그 집에 돌아오고 싶지 않았지만 갈 데가 없었다. 다음날 내가 출근을 했는지 안 했는지 아직 기억나지 않는다. 벌써 5-6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이렇게 차분하게 회상할 수 있게 된 지 몇 개월 되지 않았다. 국가에 예술인으로 등록해 지난 몇 년간 예술인 심리상담을 제공받았고, 그런 상담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면서 겨우, 사랑하는 개의 죽음을 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아침에 그 착했던, 착하다고 믿었던 시어머니가 전화가 왔다.

너네는 원래 집 관리를 잘 못해서 깨끗하질 않으니까 개를 키웠으면 안 되는 거야. 그리고, 넌 어떻게 남편을 경찰에 고발할 수가 있니? 

죽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라, 이 여자야! 나는 즉시 전화를 끊어 버렸다. 그리고 두 번 다시 그의 전화를 받지도 않았고, 그에게 연락을 하지도 않았다. 결혼 생활이 표류하고 있는데, 여기에 대해 조언을 청할 수 있는 사람은 주위에 하나도 없었다. 원래 친구 관계가 넓지도 않았고 먼저 결혼하여 부부생활의 쓴맛 단맛을 다 보아 나에게 적절한 충고를 해 줄 만한 사람이 없었다.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이었지만, 나는 이혼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당시 근무하고 있던 곳은 예술가 레지던스를 운영하고 있어서 처음에는 사무실에 라꾸라꾸 침대를 놓고 지내다가 아직 예술가들이 입주하기 전이라 빈 방을 사용했다. 샤워 시설과 세탁 시설과 주방까지 완비되어 있는 곳이라 그 집에서 떠나서 얼마든지 일단 머무를 수가 있었다. 그렇게 지내고 있는데 나의 결혼생활에 훈수를 두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가 한 사람 나타났다. 그를 J라고 부르자.

일러스트 이민

기독교인의 죄의식

J는 내가 대여섯 살 때 나의 아버지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어린 시절 나의 피아노 선생님이기도 했다. 내가 어릴 때부터 나를 굉장히 귀여워해 주었던 사람으로, 당시로서는 뒤늦은 결혼을 하여 남편과 죽을둥살둥 다투고 이혼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기면서 요행히 가정을 잘 이루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이를 가지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아 순조롭게 입양하여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다. 우리 가정과 20년 넘게 아주 친근하게 교류하고 있던 J는 어머니에게서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듣고 편도 2시간이 걸리는 먼 거리를 내가 일하던 사무실까지 찾아왔다.

그는 능숙하게 내 약점을 건드렸는데, 그것은 그가 독실한 기독교인이라는 점이 큰 역을 했을 것이다. 노련한 기독교인들은 죄의식을 판매하는데 아주 유능하니까. 나를 찾아온 J는 엄숙하게 말했다. 가정이 깨지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이 가장 괴로워하시는 것이라고. 네가 가정을 깬다면 마귀가 기뻐하고 하나님이 슬퍼하시는 꼴이 될 거라고. 돌아가신 아버님을 생각해 보라고. 남편을 용서하고 두 사람이 거듭나는 기회로 삼으라고. 

x같은 소리 할 거면 꺼져요, 어디서 약을 팔아, 이렇게 나왔어야 하는데 우리 어머니는 나에게 아무런 충고도 하지 않았고, 도대체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몰라 괴로워하던 나에게 J의 충고들은 정말인가, 하고 매달리게 되는 거였다. 절친한 언니 한 사람은 나에게 어차피 넌 네 새끼(개)를 지키지 못했어, 네가 지켜야 했는데 지키지 못한 거야, 하고 모진 소리를 했다. 이렇게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나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슬픔과 혼란에 짓눌린 상태였다.

J는 나를 찾아와 몇 시간 동안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과 가정에 대해 이야기했고, 남편에 대한 기소를 중지하라고 타일렀다. 하나님 소리를 하면 내가 잘 모르는 것이니 저 사람이 더 잘 알고 있나보 다, 하고 충고에 목말라 있던 나는 숱한 부부상담 등을 통해 가정의 평화를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일종의 선배격인 J의 말에 나도 모르게 따르고 있었다. 남편의 부모 역시 J와 생각이 거의 같았다. 이 고난을 신앙으로 극복하라는 거였다.

일러스트 이민

이혼

나는 그 말에 감화되어 경찰서를 찾아가 고소를 취하했다. 그리고 그에게 그를 용서하겠다고 말했다. 미친 짓이었다. 지금도 절대로 용서할 수도 잊을 수도 없다. 나는 너무나 어찌할 바를 몰라 주위 어른들이 하는 말을 꼭두각시처럼 그대로 따라하고 있었고, 그렇게 하면 마법처럼 모든 일들이 좋게 풀릴지도 모른다는 약간 미신적인 믿음에 매달려 있었다. 한동안 가까운 교회의 새벽기도에 열렬히 참석하기도 했다. 그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이혼하자는 거였다.

나도 맨 처음에 했던 생각은 즉시 이혼, 이었으니 얼른 받아들여야 했는데 그때부터 J는 지상 목표가 나를 이혼시키지 않는 것으로 바뀌어 매일 카톡으로 연락하고 휴일이면 어머니와 함께 자신을 만나러 오라고 했다. 그러면서 J는 가정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맺어 준 것을 사람이 나눌 수 없다며, 서투르고 철없는 남편 대신 내가 신앙으로 그를 감싸 주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지랄하고 자빠졌네, 하는 소리가 1초 만에 나오지만 그때는 누구의 충고라도 좋으니 길잡이가 필요했다. J는 나에게 자상한 목사님을 한 분 소개해 주었고, 나를 정신적인 딸로 삼으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는 그 목사님 역시 나에게 사탄이 원하는 대로 가정을 깨어서는 안 된다고 몇 번이나 충고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어서 이혼하고 싶어 안달이 났는데 내가 이혼은 싫다며 애걸복걸하면서 도장을 찍어 주지 않는 그런 꼴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글로 적고 나니 너무나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를 아껴 준 J에게 마음이 죽을 듯이 괴로운 나머지 어린아이처럼 의존할 수밖에 없었고, J는 내 주변을 사람의 장막으로 둘러쌌다. 그들은 하나같이 고장 난 녹음기처럼 이혼해선 절대 안 된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사람들이었다. 친척들도 모두 기독교인인데, 나에게 연락해 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일종의 부담을 주었다. 왜 부담이었느냐 하면, 그들이 나를 남편을 시원하게 차버리라고 기도하고 있지 않을 게, 정확히 그 반대의 경우를 위해 기도하고 있을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리버리하게 그들이 시키는 대로 더듬더듬 했고, 그것은 남편의 악마적인 부분을 심하게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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