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고 싶은 거야
‘내 동년배들 다 정년이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 있는 웹툰, <정년이>. 이 웹툰의 등장 인물은 95%가 여성이다. 성격도 헤어 스타일도 제각각이라 보는 맛이 있다. 읽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머짧녀’(머리 짧은 여성)들도 많다. 이 글에서는 머짧녀들 중 지금까지 개인적 서사가 많이 나온, ‘정년’과 ‘고사장’을 다뤄본다(여러분이 박도앵과 문옥경을 사랑하는 것은 안다. 좀만 더 버텨보자).
<정년이>는 가진 건 우렁찬 목소리뿐인 목포 소녀 ‘정년’이 여성 국극단에 들어가 스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여성 국극은 여주인공, 남주인공, 엑스트라 모두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창극의 한 장르로서, 1950년대에 인기였다. 정년은 어찌저찌 극단에 연습생으로 들어가지만, 그 곳에서 라이벌의 견제를 받아 첫 무대에 너무 큰 역할을 맡게 된다. 바로, 춘향전의 방자 역이다.
정년은 난생 처음 하는 연기인데다 남자 역할이라는 데에 부담을 느낀다. 그러던 와중, 아르바이트를 하는 다방의 사장인 ‘고 사장’이 ‘남장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고 사장의 남성성 수행하기
고 사장은 어렸을 때부터 식모로 일하는 집주인 아가씨에게 글을 배웠다. 독서가 취미가 된 고 사장은 어느 날, 한 다방에서 열리는 문예지 낭독회에 가 보았다. 그런데 그 곳에는 온통 남성뿐이었다. 그들은 고씨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어이, 아가씨, 커피 한 잔 가져와.’라는 말과 함께 성추행을 했다. 고씨는 ‘커피를 가져오라’며 던진 돈을 받아들고 곧바로 양장점에 가 수트와 중절모를 사 입었다. 그날 이후 남장을 하며 살았다.
고 사장은 젠더 구조 내에서 남성이 받는 수혜를 정확히 파악했다. 그리고 그 수혜와 권력을, '남성성은 정체성이 아니라 사회적 포지션'이라는 사실을 이용해 획득한다.
고작 어깨를 떡 벌리고 목소리를 깔았을 뿐인데 말이야, 남자됨과 여자됨이 참 가소로워.
정년은 그런 고 사장에게 ‘그럼 계속 연기를 하며 사는 거냐’고 묻는다.
처음엔 연기였을지 모르지만 이젠 (이 모습이) 나 자신이나 다름없지.
고 사장은 없는 ‘남성성’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자신 안에 내재된 ‘남성성’을 호명하여 밖으로 꺼냈을 뿐이다("나는 내 안의 고사장을 연기하지"). 고 사장이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 그 시대의 남성성 (수트, 중절모, 재력, 적극적인 플러팅 등)은 결국 섹스와 젠더가 일치하지 않는 장면이다.
주디스 핼버스탬은 자신의 책 <여성의 남성성>에서 오랫동안 자신의 남성성을 부끄럽게 여기라고 강요받아 온 여성들이 자신의 남성성을 낙인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자부심과 힘의 원천”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말한다.
-한채윤, <한국 남성을 분석한다.>
탈코르셋은 남장이 아니고, 연기를 하는 것도 아니다. 탈코르셋은 ‘여장’을 멈추고, 연기를 그만두는 일이다. 그렇게 행동이 자유로워지고, 그것이 지속되면 성격이 된다. 여성성이라는 틀 안에서 발휘되지 못했던 내 안의 욕망과 성격들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강하게 주장하기, 무거운 물건 번쩍 들기, 과격한 운동하기, 단칼에 거절하기, 원하는 것을 쟁취하기…
성별이분법 사회의 필연
안타깝게도 여기서 우리는 성별이분법 사회의 한계점에 다다른다. 여성성의 지대를 벗어났을 뿐인데, ‘탈코러’는 ‘남성의 지대’를 침범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말을 듣는다.
너, 남자가 되고 싶은 거야?
이 말은 질문이 아니다. 안전 지대를 벗어난 이에게 던지는 이유 없는 반발이다. 나는 대답했다.
인간이 되고 싶어.
남성이 곧 인간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고 사장은 인간이 되고 싶었다. 고 사장이나 탈코러들이 여성성을 벗어났는데, 둘러보니 남성의 영역에 들어와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탈코르셋 운동의 ‘문제’도 아니다. 그 상황은 성별이분법 사회의 필연이다.
정년의 '탈코' 체험 후기
다시 <정년이>로 돌아와, 정년은 이제 고 사장의 가르침을 받아 능청스러운 방자가 되기 위해 남성의 움직임과 말투를 관찰하고 모방한다. 자신에게 시비를 거는 남자아이들에게 남성인 척 하며 되려 겁주기도 한다. 그러면서 고 사장의 말대로 통쾌함을 느낀다. 하지만 한 편으로, "속이 상한다."
남성이 지금까지 가져 온 권력을 경험해 보니, 사회가 여성을 얼마나 인간으로 보지 않았는지가 투명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정년은 고 사장에게 남자 연기를 하지 않으면 자신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는 남자들에 대해 토로한다.
“분혀요. 지(여성으로 보이는 사람)도 고 사장님이랑 똑같이 말했는디 왜 내 말은 안 듣고 사장님(남성으로 보이는 사람) 말씀은 듣는디요?”
“너, 고양이 울음소리를 진지하게 듣는 사람 봤냐? 인형에게 말을 걸고 답을 기다리는 사람 봤어?”
“나(여성)는 인형도 고양이도 아니잖어라!”
“맞아. 그걸 모르는 남자들이 많지.”
하지만 정년은 ‘방자 되기’를 멈추지 않는다. 정년에겐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여성 국극 무대에 주연으로 서서 돈을 많이 벌어야만, 어머니를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
그렇게 드디어 춘향전 공연 당일이 되었다. 정년은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고 나타난다. 방자 연기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머리카락도 정년에겐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정년은 목표가 명확하고, 목표로 가기 위해 마주치는 부수적인 것에는 신경쓰지 않는 대찬 성격이다.
탈코르셋과 함께 대두되는 것이 여성의 야망이다. 탈코르셋, 비혼, 비연애를 이야기하는 유튜버 ‘고리’는 ‘야망 설계법’을 소개하며 이렇게 말한다.
인생의 꼭짓점 찍기가 필요해요. 인생의 저 멀리에 점을 찍고 달려가다 보면, 현실에 집중해서 가까운 곳을 보고 달리다가도, 고개를 들어 ‘아, 내가 지금 저것 때문에 달리고 있지.’ 하는 안도가 생기거든요. 그리고 그 안도가 엄청난 힘을 가집니다.
당신의 길에 탈코르셋이
도움이 된다면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스트 여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때 발목에 걸리적거리는 이물질들을 잘 끊어내어 버리는 능력이 절실하다. 자칫 정신 놓으면, 발목에 온갖 것이 엉켜 있고, 앉아서 울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래, 울어도 되지만, 계속 울고만 있지 않기 위해서는 내가 왜 나아가는지를 잊지 않을 필요가 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의 꼭짓점은 어디인가. 그 곳으로 어떻게 나아가고 싶은가. 탈코르셋이 도움이 될 것 같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