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는 여자의 파격 6. <콜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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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는 여자의 파격 6. <콜레트>

새입자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인간은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날 수 있다. 실존 인물의 전기 영화 <콜레트>의 주인공 ‘콜레트’는 평생을 계속해서 다시 태어난다. 그 비법은 두 가지. ‘표현하기’와 ‘활동하기’다.

표현하기

콜레트는 19세기에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자유로운 소녀 시절을 보내다, 결혼을 한 뒤로 도시에서 살았다. 스스로의 선택이었지만, 콜레트는 도시의 문법과 가부장제 안에 편입되는 과정이 괴롭다. 그러던 중, 남편의 대필 작가로서 소설을 쓸 기회가 생긴다. 자연스럽게 그리움의 대상인 고향에서의 유년시절을 소재로 자전 소설을 완성한다. 그 작품은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녀는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한다.

“공부를 하면 무엇을 전문하겠어?
문학이요.
문학? 좋지.
어렵지요?
어렵기야 어렵지만 잘만 하면 좋지. (...) 사람은 개인적으로 사는 동시에 사회적으로 사는 맛이 있으니까. 좋은 창작을 발표하여 사회적으로 한 사람이 된다면 더 기쁜 것이 없는 것이야.”

- 나혜석, <글 쓰는 여자의 탄생>

나혜석이 짚은 대로, 글쓰기, 즉 창작은 철통 보안 비공개가 아닌 이상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치는 행위다. 독자 한 명만 있어도 그것이 곧 영향력이기 때문이다. 탈코르셋 운동이 온라인상에서 빠르게 퍼질 수 있었던 이유 역시 탈코르셋이 창작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여성 대중은 ‘탈코 전시’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서사화했다.

일러스트 이민

탈코르셋은
자기 표현의 서사

2018년 초, 인스타그램에는 #탈코르셋_전시 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탈코르셋의 과정을 셀카로 정리해 올린 것이다. 사진을 넘겨 보면 화장이 점점 사라지거나, 활동하기 좋은 복장과 헤어스타일로 바뀌는 등, 외면의 변화가 보인다. 사람들은 탈코르셋 운동을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든간에 타인의 변화를 요약본으로 흥미롭게 관람한다.

SNS에 올라온 사진은 대중의 흥미만을 불러일으킨 것이 아니라 탈코르셋 운동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걸 증명했다. 창작은 머릿속에만 있는 생각이나 느낌을 언어화, 물질화한다. 탈코르셋 서사는 곧 다양한 매체로 퍼지기 시작했다. 유튜버 ‘정메지’, ‘한국여자’, … 탈코의 과정을 담은 만화 <탈코일기> 단행본 펀딩에는 1억 9천만원이 모였다. <탈코일기>를 쓴 ‘작가 1’은 유튜브 채널 ‘하말넘많’과의 인터뷰에서 창작의 힘에 대해 짚었다.

“이 책을 보고 더 많은 (페미니스트, 혹은 여성)분들이 더 많이 창작했으면 좋겠어요. 성공적으로 일을 끝마치는 모습을 보여드렸으니, ‘여성 서사 한 줌인 줄 알았는데, 저것도 되네? 나도 한 번 해볼까’ 하며 도전하셨으면 좋겠어요.” 

활동하기

콜레트는 창작을 통해 자신의 삶도 영향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그 다음 작품을 내기 위해 과거가 아닌 현재를 생중계하듯 시차 없이 소설화한다.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을 실천하니, 점점 과감해진다. 여성과 섹스를 하면서 이성애중심주의와 젠더이분법의 선을 넘나든다.

콜레트는 그러다 ‘미시’라는 인물과 사랑에 빠진다. 미시는 젠더퀴어로 정체화한 인물로, 남자처럼 옷을 입고, 행동한다. 콜레트는 미시와 교류하면서 미시를 따라 난생 처음 바지를 입어 본다. 여성이 바지를 입는 것이 전무했던 시대여서 남편은 기겁한다. 콜레트는 그 앞에서 바지 주머니에 손을 쓱 넣고 ‘너무 편해서 미치겠는’ 표정을 짓는다.

콜레트의 활동과
현대 여성의 활동

콜레트는 이후 ‘숙녀다움’을 버리고 살아간다. 숙녀가 가질 취미는 아니라 하는 역동적인 ‘판토마임’을 배우고, 직접 공연도 만든다. 콜레트는 공연에서 섹슈얼하지 않은 방식으로 자신의 윗옷을 찢어 가슴이 드러나는 퍼포먼스를 한다. 관객석에서는 야유와 환호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그녀는 글로 자기 자신을 탐구했고, 활동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만들었다.

콜레트의 커밍아웃, 바지 입기, 판토마임, 노출 퍼포먼스는 현대 여성이 보일 수 있는 ‘파격’과 얼마나 같고, 얼마나 다른가. 또, 탈코르셋이라는 파격은 먼 나중의 여성들에게 어떻게 해석될까. 이민경은 책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에서 20세기의 전족과 21세기의 하이힐을 비교한다.

일러스트 이민

“하이힐과 전족은 이동성의 제한과 이로 인한 고통, 더불어 그것을 아름답다고 찬미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성들의 적극적인 욕망으로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그 원리와 기제가 같다. 전족 역시 폐지될 당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반발했다.”

벗는 여자의 파격

콜레트의 옷 찢기 퍼포먼스를 보며 나는 ‘사탕 껍질’같은 여성복을 가위로 찢고 화장품을 부수는 여성들을 떠올렸다. 속 시원하면서도 한 편으로 두렵기도 했을 그들. 그렇게 표현과 활동의 가능성을 가지고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탈코르셋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탐험을 위한 도구가 되길 바란다. 도구를 쓰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앤처럼 집착을 놓는 도구일 수도, 고 사장이나 기타처럼 인간으로 받아들여지는 수단일 수도 있다. 또는 여성을 돕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의도가 무엇이든 탐험은 그 영역만큼 상상력을 넓힌다. 상상력을 가진 자는 엄한 것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신의 자리를 만들 수 있다. 탐험을 거듭한 콜레트가 결국 자신의 이름으로 책을 내듯이 말이다. 새로운 세계로 떨리는 한 발을 내딛는 모든 여성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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