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사라진
머리털이 준 재미
여기, 나처럼 벽을 넘은 또 다른 여성이 있다. 루시 몽고메리 원작의 넷플릭스 드라마 <빨간 머리 앤 (Anne with and E)>의 주인공 앤이다.
앤은 시즌 1의 1화부터 자신이 빨간머리라서 사랑받기 어렵다고 말한다. 하지만 특유의 긍정성으로 "저는 빨간 머리지만, 일도 잘 하고 부지런해요.” 라고 어필한다. 결국 앤은 바라던 대로 초록 지붕 집에서 살게 되고, 학교도 다니게 된다.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경험한 앤은 그 원인이 오래 전부터 놀림받아 온 빨간 머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염색약을 산다.
해결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몫
악에는 이유가 없고, 있다 해도 세상에 알려질 필요가 없다.
“악의 이유에 대한 궁금증은 피해자의 자아 존중감을 파괴하는 악의 본질이다.”
- 정희진, <정희진처럼 읽기>
악은 자신보다 약한 대상을 타겟으로 삼는다. 이 법칙만이 유의미하다. 그러나 종종 피해자는 스스로에게서 폭력의 원인의 찾아, 그것을 바꾸면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부장제가 저지르는 억압도 마찬가지다. 가부장제는 여성에게서 결점을 찾아내 ‘더’ 아름다워지라고 말한다. 여성이 꾸밈 노동을 한 번 시작하면, 멈추기 힘들어지는 이유다. 앤은 그 시작으로 빨간 머리를 염색하려 했다. 하지만 염색이 잘못되어 머리카락을 대폭 잘라낸다. 머리를 자르며 앤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의 눈물을 흘린다.
없어진 집착의 대상
앤은 사회의 억압 때문에 자기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는 피해자의 굴레 속으로 들어갈 뻔 했으나, 의도치 않게 집착의 대상을 없애게 된다. 이제 앤의 머리는 빨간색이라는 특징을 벗어나 ‘남자 아이 머리’라는 특징을 갖게 되었다. 색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집착의 대상을 ‘없애는’ 방식은 탈코르셋과 맞닿아 있다. 나는 ‘여자 머리’인 단발 머리를 하고 있던 시절, 치마는 더 이상 입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음에도 옷장에서 버리지 못한 치마를 발견하면 한 번 입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단발머리에게는 치마가 이질적이지 않은 선택지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환경이 ‘꾸밀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으면 쉽게 혹한다.
피해의 영역을 벗어나다
그래서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복과 화장품 등을 모두 버리거나, 여성의 몸을 꾸밈 노동을 전면 거부하는 환경으로 만들자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몸 변용의 도구로서 인간의 털 중 가장 위쪽에 위치해 있고 가시성이 높은 ‘머리털’을 제시한다. 여성의 털이란 털은 모두 억압받는 와중에, ‘머리털’은 바로 그 특성 때문에 젠더 식별의 핵심적 도구가 되었으니, 그 특성을 역이용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는 것은 화장을 안 하는 것이나 ‘여성스럽지’ 않은 옷차림보다 장벽이 높다. 몸의 일부를 변형하는 것이기도 하고, 자르기는 순식간이면서 기르기는 한참이다. 그러나 한동안 재고의 여지가 없는 이 무자비함이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다. “머리털 잘랐어? 그럼 이제 머리털 갔어. 오지 않아.”
물론 투블럭 스포츠 머리를 해도 치마를 입을 수는 있다. 하지만 보편적인 조합이 아니라는 점이 나를 멈칫하게 한다. 여자로 보이겠다는 굳은 의지가 있지 않는 이상, 예쁘다고 생각할지라도 입지 않고 지나치게 된다. 주변의 반응도 바뀐다. 나에게 화장 좀 하고 다니라던 사람들은 화장이 ‘어울리는’ 범주에서 벗어난 머리 모양을 보고, 입을 닫는다. 억압 공유의 장에서 벗어나게 된다.
동전의 이면을
보는 재미
앤은 머리카락이 없어도 무너지지 않은 세상에서 다음 날을 맞이한다. 담임 교사는 앤의 머리를 보고 ‘새로 온 전학생은 남학생 줄에 앉아야지.’ 라고 빈정거린다. 하지만 앤은 굴하지 않고 학교에서 꿋꿋이 버틴다. 그렇게 서서히 자신의 머리카락을 받아들인다.
하루는 앤이 심부름을 받아 시내에 간다. 편한 바지에 헐렁한 외투를 입고 모자를 푹 눌러쓴 채. “다들 나를 남자라고 생각하니, 오늘은 남자가 되어 봐야지.”
거리의 사람들은 앤을 정말 남자 아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저런 잔일거리를 시킨다.
거, 소년! 동전 한 푼 벌고 싶나? 이 짐 좀 옮겨주겠어?
앤은 얼결에 짐을 나르고, 돈을 받는다. 나름의 재미를 붙인 앤은 아예 당당하게 소년 행세를 하고, 다른 소년들 틈에 끼어 구슬치기도 하며 즐거워한다. 그러다 지인인 ‘지니 아주머니’를 만난다. 지니 또한 앤을 남자아이라고 생각하고 짐을 옮겨달라고 하다가, 앤을 알아보고 깜짝 놀란다.
“잠깐, 너 앤이잖니? 왜 남자애처럼 옷을 입었니?”
“머리를 잘라야 했거든요.”
“왜?”
“아주 길고 한탄스러운 이야기지만 이렇게 요약하면 충분하죠. 동전의 이면을 보는 건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남자가 되니 자유롭네요.”
벽 너머에도
세상이 있어
앤은 탈코르셋하지 않았다. 저 날을 제외하고는 계속 치마를 입고, 성격에 큰 변화가 일어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변화는 있었다. 앤은 세상이 무너질 거라 예상했던 일이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경험했다. 오히려 달라진 자신의 외모를 받아들이면 유용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앤은 이후 소년스러운 외면을 이용해 연극에서 대사가 많고 주체적인 소년 역할을 따내기도 한다.
벽 너머엔 분명 전과 다르지만 전과 다르지 않은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알고 싶다면, 직접 넘어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