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는 여자의 파격 1.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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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는 여자의 파격 1. 프롤로그

새입자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퇴사를 하고 머리를 잘랐다. 집에서 누워서 과자를 먹다가 옆 머리가 자꾸 흘러내리는 게 거슬려서 홧김에 잘랐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귀 뒤로 넘기는 행위를 하고 싶지 않아 투블럭에 스포츠 머리를 했다.

당시 나는 여성에게 '허용'되는 머리 중 가장 짧은 '숏컷'을 하고 있었다. 내게 숏컷은 ‘벽’처럼 느껴졌다. 넘을 수 있지만 넘기 두려운 벽. 그 벽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다른 건 몰라도, 하나는 알았다. 그 곳엔 더 짧은 머리가 있어.

"선을 넘어야 한다. 넘기 전에는 알 수 없으므로."
 - 이민경, <탈코르셋: 도래한 상상>

처음에는 충동이라고 생각했다. 한 백수가 시간과 에너지가 남아 돌았고, 조직을 탈피한 해방감에 취해 방아쇠를 당긴 거라고. 잠깐, 방아쇠? 이 총은 언제부터 들고 있었던 거지? 나는 내가 오래 전부터 '여성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의 탈코르셋을 원해왔음을 깨달았다.

탈코르셋은
시위이면서 놀이

탈코르셋은 ‘코르셋을 벗는다’는 뜻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통용되는 외적, 내적 '여성성'을 코르셋이라고 부르고, 이를 탈피하기 위해 일단 자신의 신체(겉모습)부터 이용해보자는 담론이다. 단순하게는 '꾸밈 노동 파업'을 가리키기도 한다.

‘꾸밈 노동’은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화장, 어느 정도보다 짧아질 수 없는 머리 길이, 제모, 활동성에 제약을 주는 옷 등을 뜻하는데, 한 마디로 같은 상황 속에서 남성은 하지 않지만 여성에게만 강요되는 종류의 치장을 포괄한다. '줄이기'가 아니라 '파업'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더 이상 여성으로 보이지(passing) 않을 만한 외형에 다다름으로써, 꾸밈의 여지를 없애는 것이 ‘탈’코르셋의 지향점이기 때문이다.

이 운동은 타인에게 외모 지적을 하는 것이 빈번한 한국 사회에서 특히 파급이 크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의의 이전에, 이건 그냥 개인적인 놀이이기도 하다. 날 때부터 내 것인 몸을 내가 어떻게 갖고 놀겠다는데, 사회가 이걸 못마땅해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나를 둘러싼 사회의 억압이 아닐까. 이 시리즈의 첫번째 편에서는 <빨간 머리 앤>의 한 장면을 통해 젠더를 갖고 노는 방법을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일러스트 이민

남자가 되고 싶은 거야?

"케슬러와 맥케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타인을 볼 때, 여성이라는 단서가 네 개 정도 발견되기 전까지 (...) 남성이라고 추론한다고 한다. 남성 아님이 증명되기 전까지 당연히 남성인 것으로 여겨진다."
- 케이트 본스타인, <젠더 무법자>

케이트 본스타인의 말처럼, 남성은 외형적인 면에서 '기본값'이다. 하지만 모든 개념이 그렇듯 '남성다움'은 그 반대급부인 '여성다움'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며, 견고해진다. 탈코르셋 운동은 여성다움을 파괴하기 위해 여성임을 증명하려고 하지 않는 방식을 택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하지 않음’에 촛점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남성의 모습이 되어 있다.

탈코르셋 운동에 대해 자주 등장하는 '남자가 되고 싶은 거야?' 라는 질문은 '성별(gender 혹은 sex)를 바꾸고 싶은 거야?'가 아니라, '기본값(default)이 되고 싶은 거야?' 라는 질문과 통한다. 이 질문은 유의미하고 슬프다. 왜냐하면 이것은 약자가 약자성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직감하고 하는 질문이기 때문이다. 남성이 ‘여장’을 한다면 ‘여자가 되고 싶은 거야?’라는 질문을 모두가 나서서 던질까, 아니면 단지 신기하게 생각할까. 두번째, 세번째 편에서는 웹툰 <정년이> 와 영화 <당갈>을 통해 왜 여성이 남성의 모습을 했는지, 그 이후에 어떤 말을 듣는지 알아보자.

일러스트 이민

총체적으로
다시-질문하기

여성의 꾸밈노동에 대해 “주체적 꾸밈”이라든가 “이건 내 취향”이라는 담론도 분명 존재한다. 나는 이 말들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궁금한 건, 화장이 단지 개인적 취미라면, 사회는 모든 여성에게 한 가지 취미를 강요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점이다. 예를 들면 한국철도공사는 전동열차 승무원 업무 매뉴얼에 '여성 접점직원의 용모 및 옷차림 기준' 항목을 두어 자세한 화장 스타일과 색깔까지 지정했다(2019년 10월7일, 이 규정에 대한 비판이 일자 한국철도공사는 해당 규정을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특정한 취미'의 화장을 여성 노동자에게 제도적으로 강요하는 한 예시다. 

잠깐, 그렇다면 나의 여러 가지 취미들 모두 사회로부터 주입된 여성성은 아닐까. 탈코르셋을 하고 나면 나의 모든 속성을 통째로 다시-질문하게 된다. 다이어리를 꾸미다가도 멈칫. 어, 나 이거 진짜 재밌어 하는 거 맞나.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골라낼 수 있었다. 비단 취미뿐만 아니라 관계에서도 집착과 감정 노동이 줄어든다.

탈코르셋은 외적인 것 뿐만 아니라 내면적 여성성 또한 내려놓자고 이야기한다. 여성은 늘 친절하고 도덕적이어야 한다는 관념을 갖고, 그렇게 행동하게 되는 것을 ‘도덕 코르셋’이라고 칭하면서 말이다. 결국 탈코르셋의 길에 선 우리는 자아 설정값을 직접, 하나 하나, 새로 입력해 보게 된다. 네번째 편에서 다룰 영화 <거꾸로 가는 남자>는 충격 요법을 이용해 그 작업에 도움을 줄 것이다.

일러스트 이민


내 파격은
네가 박수칠 만한 게 아닐걸

나는 ‘파격’이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디어에서 여성에게 ‘파격적 변신’이라는 말을 할 때는 대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공식 석상에 나타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단어가 여성 당사자가 아니라 타인의 시선에서 붙여지는 것이 불편했다. 파격을 여성의 입을 통해 듣고 싶었다.

탈코르셋은 나에게 똑똑히 알려줬다.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파격’의 느낌은, 사람들의 환호와 관심을 받을 때가 아니라,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때, 심지어 반대와 멸시를 불러일으키는 순간에 강하게 떠오른다는 것을.

나는 각 잡힌 수트를 입고 등장하거나 머리를 거칠게 자르는 등, 자신의 몸으로 모두가 말리는 실험을 하는 여성들을 응원한다. 세상이 강요한 색의 립스틱을 내려놓고 아무 색도 없는 깜깜한 길로 들어서는 여성들을 응원한다.

깜깜한 세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전에 없던 색깔의 불을 밝힐 수 있다. 세상이 만들어 놓은 '여자 색’'에서 벗어나 내가 원하는 색을 말이다. 래퍼 이영지는 첫 싱글 'Dark Room'에서 래퍼에게 응당 적용되는 색인 검정(Black)을 벗어나 자신의 색을 칠하고 싶음을 이렇게 노래했다.

"아직 잃을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서 좀 많이 두려워
돈 명예 시계 전부 얻어도 날 다 채울 수가 없으니
(...)
날 나가게 해 줘. 좀 더 잃을 게 많아져도, I can't do this no more.(이걸 더는 못 하겠어.) 
날 지워낸 다음 덮어내, 다시
Black 을 제외한 색깔로"

마지막편에서는 영화 <콜레트>를 통해 자신의 색을 되찾기 위해 파격을 거듭했던 실존인물을 소개하고자 한다.

다시 과자 먹다 머리 자른 ‘나’로 돌아오자면, 결국 내 탈코르셋은 과자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시리즈에서는 지난 날 내가 본 다섯 가지 창작물 속에서 여성이 '그 시대의 여성성'을 벗는 순간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것이 현재의 탈코르셋 담론과 어느 지점에서 결을 같이하는지 살펴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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