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이지만,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과 명예는 왕서방이 갖는 경우는 화장품도 많다. ‘1000배의 수분’을 끌어당기는 히알루론산이 들어갔다는 유세린 하이알루론 크림, ‘피부장벽’ 세라마이드를 내세우는 닥터자르트 세라마이딘 크림. 이 두 제품은 모두 건성 피부를 타겟으로 높은 보습력을 내세운다. 하지만 이 화장품들의 성분표 첫 번째에 오는 성분은 히알루론산도, 세라마이드도 아닌 바로 글리세린.
크림을 바르는 순간 피부 전체로 퍼지는 촉촉함을 느꼈다면 바로 그 주역은 글리세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워낙 평범하고 흔히 사용하는 성분이기 때문에 언제나 영광은 1% 미만으로 함유되는 고가의 성분들에게 넘어가곤 한다. 물론 세라마이드, 히알루론산도 스킨케어 제품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성분이 마케팅을 위한 컨셉 성분으로 활약한다는 것 역시 불편한 진실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리세린은 워낙 저렴한(약국에서 100 ml 에 천원!) 성분이고 페이셜 크림에서부터 핸드크림, 바디크림까지 워낙 널리 사용되다 보니 그 효능이 오히려 저평가당하는 측면이 있다. 단순 보습성분을 넘어 꽤 다양한 능력을 발휘하는 글리세린은 재평가를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
더블 보습
글리세린은 두가지 방법으로 피부 보습에 도움을 준다. 공기 중의 수분을 피부로 끌어당기는 휴멕턴트, 피부 속까지 깊게 침투해 수분이 증발되지 않도록 보존하는 에몰리엔트가 그것이다. 그래서 글리세린은 가벼운 사용감의 수분에센스부터 건성용 리치 나이트 크림까지 두루두루 사용된다.
글리세린이 성분표에서 물 다음에 온다면 고보습 크림(ex.세타필), 3~4번째에 위치한다면 좀 더 산뜻한 수분크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글리세린은 높은 보습력을 함유하고 있음에도 모공을 막지 않기 때문에 지성, 여드름 피부도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수분공급의 갑은 히알루론산” 이라고 흔히들 말하지만, 히알루론산은 주변 환경의 습도에 따라 수분 공급 효과가 많이 좌우되기 때문에 사실 공기중에 수분함유량이 적은 겨울철에는 보습효과를 기대만큼 얻기 힘들다. 그에 비해 글리세린은 사용 즉시 촉촉함을 주는 장점이 있어 오히려 겨울철 보습크림에 더한다면 그 효과를 즉각적으로 느낄 수 있다.
피부 장벽 강화
글리세린을 지속적으로 공급받는 피부는 표피층이 두꺼워지고 장벽기능이 강화된다. 즉, 튼튼한 피부가 된다는 말이다. 글리세린은 외부의 유해요소들이 피부속으로 침입하는 것을 막기 때문에 장벽의 손실로 자잘한 트러블이 끊이지 않는 아토피/예민성 피부가 사용해도 개선 효과를 볼 수 있다.
상처 치유
글리세린은 피부세포의 성장을 촉진시켜 상처 입은 피부가 빨리 회복되도록 돕는다. 대표적으로, 건선은 각질이 너무 빠른 속도로 노화되어 각질이 우수수 탈락하는 피부질환인데 글리세린이 세포주기를 정상화해 건선을 완화시킨다.
피부 스무딩 효과
외부 환경에 의해 손상된 피부 사이사이의 깨진 틈을 매꾸어주어 거칠어진 피부를 빠르게 매끄러운 상태로 만들어준다.
내 스킨케어 루틴에 글리세린 더하기
그러면 글리세린은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보습은 높이고 싶지만 오일감은 더하고 싶지 않을 때 글리세린을 더해주자. 나는 글리세린을 안약병, 펌프형 디스펜서 두가지 용기에 담아 보관을 하는데 미리 화장품을 만들기보다 그날의 내 피부의 상태에 따라 더해주는 방법을 선호한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피부가 당기고 각질이 푸석하게 올라오는 날에 크림, 리퀴드 파운데이션에 각각 안악병 기준으로 두어 방울의 글리세린을 더하고 기초부터 메이크업 스폰지를 이용하여 꾹꾹 눌러주는 방식으로 메이크업을 한다. 글리세린의 촉촉함을 이용해 너덜거리는 각질을 붙여주는 셈.
저녁에 세안을 마친 후에는 수분마스크 또는 클레이마스크에 글리세린을 디스펜서로 두 번정도 펌핑하고 휘휘 저어준 후 얼굴에 바른다. 20분 후 제거하면 피부가 훨씬 쫀쫀해져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주의사항
과용은 금물. 글리세린은 비독성 성분이기 때문에 꽤 많이 사용해도 피부트러블을 일으키지는 않지만, 너무 많이 쓰면 끈적이는 느낌이 올라온다. (글리세린이 고농축으로 함유된 뉴트로지나 핸드크림의 진득함을 떠올려 보자.) 대부분의 수분 보습 제품엔 기본적으로 글리세린, 글리콜 성분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글리세린을 더할 때 이 점을 감안해서 총 제품 용량의 2~3% 이내로만 사용하는 것이 좋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