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빨간머리 앤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 애니가 처음 막을 올렸을 때 이 작품의 성공을 기대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작품에 대한 확신보다는 애정으로 올라온 것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투자자를 구하기 어려웠지만, 프리뷰 기간부터 대박의 기운이 밀려왔다. 뉴욕이 경제적으로 침체되어 있던 시기에 열 살 여자 아이가 부르는 “Tomorrow"가 주는 울림이 강렬했던 것이다. 코웃음을 치며 투자를 거부했던 사람들은 땅을 치고 후회했다. 이 작품은 브로드웨이에서는 단 두 번 리바이벌 됐지만 투어 프로덕션은 무려 8번이 꾸려질 정도로 미국 전역에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평론가들의 평가는 늘 갈렸다.
미국의 대공황기 한 가운데인 1933년, 뉴욕의 고아원에 사는 주인공 애니는 열한 살이 되어가는 곱슬곱슬한 빨강머리에 주근깨가 가득한 여자 아이. 언젠가는 친부모님이 자신을 찾으러 올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원장인 미스 해니건을 피해 고아원을 탈출할 때마다 번번이 잡혀서 돌아오곤 한다. 이런 애니에게 인생을 리셋할 기회가 찾아온다. 뉴욕 최대 부자인 워벅스의 홍보팀이 냉혈 인간이라는 이미지를 벗고자 고아 한 명을 초대해 일주일을 보낸다는 계획을 세운 것. 워벅스의 비서인 그레이스는 마침 잡혀 온 애니와 눈이 마주치고 첫 눈에 호감을 느낀다.
아무 연고도 없던 두 사람이 연대감을 느끼는 순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미스 해니건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다. 남자 아이를 원했던 워벅스는 애니를 보자마자 돌려보내라고 차갑게 말한다. 그러나 이내 애니의 끝나지 않는 입담에 말려 들고, 어느 새 애니에게 푹 빠진다. 고아였던 애니는 워벅스 덕분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를 만나 함께 미래에는 행복이 있을 거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고 워벅스를 뉴딜 정책에 끌어들이는 역할까지 맡는다.
워벅스는 애니에게 자신의 딸이 되어달라고 요청하지만 애니는 자신의 친부모가 살아있다며 거절한다. 워벅스는 비통한 마음을 감추고 거액을 걸고 애니의 부모를 찾는 라디오 광고를 내보낸다. 그 다음날 워벅스의 집 앞에는 애니의 부모라고 우기는 부부들이 줄을 서서 자신이 애니의 부모라고 우긴다. 이 때 애니의 부모라고 나타난 사람들은 고아원 원장인 미스 해니건의 남동생인 루스터와 그 애인. 완벽한 애니의 출생 증명서와 애니의 목걸이와 일치하는 커플 목걸이를 내놓고 애니와 거액의 수표를 채간다. 하지만 이 음모를 엿들은 고아원 친구들이 워벅스의 집으로 달려와 사실을 고하면서 애니를 악당들의 손에서 구출하고 애니와 고아원 친구들 모두 행복해진다는 이야기다.
마틸다 vs 애니
브로드웨이의 가장 최근 리바이벌 버전의 애니는 마치 마틸다 같다. 짧은 빨강머리가 사라지고 빨강인지 갈색인지 알 수 없는 긴 곱슬머리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9월에 마틸다가 개막한 뒤 12월에는 애니가 이어서 개막한다. 마치 런던의 마틸다에 뉴욕의 애니가 대항마로 등장한 것처럼 양국의 소녀 대결이 재연되고 있는 형국이다.
애니와 마틸다는 둘 다 어린 나이에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 마틸다와 달리 애니는 천재도 아니고 초능력도 없지만, 대책 없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마틸다는 자신을 학대하는 부모를 이상적인 대상인 허니 선생으로 대체하지만, 애니에게는 애당초 버릴 부모조차 없다. 대신 가혹한 고아원 원장 미스 해니건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는다.
애니는 뉴욕의 허드슨 강가에 있는 고아원에 살면서 창살 너머로 엄마 아빠가 있는 평범한 나날을 꿈꾼다. 존재하지 않는 부모와 존재하지 않는 ‘평범한 집’을 그린다. 그러나 애니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그저 막막하게 기다리지 않는다. 부모를 찾기 위해 고아원을 탈출한다. 어린 아이가 혼자 길을 다니는 모습은 눈에 띄기 마련이라서 애니는 매번 고아원을 탈출할 때마다 잡혀 오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애니가 워벅스의 비서 그레이스와 만나는 계기도 역시 탈출을 꿈꾸다 잡혀 돌아왔기 때문이다. 미스 해니건의 벽장에 갇혀 벌을 서다가 그레이스와 해니건의 대화를 엿들었던 것이다. 그레이스는 미스 해니건에 의해 벽장 안에 갇힌 애니에게 호감과 동정을 품지 않을 수가 없었다.
노동하는 대공황의 아이
실제로 열 살짜리 아이가 얼마나 주체적일 수 있을까? 그 시절의 빈민이었던 아이들이 얼마나 빨리 어른이 되어야만 했는지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 등장하는 토비아스는 아직 어린 아이지만 담배와 진을 마시며 하루하루를 견딜 돈을 번다. 1930년대의 뉴욕 아이들도 다를 바 없었다. 어떤 아이들은 가정부와 하녀와 자동차 운전사를 부리지만, 어떤 아이들은 작은 몸과 손을 이용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이 극단적인 다른 세계에 사는 두 부류의 아이들도 판타지 장르인 뮤지컬에서는 만날 수 있다. 애니와 워벅스처럼.
워벅스가 원하는 게 자신이 아니라 다루기 쉬운 남자아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에도 애니는 겉으로는 실망을 내비치지 않는다. 이미 여러 번 고아원을 탈출했다가 잡혀 본 애니는 포기하는 것도 빠르다. 하지만 포기했다고 해서 울면서 돌아서지 않는다. 최대한 자신을 어필한다.
그 어필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무엇부터 닦으면 되냐며 대걸레가 담긴 통으로 직진해서 무릎을 꿇고 바닥을 닦으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애니는 자신을 불러간 이유가 그 외에 다른 것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애니가 아무리 밝고 맑고 명랑해 보여도 '노동'이 몸에 배인 고단한 삶을 살았다는 걸 알게 된다. 그리고 고단했던 과거가 부유함으로 상쇄되는 장면을 보기를 원한다.
애니가 워벅스의 집에서 배우는 것은 딱 하나다. 부유하게 사는 법. 그러나 애니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빨간머리 앤이 단지 고집 센 여자 아이였다면 아무 매력도 없었겠지만, 앤은 끊임없는 상상력과 자존감으로 세상을 버텨냈다. 애니 역시 미래에 대한 희망과 바로 어제까지 놀랄만큼 가진 게 없었던 자신을 전혀 부끄러워 하지 않는 모습으로 여러 사람에게 감동을 안긴다.
애니는 애니다
흔히들 좋은 캐릭터는 발전해 간다고들 한다. 좋은 방향으로 변해 가는 것이다. 마틸다는 확실히 이런 점에서 좋은 캐릭터다. 마틸다는 꾸준히 자신을 향상시키며 주변까지 변화시킨다. 반면 애니는 변화가 없는 캐릭터다. 하지만 애니가 가지는 가장 큰 미덕도 바로 변화없음 그 자체다. 가난할 때나 부자일 때나 애니는 애니다. 어른들 사이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작은 존재이지만, 그 아이라는 사실을 때로는 무기로 사용하고, 긴장을 늦추는 어른들을 습격하고 당황케 하는 존재다.
애니의 대담무쌍함이 가장 크게 발현되는 지점은 어쩌면 애니가 루스터의 손에 들린 거액의 수표를 들고 도망가는 장면이 아니라, 백만장자의 딸이 될 수 있는 순간에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자신의 엄마 아빠가 살아 있다고 고백하는 순간일 것이다. 뮤지컬 <애니>에는 온갖 어린이물의 속시원한 결말들이 클리셰처럼 범벅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는, 극단적으로 변해가는 환경 속에서도 자신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는 애니 때문일 것이다. 사실 나이를 그보다 훨씬 더 먹어도 그건 너무나도 알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