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Oliver!>
<마틸다> 이전에 <애니>가 있었다면, <빌리 엘리엇> 이전에는 <올리버!>가 있었다. <올리버!>는 영국이 낳은 천재 작곡가 라이오넬 바트의 출세작이다. 라이오넬 바트는 <올리버!>의 작사, 작곡, 대본을 모두 혼자 쓰는 기염을 토했다. 전세계에서 뮤지컬로 가장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작곡가 앤드류 로이드-웨버도 그의 뒤를 따라 뮤지컬을 쓰기 시작했다.
라이오넬 바트 이전, 런던 웨스트엔드는 뮤지컬보다 연극의 메카였다. 웨스트엔드의 뮤지컬은 대부분 브로드웨이에서 건너 온 라이센스 작품들이었다. 하지만 <올리버!>가 큰 성공을 거두고, 동명의 영화가 1968년에 개봉해 <헬로 돌리!> <지붕 위의 바이올린> 등의 기라성 같은 영화들을 물리치고 오스카상 작품상을 거머쥐면서 런던의 뮤지컬 르네상스를 열었다. <올리버!>는 오스카상 작품상을 받은 20세기 마지막 뮤지컬 영화다. 이후 뮤지컬 영화는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고 뮤지컬 영화의 암흑기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34년이 지난 후 2002년에서야 뮤지컬 <시카고>가 오스카상 작품상을 받았다.
줄거리
뮤지컬 <올리버!>는 영국이 셰익스피어 못지않게 사랑하는 작가 찰스 디킨슨의 가장 유명한 작품 가운데 하나인 <올리버 트위스트>를 뮤지컬로 옮겼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강점은 원작을 충실하게 따라가되, 자기 인생의 선택권이 없는 올리버를 둘러 싼 어른들의 다양한 모습을 통해 줄거리를 쌓아 올린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 날, 고아원에서 풀죽 같은 스프 한 그릇을 받아먹기 위해 줄을 서는 얇은 옷만 걸친 고아들과, 이에 대비되는 후원회 관료들의 만찬이 대비되며 작품은 막을 연다. 올리버는 친구들 사이에서 제비뽑기에 당첨되어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꿀 한 마디를 입 밖에 낸다. "한 그릇 더 주세요!"
영화 버전에서,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올리버를 사라고 외치는 거대한 몸집의 관료 범블의 모습은 가냘픈 올리버와 극단적인 대비를 이룬다. 올리버는 장의사의 집에 팔려가 어딘가 슬퍼보이는 뽀얀 얼굴로 어린이 장례식의 만장을 들고 걸어가는 일을 한다. 올리버 덕분에 장의사의 수입은 늘어나건만, 도대체 이 작품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왜 이토록 아이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을 아까워하는지! 올리버는 장의사의 아내와 딸 직원에게 구박을 받다 결국 목숨을 구하기 위해 탈출해 런던으로 향한다.
올리버는 런던에서 소매치기 소년 도저의 눈에 들어 소매치기 소굴의 주인 유태인 페긴을 만나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게 소매치기 세계에 입문한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도둑질이란 사실을 깨닫는 순간 도망도 못 가고 굳어버린 탓에 혼자만 잡혀 재판정에 선다. 소매치기의 피해자인 브라운로는 올리버를 딱하게 여겨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그곳에서 올리버는 태어나 처음으로 행복을 맛본다.
하지만 올리버가 소매치기의 소굴을 경찰에게 다 말해버릴까봐 두려운 페긴과 도둑인 빌 사익스는 올리버가 유일하게 호감을 보인 낸시를 보내 올리버를 다시 납치한다. 낸시는 올리버를 브라운로에게 돌려보내려다 빌 사익스에게 살해 당하고, 빌 사익스는 올리버를 죽이려다 실패하자 경찰을 피해 도망치다 목이 매달려 죽는다. 페긴이 몰래 숨겨 온 보물들은 그 소동 속에서 화재로 사라져 버리고, 올리버는 브라운로의 집에서 행복한 인생을 다시 시작한다. 페긴도 한 명 남은 소매치기 도저와 함께 새 소매치기 인생을 시작한다.
진흙 속에도 꽃이 핀다면
이 작품에서 라이오넬 바트는 브라운로와 올리버가 원래 친척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쏟는 대신 올리버와 올리버 주변의 성인들을 하나 하나 묘사한다. 특히 큰 애정을 가지고 묘사한 인물이 바로 소매치기굴의 주인 페긴과 창녀의 아이로 태어나 소매치기부터 시작해 안 해본 일이 없는 낸시다. 그 둘을 연결해주는 인물은 낸시가 사랑에 빠진 빌 사익스다. 고아였던 그를 페긴이 거둬 도저나 올리버처럼 어릴 때부터 소매치기로 키우는데, 성인이 된 후로는 페긴도 두려워 할 정도로 무자비한 도둑이 되었다.
어떻게 들어도 어둡디 어두운 이 뮤지컬에 한 줄기 빛이 있다면 그것은 오로지 낸시 뿐이다. 낸시가 페긴의 더럽고 낡은 지붕 밑 방에 모습을 드러내었을 때, 올리버는 처음으로 따뜻함과 순수한 애정을 느낀다. 낸시 역시 올리버를 처음 만나 인사를 한 순간, 올리버는 이곳에서 도저나 빌 사익스 같은 인간으로 변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올리버가 경찰에 잡혀갔다가 브라운로의 집으로 들어가 살게 되자 내심 안심한다. 이후 페긴과 빌 사익스가 올리버를 돌려받기를 원하자 그들을 만류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만, 그들이 말을 들어줄리가 없다.
작품 속에서 올리버가 주변의 어떤 더러움에도 더렵혀지지 않는 타고난 도덕성을 상징한다면 낸시는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렵혀졌다고 여겨지는 인물 안에도 존엄함이 피어날 수 있음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같은 곳에서 자랐지만 서슴없이 폭력과 살인을 저지르는 빌 사익스가 처절할 정도로 악을 상징하는 것과 정 반대로 낸시는 아무리 더럽고 위험하고 끔찍한 상황에서조차 긍정성을 잃지 않는다. 이런 모습은 자칫 뻔한 ‘캔디형’ 캐릭터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낸시는 캔디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과거를 뚫고 현재를 살아가는 인물이다.
암울한 현실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은 낸시의 시니컬한 유머감각 덕분이다. 낸시는 그 유머감각을 동원해 올리버의 기운을 북돋워준다. 올리버는 깊은 수렁에서도 반짝반짝 빛을 내는 인물이다. 브라운로의 집에서 깨어나 ‘누가 내게 이 아름다운 아침을 사주시나요?’ 라고 묻는 넘버 "Who will buy?" 는 올리버를 잘 보여주는 노래다. 작고 힘없지만 무엇이 아름다운지를 알고 있는 존재가 올리버다.
스스로 쟁취해 낸 빛나는 존엄
하지만 사실 뮤지컬에서 올리버의 역할은 크지 않다. 이런 올리버를 아름다운 세계로 되돌려 보낼 수 있는 유일한 인물은 낸시다. 빌 사익스가 눈에 불을 켜고 감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낸시는 몰래 브라운로를 만나 올리버를 돌려 보내기 위한 작전을 짠다. 브라운로는 낸시의 안전을 염려해 돌아가지 말라고 하지만, 낸시는 자신의 선량함이 빌 사익스도 돌려놓을 수 있을 거라도 믿는다. 그 때까지 낸시를 살아있게 했던 본능의 힘이 빌에 대한 사랑으로 사그라들면서 낸시의 운명의 불꽃도 사그라든다.
낸시가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감이라도 한 듯, 올리버를 빌 사익스의 눈길에서 떼놓기 위해 주점에서 부르는 넘버가 "Oom-Pah-Pah"다. 무대 버전 초연에서는 없었고 영화 버전에서 추가된 곡인데, 큰 인기를 모으며 그 이후의 무대 버전에도 추가되었다. 빌 사익스는 철두철미하다. 올리버가 언제 다시 도망갈지 몰라 자신의 개에게 올리버를 지키게 한다. 그의 눈길을 잡아끌기 위해 낸시는 가진 재능을 모두 끌어모아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한 여인처럼 테이블에 올라가 모든 손님이 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게 만들어 올리버를 탈출시킨다.
하지만 이 계획은 빌 사익스의 충실한 개가 짖으면서 깨진다. 낸시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사실에 치를 떤 빌 사익스는 지팡이로 낸시를 때려죽인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이었다면 낸시를 이렇게 잔혹하게 죽게 하기는커녕, 어쩌면 낸시를 죽게 두지조차 않았겠지만, 드라마 자체의 어두움을 깊이 살리곤 하는 영국답게 라이오넬 바트는 이 장면을 어둡고 폭력적으로 그린다. 대신에 살아남는 것은 원작에서 교수형을 당하는 페긴이다.
낸시는 자신의 내면에서 피어오른 선함과 그 스스로의 결정으로 한 아이의 인생을 구하려다 살해당한다. 뮤지컬 속의 낸시는 차라리 올리버를 몰랐을 때가 더 아름답고 당당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올리버를 만난 후 낸시는 자신의 인생에서 빠졌다고 생각했던 한 조각을 찾는다. 디킨스는 그것을 올리버가 가진 도덕성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 낸시는 올리버와 마찬가지로 그 도덕성을 자신의 내면에서 길어올렸다. 그것은 감히 존엄함이라고 말할 수 있는 광채를 발한다. 단지 낸시가 자신을 희생했기 때문이 아니다. 낸시 스스로 드라마틱하게 변해갔기 때문이다.
한 번 옳다고 생각한 일을 향해 똑바로 나아가는 낸시의 모습은 슬프고 눈부시다. 도망가던 빌 사익스가 물에 일렁인 달빛을 보고 낸시가 노려보고 있다며 떨어져 죽을 정도로. 숱하게 사람을 죽였던 빌 사익스지만 낸시만큼 그에게 큰 양심의 가책을 준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낸시에게는 창녀지만 이 일을 시작한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다든가, 창녀지만 알고 보면 출생의 비밀이 있다든가 하는 뻔한 뒷이야기가 없다. 대신 낸시는 외친다.
그래, 나 그렇게 살아왔어!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지고 싶어!
비록 브라운로 앞에서는 자신의 ‘더러움’ 때문에 위축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처절할 정도의 계급사회인 빅토리아 시대에 고아로 버려진 창녀 낸시가 보여주는 이 당당함은 뮤지컬 <올리버!>를 지탱하는 가장 큰 기둥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