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드라큘라>
메리 셸리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새로이 창작되었던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과 달리, 흡혈귀를 소재로 한 브람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는 형식 면에서나, 내용면에서 레즈비언 벰파이어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쉐리던 르 파누의 짧은 소설 <카밀라>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늑대인간 이야기를 비롯해서 여러 나라의 이런 저런 흡혈귀와 괴물 이야기의 영향도 받았으나 <카밀라>와 같은 점은 1인칭 시점에서 흡혈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여성들의 미스테리를 풀어가는 방식, 흡혈귀의 피해자인 여성들이 몽유병에 걸리는 설정, 특히나 흡혈귀에 정통한 지식을 가진 흡혈귀를 쫓는 권위 있는 인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또한 두 명의 주요한 여성 피해자가 친한 친구 사이고 먼저 그 친구의 상태 때문에 흡혈귀 전문가가 초빙되지만 환자를 잃는 설정도 비슷하다.
달라진 것은 소설 <카밀라> 속의 흡혈귀가 몇 백 년 동안 이 지방 저 지방을 옮겨 다니면서 늙지 않는 소녀 같은 여인 밀라카였다면, 브람 스토커가 만들어낸 인물은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실존 인물이었던 루마니아의 귀족이자 드라큘라라는 별명으로 불렸던 블라드 체패슈 백작이 모델로서 구체적으로 지목됐다. 뱀파이어인 밀라카가 주인공 앞에서 사용했던 이름인 카밀라는 이후 여성 흡혈귀 혹은 ‘센 여성’의 대명사처럼 사용되었다면, 드라큘라는 브람 스토커의 소설에 묘사되었을 때는 무자비한 흡혈 괴물이었지만 매체를 거치면서 연미복을 입은 섹시하고 에로틱한 초자연적 존재로 발전해 갔고 그 인기는 현대에 와서 더욱 늘어가고 있다.
드라큘라를 소재로 한 뮤지컬은 매우 많지만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연된 드라큘라는 체코에서 만들어진 <드라큘라>다. 초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수정을 거쳐왔고 실제 체코에서도 많은 수정이 있었다고 하는데, 2019년에 올라온 뮤지컬은 심지어 2014년에 개봉했던 영화 <드라큘라 : 전설의 시작>의 영향까지 보인다.
줄거리
드라큘라는 잔혹한 흡혈귀의 핏줄을 가지고 태어난 귀족으로, 피에 굶주리면 사랑하는 아내 아드리아나도 몰라볼 정도지만 아내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시련을 이겨내는 중이다. 자신의 나라 국민으로부터도 지극한 사랑을 받는 그이지만 전쟁에서 돌아오자마자 유럽 정복의 야망에 사로잡힌 교황에 의해 다시금 전쟁터로 불려나가게 되자 징집을 거부한다. 교황은 자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은 신의 명령을 거부하는 것이라며 드라큘라 백작의 성을 불태울 것을 명령하고, 드라큘라는 눈 앞에서 아내와 아들이 죽는 것을 목격한 뒤 복수를 맹세한다. 드라큘라를 짝사랑해온 로레인과 그런 로레인을 짝사랑하는 드라큘라의 충복 디미트루도 드라큘라의 피를 마시고 영생을 얻으며 1막이 끝난다.
2막의 배경은 1800년대 후반의 파리, 그랑 기뇰 극장에서 흡혈귀 공연을 하는 의문의 귀족 드라큘의 파티에 아름다운 여인 엘로이즈가 나타나자 드라큘라와 그의 신하 디미트루는 깜짝 놀란다. 사백년 전에 죽은 아드리아나와 똑같기 때문에. 엘로이즈는 드라큘라 백작에 의해 부모를 잃고 반 헬싱 교수의 손에 키워지며 부모의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왔지만, 드라큘라 백작을 만나자 그가 자신의 꿈에 늘 나왔던 남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모의 복수와 드라큘라에게 끌리는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엘로이즈에게 그를 노트르담 성당으로 유인하게 하는 반 헬싱. 알고보니 반 헬싱은 사백년 전 드라큘라에게 죽임을 당한 교황의 환생이고 이들은 노틀담 성당에서 몇백년에 걸쳐 죽고 다시 태어나는 증오의 고리를 되풀이하여 다시 반 헬싱은 드라큘라의 손에 죽고 함께 흡혈귀로 만들어 달라는 엘로이즈의 청을 거절하고 드라큘라는 먼지로 돌아간다.
이 작품 속에는 아드리아나와 아드리아나의 환생인 엘로이즈, 드라큘라를 짝사랑하는 로레인이 등장하지만 이들의 대화는 드라큘라로 시작해서 드라큘라로 끝나기 때문에 벡델 테스트는 결코 넘지 못한다. 특히나 2019년에 올라온 버전은 기존의 뮤지컬에서 로레인이 드라큘라를 짝사랑한다는 설정 말고는 대부분 변경되었고, 시대 배경도 3단계가 아닌 2단계로 줄어들어 초연 이후 이십년간의 부침이 꽤 있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하지만 이십년의 세월이 흐르고 그토록 여러번 수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뮤지컬 안의 여성들은 주체가 아닌 타자로, 구해지거나 버려지는 여성들로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사실은 안타깝다.
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NO
이 작품의 여자 주인공이기는 하지만 실제로 작품 전체를 봤을 때는 조연 역할인 아드리아나에게 자신만의 운명이 있기는 할까? 조연이어서 없는 것이 아니라, 아드리아나는 드라큘라에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고, 드라큘라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다. 드라큘라의 ‘순정’의 상징이고 두 번을 태어나도 드라큘라만을 사랑하기 위해 태어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에게 자신만의 인생이 어딘가에 있다면 그것은 엘로이즈로 다시 태어나 드라큘라가 죽은 뒤에 시작되는 인생일테지만, 그 때조차도 엘로이즈가 온전히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사실상 이 작품 속에서 그나마 드라큘라의 운명에 엮이지 않은 인물은 드라큘라가 처치해야 하는 악의 상징인 교황과 교황의 환생인 반 헬싱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작품이 철저하게 기독교의 테두리를 벗어난 뱀파이어의 신화를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태어나고 그 삶을 통해 구원받거나 혹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환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토록 신의 명령을 외쳤던 교황조차도 드라큘라에 대한 증오로 환생해 엘로이즈를 찾아낼 정도다.
체코가 오랫동안 기독교가 발을 디디지 못했던 공산권 나라였기 때문인지, 카톨릭이 이미 세력을 다 잃은 탓인지 모르지만 이 뮤지컬 안에서 카톨릭은 위선과 기만의 상징이다. 물론 교회 전체를 그렇게 몰아대기보다는 교황 한 사람의 문제로 해결하는 듯 하지만 말이다.
즉, 이 작품은 배역이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든, 1992년에 개봉한 영화가 보여주었던 기독교에 대한 반발과 신의 저주로 인해 흡혈귀가 되었다는 낭만적인 설정은 깨끗이 지워버렸다. 대신 2014년에 개봉한 영화 속의 자신의 민족을 지키기 위해 어둠의 힘을 사용하는 군주라는 설정을 가미해 민족주의적 색채를 강화했다.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는가?
NO
아드리나아의 목표는 남편과 함께 가족을 꾸리고 아들과 함께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이지만 사실 남편이 흡혈귀인 이상 이러한 목표는 목표가 아니라 허망한 꿈이라고 할 수 있다. 아드리아나는 극중에서 자신을 찾아온 친척 로레인이 남편과 사랑에 빠지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자신의 사랑에만 몰두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더욱 로레인은 자신의 숨겨온 사랑에 죄책감을 느끼며 자학하는데 반해, 아드리아나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고매하다다고 숭배하는 위치에 놓인다.
하다못해 사백년 뒤에 환생한 버전인 엘로이즈는 처음에는 부모님의 복수를 하겠다고 불타오르지만 드라큘라를 보는 순간 이러한 결심은 한 번에 날아가 버리고 이후에는 드라큘라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인물이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꿈에서 매번 나오던 그 사람이 드라큘라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작품 속에는 그토록 유명한 드라큘라의 신부들도 나오지 않는다. 신부 대신 자발적으로 드라큘라와 같은 흡혈귀가 되기를 원했던 로레인이 있을 뿐. 하지만 드라큘라는 4백년 동안이나 로레인에게 로레인이 원하는 방식의 애정을 전혀 주지 않는 꿋꿋한 순정남으로 그려진다.
아드리아나와 마찬가지로 엘로이즈 또한 순수하고 드라큘라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꽃같은 여인으로 그려진다. 이들은 드라큘라가 아니었다면 이야기에 등장할 이유도, 다시 태어날 이유도 없는 사람들이다. 아니 아드리아나와 엘로이즈는 두 사람도 아닌 한 사람, 결국엔 아드리아나다.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NO
아드리아나가 1막에서 마치 지킬박사를 사랑하는 엠마처럼 지고지순한 사랑을 보여주다 목숨을 잃는다면, 2막에서 등장하는 환생한 아드리아나인 엘로이즈는 1막의 아드리아나가 보여주었던 불의에도 꺾이지 않는 용감한 모습을 보여줄 것만 같은 기대를 품게 한다. 그러나 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꾸며 입고서 첫 데이트를 하는 순간부터 이미 용감함은 그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꺾여나간다.
어떻게 보면 2막의 엘로이즈는 꿈과 현실 속에서 갈팡질팡 하는 인물일 수 밖에 없다. 그에게 주어진 플롯이 그를 그렇게 밀어넣고 있기 때문이다. 1막의 아드리아나가 드라큘라 때문에 희생당한다면 2막의 엘로이즈는 흡혈귀가 되어서라도 드라큘라와의 사랑을 이루고 싶어하지만,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기를 바라는 드라큘라의 바람 때문에 드라큘라의 소멸을 지켜보는 인물이 된다. 이러한 플롯 안에서 엘로이즈의 캐릭터를 두고 붕괴되는가 되지 않는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일일 수도 있다.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NO, but...
1막의 아드리아나는 남편 앞에서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자상하고 오로지 남편의 건강과 행복만을 염려하는 인물이지만 남편을 괴롭히는 사람 앞에서는 한치도 물러서지 않는 위엄을 보인다. 마치 명성황후가 ‘내가 조선의 국모다’를 외치는 장면을 보는 듯한, 자신이 나서면 죽어가는 성 안의 백성들을 구할 수 있을 듯이, 아이를 안고 나서는 장면은 아드리아나를 외유내강형의 인물로 그린다. 현실적으로 보자면 귀족으로 태어나 자라난 사람의, 누구에게도 꺾여보지 않았던 얄팍하다면 얄팍한 기개이겠지만 이러한 위엄을 통해 한 영지를 책임지려 하는 영주로서의 책임감도 드러난다.
하지만 이 모든 결정은 결국 드라큘라를 위한 것으로 귀결된다. 엘로이즈의 경우, 어떻게 보면 반 헬싱에게 평생 휘둘리며 살다가, 처음으로 그 자신의 의지로 결정한 일이 흡혈귀가 되어서라도 드라큘라와의 사랑을 이루겠다는 것이지만, 그 의지는 드라큘라의 거부로 하릴없이 끝나버린다. 사백년을 기다렸지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 수 없다 생각한 드라큘라의 고매함 앞에서는 엘로이즈의 사랑은 속수무책이다. 엘로이즈에게 남아있는 것은 먼지가 되어버린 드라큘라 앞에서 통곡하는 것 뿐.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NO
1막에서는 아드리아나가, 2막에서는 드라큘라가 죽어버리면서 이 인물들은 운명의 상대를 잃으면서 발전의 여지를 가지지 못한다. 두 사람 사이를 질투해서 환생한 엘로이즈를 죽여버리고 싶어하는 로레인마저 결국 마지막에는 두 사람의 사랑의 힘 앞에서 소멸의 길을 걷는다. 사백년을 한결같이 곁을 지켰지만 한 번도 자신의 손에 온전히 들어온 적 없는 남자와 그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사백년의 짝사랑의 힘을 모아 악역으로 돌변할 만도 하지만 그러기에는 엘로이즈의 순전한 사랑과 드라큘라의 순정이 너무 큰 모양이다.
이 뮤지컬 안에서 사랑의 작대기는 항상 일직선을 긋는다. 심지어 서로 사랑하는 드라큘라와 아드리아나, 엘로이즈마저도 그렇다. 한 사람이 살면 한 사람은 죽는다. 이루어지는 사랑같은 것은 없고, 작대기는 항상 죽어가는 사람을 가리키거나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 운명을 거스르지 않는다.
20년 동안 오직
사랑하거나 희생되거나
드라큘라가 체코에서 초연된지 20년이 넘었다. 20년 동안, 여전히 이 작품 속의 여성들은 드라큘라에게 물리거나, 물리지 않거나 드라큘라만을 한결같이 사랑하면서 드라큘라의 순정을 증명하는 인물로 남는다. 게다가 한결같이 아드리아나만을 그리워하는 드라큘라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은 로레인은 결국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고 해서 엘로이즈가 드라큘라와의 삶을 보낼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 두 명은 그저 드라큘라의 순정을 증명하기 위한 운명을 지닌 존재일 뿐이다. 뒤집어 보면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이렇게까지 여성의 사랑이 아니면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할 길이 없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