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아홉째 주, 뮤지컬 속 여성 : 메리 포핀스

알다여성 주인공

2019년 아홉째 주, 뮤지컬 속 여성 : 메리 포핀스

이응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뮤지컬 영화 <메리 포핀스 리턴즈>

개봉 2018년 12월 18일
한국 개봉 2019년 2월14일
감독 Rob Marshall
각본 David Magee
음악 Marc Shaiman
원작 Mary Poppins by P. L. Travers
출연 Emily Blunt, Lin-Manuel Miranda, Ben Whishaw, Emily Mortimer, Julie Walters,
Dick Van Dyke, Angela Lansbury, Colin Firth, Meryl Streep

 

P. L. 트레버스의 소설 <메리 포핀스> 속의 유모인 메리 포핀스는 여러 면에서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아이들을 돌보는 유모라는 면에서 전형적인 여성의 모성을 대변하는 직업이면서도, 고용주가 남자든 여자든 여왕이든 은행가든 눈곱만큼도 굽히지 않는 정체불명의 당당함을 지녔다. 동화 속 요정처럼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가 하면, 세일럼의 마녀처럼 코브라를 깍듯이 대모로 모시는 인물이다. 제인과 마이클이라는 한국의 영희와 철수처럼 흔한 이름의 두 아이를 하룻밤 사이에 환상의 세계로 데려갔다가도, 다음 날 아이들이 전날 밤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완벽하게 잡아떼는 새침한 모습을 보여준다. 메리 포핀스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어두운 미래를 대비하게 해주는 것일까, 꿈과 환상의 유년시기를 연장하는 것일까? 분명한 사실은 돌아온 메리 포핀스의 목표는 어두운 미래를 대비하기 보다는 어두운 현실에서도 동화 같은 색감을 찾아주는 것이다.

줄거리

1964년 디즈니의 영화로 찾아왔던 메리 포핀스가 반세기를 지나 다시금 뱅크스 아이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전편 마지막에서 마이클과 아버지가 함께 날렸던 그 연을 잡고 내려온 메리 포핀스는 검은 모자에 꽃을 꽂고, 옆구리에 말하는 앵무새 손잡이가 달린 검은 우산을 낀 차림새 그대로다. 메리 포핀스가 돌볼 마이클의 아이들은 애너벨, 조지, 존 세 명이다. 이들은 어머니의 죽음때문에 일찍 철이 들었다. 

노동운동가가 된 제인은 독립했고, 마이클은 부모님의 집을 물려받아 살고 있지만 아내의 병원비 때문에 집을 담보로 내놓은 바람에 집을 빼앗길 처지가 된다. 어릴 때 메리 포핀스를 보았던 점등인(가로등의 불을 켜고 끄는 직업) 잭과 함께 세 아이가 환상의 세계를 즐기는 동안, 전 은행장의 아들인 윌리엄은 마이클의 아버지가 유산으로 남긴 주식을 숨겨서 마이클의 집을 가로채려 하면서 동시에 사람 좋은 척 자정까지 반환 기한을 준다. 

자정 몇 분 전, 메리 포핀스가 빅뱅의 시계를 되돌린 사이에 제인, 마이클과 아이들은 연에 붙어 있던 증권 증서를 들이미는데 성공하여 집과 재산, 행복을 되찾고 메리 포핀스는 다시 뱅크스 아이들과 어른들의 곁을 떠난다.

우선 메리 포핀즈는 백델 테스트를 가볍게 통과한다. 메리 포핀스가 제인, 톱시, 애나벨과 대화하는 장면으로 이미 충분하다. 이들의 대화 내용 가운데 ‘남자’에 관한 것은 잭과 제인을 이어주려는 몇 번의 암시 뿐이다. 그러나 정말 궁금한 사실 하나는 끝까지 채워지지 않는다. 이것은 1964년의 오리지널 영화에서도 채워지지 않았던 의문이다. 영화 속 메리 포핀스의 목표는 무엇인가?

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Yes, but...

메리 포핀스의 운명은 무엇일까? 메리 포핀스는 웃음가스가 없이도 방 안을 둥둥 날아오르고, 도자기 그림 속으로도 들어가고, 욕조 속에서 바다를 경험하는 인물이고, 말하는 앵무새 머리가 달린 우산을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꼭 들고 나가는 인물이지만, 이 사람의 운명이 무엇인지는 돌아온 메리 포핀스의 모습에서는 알기가 어렵다. 

1964년의 메리 포핀스에게는 분명히 자신만의 운명이 있었다. 어둡고 추운 런던 겨울의 끝을 같이 나고 봄바람으로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메리 포핀스는 사라진다. 마치 없었던 사람처럼. 그 짧은 기간 동안 메리 포핀스라는 인물은 잔소리 한 마디 없이 뱅크스 집안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어른부터 아이, 고용인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고 또 인생의 변화를 겪는다. 

하지만 2018년에 돌아온 메리 포핀스는 검은 옷을 입고 나타나 바람처럼 사라질 동안 오직 타인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다. 원작의 메리 포핀스나 1964년 영화 속의 메리 포핀스는 자신의 일정 속에 아이들을 무심한 듯 끌어넣어 아이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일상의 기괴함이나 로망을 보여주지만, 돌아온 메리 포핀스는 자신의 일상에 아이들을 끌어들이기 보다는 아이들을 ‘위로’하는 일정을 새로 짜는 형태를 갖추어서 더욱 더 그 자신만의 무언가가 사라져버린다. 

돌아온 메리 포핀스의 성격은 1964년 영화 속의 메리 포핀스보다 좀 더 새침하면서도, 그의 스케줄은 아이들 위주로 다정하게 맞춰져 있어서 더욱 더 메리 포핀스의 운명이 잘 보이지 않는다. 마녀 같고 요정 같고 세계인 같으면서도 런던에만 존재할 것 같은 이 사람은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철저하게 ‘가정’에 매인다. 마치 평소에는 다른 모습, 다른 일을 하다가도 무심하게 아이들의 인생에 끼어드는 것 같은 원작 속의 메리 포핀스와 꽤 많이 다르다.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는가?
Yes but...

메리 포핀스로 인해 파생된 유모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최근에 개봉한 유명한 영화를 들자면, 아마도 배우 엠마 톰슨이 만든 영화 <내니 맥피>의 유모 맥피일 것이다. 내니 맥피의 목표는 명확하다. 흩어질 위기에 처한 가족의 봉합이다. 재밌는 것은 맥피도 메리 포핀스도 처음 도착하자마자 해내는 미션이 아이들을 얌전히 재우는 것이다. 아이들을 재우는 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큰일인 듯하다. 

맥피는 아이들이 협동심을 배우고 서로에 대한 애정을 회복할수록 추했던 얼굴이 아름다워져 가면서 미션 완수를 향해 명확하게 다가간다. 하지만 메리 포핀스의 미션은 뭘까? 메리 포핀스가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려는 것은 무얼까? 아니, 메리 포핀스는 정말로 아이들에 무언가를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오기는 하는 것일까? 

처음 메리 포핀스가 뱅크스 아이들 앞에 나타났던 1964년의 영화 속으로 돌아가 보면, 이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큰 위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위기는 단 하나, 별난 아이들을 견디지 못한 유모가 일을 그만둔 것 뿐. 문제를 일으키는 아이들이라고 묘사되었지만 제인과 마이클은 별난 구석이라고는 없는 평범한 아이들일 뿐이다. 뱅크스의 가족 가운데 별난 사람이 한 명 있다면 그것은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하는 어머니 위니프레드다. 위니프레드는 여성 참정권 시위를 위해 자주 집을 비우고 이 때문에 아이들에게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위니프래드 덕분에 영화 <메리 포핀즈>는 디즈니 최초의 페미니즘 영화로 등극했다. 

1964년은 미국에서 민권법이 제정된 해다. 민권법에 의해 미국에서는 인종과 성별에 의한 차별이 금지되었다. 이런 시대적 영향 덕분에 영화 <메리 포핀즈>도 뱅크스 씨의 변화를 통해 일면 미국의 히피즘과 저항 문화의 승리를 담았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면 오히려 여성 참정권 운동을 하는 위니프래드를 가정과 아이들을 팽개치고 참정권 운동을 위해 집을 비움으로써 가정의 위기를 초래한 요인의 하나로 지목하고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시대 상황은 위니프래드로 하여금 여성 참정권의 의의를 소리 높여 노래하게 한다. 또한 메리 포핀스가 뱅크스씨의 강압적인 명령에 콧방귀로 응대하는 원작의 장면을 그대로 살리면서 디즈니는 ‘본의 아니게’ 페미니스트 주인공의 당당한 모습을 살리게 되었다. 시대가 등을 떠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메리 포핀스> 이후로 근 오십년간 쏟아져 나온 디즈니 공주님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 

소설 속의 메리 포핀스는 결코 밝은 캐릭터가 아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그림 속의 회전 목마를 타러 떠나는 환상을 실현하지만, 자신의 모습이 비친 거울을 향해서만 아주 희박하게 웃음 짓는 인물이다. 메리 포핀스는 마치 아이들에게 다가올 어른의 인생이 지닌 어둠, 아니 아이러니를 조금이라도 맛보게 해주려는 인물처럼 보인다. 환상 속에서 아이들이 만나는 인물들도 결코 모두 밝고 맑고 명랑한 인물들이 아니다. 

하지만 돌아온 메리 포핀스의 환상 속에서는 대부분의 인물들이 동화처럼, 그리고 파스텔조의 색감처럼 달달하다. 여기에 균열을 가하는 환상 나라 캐릭터는 도자기가 깨진 틈을 타서 보물을 훔치려는 도둑들뿐이다. 1964년의 메리 포핀스가 아이들을 가정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나타나지 않은 것과 달리, 2018년의 메리 포핀스는 위기에 처한 가정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다. 1964년의 위기는 뱅크스씨의 실직이지만 이는 뱅크스씨의 발전을 위한 필수 요소였을 뿐, 메리 포핀스를 뱅크스가로 불러들이는 직접적인 요인은 아니다. 메리 포핀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메리 포핀스는 가정의 구원자 내니 맥피의 라이벌이라도 되고 싶었던 것일까?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Yes

성격의 일관성을 따지자면 메리 포핀스처럼 초지일관인 캐릭터도 없다. 새침하지만 다정하고, 다정하면서도 묵묵하다. 돌아온 메리 포핀스는 여기에 제인과 잭을 이어주는 중매쟁이 역할까지 떠맡는다. 1964년 버전에서 메리 포핀스가 바트와 은근한 러브 라인을 형성했던 것과 달리 돌아온 메리 포핀스는 그 누구와도 감정적 연결고리를 만들지 않는다. 더 새침해 보이면서 더 다정해졌고 더 오지랖이 넓어졌다. 이 작품은 전적으로 메리 포핀스의 이러한 성격이 끌고 간다.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Yes

메리 포핀스가 뱅크스 집안에 나타나고, 사라지기까지 연애사는 주요 요소로 등장하지 않는다. 제인과 잭을 만나게 해주기 위해 지름길이 아닌 돌아가는 길을 택하지만, 그 때마저도 푸시는 은근하게 이루어질 뿐이다.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Yes but...

발전을 이루는 인물은 메리 포핀스가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다. 1964년의 영화에서 메리 포핀스에 의해 가장 큰 변화를 이룬 인물은 제인과 마이클이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였다. 가부장적이고 고압적이며, 자신의 말이 집안에서는 곧 법과 같다고 생각했던 아버지는 메리 포핀스에게 품었던 반감이 옅어지면서 점차 아이들에게 지닌 자신의 영향력이 무엇인지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인물로 변해한다. 수입 한 푼 없는 실업자가 될지라도 아이들에게 명령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어하는 아버지로 드라마틱하게 변한다. 그리고 근엄한 은행장 앞에서 춤을 추는 것으로 해고에 답한다. 

돌아온 메리 포핀스에는 그렇게까지 드라마틱하게 변화하는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아마도 이 영화의 가장 약한 고리일 수도 있다. 마이클과 제인은 이미 유년 시절에 만난 메리 포핀스 덕에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긍정적인 성장기를 보냈고, 비록 마이클이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치긴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바로 후회할 정도로 감수성이 넘친다. 이들의 어려움은 전적으로 돈밖에 모르는 은행장 윌리엄 때문에 생기는 경제적 위기 뿐이다. 메리 포핀스가 경제적 위기를 해결하러 하늬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인물이었던가? 

돌아온 메리 포핀스로 인한 변화는 크게 두 가지다. 마이클과 아이들의 경제적 위기가 해결되어 행복을 되찾은 것, 제인과 잭이 사랑에 빠진 것. 어쩌면 이 결과는 금전의 부재가 불행으로 직결되는 2019년에 가장 부합하는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전작과 달리 이 작품의 인물들은 드라마틱한 성격적 변화를 일으키지는 않는다. 그저 가지고 있던 좋은 면을 되찾을 뿐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수많은 아름답고 즐거운 장면에도 불구하고 그저 장면들의 나열만 계속되는 느낌을 준다.

종합 별점 ★★★★

복잡다단한 마음

메리 포핀스는 매우 복합적인 인물이다. 어떤 한 면으로만 해석할 수가 없다. 누군가는 이렇게 공격할 수도 있다. 페미니스트라면서 외모에 집착해서 거울만 보면 사족을 못 쓴다고.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렇게 바라본 거울 안에서 빙긋 웃는 것은 바로 메리 포핀스 자신이다. 메리 포핀스의 자존감은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타인을 외모로 판단하거나 깎아내리지 않는다. 메리 포핀스는 제인과 마이클을 비롯해 뱅크스가의 아이들에게 타인의 가치를 외모와 계급에서 찾는 것만큼 어리석은 게 없다고 분명하게 가르치는 인물이다. 

하지만 돌아온 메리 포핀스에서는 그러한 면모가 확실히 줄었다. 전작에서 충분했다고 생각한 것일까? 이 영화 속에는 영국이라는 나라가 지닌 지엽적인 특성과 전작을 사랑하는 팬이라면 비명을 지를 만한 오마쥬들이 가득하다. 메리 포핀스의 먼 사촌 톱시(메릴 스트립)만 해도 영국의 오페레타 작가 윌리엄 길버트가 만들어낸 '뒤죽박죽'이란 뜻의 톱시 터비에서 따온 이름이다. 린 마뉴엘 미란다가 연기한 잭이 톱시와 마지막 인사를 하며 톱시 터비라고 말할 때, 길버트와 설리반의 팬들은 나직하게 탄성을 지를 것이다. 

많은 잔재미를 담고 있고, 화려한 까메오들이 출동하지만, 큰 한 방이 없다. 그 이유는 소설 속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에피소드인 달을 뛰어넘는 암소나 한밤중의 동물원 이야기 같은 분명하고도 감동적인 여성주의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메리 포핀스는 반 세기를 지나 두 번이나 영화를 통해 세상을 방문했지만, 여전히 원작 안의 가장 강력한 에피소드는 디즈니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이다. 우리는 언제쯤 달을 뛰어넘는 암소의 모습을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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