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서른일곱번째 주, 뮤지컬 속 여성 : 베스

알다뮤지컬여성 주인공

2019년 서른일곱번째 주, 뮤지컬 속 여성 : 베스

이응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오페라  <포기와 베스>

초연 1935년 9월30일, Colonial Theatre (Boston)
1935년 10월 10일, Alvin Theatre, New York City
대본 DuBose Heyward
가사 DuBose Heyward, Dorothy Heyward, Ira Gershwin
작곡 George Gershwin
원작 DuBose Heyward의 소설 ‘Porgy’ (1925)
연출 Rouben Mamoulian
합창감독 Eva Jessye
출연 Anne Brown(Bess), Todd Duncan(porgy), John W. Bubbles (Sportin'), Ruby Elzy(Serena)


시드니 포이티어와 도로시 댄드리지가 주연했던 1959년 영화 포스터

 

2019~2020 시즌,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는 삼십년 만에 처음으로 조지 거쉰의 오페라 <포기와 베스>를 올린다고 발표했다.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1935년에 초연되었을 때 흑인 배우들이 흑인 배역을 맡아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켰다. 메트 오페라에서 지난 30년간 한 번도 공연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대규모 오페라로 다시 돌아왔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한국에서는 한 번도 원작 그대로 공연된 적이 없는 비운의 오페라다. 2018년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오페라단의 프로덕션이 보여준 초청 공연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오페라  <포기와 베스>는 조지 거쉰이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 부은 작품이다. 그 전까지 상업 뮤지컬만 써왔던 그가 가장 미국적인 장르인 재즈와 흑인 영가를 대규모 오케스트라 곡으로 작곡하여 서구의 그랜드 오페라에 지지 않는 미국 만의 포크 오페라 장르를 세우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가지고 시작한 작업이었다. 

그는 작품 소재로 메이플라워호가 아닌 흑인 노예들의 이야기인 <포기>를 선택했다. 비록 시인 랭스턴 휴즈가 백인 작가가 흑인들을 살아있는 인물로 그렸다며 호평을 하긴 했어도, 여전히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은 전형적인 ‘게을러서 불행한’ 민스트럴 쇼 캐릭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민스트럴Minstrel은 남북전쟁 이후 유행하던 공연 장르다. 백인 배우가 얼굴에 재를 이겨서 검게 바르고 입술은 과장해서 붉게 바른 뒤 (Blackface) 어리석고 백인 주인의 말을 듣지 않다가 결국 들키지만 관대한 주인 덕에 용서를 받거나 벌을 받는 흑인을 연기한다. 혹은 남부의 농장을 떠나 북부 공장에 취직했다가 고향을 그리워하며 울며 노래하는 등의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곡 가운데 하나로 알려진 스티븐 포스터의 포크송 “Oh! Susanna” 역시 민스트럴 공연에서 불리워지며 유명해졌다. 지극히 인종차별적인 장르지만 미국에서는 1954년까지 어린이용 만화로 방영될 정도로 전국적인 인기를 모았다. 미국 최초의 유성 영화인 <Jazz Singer(1927)>의 주인공 잭(알 존슨 분)의 직업도 민스트럴 배우다.

하지만 <포기>는 최소한 백인의 동정심 어린 시선으로 흑인을 내려다 보는 작품은 아니었다. 선량한 백인이 나타나 고통 받는 흑인을 구원하지도 않는다. 작품 속 흑인들은 그들의 커뮤니티에서 그들의 욕망으로 생생하게 살아간다. 이 인물들이 흑인들의 ‘천성’이라는 전형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이후 새로운 연출가들의 몫이다. 이번 시즌에 올라오는 프로덕션은 2018년 런던에서 초연된 버전으로 제임스 로빈슨이 연출을 맡았다.

앤 브라운의 베스

1933년, 소프라노 가수인 앤 브라운은 줄리어드 음대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유명 작곡가 조지 거쉰이 사우스 캐롤라이나를 배경으로 흑인 이야기인 ‘포기’를 뮤지컬로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팬을 들어 그에게 편지를 썼다. 그 중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앤 브라운은 줄리어드 스쿨에 입학한 최초의 흑인 학생이었다. 당시 흑인과 백인은 한 무대에 설 수 없었지만, 앤 브라운은 인종차별을 깨부수며 전진하던 거침없는 스무 살의 신성이었다. 거쉰은 앤 브라운의 편지에 바로 오디션을 보러 오라고 제안했다. 거쉰의 비서의 전화를 받은 앤 브라운은 피아노과의 친구를 반주자로 섭외해 독일 가곡들을 준비해 나타났다. 브람스와 슈만의 노래 몇 곡을 부르고 난 뒤 거쉰은 흑인 영가를 요청했다. 

앤 브라운은 실망했다. 결국 이 유명한 유태인 백인 작곡가가 흑인에게서 원하는 것이 기존의 백인들과 다를 게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 곡을 준비하지 않았다고 대답하자 거쉰이 앤의 눈을 들여다 보며 말했다. 

이 작품은 흑인들의 이야기에요. 그래서 흑인 영가 풍의 노래가 많이 들어가야 합니다. 당신 목소리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영가풍의 노래를 들려줄 수 있나요?

앤은 반주 없이 할 존슨의 곡 "A City Called Heaven"을 불렀다. 이후 앤 브라운은 조지 거쉰이 뮤지컬 <포기와 베스>를 쓰는 길의 등대가 되었다. 거쉰은 소설이 쓰여진 배경이 된 곳으로 원작자와 함께 작품을 쓰러 가기도 했다. 결국 작품을 완성한 건 뉴욕에서였는데, 노래가 하나씩 만들어질 때마다 앤 브라운에게 전화를 걸어 노래를 부르러 와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앤 브라운이 가장 사랑한 노래는 당연한 일이겠지만 "Summertime" 이었다. 어떤 노래를 부르든 앤은 이 노래를 먼저 부르고 시작했다. 앤은 거쉰의 작품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모두 거쉰에게서 직접 들었다. 남자 노래든 여자 노래든 가리지 않고 불렀고, 작품이 완성될 즈음에는 거의 모든 노래를 다 외워 부를 수 있을 정도였다. 

앤 브라운이 "Summer Time" 을 부르는 모습 1947년 영화 "Rhapsody in Blue"의 한 장면.

보스턴으로 트라이아웃 공연을 하기 위해 떠나기 전날 거쉰은 앤을 점심에 초대했다. 그 자리에는 거쉰은 흥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이 작품은 지금부터 영원히 <포기와 베스>라는 제목으로 불릴 거에요.

그 직전까지의 제목은 <포기>였다. 원작 제목도 포기였다. 베스는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 소설도 연극도 장애가 있는 포기의 불굴의 의지와 선량함, 용기가 주요 내용이었다. 그러나 앤의 목소리가 모든 것을 바꿨다. 앤이 아니었다면 이 작품은 지금도 그저 <포기>로 남았을 것이다. 베스는 주인공이 되지도, 입체적인 인물로 살아가지도 못하고, 포기를 꾸며주는 인물로 지나갈 수도 있었다. 

앤 브라운은 최초의 베스였고 죽을 때까지 거쉰의 베스로 불렸다. 여담이지만 이 작품의 합창 감독이었던 에바 제시에는 흑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합창단 지휘자가 되었고 뮤지컬의 합창 감독이 된 인물이다. 이 작품은 여러모로 유색인종의 여성에게 의미가 깊은 작품일 수 밖에 없다.

<포기와 베스>가 올라갔던 무렵에는 백인들이 만드는 작품에서 흑인과 백인이 같은 무대에 오를 수 없었다. 남부지방에서 그랬다가는 나뭇가지에 목이 매달려 죽을 수도 있었다. 북부지방과 뉴욕은 좀 더 자유로웠지만 여전히 흑인 배역은 블랙 페이스를 한 백인 민스트럴 배우가 연기했다. 흑인들은 백인들과 같은 자리에서 공연을 관람할 수 없었다. 그들은 할렘에 있는 흑인 전용 극장에 가거나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 있는 흑인들의 날(니그로 데이)에만 극장에 출입할 수 있었다. 그들이 만든 음악인 재즈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었음에도.

줄거리

배경은 1920년대, 사우스 캐롤라이나의 바닷가의 흑인 빈민가 캣피시로우. 한 때는 부자 백인이 살던 저택이었지만 지금은 슬럼가가 되어 흑인들이 살고 있다. 너 나없이 가난한 그 곳에도 빈부 격차는 있다. 양아치 크라운이 정부인 베스를 끼고 나타나 도박을 하다, 어부인 로빈스와 말싸움이 벌어진다. 크라운은 로빈스를 칼로 찔러 죽이고 달아난다. 

다리를 저는 포기는 베스를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터라, 갈 곳을 잃은 베스를 자신의 누추한 집으로 초대한다. 마을 사람들과 포기는 베스가 평범한 인생을 살겠다고 결심한 줄 알지만, 살인를 저지르고 멀리 도망간 줄 알았던 크라운을 옆 섬인 키티와에서 조우하면서 베스의 마음은 크게 흔들린다. 거듭 그와 밀회를 하면서도 포기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리던 베스. 

무서운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베스 앞에 크라운이 나타나 포기의 장애를 비웃으며 베스가 자신과 갈 거라고 장담한다. 베스는 크라운에게 저항하고, 그 모습에 힘을 얻은 포기는 크라운을 찔러 죽이고 외친다. “베스, 너에게는 내가 있어!” 베스는 죽은 전 애인과 포기를 번갈아 보며 착잡한 마음에 사로잡힌다. 

2019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의 드레스 리허설 “Bess, you is my woman now” 1막. Eric Owens(포기), Angel Blue(베스)

경찰이 와서 포기를 체포해 가지만 사람들은 포기의 살인에 대한 증언을 거부하고, 포기는 끝까지 묵비권을 행사해 결국 일주일 만에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포기는 나오자마자 베스를 찾는다. 하지만 베스는 마약상 스포틴의 유혹을 받던 상황. 뉴욕으로 가서 자신과 함께 몸을 팔며 살자는 스포틴의 말과 마약의 유혹에 못 이겨 떠나버렸다. 포기는 베스를 되찾겠다며 뉴욕으로 떠난다.

비록 1935년에 개막한 작품이지만 이 작품은 벡델 테스트를 통과한다. 베스와 클라라, 세레나 등의 캣피시로우에 사는 여성들은 남자들을 대화의 소재로 삼기도 하지만, 서로에 대한 걱정, 아이에 대한 염려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엇보다 베스는 실제로 무대 위에 등장하는 누구에게도 진정한 마음을 주지 않는다. 베스를 뒤흔드는 것은 남자가 아니라,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는 자기 자신의 처지와 그런 사회다. 앨리스 워커의 소설 <컬러 퍼플>에서 보듯이 흑인 사회는 백인 사회보다 더 마초적이다. 게다가 1920년대의 흑인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결코 독립적이지 않았다.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했고 의지해야만 했다. 그런 상황에서 베스는 성질 더러운 크라운, 마약쟁이 스포틴, 그리고 포기에 의해 마치 소유물처럼 맡겨지며 삶을 연명해 간다.

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Yes, but...

베스는 남자들의 소유물처럼 휘둘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만의 운명을 분명히 갖고 있다. 사실을 말하자면 여기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요한 남성 인물들은 모두 베스에게 목을 맨다. 겉으로 보면 베스가 이들의 소유물이 되어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크라운과 스포틴은 건달답게 베스의 몸을 팔아 그 돈을 가로채는 인물들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어리고 아름다운 베스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끊임없이 베스에게 뉴욕으로 함께 가자고 꼬시는 스포틴은 베스를 팔아 자신의 정착 자금을 마련할 속셈이기에 결코 베스 없이는 뉴욕으로 향하지 않을 인물이다. 

마침내 포기가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에 잡혀가자 그는 홀로 남은 베스를 꼬시며 공짜로 마약을 베푼다. 베스는 있는 힘을 다해 마약을 거절하지만, 그는 베스의 문 앞에 마약 봉지를 두고 몰래 지켜본다. 마약을 사용한 베스는 포기와 살 때는 입지 않았던 예전에 입던 옷을 찾아 꺼내 입고 깔깔 웃으며 스포틴과 함께 뉴욕을 향해 떠난다. 과연 베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베스는 정말 뉴욕으로 갔을까? 우리는 알지 못한다.

대표곡인 "Summer Time" 을 부르는 클라라 역의 Golda Schultz.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드레스 리허설.

이 작품은 베스가 ‘평범한 인생’을 꿈꾸고 있을 거라고 알려주지만, 실제로 그런 이야기를 베스의 입을 통해서 들을 수는 없다. 베스는 아주 어려서부터 길거리에서 자랐고 다른 인생은 알지 못한다. 아름다운 베스를 멀리서 바라보며 사랑을 키우는 포기는 베스에게 다른 기회가 주어진다면 베스는 남들처럼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누구도 베스가 정말 원하는 인생이 결혼해서 아기 낳고 집을 치우고 일하러 간 남편을 기다리는 삶인지를 물어보지 않는다. 아니, 물어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므로. 

베스도 포기와 함께 지내는 동안 아주 잠시 동안은 그런 꿈을 꾼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없는 하루 하루, 가난하고 고되지만 마음은 편한 일상들. 그러나 그런 일상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게 베스의 잘못은 아닐 터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이웃 섬으로 소풍을 떠난다고 들뜨자 베스도 한껏 들뜨지만 다리가 불편해서 갈 수 없는 포기 때문에 소풍을 단념하기로 한다. 베스가 가지 않고 자신의 곁에 남아 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도 포기는 베스에게 소풍을 가라고 등을 떠민다. 베스가 포기를 사랑했다면,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알고 남아서 포기와 둘만의 소풍을 즐겼을 것이다. 하지만 베스는 포기를 사랑하지 않았기에, 그 말이 거짓말임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소풍을 떠나고 결국 그곳에서 옛 애인 크라운과 다시 조우한다. 

베스의 운명은 사실 베스 그 자신이 만든다. 그 자신의 내면에 있는 펄펄 살아서 날뛰는 어리고 생생한 베스가 이끌어 가는 것이다.

일러스트 이민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는가?
No, but...

베스의 주변인들은 베스가 클라라나 세레나처럼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정착을 해야 한다고 여긴다. 그 생각에는 남녀의 차이가 없다. 하지만 베스는 그들을 가만히 볼 뿐이다. 베스의 눈에 비친 이들은 돈벌이가 되는 일이 없고, 어부들은 바다에서 허구헌날 허탕을 쳐서 칼에 찔려 죽은 이웃을 장례 지낼 돈 한 푼 없으면서도 어디서 돈이 솟아나는지 해가 지면 술집에 모여 밤새도록 도박을 하고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들이붓는다. 이런 흑인들의 패배적이며 미래 없는 모습은 작품이 끝나도록 조금도 개선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것이 마치 흑인들 그 자신들의 천성이기라도 한 듯 그려놓은 것이 바로 이 작품의 한계다. 

외부에서 혹은 하늘에서의 구원을 바라는 존재들이 벌레처럼 우글대며 사는 이곳에서 베스는 벗어나고 싶다. 화려한 삶을 살고 싶고, 이곳보다 좋은 곳에서 술을 마시고 싶고, 더 좋은 옷을 입고 싶다. 한 편으로는 그런 인생을 원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가 든다. 그런 인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파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누군들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베스의 앞날은 그야말로 암담할 뿐이다. 

어쩌면 베스에게는 뉴욕이 진정한 새로운 기회일 수도 있다. 대도시에서 베스는 몰랐던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보여준 흑인들의 모습은 베스의 최후의 결코 긍정적이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고는 해도 베스의 변신을 일말이라도 기대하게 된다. 비록 마약에 취한 상태라고는 해도 발랄하게 이 따위 동네 다시는 오지 않겠다며 자신의 모습으로 살겠다고 외치고 떠났던 베스의 마지막 모습 때문이다.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No

앤 브라운에 의해서 입체적이고 욕망하는 캐릭터로 완성된 베스는 어느 한 면만 지닌 인물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베스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남성들을 사랑하지 않을 정도의 현명함을 지니고 있다. 베스는 순진하면서도 음흉하고, 음흉하면서도 자애롭고, 자애로우면서도 제멋대로다. 

베스는 동네에서 가장 나이 많은 여인의 말처럼 그 동네에서는 견딜 수 없는 변덕쟁이다. 베스가 바라는 것은 딱히 부자가 되는 게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베스는 지루한 일상만은 견딜 수가 없다. 베스가 그 와중에 유일하게 시선을 준 것은 이웃들의 어린 아기들이다. 세레나가 폭풍에 휩쓸려 가는 남편을 구하겠다며 자신의 아기를 베스에게 맡기고 폭풍 속으로 달려나갈 때, 베스는 세레나를 말리면서도 품 안에 안긴 아기에게 얼굴을 묻고 아기를 안은 기쁨에 사로잡힌다. 

이러한 모습이 다른 캐릭터였다면 의아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베스가 처음 아기를 향해 두 손을 뻗는 순간, 그 때의 의외성이 바로 포기로 하여금 베스가 자신을 사랑할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는 순간으로 작용하면서 베스의 성격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사실 베스가 아기를 안은 순간 본 것은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이다. 베스는 자신이 듣지 못했던 자장가를 불러주며 아기를 어른다. 

베스가 결국 스포틴의 마약에 손을 댄 것은 마약 자체의 유혹보다 지루한 일상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포기가 살인죄로 잡혀간 이상 베스는 다시 세상에 혼자 버려지는 것이다. 베스는 혼자 집에 갇혀 포기를 기다리는 인생이 아니라 다른 인생을 선택한다. 

1935년의 초연에서 이런 베스의 선택에 관객들이 한탄을 했다면, 2019년의 관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베스는 풀 죽은 어깨로 캣피시로우를 떠날까, 춤추고 웃으며 떠날까? 이 모든 것은 연출가의 의도에 달려 있다. 하여, 베스는 시대와 함께 성장하는 캐릭터다.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Yes, but...

베스가 구애받는 것은 남자다. 스스로 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베스는 어찌 됐든 누군가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연애라는 감정 때문은 아니다. 베스가 크라운이든 스포틴이든 포기든 선택하는 이유는 명백하게 생존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에 뉴욕으로 가겠다고 결정할 때마저도 연애 감정은 전혀 개입하지 않는다. 베스에게 있어서 남성은 그를 살아있게 해주는 수단이고, 그의 결정은 살기 위한 결정이다.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Yes, but...

베스는 2막의 초반까지는 조금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크라운과 다닐 때 입었던 소위 ‘야한’ 옷들을 벗어놓고 다른 동네 여자들처럼 수수한 옷으로 갈아입는다. 포기의 집을 청소하고 요리를 해서 포기를 기쁘게 한다. 하지만 동네의 가장 나이 많은 여인은 베스가 변하지 않을 거라고 예감한다. 

베스의 결정적인 변화는 사실 크라운을 다시 만났을 때 나타난다. 크라운은 베스가 자신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지만, 베스는 크라운을 만나 몸을 섞으면서도 자신이 이제는 크라운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그 순간 베스는 욕망에 충실한 인물이 된다. 그 다음 주에 크라운을 만나기 위해 다시 섬을 찾으면서도 태연하게 포기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크라운을 사랑하지 않기에 포기에게 숨길 것이 없기 때문이다. 

크라운은 베스가 장애까지 있는 거지인 포기를 사랑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포기를 사랑하냐고 묻는 크라운에게 베스는 고개를 흔드는데, 그것마저도 진실이다. 하지만 베스는 그렇다고 해서 크라운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그는 베스를 혐오하고 조롱하는 크라운을 보며 두려움보다는 경멸감을 느낀다. 더이상 크라운이 두렵지 않은 존재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 때, 포기가 크라운을 죽이고 베스에게 이제는 자신이 베스의 남자라고 소리친다. 그 순간 베스는 직감한다. 자신을 때리거나 팔지 않아도 포기 역시 크라운과 같은 남자라는 사실을. 결국 소유권 분쟁에 낀 신세가 되었음을. 

포기가 경찰에 잡혀가고 찾아온 스포틴은 사실 베스의 내면의 소리이기도 하다. 그곳에 남아 있으면 베스는 포기의 소유가 된다. 베스는 떠나는 것을 선택한다. 베스가 원하는 방식으로 행복해질 수 없다 하더라도, 거대한 도시에서 자기 자신을 마주할 기회가 있기를 바래보자. 이 열린 결말에서 포기는 베스를 되찾겠다며 뉴욕으로 떠나지만, 그 모습을 보는 감상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예전에는 포기가 순정의 상징처럼 보였다면 지금은 스토커처럼 보이는 것은 왜일까. 베스가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다는 것을 포기보다 잘 아는 사람도 없을텐데 말이다.

뮤지컬 <포기와 베스>가 워싱턴으로 투어 공연을 갔을 때 포기 역을 맡았던 토드 던컨은 흑인 손님들을 극장에 초대하고 싶었다. 흑인과 백인이 한 자리에서 공연을 보는 것이 불법이던 시대다. 토드 던컨은 그게 안 된다면 출연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고, 마침내 워싱턴에서 처음으로 흑인과 백인이 나란히 앉아 공연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인종을 넘어선 연대가 이루어지는 감동적인 순간에도 성별의 연대가 이루어지까지는 왜 그토록 오랜 세월이 지나야만 하는 것일까? 앤 브라운이 만들어 놓은 베스는 아직도 해석될 여지가 무궁무진하게 남아있다. 베스는 마지막 순간, 자신의 발로 자신의 행선지를 정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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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뮤지컬 속 여성

01

2019년 첫째 주, 마리 퀴리

02

2019년 둘째 주,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

03

2019년 셋째 주, 오목

04

2019년 넷째 주, 클레어

05

2019년 다섯째 주, 알렉산드라 오웬스

06

2019년 일곱째 주, 그레첸

07

2019년 여덟째 주, 제루샤 '주디' 애봇

08

2019년 아홉째 주, 메리 포핀스

09

2019년 열번째 주, 핑크 레이디

10

2019년 열한번째 주,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11

2019년 열두번째 주, 아랑

12

2019년 열세번째 주, 샬롯 드 베르니에

13

2019년 열네번째 주, 나팔, 혜란, 이은숙

14

2019년 열다섯번째 주, 에바 호프

15

2019년 열여섯번째 주, 1976 할란카운티의 여성들

16

2019년 열일곱번째 주, 앤 보니, 메리 리드

17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1) 마법에 걸린 사랑

18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2) 바그다드 카페

19

2019년 스물한번째 주, 빨래

20

2019년 스물두번째 주, 자스민

21

2019년 스물세번째 주, 심청

22

2019년 스물네번째 주 안나 아르카지예브나 카레니나

23

2019년 스물다섯번째 주, 조왕, 덕춘

24

2019년 스물여섯번째 주, 테레즈 라캥

25

2019년 스물일곱번째 주, 음악극 <섬>

26

2019년 스물여덟번째 주, 기네비어와 모르가나

27

2019년 스물아홉번째 주, 허초희

28

2019년 서른번째 주, 강향란, 차순화

29

2019년 서른한번째 주, 진

30

2019년 서른두번째 주, 개비, 바비, 도나, 울리

31

2019년 서른세번째 주, 록산

32

2019년 서른네번째 주, 옹녀

33

2019년 서른다섯번째 주, 엠마 커루

34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3) 갓 헬프 더 걸

35

2019년 서른여섯번째 주, 마리 앙투와네트

36

2019년 서른일곱번째 주, 베스

현재 글
37

2019년 서른여덟번째 주, 그 여자

38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4) 호커스 포커스

39

2019년 마흔세번째 주, 루미 헌터

40

2019년 마흔다섯번째 주, 아드리아나와 엘로이즈

41

2019년 마흔여섯번째 주, 레베카 드 윈터스

42

2019년 마흔일곱번째 주, 아이다

43

2019년 마지막 주, 암네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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