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서른한번째 주, 뮤지컬 속 여성: 진

알다뮤지컬여성 주인공

2019년 서른한번째 주, 뮤지컬 속 여성: 진

이응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뮤지컬 <스웨그에이지: 외쳐, 조선!>

초연 2019년 6월18일~ 8월25일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대본 박찬민
작곡 이정연
연출 우진하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풍 속에서 힙합 오디션인 <쇼미더머니> 역시 매해 시즌을 거듭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 힙합 오디션을 조선시대로 옮겨, 거기에 만백성의 즐길 자유를 외친다는 내용을 얹은 작품이 <스웨그에이지 : 외쳐, 조선!> 이라고 하면 맞을까? 이 작품은 역사적인 배경부터 등장인물까지 모두가 허구라서 역사적 사실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마음 놓고 즐길 일만 남은 듯한 이 작품 속의 인물들은 과연 이러한 즐거움에 부합할까?

줄거리

제작사에서 제공한 시놉시스에 따르면, 극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조선에서는 ‘시조’가 국가 이념이다. “삶의 고단함과 역경을 시조 속에 담아 훌훌 털어버렸던 백성들은 역모 사건으로 시조 활동이 금지되면서 자유도 행복도 잊은 채 살아간다. 그러던 중 15년 만에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조선시조자랑이 열리게 되고, 탈 속에 정체를 감추고 양반들을 파헤쳐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자 조직된 비밀시조단 골빈당은 이것을 기회 삼아 조선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한편, 왕의 비선실세이자 시조대판서인 홍국은 자신에 대한 악덕한 소문을 퍼트리고 다닌다는 이유를 들어 골빈당을 잡으려는 음모를 꾸미는데...”

십오년 전, 시조자랑에서 우승하여 선왕의 신임을 받았던 서민 출신의 시조대판서 자모가 홍국의 음모로 역모죄로 몰려 죽임을 당한다. 그 여파로 시조가 금지된 후, 백성들은 얼음동굴에 차린 국봉관 등에서 몰래 시조를 읊으며 즐긴다. 

자모의 아들 단은 고아로 자라 양반 흉내를 내며 거리에서 살아가다 국봉관의 '시조 아이돌' 진으로부터 초대를 받는다. 국봉관에서 단은 골빈당과 마주친다. 골빈당의 일원인 진은 사실 홍국의 딸이지만, 돌아가신 어머니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국봉관의 아이돌로 활동 중이다. 골빈당 리더 십주는 자모의 부하 출신으로 백성들을 깨우치기 위해 시조를 보급하는 일을 해왔는데, 자모의 죽음 후 오랫동안 그의 아들인 단을 찾아왔다. 

단을 찾은 십주는 자모의 유품인 붓을 건네준다. 천방지축 단은 15년 만에 시조자랑이 열리자 음모일 수도 있다는 진의 주의에도 별일이야 있겠냐며 이름만 바꾸면 된다며 참가한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를 이미 다 알고 있던 홍국에 의해 단은 골빈당과 함께 본선에서 하옥된다. 이 과정에서 처음으로 진의 정체를 알게 되고, 자기만 빼고 다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안 단은 골빈당을 떠나버린다. 

진으로부터 너의 신념을 찾으라는 충고를 들은 일본인 노조는 홍국의 그림자로 살던 인생을 청산하고 진과 골빈당을 구해준다. 최종 본선에 난입한 단과 골빈당은 홍국의 선왕 시해 음모를 밝히고 왕은 이때를 놓치지 않고 홍국을 하옥한다. 진은 끌려 나가는 아버지를 따라 나가고, 이내 골빈당과 백성들, 단은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과연 그들이 원하는, 온 백성이 자유롭게 시조를 노래할 수 있는 세상이 왔을까?

이 작품 속에는 두 명의 여성이 자신의 이름으로 등장한다. 한명은 진이고 나머지 한 명은 골빈당의 순수다. 순수는 과묵한 무인으로 등장해 대사 없이 눈으로 칭찬하기, 눈으로 욕하기 등으로 일관하다가 작품 말미에 가서야 자신의 사연을 희망사항으로 노래한다. 자신의 말실수로 아버지가 죽었다며 과묵의 이유를 알려주는데, 이런 사연 역시 홍국과 관련된 사건일 거라고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순수가 침묵을 유지하기 때문에 순수와 진 사이의 구체적인 대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 중 누구도 다른 어떤 인물과도 애정 전선을 형성하지 않기 때문에 벡텔 테스트를 완벽하게 통과하지는 않더라도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을 정도는 통과한다. 사실 이 작품 속의 진은 여자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철저한 조연이다. 그것도 주인공의 행복을 위해 가진 모든 걸 희생하고 소멸되는 인물이다.

일러스트 이민

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Yes, but...

진의 운명은 가혹하다. 운명 파트에서 어쩌면 진의 이야기는 끝나버릴 수도 있다. 진에게 주어진 운명은 아버지인 홍국의 악행을 폭로하고 단과 활빈당의 활로를 세워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이런 진의 희생이 가져오는 진짜 결과는 무엇일까? 

진과 활빈당, 단의 철없는 혈기를 통해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은 왕이다. 왕은 자신을 무시하고 국사를 주물러대던 눈엣가시와도 같았던 홍국을 자신의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제거한다. 반면, 봉건적 왕정제도 하에서 소위 ‘백성’들이 원하는 자유란 대체 어디까지일까? 

비록 이 뮤지컬에서 그리는 조선이라는 나라에서는 양반이 아닌 시조 자랑대회 일등이 대판서의 자리에서 임금과 얼굴을 마주하고 국사를 논할 수 있을 정도의 지위까지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그 역시 임금의 명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전형적인 가부장적 신분제의 세상에서, 남자 옷을 입고 시조를 노래하며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이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진의 운명은 가혹하게 갈려나간다. 

이 작품 속의 진은 마치 실사 뮤지컬 영화 <알라딘> 의 자스민을 꼭 닮았다. 단지 아버지가 술탄이 아니라 자파라는 점이 진의 불행이다. 대사로만 등장하는, 전쟁 통에 세상 떠난 진의 어머니는 영화 <알라딘>에서도 대사로만 등장했던 자스민의 어머니와 꼭 닮았다. 백성을 사랑하고 만민을 평등히 여기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은 권력욕 강한 아버지에 대한 진의 반발심의 근거가 된다. 

진과 단이 처음 만나는 장면도 <알라딘>의 자스민과 알라딘의 애니메이션의 첫 만남 장면을 닮았다. 단을 잡아가려는 검은 복면을 쓴 병사들 앞에 진이 나타나자 병사들은 공손해지지만, 단은 진이 자신의 입으로 정체를 밝히기 전까지 진의 신분이 자신과 다르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아버지가 술탄이었던 자스민 공주는 술탄이 되지만, 아버지가 음모를 꾸미는 대신이었던 진에게 남은 것은 노비의 길이다. 역모를 꾸민 정도가 아니라 아버지 홍국의 선왕 시해 증거가 나왔으니, 삼족을 멸하는 형별을 피할 수 없는 진에게 남은 가장 약한 벌은 아마도 관노가 되는 길일 것이다. 

한바탕 웃자고 만든 뮤지컬을 보며 이렇게 진지할 일인가 싶겠지만, 이 작품에서 단과 골빈당, 진이 한결같이 외치는 가치가 ‘백성의 자유와 평등’임을 생각해 보면 조금은 진지해져도 되지 않을까? 골빈당 당원들은 진이 홍국의 죄상을 폭로할 것임을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는다. 심지어 홍국의 그림자였던 일본인 조노도 마찬가지다. 홍국만이 아니라 집안 전체를 완전히 끝장낼 수 있는 선왕 시해의 증거를 조노는 그 딸인 진에게 넘긴다. 이 정도면 진은 아버지와 절연한지 십수년은 되어야 하지만, 홍국은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한 인물로 그려진다. 

결국 진에게 남은 것은, 자신을 뺀 해피엔딩을 위한 희생이다. 이 길에 대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은 채로, 진 그 자신조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채로, 진은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때문에 진은 결말로 다가갈수록 한 명의 인물로서의 입체감을 잃고, 주어진 해피엔딩을 위한 도구로 전락한다.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는가?
 Yes, but...

진에게는 뚜렷한 목표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백성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것. 모두가 즐겁게 시조를 노래할 수 있는 세상. 그리고 진은 마치 뮤지컬 <엘리자벳>의 주인공 엘리자벳처럼 아버지의 집이 아닌 다른 곳, 다른 세상, 다른 사람이 되기를 꿈꾸며 노래한다. 하지만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다른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진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구체적인 것까지 그의 독창으로 파악할 수는 없다. 

사실상 진이 원하는 세상은 그 생각만으로 이미 역모다. 단의 아버지 자모가 자신은 역모를 꾀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만백성의 평등은 왕이 존재하는 이상 불가능하다. 홍국은 그런 면에서 자모나 진, 골빈당보다 훨씬 현실적이다. 

하지만 홍국의 생각 역시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근본적으로는 평민인 자모에게 진 모멸감으로 시조 자체를 폐지해 버리고 자신에게 모욕감을 준 선왕마저 시해하면서까지 시조를 없애려 하는 꽁한 인물이지만, 동시에 전쟁 통에 죽은 아내를 원통해 하여 강력한 나라를 세우겠다는 포부를 세우는 인물이 있다. 어떻게 보면 홍국은 왕정제에서 추구할 수 있는 부국강명을 스스로 왕이 되지 않고도 이뤄내려는 인물인데, 그 기반으로 아내에 대한 애정이나 자신의 자존심 등 지극히 감정적인 이유를 깔고 있다. 

홍국의 입장에서 보면 백성의 자유와 평등을 노래하는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역적들일 수 밖에 없다. 정치적으로는 조선시대와 가장 잘 맞지만 동기는 지극히 감정적인 이 인물이야말로 어찌 보면 가장 입체적인 인물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쟁이 언제였기에 진은 어머니의 유지를 모두 기억할 정도인지, 진은 어떻게 그렇게 마음대로 나다닐 수 있는지, 사병을 부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의 디테일한 부분들은 모두 그가 ‘악역’이라는 설정 너머로 휘발되어 버린다. 때문에 그의 언어들은 힘을 잃는다. 

그리고 아버지인 홍국이 휘두르는 무소불위의 권력과 욕망 앞에서 진의 목표는 무척이나 추상적이다. 다시는 힘이 없어 사랑하는 이를 잃지 않겠다는 홍국의 대사는 흔하디 흔한 말일 수도 있겠지만, 진에게는 그에 맞설만한 대사가 없다. 진은 결국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사는 극단에 가까운 이타적인 인물이 되어 무대 위에서 사라진다.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No

진은 전적으로 플롯에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다. 주인공 단이 오락가락 장면마다 다른 사람인듯 행동할 때도, 진은 거의 유일하게 진지하고 정의로우며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감싸고 걱정한다. 다시 생각해 보면 이런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진은 초인적인 역할을 해낸다. 죽을 뻔했던 십주를 구해내고, 골빈당의 자금을 대며, 백성들이 자신들을 고발하는데도 그들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고 그들을 격려한다. 자신의 인생 전체가 무너질 걸 알면서도 아비의 죄상이 낱낱이 적힌 연판장을 증거로 내놓는다. 

이 인물은 무대 위에서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일종의 '치트키'라고 할 수 있다. 드라마가 막힐 때마다 진이 나서서 해결하지만, 그 자신의 문제는 점점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그런데도 그에 대한 고민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오히려 백성 고민 골빈당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마지막 장면에서 모두가 즐거운 노래를 부를 때 진이 없다는 사실에 가슴 한 쪽이 휑한 사람이 한 둘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커튼콜로 돌아와 즐겁게 노래한다 하더라도.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Yes

이 작품에는 유사연애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골빈당의 순수와 기선, 조노와 진, 진과 단 사이에 미묘한 기류는 분명히 있지만 이는 사랑이라는 감정적 결과로 이어지지 않는다. 만약 단과 진이 사랑을 나눴다면 진을 그렇게 희생해버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진과 단의 만남과 이야기 전개는 전형적인 감정의 발전 과정을 밟기 때문에, 이것이 사랑이 아니었다고 딱 잘라서 결론을 내리는 것도 어딘가 어색하다. 등장인물들이 사랑에 빠지는 것이 잘못된 일이 아니라, 무조건 남녀 주인공은 사랑하게 된다는 플롯이 문제일 뿐인다. 

어쨌든 진은 단을 골빈당으로 이끄는 역할을 하고, 처음에는 단과 경쟁관계였다가, 동료가 된 이후에는 단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른다. 또한 단이 골빈당을 떠나 방황할 때 나타나 단이 잃어버린 아버지의 붓을 건네주는 등, 전형적인 연애관계의 계단을 밟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대의’ 앞에서 연애는 입도 떼지 않는다. 덕분에 진은 더더욱 엄청난 정의의 사도가 되어가는 길을 밟아간다.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Yes, but...

진은 발전하지 않는다. 진은 이 작품 속에서 한 발짝도 성장하거나 변하지 않는다. 진은 처음부터 정의롭게 등장해 판사처럼 아버지를 단죄한 후 사라진다. 극 중 내내 남성의 옷을 입고 등장하는 진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고민하지도 않고 자신의 계급 때문에도 고민하지 않는다. 그의 고민은 오로지 백성뿐이다. 임금이 해야 할 고민을 대신 짊어진 진은 모든 고난을 짊어지고 사라질 운명의 캐릭터로서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같은 태도를 유지한다. 진은 이 작품의 순교자이자 무고한 희생양이다.

이 작품에서 단이 양반 흉내를 내기 때문에 서민들이 그의 노래에 귀를 기울인다며 골빈당이 모두가 양반이 되자고 하는 대목이 있다. 모든 백성이 양반이 되면 계급이 없는 사회가 올까? 양반이란 귀족이고, 귀족은 결코 다수가 될 수 없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은 계급을 없애는 것 말고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골빈당과 단, 홍국, 진의 생각은 극단적일 정도로 엘리트주의에 기반한다. 백성은 무지하며, 옳은 일을 주장하는 골빈당을 고발하고, 눈 앞의 삶만을 생각하는 존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빈당과 진 등은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그들을 위해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어 준다. 그것도 왕권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웃자고 만든 뮤지컬이었다면 차라리 힙합 오디션 <쇼미더머니>의 조선시대 판으로 조선시대의 흥겨운 리듬이 발달해가고 그들을 지원하는 세도가들의 경쟁을 통해 현재를 풍자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마지막에는 셰익스피어의 희극처럼 모두 한 자리에 모여 문제를 해결하고 임금의 관용으로 모두 행복해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욕심이 많았다. 현실정치도 풍자하고 싶었고, 아름다운 목표도 세우고 싶었고, 배꼽 잡게 웃기고도 싶었다. 

이 세 가지 목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겠지만 그러지 못할 때는 선택을 해야 한다. 재연에서 이 작품이 무엇을 선택할지 궁금하다. 그 뿐만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든 진이라는 인물이 좀 더 무대 위 현실에 발 단단히 딛고 돌아오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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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ES

뮤지컬 속 여성

01

2019년 첫째 주, 마리 퀴리

02

2019년 둘째 주, 엘리자벳 폰 비텔스바흐

03

2019년 셋째 주, 오목

04

2019년 넷째 주, 클레어

05

2019년 다섯째 주, 알렉산드라 오웬스

06

2019년 일곱째 주, 그레첸

07

2019년 여덟째 주, 제루샤 '주디' 애봇

08

2019년 아홉째 주, 메리 포핀스

09

2019년 열번째 주, 핑크 레이디

10

2019년 열한번째 주, 헬렌 켈러와 앤 설리번

11

2019년 열두번째 주, 아랑

12

2019년 열세번째 주, 샬롯 드 베르니에

13

2019년 열네번째 주, 나팔, 혜란, 이은숙

14

2019년 열다섯번째 주, 에바 호프

15

2019년 열여섯번째 주, 1976 할란카운티의 여성들

16

2019년 열일곱번째 주, 앤 보니, 메리 리드

17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1) 마법에 걸린 사랑

18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2) 바그다드 카페

19

2019년 스물한번째 주, 빨래

20

2019년 스물두번째 주, 자스민

21

2019년 스물세번째 주, 심청

22

2019년 스물네번째 주 안나 아르카지예브나 카레니나

23

2019년 스물다섯번째 주, 조왕, 덕춘

24

2019년 스물여섯번째 주, 테레즈 라캥

25

2019년 스물일곱번째 주, 음악극 <섬>

26

2019년 스물여덟번째 주, 기네비어와 모르가나

27

2019년 스물아홉번째 주, 허초희

28

2019년 서른번째 주, 강향란, 차순화

29

2019년 서른한번째 주, 진

현재 글
30

2019년 서른두번째 주, 개비, 바비, 도나, 울리

31

2019년 서른세번째 주, 록산

32

2019년 서른네번째 주, 옹녀

33

2019년 서른다섯번째 주, 엠마 커루

34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3) 갓 헬프 더 걸

35

2019년 서른여섯번째 주, 마리 앙투와네트

36

2019년 서른일곱번째 주, 베스

37

2019년 서른여덟번째 주, 그 여자

38

2019년 특별편 - 무대에서 보고 싶은 뮤지컬 영화 (4) 호커스 포커스

39

2019년 마흔세번째 주, 루미 헌터

40

2019년 마흔다섯번째 주, 아드리아나와 엘로이즈

41

2019년 마흔여섯번째 주, 레베카 드 윈터스

42

2019년 마흔일곱번째 주, 아이다

43

2019년 마지막 주, 암네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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