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열두번째 주, 뮤지컬 속 여성 : 아랑

알다여성 주인공뮤지컬

2019년 열두번째 주, 뮤지컬 속 여성 : 아랑

이응

뮤지컬 <아랑가>

초연 2016년,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블랙
재연 2019년 2월1일~4월7일, 대학로 티오엠 1관
대본 김가람
작곡 이한밀, 박인혜
연출 이대웅
음악감독 이한밀
안무 신선호
무대디자인 박동우
의상디자인 안현주
수상 2016 예그린어워드 연출상, 남우주연상(강필석-개로왕역), 혁신상 수상

ⓒ인사이트

 

<아랑가>라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는 이 뮤지컬이 유명한 ‘아랑 전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이준기와 신민아가 주연했던 드라마 <아랑사또전>의 모티브이자 소설가 김영하가 「아랑은 왜」라는 소설로 재구성하기도 했던 전설이다. 경상도 밀양부사의 딸 아랑이 강간에 저항하다 살해 당해 암매장 당한 후, 밀양에 오는 부사마다 부임 첫날밤에 죽어 나가자, 마침내 담이 큰 사람이 내려와 아랑의 원혼을 만나 원을 풀어주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뮤지컬 <아랑가>의 아랑은 다른 사람이다. 백제의 마지막 왕과 관련된 '도미 설화'에 나오는 도미 부인의 이름, '아랑'이다. 도미 설화가 실린 삼국유사에는 도미의 아내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소설가 박종화가 조선시대에 살았던 절개를 지키려던 여성의 이름 '아랑'을 도미의 부인에게 부여해 소설「아랑의 정조」를 내놓은 이후, 도미부인의 이름이 ‘아랑’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같은 소재로 쓰여진 최인호의 소설 「몽유도원도」도 뮤지컬로 만들어졌었고, 최근에는 뮤지컬 <아랑가>가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몇 번이고 소설로, 드라마로, 뮤지컬로 거듭 만들어질 정도로 사랑받는 아랑이라는 인물의 매력은 뭘까? 변치 않는 사랑이 전부일리는 없다. 

ⓒ인사이트

도미 부인은 이 땅에 유교가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이미 절개의 상징이 된 인물이다. 삼국사기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백제의 마지막 왕 개로왕이 욕망했던 도미의 부인은 그저 절개를 지킨 정도가 아니라 자신을 범하려는 왕의 강압을 말로 물리치고 결국 손 끝 하나 대지 못하게 했던 여성이다. 절개 그 자체보다도 절대권력의 소유자이자 신권까지 대리했던 왕의 압박을 이겨낸 기상과 담대함이 경이롭다. 

도미 부부의 신분도 놀랍다. 기록된 바에 따르면 아랑과 그의 남편 도미는 귀족도 아니고 일개 평민에 지나지 않았다. 신라에 진지왕의 유혹을 물리친 도화랑이 있다면 백제에는 아랑이 있다. 아랑은 마치 천일야화의 세헤라자데처럼 자신의 말솜씨로 욕정에 불타는 개로왕을 돌려세운 뒤, 마침내 눈 먼 남편을 찾아내 해로한다. 

중국과 일본에까지 절개의 상징으로 이름을 떨친 이 아랑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심지어 <도미 설화>도 아닌 <아랑가>라는 제목으로 올라온다고 했을 때, 누구라도 주인공은 아랑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뮤지컬의 주인공은 아랑이 아니라 개로왕이다. 아니, 아랑을 사랑한 개로왕과 아랑의 남편 도미가 극을 쌍끌이로 끌어가는 주요 인물이고, 아랑은 그들에게 주어지는 부상과도 같은 존재다.

줄거리

백제의 왕 개로는 태어날 때 무녀로부터 가혹한 점괘를 받아든다. 저주에 가까운 그 내용은 태자가 왕이 되면 백제가 무너질 것이고 그는 장님 아닌 장님이 되어 떠돌고 인간 아닌 인간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나라도 말아먹고 그 자신의 인생도 처참해진다는 이 점괘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왕은 그를 내다버려 오이디푸스의 신세로 만들지 않고 안팎으로 욕먹는 아들을 지키려 하다 반란으로 세상을 떠난다. 

개로는 아버지가 죽자마자 바로 왕위에 오르지만 그의 곁에는 사사건건 대립하는 도미 장군과 승려 도림이 있다. 백제의 운명이 풍전등화인데 도림은 과거에 사로잡혀 묘도 제대로 못 쓴 선왕의 묘를 쓰고 성을 수리하자고 하고, 도미 장군은 고구려의 침공을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갈피를 못 잡으며 괴로워하던 개로왕은 꿈에 나타나 자신을 위로해 주는 여인에게 집착하다 우연히 찾아간 도미의 아내 아랑을 보고 꿈 속의 여인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인사이트

이 때를 놓치지 않고 도림은 아랑을 차지하라고 부추겨 도미를 국경으로 보내버린 후 반역했다는 누명을 씌운다. 도미를 살리려면 자신에게 오라는 왕의 협박을 들은 아랑은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집에서 돌보던 사한을 국경에 나가 있는 도미에게 보내 상황을 알린다. 누명을 쓴 사실을 알게 된 도미는 아랑에게 도망치라고 답장을 보내지만, 사한은 도림의 칼에 맞아 죽고 결국 도미는 눈을 뽑힌 채 배에 태워져 떠내려간다. 

궁에 머물라는 왕을 구슬러 집에 돌아온 후 아랑은 왕과 약속한 날이 오기 전에 자신도 배를 타고 떠나 도미를 찾는다. 그 이야기를 도림에게서 들은 개로왕은 아랑마저 죽이고 고구려에 점령 당한 뒤 목숨을 잃는다. 

이 이야기는 나레이터인 도창자의 창작 판소리로 시작되고 진행되고 끝난다. 도창은 이 작품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매우 중요한 장치지만, 등장인물과 대화를 나누지는 않는다. 도창자까지 남자 넷, 여자 둘이 등장하는 이 뮤지컬에서 도창자는 험한 전쟁장면이나 결투 등에서 개입하여 판소리를 통해 관객에게 상황을 입체적으로 그려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등장인물의 내면에는 개입하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두 명의 여성 배우가 등장한다. 한 명은 나레이터인 도창자고, 한 명은 아랑이다. 도창자와 아랑은 배역 대 배역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기 때문에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다. 애당초 벡델 테스트는 여성 인물이 둘 이상 등장하지 않는 작품에서 적용이 어렵다고는 해도, 최소한 대화 속에서만 등장하는 인물이나 관계를 통해서 유추하기도 하는데, 이 뮤지컬 속의 아랑의 관심사는 오로지 도미로 시작해서 도미로 끝나기 때문에 다른 누가 등장한다 해도 역시 벡델 테스트를 통과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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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다른 이와의 관계를 통한 것이 아닌 인물 스스로의 운명이 있는가? 그 운명을 따르거나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가?
NO

이 작품 안에서 아랑의 운명은 무엇일까? 아랑의 운명은 도미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는 것이다. 정절이라는 단어가 오래 묵은 종이 사전처럼 부스러져 가는 시기에 왜 이 작품은 '정절'을 소재로 삼았을까? 사랑이란 한 사람만 바라보아야만 그 가치를 인정 받는 것일까? 

그런 의문들을 뒤로 하더라도, 일단 이 뮤지컬 안에서 아랑이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방법은 도미와 개로왕을 떠나서는 불가능하다. 도미의 아내이자 개로왕의 욕망의 대상인 아랑은 그 자신만으로는 이 작품 안에서 두 발로 서 있을 길이 없다. 아랑의 운명은 전반부에는 도미에게, 후반부는 개로에게 휘둘리며 부초처럼 떠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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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랑의 세계는 철저하게 도미에게 매인 세계이고 도미와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은퇴 후의 인생을 꿈꾸는 도미는 그것이 아랑이 원하는 것이라 말하지만, 아랑의 입에서 직접 그것이 자신의 꿈이라는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자신의 꿈마저도 남편인 도미의 입을 통해 관객에게 들려주는 인물이 바로 아랑이다. 

아랑은 주어진 수동적인 운명에 충실하게 부응할 뿐 그 운명을 되돌리기 위해 우는 것 이상의 행동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을 취하려는 개로왕에게 말미를 더 달라고 빌 때조차도 그 자신의 당당함이나 기지가 아니라 방금 친구이자 신하의 눈을 도려낸 개로왕의 죄책감에 기대는 방식을 쓴다. 철저하게 권력의 맨 아랫 계단에 위치한 인물임이 드러난다.

목표

자신만의 목표나 신념이 있는가?
No

아랑의 목표는 도미와 평범한 인생을 사는 것이다. 도미와의 인생이 너무나 행복하기 때문이다. 누군가와의 평범한 일상을 공유하며 함께 살아가는 것은 결코 나쁜 목표가 아니다. 하지만 이 작품 속에서 아랑의 목표는 도미와의 사랑을 지키는 것 하나 뿐이다. 아랑에게는 심지어 전사(前史)조차 없다. 개로왕을 예로 들어보면, 그에게는 무서운 저주가 따라다니고, 꿈에서 아랑을 본 것조차 태자 시절 자신에게 쏟아지던 비난을 피해 뒷동산에 올랐다가 아랑을 만난 적이 있었다는 게 밝혀진다. 그렇게 개로왕에게는 차곡차곡 전사가 쌓이고 아랑을 취하려는 그의 변명은 ‘필연’을 향해 다가간다. 하다 못해 도미가 거두어 키우는 말더듬이 사한조차도 전사가 있다. 부모를 잃고 그 충격으로 말을 더듬는 사한은 고구려가 보낸 첩자인 도림의 칼에 찔려 죽어가면서 아랑 앞에서 처음으로 말을 더듬지 않고 도림을 고발한다. 이렇게 사소한 행동과 말버릇에도 사연이 있다. 

하지만 모든 등장인물들이 그렇게 불러대는 ‘아랑가’의 주인공 아랑에게 주어진 전사는 단 하나, 아버지가 어린 아랑을 예뻐해 지어준 노래가 아랑가라는 것 뿐이다. 아랑이 어린 태자를 만났던 장면도, 오히려 아랑은 기억하되, 개로의 기억에서는 아랑이 사라진 채 무의식에 남아 꿈에 등장할 뿐이다. 관객이 이 작품을 통해 아랑의 목표나 신념을 찾기는 어렵다. 아랑이 도미와 개로왕에게 사랑받는 이유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 도미는 극이 시작했을 때 이미 아랑과 극진히 사랑하는 부부 사이로 등장하고, 개로왕 역시 아랑을 꿈에서까지 그리지만 그 실체를 알지 못한다. 

이 뮤지컬 안에는 우연이 너무나 많다. 개로왕은 태자 시절 우연히 아랑의 뒷산으로 도망치고, 우연히 아랑의 집에 나타나 아랑이 꿈 속의 바로 그 여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욕망의 포로가 된다. 심지어 아랑은 우연히 눈 멀어 먼저 떠내려간 남편을 찾는다.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모두 우연을 통해 이루어지는 이 작품 속에서 아랑의 존재 역시 그저 우연히 도미의 아내일 뿐이다.

일관성

플롯에 의해 캐릭터가 붕괴되지 않는가?
Yes, but...

<아랑가>의 플롯은 도미와 개로가 아랑을 두고 싸우다 둘 다 죽고 아랑도 죽는다는 것이다. 아랑의 포지션은 도미만을 사랑하여 함께 죽는 것이다. 관객에게 주어진 정보에 따르면 아랑은 왕의 유혹을 거부하며 도미만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런 아랑의 캐릭터는 초지일관 유지된다. 때문에 아랑의 캐릭터가 무너진다면 이 작품은 성립되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는 아랑의 캐릭터가 이 플롯을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아랑이 플롯 안에 이미 정해진 길을 따라간다는 데 있다.

이 글은 아랑에 초점을 맞춰 극을 해석하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 안에서 진정으로 갈기갈기 찢어지고 무너지는 캐릭터는 개로왕이다. 개로왕은 이 작품에 따르면 우유부단한 욕망의 노예다. 백제의 최고 권력자인 왕이지만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기 보다는 신하들의 어느 주장에 동조해야 할지도 몰라 골머리를 앓고 꿈 속의 여인에게로 도피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의 친구인 도미의 아내를 빼앗고 싶어 긴가민가하면서도 도미에게 씌인 역모를 믿어버리고, 그런 자신을 혐오하면서 뿌리부터 미쳐간다. 그러다보니 그는 어느 장면에서도 제정신일 때가 없고, 때로는 순정적으로, 때로는 미친 왕으로 보이며 갈팡질팡 하다가 마침내는 목숨을 잃는다. 

아랑의 남편 도미 역시 극 후반부에 다다르면 그런 개로왕과 다를 바가 없다. 개로, 도림, 도미는 한 자리에 모여 자신들의 욕망을 다 털며 전쟁 같은 말싸움을 벌인다. 이 장면에서 유일하게 어떤 말을 해도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언어를 뱉는 인물이 바로 아랑이다. 도미도 개로도 서로의 자존심을 걸고 소리를 지를 뿐, 아랑의 흥건한 눈물에는 관심조차 없다. 도미는 아랑에게 어떠한 말도 건네지 않고 오로지 왕인 개로를 향해서 악에 받쳐 자신을 죽이라고 소리를 지를 뿐이다. 이 때 외치는 아랑의 "안돼요!'처럼 힘 없는 대사도 없다. 

이 장면에서 작품 속 아랑의 위치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아랑은 이긴 자의 전리품이다. 도미는 눈알을 뽑히고 강물에 실려 내려가는 팔자가 되어도 아랑을 가졌으니 승리자이며, 아랑의 마음을 얻지 못한 개로왕은 패배자가 된다. 그런데 이 싸움에서 아랑의 선택은 의미가 없다. 남자들의 싸움에 여성인 아랑은 열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관성도 일관성이라면, 일관성이라고 불러도 좋으려나.

결정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가?
No

아랑이 연애에 구애받지 않고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는 순간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랑이 이 작품에 나와서 하는 일은 오로지 남편인 도미를 사랑하고 도미를 구하고 도미와 함께 죽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도미를 구하기 위해 아랑은 어린 사한을 국경에 있는 남편에게 보낸다. 왕이 탐하는 게 자신이라는 말은 쏙 빼고, 누명에 대해서만 얘기해 남편을 도망치게 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남편은 오히려 돌아와 자신의 결백을 밝히려하고, 사한은 죽어가면서 도림이 첩자라는 증거를 아랑에게 남기지만, 아랑은 그 기회도 날려버린다. 사한의 죽음은 아무 의미도 없이 산산히 흩어지고, 아랑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랑은 자신의 죽음마저도 개로왕의 손에 맡기는데, 개로왕은 이 때문에 극단적으로 미쳐 돌아가지만, 아랑은 그저 쓰러져 죽을 뿐이다. 개로왕의 죽음으로 아랑의 사랑이 승리했을까? 아니, 이긴 자는 도림과 도림의 고국인 고구려일 뿐이다. 소설가 김영하의 제목을 따와서 묻고 싶다. ‘아랑은 왜?’

발전

플롯 속에서 변화나 발전을 이루는가?
No

아랑은 발전하지 않는다. 아무도 아랑의 말조차 들어주지 않는데, 무슨 발전을 바랄 수가 있을까. 아랑은 그저 사랑만 할 뿐이다. 사랑이 무엇이 나쁘랴. 그러나 아랑은 자신이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해도 그것을 무기로조차 내세울 수 없는 한없이 약한 여인이다. 그 때문에  자신의 사랑을 지키기 위한 일조차 할 수 없다.

종합 별점


아랑가라고 쓰고 개로왕을 위한 변명이라 읽는다

도미 설화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기에 아랑이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를 단지 말로서 굴복시키는 장면을 기대했지만, 이 작품은 그런 기대를 채워주지 않는다. 이 작품의 미덕은 두 남자 배역이 대립하며 각자의 매력을 뽐내는 것 뿐이다. 

이 작품의 원작이라면 원작이라고 할 수도 있는 최인호의 <몽유도원도>에서 왕은 끊임없이 아랑의 꿈을 꾼다. 아랑의 꿈을 통해 왕은 아랑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도림은 그것을 교활하게 부추겨 그의 정신을 무너뜨린다. 너무나 익숙하고 많이 보아온 구도가 아니던가. 바로 위계질서에 의한 폭력이 ‘사랑’의 옷을 입고 ‘네가 너무 아름다워서, 너를 너무 사랑해서’ 그랬다는 핑계를 대는 모습. 아랑은 단 한 번도 개로왕의 사랑을 원한 적이 없다. 하지만 왕은 그 사실을 외면한다. 왕이기에, 그의 권력이 더 크기에. 

때문에 개로왕이 내뱉는 '사랑을 해본 자만이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대사는 끔찍하다. 사랑이 아닌 것에 사랑을 입혀, 개로왕의 최후를 마치 사랑을 잃은 자의 말로처럼 보이게 하는 것, 그것은 바로 권력을 가진 남성들이 휘두르는 성폭력의 언어다. 한 편으로 그들만의 폭력을 멜로로 양산해온 방식이기도 하다. 그 방식을 여성 작가가 고스란히 따라 걷는다. 오랜 기간 만들어져 온 남성위주의 서사 구조는 이토록 견고한 것일까. 

이 뮤지컬은 포스터에서 삶과 시간과 사랑에 대해 묻는다. 누구도 섣불리 대답할 수 없는 어려운 질문이긴 하지만, <아랑가>는 특히나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 <아랑가>에는 시간도 삶도 사랑도, 아랑도 그저 부족할 뿐이다. 대체 뮤지컬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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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넷째 주, 클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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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다섯째 주, 알렉산드라 오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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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여덟째 주, 제루샤 '주디' 애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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