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7. 다이아나

알다여성 주인공뮤지컬

브로드웨이를 이끄는 여성 캐릭터들 7. 다이아나

이응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뮤지컬 <Next to Normal>

초연 Booth Theatre (2009 - 2011)
대본/가사 Brian Yorkey
작곡 Tom Kitt
연출 Michael Greif
Tony Awards 수상
2009 Best Original Score Tom Kitt, Brian Yorkey
2009 Best Actress in a Musical Alice Ripley
2009 Best Orchestrations Michael Starobin, Tom Kitt

 

다이아나는 달의 여신이자 수렵의 여신으로 온 숲을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바람을 휘감아 달린다. 다이아나는 같은 과녁을 한 번 이상 맞추는 법이 없고 단 한 번으로 아무 고통 없이 목숨을 앗아간다. 그런 다이아나가 집안에 갇혔다. 그것도 이십여년이나. 

집에 갇힌 다이아나

브로드웨이에 정신질환자를 소재로 한 뮤지컬이 올라온 게 <Next to Normal(아래 넥스트 투 노멀)>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토니상 작품상을 받은 <Dear Evan Hansen>의 주인공 에반 핸슨이 우울증과 불안증세 때문에 정신과 치료를 받는 고등학생이고, 코미디의 대가 닐 사이먼이 쓴 1968년 작품 <Promises, Promises> 의 주인공 프랜도 유부남과의 불륜으로 인한 불안감과 우울증으로 자살 욕구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2006년에 개막한 <Grey Gardens>의 두 주인공은 과거에 매달려 현실을 부정하며 광장공포증을 안고 사는 인물들이다. 이미 1941년에 심리 치료를 받는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Lady In The Dark>가 공연되는 등 프로이드가 미국에 상륙한 이래 우울증 약을 먹는 인무들이 숱하게 등장해서 조연이나 앙상블로 등장할 때는 주로 우스꽝스러운 인물로 스쳐 지나가지만 주인공이 되면 이야기가 다르다. 

그 중에서도 이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주인공인 다이아나는 조금 더 특별하다. 타인의 시각을 통해 걸러지는 낯선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이상한 행동과 달리 병을 앓고 있는 다이아나의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관객들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들여다본 다이아나의 세상은 고통스럽다. 정신질환자의 머릿속을 진지하게 들여다 보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 질병의 기저에 깔린 평범함에 대한 강박이 주는 압박감까지 세심하게 드러낸 덕분에 이 작품은 2010년 퓰리처상 드라마 부문을 수상했다. 

*아래부터 <넥스트 투 노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다이아나는 외형적으로는 아들 게이브, 딸 나탈리, 남편인 댄 등과 함께 살고 있는 ‘평범’한 가정주부여야 하지만 첫 장면부터 심상치 않다. 아들은 아버지를 피해 뒷 방으로 피하고 딸은 새벽 세 시까지 수학문제에 매달리는데, 다이아나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야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은 다이아나의 들뜬 말도 다 받아주지만 돌아서면 무슨 말인지 도통 알 수 없는 얘기 뿐. 다이아나가 도시락을 싼다면서 식탁이 아닌 마루바닥에 식빵을 가득 늘어놓기 시작할 즈음 관객들은 그의 정신상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지만 댄과 나탈리는 놀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일상. 

점점 증세가 심해지던 다이아나는 정신과 약을 빼먹고 오래 전 잃어버린 아들인 게이브의 환영을 떠나 보내지 못해 자살을 시도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다이아나는 전기충격 치료를 받지만 부작용으로 단기적인 기억상실 증세를 보인다. 잊었던 기억을 새로이 구축하면서 남편인 댄은 저도 모르게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아내와 이상적인 가족사를 꾸며내지만 결국 오래 전 장폐색으로 8개월에 떠나보낸 첫 아들을 다시 기억해낸 다이아나는 나탈리가 방치된 채 오랜 외로움으로 질려 있는 모습을 본다. 단지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치료를 받겠다고 결정한 다이아나는 남편과 집을 떠나 치료를 시작하고, 아내에게 거짓을 강요했던 댄 역시 상담을 받기로 하면서, 가족들은 모두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치료의 가장 첫 관문 앞에 선다. 

꿈과 희망과 사랑과 용기 대신 깊은 여운 남기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라면 자고로 꿈과 희망이 있고 사랑과 용기가 있는 법이지만 그런 법칙을 깨부수는 작품들이 종종 나오곤 한다. 이런 작품들은 진지함이나 매니악한 소재 때문에 긴 롱런에는 성공하지 못해도 평단과 매니아들을 양산하고 깊은 잔상을 남긴다. 이 작품 역시 그러한 작품 가운데 하나로, 특히나 가족이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시 잘 해보자고 끝나기는 커녕, 서로에게 준 상처를 깨닫고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서로를 떠나는 결말로 이어지면서도 그 다음을 열어놓는 반쯤 열린 결말을 보여주는 매우 독특한 작품이다. 

다이아나의 고통의 시작은 스물 한 살이었던 댄의 청혼이다. 건축학과 대학생이었고 그 일을 사랑했던 다이아나는 설계도면을 들고 바빠보지도 못한 채 임신으로 댄과 결혼하지만 아이가 8개월에 의사들도 규명하지 못한 장폐색으로 세상을 떠나면서 고통의 나날이 시작된다. 다이아나의 안에서 게이브는 착실하게 나이를 먹고 학교를 가고 학교에서 돌아온다. 남편인 댄은 게이브의 죽음 이후 나탈리를 가지면 다이아나의 슬픔이 사라질 거라고 여기지만 실제로 다이아나는 죽은 게이브에 대한 죄책감으로 갖 태어난 나탈리를 안지도 못하고 외면한다. 대사로 명확하게 등장하지는 않지만 나탈리의 임신도 게이브 때와 마찬가지로 다이아나의 계획에는 없었던 일이고 댄의 계획이었다는 짐작할 수 있다. 

<넥스트 투 노멀>, 2009년, 플레이빌 제공

다이아나는 보이지 않는 게이브를 키우는 동안 실제로 존재하는 나탈리는 방치하게 된다. 나탈리에게 게이브가 갖지 못했던 평범한 일상을 주고 싶었지만 다이아나는 평범한 게 뭔지를 모르게 되어버린다. 그가 머릿속에서 게이브를 키워간 것은 아이를 잃은 죄책감보다 어쩌면 그 아이가 다이아나의 결혼생활의 이유였기 때문이다. 게이브가 사라지고 나면 이제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것만 같은 자신의 결혼, 타인의 눈에 평범한 가족처럼 보여야만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에 다이아나는 필사적으로 게이브에게 매달리고, 게이브가 환영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 차라리 게이브와 함께 사라지기를 선택한다. 어쨋거나 자신이 선택한 인생이 무위로 돌아가느니 환상을 선택할만큼 다이아나는 손에서 떠난 다른 길의 인생이 소중했을 것이기에. 하지만 부고란을 볼 때마다 부러워하던 그 조울증을 대가로 치른다. 

나 역시 어딘가는 잃고 있다고

남편인 댄은 다이아나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다. 늘 다이아나의 곁에 있었지만 다이아나가 원하는 방식으로서는 단 한 번도 아니었던, 자신만의 다이아나를 되찾기 위한 길이었을 뿐이다. 때문에 다이아나의 기억이 사라지자 거짓 기억을 끼워넣기 시작하면서도 그게 더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는데 그의 사랑의 방식이 자신도 모르게 얼마나 이기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타인이 아니라 자신에게로 칼을 겨누고 자책하는 다이아나의 모습은 그토록 극단적이지 않더라도 꽤 많은 부분 내 어머니의 일부거나 혹은 나 자신의 일부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다이아나의 내면에서 진행되는 환상 속의 아들 게이브와의 대화와 내면의 이야기들을 통해 관객들은 중증의 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의 내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본다. 덕분에 왜 천둥번개가 치는 날이 ‘좋은 날’인지를 관객은 알지만 남편인 댄에게는 헛소리일 뿐이다. 아픈 사람의 내면을 그의 시각을 통해 들여다 봄으로서 얻는 것은, 나는 아프지 않아 다행이라는 알량한 위안이 아니라 내 일부 역시 어딘가는 앓고 있다는 공감이다. 

애당초 정상이 뭐길래

기억을 조금씩 되찾은 다이아나는 마침내 자신의 증세를 인정한다. 나는 미쳤나봐, 죽음의 춤을 추고 있나봐, 하고 딸인 나탈리에게 말하는 동안 믿을 수 없을만치 ‘정상적’으로 보인다. 다이아나가 정말로 치유가 되었을지, 치유가 된 후 나탈리와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을지 관객은 알 수가 없다. 다이아나가 짐을 싸서 집을, 그리고 댄을 떠나는 것으로 끝나기 때문에. 여전히 댄을 사랑하지만 그 때문에 병들었던 자신을, 그리고 그 때문에 스스로를 학대해 왔음을 인정하고 새로운 산을 올라갈 결심을 하는 다이아나의 모습은 그 결말이 어떻든 간에 매우 인상적이다. 극 전반을 통해 나른하고 누군가와의 눈길을 마주치기를 피하면서도 시니컬한 유머감각을 잃지 않았던 다이아나의 모습은 댄이 그토록 그리워하는 ‘정상’의 다이아나가 지닌 매력에 대한 힌트를 남겨준다. 

하지만 그 꿈이 온통 ‘평범한 집’에 갇혀 스스로를 죽음으로 내몰았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 오르지 못했던 그 산에 이제는 올라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한다. 한 번 잃었던 기억을 다시 잃지 않기 위해, 가장 고통스러웠던 상실의 기억마저도 끌어안고 가겠다는 결심을 하는 다이아나를 딸인 나탈리는 처음으로 응원해 주며 말한다. 정상이 뭔지 모르지만 정상 언저리라도 좋다고, 누구나 다 정상은 아니지 않냐고. 정신과에서 진단을 받는다면 누구라도 증상 하나는 얻어 나오는 시대에, 나탈리의 이 대사는 큰 위로를 준다. 애당초 정상이 뭐길래. 

뮤지컬은 댄과 다이아나의 관계를 현재의 나탈리와 그의 남자친구인 핸리의 관계를 통해 다시 되짚어 주는데, 핸리 역시 ‘정상’은 아니지만 자신이 나탈리의 딱 맞는 짝이라고 믿는다. 마치 예전의 댄처럼. 하여, 관객은 나탈리의 미래마저 걱정하는 처지가 되면서도 다이아나를 딛고 나탈리는 자신을 타인의 시선에 맞는 가족 안에 욱여넣지 않을 거라는 일말의 안도를 얻는다. 다이아나가 작은 가방 하나를 들고 문을 나설 때, 그녀의 앞에 펼쳐 있는 것이 비록 정신과 치료 뿐이라 해도, 마치 드넓은 록키 산맥의 푸르름 속으로 발을 내딛는 듯 그를 응원하게 된다. 폭력도 알콜중독도 아닌 이보다 더 자상할 수 없는 남편을 떠나는 여성 인물을 보며 해피앤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작품이 몇이나 있을까. 그 작품이 바로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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