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36주차. 왜 자꾸 눈치를 보래

생각하다임신과 출산

임신일기 36주차. 왜 자꾸 눈치를 보래

ND

2018년 8월25일

분만방법에 대해 오래 고민해왔다. 비교적 산후 회복이 빠르다는 질식분만을 하고 싶은데, 침대에 무력하게 누워 분만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도 모르게 정신 없이 동의서에 서명을 휘갈기고, 회음부 절개를 당하고, 피를 줄줄 흘리며 아기를 내뱉듯 낳는 건 하고 싶지 않다. 내 분만의 주체는 언제나 '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출산의 목표는 아기를 낳고 건강히 살아남는 것이다. 진통의 고통이 적었으면 하고, 분만과정을 남편과 함께 하고 싶다. 진통을 혼자서 겪고 혼자서 호흡에 맞춰 힘주는 나를 남편이 그저 바라만 보는 게 아니라, 분만 중에 남편의 실제적인 도움으로 끝내 함께 이루는 분만을 원한다. 진통과 분만의 순간에 내가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남편이 온 몸으로 전달받아 그 두려움만큼은 함께 하길 원한다.

그래서 수중분만을 하고 싶었다. 물 속에 들어가 진통을 겪으면 그 고통이 1/10의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얘길 들었다. 남편이 뒤에서 허벅지를 잡아줘 분만 시 힘을 놓지 않고 정신을 잃지 않고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는 여러 지인의 만족도 높은 수중분만 후기를 전해들은 후 계속 생각했다. 이게 바로 내가 원하던 분만 방법인 것 같다고.

남편과 오늘 수중분만이 가능한 조산원에 방문했다. 담당 조산사가 자연주의 분만을 원하는 이유를 묻기에 나는 자연주의는 잘 모르겠고, 내가 원하는 건 아기를 낳고도 죽지 않고 살아 남는 거라 말했다. 조산사가 말했다.

"아기가 뱃속에서 듣고 있는데 엄마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하지?
모든 엄마는 아기를 자연적으로 낳을 수 있어요.
분만은 엄마, 아빠, 아기 셋이 이루는 쾌거예요. 그게 자연의 섭리예요."

당황스러운 답변이었지만 마음을 다잡고 궁금했던 사항을 이어 물었다. 나는 몸이 약한 사람인데 수중분만의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산전검사는 시행하는지, 태아가 너무 크거나 분만 중 응급한 상황이 오면 어떤 대처가 가능한지 질문했다. 이에 조산사는 대처는 필요 없다고 했다. 원하면 인근 병원으로 이송할 순 있지만, 엄마는 자연적으로 다 낳을 수 있다고. 그저 아기의 시간을 기다려주면 되는 거라고. 약한 몸이란 건 없다고. 엄마가 믿어야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아기가 다 듣고 있는데 엄마가 죽을 거 같아 무섭단 소리만 안 하면 된다고 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정말, 너무 너무 화가 났다. 모든 엄마는 자연적으로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의학의 발전으로 모성사망비가 현저히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어떤 여자들은 아기를 낳다가 죽는다. 출산을 앞두고 실재하는 두려움으로 하루하루를 견디는 임부에게 출산 전문가라는 사람이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지? 엄마가 고통을 받아 아기를 낳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 말하고, 분만을 무서워하는 나보다 그 염려를 뱃속 아기가 들을 것을 더 걱정하는 그에게 화가 났다.

더 물을 것도 없이 나와는 맞지 않은 곳 같다며 상담을 종료했다. 왜 그러냐 묻기에, 나는 내가 제일 중요한 사람이고, 분만의 주인공은 아기가 아니라 엄마여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나에게 가장 좋은 방법을 주체적으로 선택해 분만하고 싶었는데 선생님의 관심과는 많이 다른 거 같다 말하고 나와 버렸다.

조산원에서 나왔지만 분노가 계속 남는다. 자연주의 출산을 하는 곳에서 진통하며 아파하는 산모들에게 엄마는 다 낳을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아픈 소리를 내냐며 좀 참으라고 혼낸다는 얘기를 종종 듣곤 했는데, 그들이 산모를 실제로 어떻게 대하는지 명확해진 기분이다.

모든 자연주의 출산을 아는 건 아니지만, 이런 관점에서의 출산은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자연주의 수중분만을 원했던 건, 그것이 나로 주체적인 고민을 통한 선택이었기 때문이지 자연의 섭리 따위를 믿어서가 아니다. 출산의 감격과 모성의 승리는 출산 당사자의 고백일 때만 가능하다.

2018년 8월26일

가진통이 계속 온다. 전보다 확실히 강도가 세고, 주기가 짧고, 피가 얼굴로 더 쏠리는 느낌에 코피가 터질 거 같다. 이제 막 임신 10개월에 들어온 터라 아직 아기가 나올 땐 아니라고 안이하게 생각하다가도, 30주~35주에 아기 낳았다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출산이 더 이상 남 얘기가 아님을 실감한다.

이젠 정말 언제 아기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구나.

2018년 8월28일

임신 36주가 되자 결국 늘어난 배에 살이 텄다. 임신 5개월부터 바디크림이며 튼살크림이며 코코넛오일이며 열심히 발랐는데 틀 사람은 열심히 발라도 트고 안 틀 사람은 안 발라도 안 튼다더니 나는 텄다. 팬티 입은 부분에 잘 튼대서 제모도 하고 꼼꼼하게 발랐는데 다 텄다. 내 눈물샘도 텄다.

출산 이후 나는 내 몸을 얼마나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미 학창시절 살이 급격하게 찌면서 허벅지에 하얀 지렁이의 흔적들이 가득한데 나는 이 때문에 짧은 바지를 잘 안 입는다. 내 몸을 긍정하지 않는대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머리론 수긍하지만, 꾸물꾸물 살 튼 흔적을 볼 때마다 마음이 달라질까 걱정이다.

2018년 8월29일

엄마는 처음부터 내가 조산원 출산에 관심 갖는 걸 내키지 않아했다. 조산원에 예약은 했냐 묻기에 상담하러 간 조산원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하고, 나와는 맞지 않아 병원출산을 생각하고 있다 하니 아주 반색하셨다. 엄마는 그러게 수중분만은 무슨, 제발 요란 좀 떨지 말고, 남들 하는 대로 하라고 하셨다.

내가 별나서 수중분만 하려던 게 아니라, 천천히 생각하고 알아보고 나에게 제일 좋은 방법을 고르려 했던 거라 말씀드려도, 엄마는 잘 들으려 하지 않았다. 엄마의 관심은 그저 '요란 떨면 시댁이 싫어한다'는 거였다. 엄마는 출산을 이미 경험한 여자로서 나의 출산 공포를 이해하지만 시가에서 내가 미움 받는 것을 더 걱정한다.

아기 이름을 짓는 문제에서도 그랬다. 우리 부부는 당연히 우리가 이름을 짓는 걸로 생각하고 있었고 시가에서도 아기 이름 문제에서 크게 주장하지 않았다. 외려 펄쩍 뛴 건 우리 모부였다. 절대 안 된다고. 그러면 '시댁에서 미움 받는다'고. 내 모부는 무조건 시댁에 먼저 아기 이름을 여쭈라고 하셨다.

나와 남편이 결정하면 될 일에 내 모부는 대부분 강하게 참견을 했다. '시댁의 생각을 여쭙고, 남들 하는 대로 시댁에 도리를 다하고, 절대 시댁에 미움 받아선 안된다' 는게 모부의 주장이다. ‘내가’ 아기를 낳는 출산 문제에서까지 시가의 눈치를 보라는 것에 화가 났다.

모두가 출근하고 혼자 남은 모부 댁에서 생각했다. 이게 우리 엄마가 살아 온 삶이겠구나. 시가에서 미움 받을까 걱정하고, 사사건건 눈치 보고, 힘든 일을 그저 감내해야 했던 엄마에게 감정을 이입해 혼자 동정을 하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이건 또한 엄마가 앞으로 누군가의 '시댁'이 되어 살 삶일 뿐이라고. 더 이상 이 나쁜 유산이 이어져선 안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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