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28일
과일 몇 조각만 먹어도 숨이 찬다. 헥헥. 병원에 정기검진 가는 김에 가슴이 너무 갑갑하고 폐인지 위인지 심장인지 셋 다인지 모를 내 장기가 아픈데, 임신 후기 증세인건 알겠지만 조금 완화할 방법이 없냐 물었더니 역시나 ‘없다’. 증상만 있지 몸에 ‘문제’랄게 있는 건 아니라서 치료할 것도 없는 거라고.
트림을 해보면 답답한 게 나아질까 싶어 가슴을 쳐보는데 트림도 잘 안 나온다. 간신히 트림 한대도 먹은 게 같이 올라온다. 내 식도는 또 상하고 있구나. 숨쉬기가 힘든 걸 보면 폐 문제인 거 같기도 한데, 심호흡을 크게 해도 나아지지 않는 걸 보면 심장 문제 같기도 하고. 특정 장기를 지적할 필요도 없이 모든 장기가 눌리고 있는 거겠지.
출산이 임박해오면 아기가 자궁 아래 쪽으로 내려가 지금 겪는 어려움들은 사라질 거라고 한다. 임신 기간 내내 지금 시기만 버티면 이 증세는 사라질 거란 희망으로 지내왔다. 그 증세 사라지면 주기에 맞게 새로운 증세로 고통 받아오면서.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주변에선 그렇게 엄마가 되는 거라고 말한다. 꼭 그 고통들을 모두 내 몸으로 겪어야만 엄마가 되는 걸까. 고통이 엄마됨의 필수 조건이어야만 하는 걸까. 이런저런 해답 없는 질문들을 던져보지만, 모성의 고통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사회일수록 여성이 인간으로 대접받기 힘들다는 것만큼은 잘 알겠다.
2018년 7월30일
거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배가 정말 많이 나왔다. 임신 어플에선 오늘로 임신 9개월에 접어 들었음을 알려줬다. 아기를 뱃속에서 조금만 더 키우면 그 지긋지긋했던 임부생활도 끝나겠구나!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단 얘기도 이제 곧 그만 들을 수 있겠지.
배가 아래쪽에만 나왔을 땐 자궁 쪽이라 그런지 함부로 만지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가슴 바로 아래부터 불룩하니, 와, 정말 아무나 다 만진다. "와 배 정말 많이 나왔네요." "아기가 많이 움직이나요?" 하면서 누구나 내 배에 손을 댄다. 당황스러움을 표현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이뤄진다.
나는 누군가 옳지 않은 발언을 하거나 불쾌한 상황을 만들면 늘 문제제기를 해왔다. 상대가 친구건 동료건 상사건 나는 참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미움도 많이 받았고 그걸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임부 배에 손 한번 얹어보는 걸 사람들이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서 나도 어버버 하며 손 놓고 당하게 된다.
2018년 7월31일
얼마 뒤 아기를 낳으면, 임신과 출산이란 건 더 이상 내게 아무것도 아니고 그 고통이 어렴풋하게만 남아있으리란 걸 잘 알고 있다. 생경한 듯 전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기를 낳고도 건강히 살아남고 망가진 몸과 체력도 어느 정도 회복한다면 그깟 출산 별일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이 임신일기는 임신한 나의 일상과 생각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 임부 전체는커녕 나라는 사람조차도 대표할 수 없다. 누군가에겐 임신이 흘러가는 일처럼 가벼울 수도 있고 누군가에겐 제 인생 최악의 일일 수도 있겠지. 어떤 사람은 임신기의 매일을 감사와 환희로 보낼 수도 있고.
사실 이 기록엔 시간이 갈수록 의지가 많이 필요하다. 처음엔 정말 너무 고통스러운데 말할 곳이 없어 기록으로 해소했다면, 이제는 그걸 넘어섰다. 임신한 여성의 임신 이야기를 여성을 소외시키지 않고 끝까지 해내보자는 마음이다. 내 이후 세대에는 사회가 변하길 바라면서.
2018년 8월2일
신발을 꺾어 신은 지는 2, 3주 됐다. 발과 발목이 부어 통통해졌다. 다리가 너무 저리다. 허리디스크로 고생할 때 느꼈던 저림이다. 배가 무거워 척추에 무리가 간 건지, 자궁이 눌려 다리까지 눌리는 건지, 아무튼 길고 두꺼운 침으로 다리를 쑥쑥 찌르고 싶은 심정이다.
요즘 내 입에서는 힘들다는 말 밖에 안 나온다. 숨쉬기도 힘들고 걷기도 힘들고 앉아있기도 힘들고 누워있는 것도 힘들다. 역대 최악의 폭염이라는데 10kg가 늘어난 몸으로 여전히 출근을 하고 업무를 한다. 배려라는 건 그들에게도 여유가 있을 때여야 가능한 거 같다. 시혜에 기댈 수 밖에 없는 내가 초라하다.
상사는 내게 왜 이렇게 아기를 일찍 가졌냐고 했다. 회사에 일이 많아 한 사람 한 사람이 아쉬운 건 이해하지만 나는 동료들을 버리고 도망가려고 임신한 게 아닌데 계속 죄책감을 주입하려는 거 같다. 그 상사는 내가 기혼자로 입사한 후로 계속 아기를 언제 갖냐고, 젊을 때 많이 낳아야 한다고 늘 얘기했으면서 말이다.
매일 몸 상태가 안 좋아진다. 하루하루 몸무게가 늘어나고 피로감이 지나치게 쌓인다.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고 생각하지만 또 일에 대한 욕심을 놓을 수 없어 씨름한다. 나는 똑똑하고 능력있는 사람인데 임신 후 그만큼 역할을 못해내는 것도 견디기 힘들고 출산과 육아 후 직무지식이 백지가 될 것도 두렵다.
다리를 일자로 펴고 앉으면 배와 다리가 붙는다. 숨은 숨대로 안 쉬어 지는데 배가 다리를 누르니 하체에 부담이 더 간다. 친구들에게 하소연했다. 임신은 정말 초기부터 후기까지 전 기간 동안 몸이 망가지는 여정이라고.
발목에 부종 온 사진을 가족단톡방에 올리니 오빠가 보고 놀라며 다쳤나고 물었다. 부종은 임신 후기엔 누구나 겪는 흔한 증상이지만 주변에 임신한 여성을 볼 일이 없었을 오빠는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 뱃속에 아기가 있어 그렇다 했더니 오빠가 '싱기방기' 하단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나의 고통은 '싱기방기'하지 않다. 말 그대로 고통이고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