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29주차. 제가 이럴 줄 알았을까요

생각하다임신과 출산

임신일기 29주차. 제가 이럴 줄 알았을까요

ND

2018년 7월9일

지하철을 그만 타든지 해야겠다. 사람이 너무 미워진다. 오늘 임산부배려석엔 중년 남성이 앉아있었다. 그 앞에 섰는데 빈 손잡이가 없어 손잡이 꼭대기를 잡으니, 내 오른쪽 옆에서 손잡이를 잡고 있던 남성이 내가 못 잡게 손잡이를 흔들었다. 내 왼쪽 옆에 있던 사람은 내가 그 사이에 못 서 있게 가방으로 내 배를 밀쳤다. 임부석에 앉은 남성을 계속 쳐다봤다. 그는 나와 여러 번 눈이 마주쳤지만 내 배를 훑고는 눈치를 보고 다시 자기 하던 일을 했다. 그 옆에 앉아있던 남성이 민망해하며 나와 눈인사를 하고 자리를 비워주니, 내 오른쪽 옆에 서 있던 (내가 손잡이를 못 잡게 흔들었던) 그 남성이 백팩을 풀더니 그 자리에 앉았다. 자리를 비워줬던 남성과 내가 멋쩍게 웃었다. 그제야 상황을 파악했는지 내게 다시 자리를 비워줬다.

내 글들이 픽션이란 사람들이 있다. 이런 일은 임부 커뮤니티에선 특별한 에피소드도 아니다. 당신들이 눈 감고 귀 막고 살았던 게 아닐까.

임부석에 앉아있던 남성이 하차하고 세 명째 그 자리에 사람이 들어앉았다. 모두 비임산부인데 배 나온 임산부가 그 옆에 앉아있어도 이상한걸 못 느끼나? 이쯤 되면 내가 더 이상한 건가 생각이 든다.

2018년 7월10일

퇴근길에 동료를 만나 같이 지하철을 탔다. 동료는 내게 자리에 앉아야 한다며 임산부석 앞으로 급하게 나를 데려갔다. 

"아무도 안 비켜줄걸요." 
"에이, 배가 이렇게 나왔는데 안 비켜준다고요?" 

젊은 남성이 이어폰을 끼고 영상을 보고 있더라. 

"봐요. 여기 앉은 사람은 앞에 누가 오는지 관심도 없어요."

자기 앞에서 두 여성이 소리 내어 "임산부배려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원래 자리를 잘 안 비켜준다. 늘 그렇다. "어떻게 사람이 그러냐. 실제로 눈앞에 있는데도 그럴 줄은 몰랐다." 는 얘기들을 나누는데도 관심이 없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안 들리겠지만. 뭐, 나 역시 기대 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몰랐던 비혼 비임신 동료만 놀랬다.

임산부배려석에 앉은 비임산부만 그렇게 나쁜 사람인가 싶을 때가 있다. 오로지 그 사람만 배려하지 않는 아이콘으로 비난 받는 게 과연 온당한가 말이다. 실은, 배려 없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다. 다른 좌석에 앉아있는 사람은 임산부석만 노려 볼 뿐이다. 저만 아니면 괜찮은 걸까.

2018년 7월13일

밤 사이 명치부터 온 가슴이 너무 답답해 힘들었다. 아기가 자궁 언저리에서 배 위쪽으로 올라오면 명치가 눌릴 수 있단 얘기를 들어서, 이것 또한 그저 자연스런 임신 증세일까, 하고 참아봤지만 팔도 저리고 뒷목이 여지껏 느껴 본 적 없는 감각으로 심하게 아픈 건 이상했다. 무엇보다 가슴 통증이 너무 심해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어 결국 새벽에 응급실에 다녀왔다.

임신 이후로 몸이 자주 안 좋아 지각이나 조퇴를 자주 했고, 결근 역시 잦았다. 이번에 또 쉬게 되면 인사에 영향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새벽에 병원에서 조치를 취하고 오늘은 어떻게든 제 시간에 출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몸이 부셔져도, 아기가 당장 나올 거 같아도, 출근부터 걱정해야 하는 게 참 속 쓰리지만, 나는 진짜 삶이란 걸 살아야 하는 사람이니까.

나는 제 시간에 출근해야 한단 생각에 사로잡혀 마음이 급한데, 병원에선 내가 임부라서 할 수 있는 검사나 치료가 딱히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응급실의 의료인들은 나라는 환자를 이름이 아닌 임산부로 호명했다. 

“아, 저기 임산부 좀 봐줘요.”
“아, 그 임산부 환자.”
“임산부라 약 안돼요.”
“임산부라 그 검사 안돼요.” 

가슴통증을 호소하며 누워있는데 갑자기 열이 치솟아 의료인들이 열을 식혀야 한다며 몸 구석구석에 얼음주머니를 끼워놓았다. 해열제를 놓을 수 없으니 이렇게 열을 식혀야 한다고 했다.

별 다른 약물 처치없이 수액을 투여 받고 덜덜 떨며 얼음찜질만 하고 있었는데 그래도 열이 안 떨어진다며 의료인이 달려왔다. 이제 항생제와 해열제를 투여할 건데, 나를 설득하듯 이 약물들이 산모에게 안전하다는 연구결과는 없지만 고열이 지속되는 게 아기에게 더 안 좋기 때문에 투여하는 거라고 했다.

내가 가슴이 너무 아프고 몸이 저려서 병원에 왔는데 아기에게 안 좋을 수 있다고 약물 처치를 못한다더니, 이제는 열 오르는 게 아기에게 더 안 좋은 거라며 내게 약을 투여한다고? 현대의학에 버림을 받은 경험은 임신 기간 중 내내 있었지만, 오늘은 내가 나로 존중 받고 있지 못한다는 느낌이 절정이었다.

제가 도대체 왜 아픈 건지 어디에 이상이 있는 건지 알려달라고 해도 할 수 있는 검사가 피 검사 뿐이라 그저 기다려야 한다는 답변만 받았다. 그렇게 계속 통증을 호소하며 괴로워하다가 항생제 투여에 곧바로 몸이 좋아졌다. 여태 아팠던 게 꿈이었던 것만 같이 회복됐다. 아니, 이렇게 좋은 약을 왜 이제서야? 세상이 다 원망스러웠다.

그렇게 열이 내리고 가슴통증이 어느 정도 사라지니 병원에선 더 해줄게 없다며 산과를 가라고 했다. 덧붙여 의료인은 내게 염증에 대한 약은 일단 주겠지만 임산부라 약 복용을 강요할 순 없고 약 복용에 대한 선택은 내 몫이라고 했다.

결국 출근을 포기하고 다니던 산부인과로 바로 갔다. 산과라면 내 증세 대해 설명해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산과 담당의의 확인으로 재발의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산과에선 내 스토리를 듣더니 초음파진료를 했고 언제나처럼 아기의 눈 코 입이 귀엽고 건강하다고 했다. 

아니, 선생님. 제가 아파서 왔는데요... 

담당의는 엄마가 아파서 걱정이라고, 아이고 어떡하냐고 했다.

나는 아직도 아프고, 제대로 진단명을 받지못했고, 약을 계속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병원을 나서는 길에 임신 중에 항생제를 먹으면 태아면역이 약해져 신생아 질병에 걸릴 확률이 20% 높아진다는 기사를 봤고, 평소라면 또 엄마 탓 한다고 욕했겠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두려워하고있다.

면역력 저하로 하던 일을 모두 잠시 멈추고 투병 중인 지인이, 임신 후 갖은 병치레를 하면서도 휴직하지 못하는 나를 안쓰러워 하며 대단하다고 했다. 파트너와 임신에 대해 계속 고민 중이지만 자신이 없다고. 여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이럴 줄 알았을까요. 속아서 한 임신입니다.

정말이지, 이 정도까지일 줄은 몰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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