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26주차. 비출산을 조장하는 '괴담'이라고?

생각하다임신과 출산

임신일기 26주차. 비출산을 조장하는 '괴담'이라고?

ND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2018년 6월17일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남편을 붙잡고 절뚝거리며 걷는다. 최근에 출산했거나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임신한 지인들도 엉덩이가 아픈 고통을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매번 느끼지만 임신과 출산의 경험은 정말 다양한 거 같다.

놀라웠던 건 이거다. 임신하고 뱃속에 아기가 자라면서 내 몸이 어떻게 변하는지, 왜 엉덩이가 아픈지 설명하면 그런 일을 겪지 않았더라도 여자들은 대부분 공감하고 어디가 어떻게 아플지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한다. 그런데 남자들은 하나 같이 내게 운동이나 스트레칭을 하라고 조언했다. 인대가 늘어났을 때 운동하지 않는 건 상식이면서 임신한 여성에겐 꼭 운동을 하라고 잔소리를 하더라. 축구하다가 발목을 다쳤는데 아프다고 가만히 있지만 말고 나가서 음식물 쓰레기도 버리고 탕비실에 가서 커피도 타오면서 움직여야 빨리 낫는 거란 훈수를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생각이 이렇게 짧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내 엉덩이는 근육이 뭉친 게 아니라 인대가 늘어난 개념이라고 찬찬히 설명을 해도 남자들은 들으려고도 안 한다. 겉으로 보기엔 내 배가 작아 보이겠지만, 지금 35cm 길이인 아기가 이 배 안에 있으려면 뱃속 공간을 얼마나 차지해야 할 지 생각해보라고 성을 내야만 그제서야 그들에게 "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환도가 서는 엉덩이 통증으로 고생했던 출산 경험자의 조언으로 스포츠테이프를 구매해 블로그를 보면서 엉덩이에 테이핑을 했다. 부디 오늘밤은 자다가 배가 뭉쳤을 때 오른쪽 왼쪽 번갈아 누워가며 잘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간 움직이면 엉덩이가 아파 배가 뭉쳐도 별 수 없었거든.

2018년 6월19일

내 엉덩이 통증엔 마사지도, 스포츠 테이핑 요법도, 스트레칭도, 요가도 도움이 안됐다. 여기저기 물어도 보고 인터넷에 검색도 해보았지만, 한결 같은 대답이다. 

출산해야 나아요.

출산 후에도 몇 개월 씩 호전이 없어 아파하는 사람들도 많다는데 이게 이렇게 별 수 없는 일인가.

업무 중 배 뭉침이 잦아져 병원에 갔다. 이전 정기검진 때 병원에서 몇 가지 사항을 일러주면서 여기에 해당하면 낮이든 밤이든 즉각 내원하라고 안내했기 때문이다. 치골통 때문에 앉거나 서 있는 건 물론 한 걸음 한 걸음 걷는 것도 고역이라 유모차라도 타고 싶은 심정인데 수시로 배까지 단단하게 조여오니 가만히 있는 것조차 너무 괴로웠다.

어렵게 병가를 쓰고 병원에 갔지만 하필 내 주치의가 휴진이라 다른 의사에게 진료를 받게 됐다. 내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그는 내 통증을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임신하면 다 아파요. 그때마다 병가 쓰고 병원 오면 임산부들 다 병가 쓰죠. 그럼 일은 누가 해요.

정말 우리 회사의 업무 정상화가 걱정됐을까? 임신으로 몸이 불편한 나보다 알지도 못하는 남의 회사가 먼저였을까? 혹시 우리 회사의 숨은 이사였던걸까? 나는 내 자궁이 정말 계속 수축하는지, 이 수축이 위험한 수준인지 궁금했고, 지긋지긋한 치골통증이 조금이라도 완화되길 바랬을 뿐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의료서비스 제공자를 신뢰한다. 설령 의료서비스 이용자는 그렇게 느끼지 못한다 할지라도, 의료인은 최선을 다해 의료지식과 기술을 제공하고 있는 거라 믿으며 병원에 간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 겪은 일은 이상하다. 임신하면 원래 다 아픈데 왜 왔냐는 이야기를 의료인에게 들었다. 업무에 지장이 생길 정도로 아파서 병원에 간 건데, 그 당연한 걸 가지고 뭐 대단하게 병원까지 왔냐는 이야기를 내가 의료인에게 들었네.

그는 자궁수축도 경부길이도 확인하지 않았다. 나보다 치골통이 더 심한 임부도 많다는 이야기, 임신하면 다 아프다는 이야기, 본인이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 등을 3분간 했을 뿐이다. 사실 이게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산과 전체에 대한 실망을 감출 방법이 없네. 속상하다.

원래 임신하면 다 아픈 거고 산과에선 해줄 게 없단 이야기를 의료인에게 직접 들어서일까. 이 무력감을 이길 힘이 지금 내겐 없다. 정말 나는 아기공장으로만 작동하는 걸까. 아기가 커갈수록 그 공장은 망가지고 가치가 없어지는데 아무도 공장을 되살릴 생각은 안 한다. 그냥 공장은 공장이니까.

2018년 6월21일

아내가 임신을 원하지 않아 오랜 기간 무자녀로 지내는 남자동료와 말다툼을 했다. 그에게 임신과 출산이 여성의 몸을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출산에서 여성의 선택이란 게 얼마나 제한적인지, 사회가 강요하는 모성애가 여성을 얼마나 억압하는지 등등을 성토하니 그는 내게 왜 안 좋은 이야기만 하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그렇게 부정적인 말로 비출산을 조장할거면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란다. 아무리 설득해도 아내의 비출산 의지가 계속 견고해지는 건 주변에서 임신과 출산에 대한 '괴담'만 말하기 때문이란다. 다 나 같은 사람 탓이란다. 여성들이 몸소 살아낸 경험을 괴담으로만 치부하는 것에도 화가 났지만, 아내의 주체적 판단과 결정을 무시하는 태도엔 정말 분노가 치솟아서 그를 한바탕 꾸짖었다. 그러다 갑자기 배가 뭉쳐 배를 붙잡고 "아이고 배야" 하면서 갑자기 웃음이 나와버렸는데 내가 내야 할 화를 다 못 낸 거 같아 아쉬웠다. 임부는 이렇게 분노도 제대로 못한다.

임신 이후 고통스러워하는 나를 수 개월째 매일 보면서도 아내에게 임신을 요구하는 사람에겐 내가 그 어떤 말을 한다 해도 소용없겠구나 싶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실제적이고 세세한 이야기가 얼마나 부족한지, 나마저도 속아서 한 임신이라고 부들부들 떨 때가 얼마나 많은데!

그런다고 임신에 대한 내 결정을 후회하는 건 아니지만, 임신출산에 대한 정보가 제한적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비출산을 조장하는게 아니라, 더 많은 여성이 현실을 알고 수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제 인생을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고 여성의 삶은 여성이 살아내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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