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5. 임신 9주차

생각하다임신과 출산

임신일기 5. 임신 9주차

ND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2018년 2월23일

남편이 진급 대상 동기들 중 유일하게 승진에서 누락됐다. 남편의 회사 동기와 선배를 몇몇 알고 지내는데, 그들은 내 남편의 실적이나 업무능력을 보면 놀랄 때가 많다고 종종 말해왔다. 남편은 학부를 학과의 최우수학생으로 졸업했고, 석사시절 중 저명한 국외등재저널에 논문을 여러 편 게재했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남편의 회사 동기들은 업무에서 인정받은 내 남편이 이번 인사에서 승진이 누락된 것을 이상하게 생각했고, 아내의 임신 때문 아니냐고 추측했다. 남편은 아내가 초기 임산부라 많이 힘들다며 저녁 회동에 매번 불참했고, 정시가 되면 바로 퇴근했으며, 상사를 찾아가 계속된 출장이 더 이상은 어렵겠다고 말했단다. 그 이후로 남편은 승진에서 누락되고, 수시로 지방출장 명령을 받고 있다.

나는 내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혼자 오롯이 감당하기 버거워 남편이 출장 가고 없는 밤에 펑펑 울었는데, 남편은 임신한 아내를 두고서 나름의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남편을 동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임신, 뭘까? 국가적으론 좀 낳았으면 좋겠는데 내 동료나 부하직원이 낳는 건 또 귀찮은 일이지.

나는 임신, 그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회사 동료들에게 업무 떠넘기고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고, 남편은 상사들에게 아내가 임신했다며 회사일에 충실하지 않은 부하직원이 되어버렸다. 그 상사들은 당신 아내가 임신하고 고통 받아도 똑같이 회식하고 야근하고 출장 갔겠지. 임신, 너무 서럽다.

남편이 올해 승진 대상자였고, 승진이 거의 확정시 된 터라 조금 안도하고 있었다. 모아 놓은 돈 없이 다니는 직장 없이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결혼한 터라 늘 살림살이가 빠듯했는데 그래도 이번에 승진하면 아기가 태어나도 기저귀는 살 수 있겠다 싶었다. 이제 어떡하지. 아기가 태어난 이후가 너무 막막해졌다.

2018년 2월24일

오늘은 산과 진료비로 78,300원을 지불했다. 병원에서는 임신 초기라고 2주마다 예약을 잡는데 건강보험은 임신 13주 이내에 2회만 적용된다. 초음파 검사와 피 검사 몇 가지를 하니 병원비가 쑥 오른다. 병원 검사비용 줄여보겠다고 연가 내고 보건소 검사도 다녀왔는데 검사항목이 너무 적어 별 도움이 안 됐다. 지원금 50만원의 1/5을 벌써 다 썼다.

다음 방문 때는 기형아 검사를 하는데, 1차는 보험이 되는 기본 검사를 진행하고 2차로는 더 자세히 살펴보는 '쿼드 검사'나 '인테그레이티드 검사'를 진행한다. 쿼드 검사는 기형발견율이 75%, 인테그레이티드 검사는 95%라 인테그레이티드 검사를 더 추천하는데 나는 쿼드 검사로 예약했다. 건강보험 적용이 안 되는 인테그레이티드 검사는 너무 비싸더라.

인테그레이티드 검사를 안 하겠다고 하니 간호사가 재차 확인한다.

기형발견율이 95%인데요?

인테그레이티드 검사에서만 잡히는 기형이 발견된대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 더 있나 싶고, 당장의 검사료가 부담이 되어 남편과 상의 없이 그 자리에서 결정해버렸다. 보건소에서 받은 산전검사는 왕복 택시비만큼도 도움이 안 됐네.

2018년 2월25일

석사과정 중에 지도교수 스트레스로 몸무게가 10kg가 빠졌다. 교수는 밤낮없이 전화해서 업무명령을 내리고 성과를 독촉했다. 제대로 못해내면 능력부터 외모까지 내 인격을 낱낱이 조각 내 비난했고 먹은 음식을 소화시킬 수 없는 게 당연했다. 공동연구 중이던 교수들이 나를 보면서 내 지도교수에게 학생을 너무 혹사시키는 거 아니냐고 하니 그 때 한창 내게 박사진학을 종용하던 그가 이렇게 말했다.

너 살 빠졌냐? 그럼 내 밑에서 박사 해라.
사 하면서 임신해. 임신하면 살 쪄. 살도 찌고 박사도 하고 얼마나 좋아.

요즘 그가 많이 생각난다. 그 때 왜 안 죽였을까.

2018년 2월26일

오늘도 들어버렸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다.

ND씨는 보통 사람들보다 더 심한 거 같아요.

아니라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나는 기력이 없고 매일 심하게 울렁거리고 속 쓰리지만, 구토는 가끔씩만 하고, 양치도 잘 하는 수준이라 그럭저럭 견디고 있었는데 이런 소리 들으면 꼭지가 돌아버릴 것 같다. 회사에서 변기 붙잡고 구토하는 걸 누구에게 보인 적도 없고, 힘들다고 업무 줄여달라고 요청 해본 적도 없다. 나름 조용히 내 몫을 해내려고 내적으로 발버둥치는 중인데 별나게 입덧한다는 소리를 들으니 온통 서럽고 분노가 생긴다.

회사에서는 임신한 여성이 임신한 티도 안 나게 이전처럼 일하고, 입덧을 하더라도 단체생활에서 이탈하지 않고, 임신하지 않은 직원만큼의 성과를 내기를 요구한다. 이거 뭐, 임신했으면 회사에서 알아서 꺼지라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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