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30주차. 경멸스런 남편들의 나르시시즘

생각하다임신과 출산

임신일기 30주차. 경멸스런 남편들의 나르시시즘

ND

2018년 7월14일

서울 퀴어문화축제에 가는데 시청 광장 앞 혐오세력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한창이다. 그들은 퀴어문화축제의 입구에서 남녀의 결합만이 아기를 만들 수 있고 출산은 정말 신성한 거라고 외쳤다. 결혼과 출산은 국가의 자산이고 경쟁력이라면서. 참 이상하다. 이게 교회의 이야기라고?

7월의 여름 낮. 햇볕은 뜨겁고 내 몸은 무거워 죽겠는데, 출산은 아름답다느니, 아기에겐 엄마 아빠가 필요하다느니, 태아의 생명은 소중하다느니 하는 문구들이 가득 적힌 피켓 행렬을 보니 분노가 차올랐다. 그들의 소리는 외려 정상가족 내에서 아기까지 가진 나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이들이 임신한 여성에 대해 정말 한번이라도 생각은 해봤을까? 임신과 출산을 혐오의 언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인데. 실은 이게 제일 만만한 거지.

2018년 7월15일

재치기를 하거나 코를 풀 때마다 배가 단단하게 뭉친다. 조금이라도 걸으면 외음부가 아픈데 만져 보면 불룩하게 부어있다. 성기를 감싸고 있는 외부 피부가 아픈 건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병원에 갔다. 그런데 경부 길이도 좋고, 아기 태동도 좋고, 자궁 수축도 없단다. 아기나 산모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이런 것도 그저 자연스런 임신 증세라니! 도대체 어디까지 망가져야 아기가 나오는 걸까.

일반적인 증세는 아닌 거 같을 때, 혼자 걱정하고 임부 커뮤니티에 물어보면서 스트레스 받고 앓느니 산과 전문의에게 문제 없단 걸 확인 받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은 늘 찜찜하다. 병원에선 특이사항이 하나도 없다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들고 아픈 걸까. 임신기간 중 경부길이가 짧거나 자궁무력 혹은 자궁수축으로 입원하는 임부들은 얼마나 괴로울까. 그들의 목소리는 다 어디에 묻혀 있는 걸까.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정말 도대체가. 수많은 여성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데. 도대체 왜. 어째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냔 말이다. 우리는 모두 여성의 자궁을 거쳐 태어났다.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두가 말이다. 어째서 그 여성들이 고통이 당연한 거지? 임신과 출산 과정 중의 고통들이 어째서 그저 그런, ‘자연스런’ 과정 중의 하나로만 치부되냔 말이다.

2018년 7월17일

임신이 내 일이 될 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을 땐 배가 불러서도 출근하는 여성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힘들어 보이는데 좀 쉬었으면 했다. 임신 초기에는 만삭까지 출근하는 다른 여성들을 보며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그 상황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렇게까지 출근하는 건 악착같아서도 대단해서도 아니었다. 생존해야 하니까 버티는 거였다.

출산하는 여성을 위한 제도는 있지만 현실감 있게, 개별 상황에 맞게 적용하기는 어렵다. 출산휴가는 출산예정일의 최대 44일 전부터 만 쓸 수 있고, 임신은 질병이 아니라서 특별한 이벤트가 있지 않고는 질병휴직을 사용할 수도 없다. 퇴사는 말만 쉽다. 그 이후의 내 삶을 전혀 보장할 수 없다. 아기는 곧 나올 텐데 나는 삶이란 걸 살아야 하니 별 수 없이 이 몸을 이끌고 오늘도 출근.

2018년 7월18일

실망스러웠다. 어느 정도 나와 정서를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남자 선배와 출산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내 출산 공포를 이야기했다. 그러자 그는 자기 아내의 경우 아기 둘을 '쉽게' 낳았다며 "육아가 어렵지 출산은 괜찮다"는 말을 참 쉽게 했다.

여전히 아기 낳으면서 죽는 산모들이 많다. 아기 낳고 살아남더라도, 생존, 그거면 정말 괜찮은 거냐. 출산으로 망가진 몸은 전과 같이 회복되지 않는다. 뭐가 그렇게 쉬우시냐. 이렇게 말했더니 그는 그렇게 고생해서 아기 낳은 몸이 가장 아름다운 몸이란다. 그는 끝까지 함부로 이야기했다. 그렇게 말하면 출산을 앞두고 두려워하는 나를 응원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까?

출산으로 변형된 몸에 모성애를 부여하여 여성의 아름다운 몸이라 말할 수 있다. 그것이 페미니즘에 반한다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어디까지나 그건 출산 당사자의 고백이어야 한다. 그렇게 스스로 출산에 긍지를 부여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그대로인 상황에서 이미 망가진 몸을 두고 "Body positive"를 외치는 건 같은 출산 여성이어도 쉽게 하지 못할 일이다. 하물며 남성이 ‘출산 여성의 아름다운 몸’을 운운한다? 오만이 방자하다.

선배는 아내의 임신 기간 중 온갖 수발을 다 들었다며 내게도 남편을 노예 부리듯 부려먹으라 말했다. 왜 이렇게 오만할까. 임신한 아내의 수발을 들면 노예라는 얘기일까. 아내가 임신 혹은 육아 중일 때 남편이 하는 가사는 아내를 '대신'해서 하는 대단하고 기특한 일이기라도 하냔 말이다.

남편들은 스스로 뭐가 그렇게 다 잘났고 대단한 존재인 걸까. '힘든 아내를 잘 도와주는 사려 깊은 나'라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남편들이 너무 경멸스럽다. 부디 '아기 낳고 망가진 아내의 몸도 사랑하는 다정한 나'라는 망상도 같이 들고 무덤으로 들어가시길.

2018년 7월19일

이제는 배 뭉침이 기본값이다. 전에는 배가 자주 뭉친다 싶으면 한 시간에 몇 번 뭉치나 세고, 그 다음 한 시간 동안도 계속 뭉치나 관찰하고 걱정했다. 이제는 배가 뭉치면 뭉치는가 보다 한다. 아기도 이 작은 배 안에서 답답하려나. 배가 뭉치면 코피가 날 거 같다. 실제로 코피가 나지는 않지만 상반신 전체가 강하게 눌리는 느낌이다.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내 안에 있는 것들이 터져나올 거 같다.

배 뭉침과 아기의 태동을 구분하기도 힘들어졌다. 아기가 그만큼 커졌다. 아기가 스트레칭을 하느라 손 발을 자궁벽에 단단히 대고 있는 건지, 아니면 배가 뭉치는 건지 감각으로는 구별해내기 어렵다. 뭉친 부위를 손으로 꾹 눌렀을 때 뭉침이 사르르 풀리면 ‘아, 아기였구나’ 한다. 강한 배 뭉침을 계속 경험하다 보면 언젠가 아기도 나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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