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8월11일
언제부턴가 그 날 입고 나간 임부 레깅스를 벗어보면 가랑이 부분에 오줌자국이 나 있다. 하루 이틀이 아니라 매일 그렇다. 나도 모르는 틈에 오줌이 새는 것 같다. 조금 전엔 샤워 후 새 팬티를 입고 양치를 하다가 또 오줌을 쌌다. 오줌 지리는 게 익숙해지질 않는다.
숨기고 싶다. 내게 오줌 냄새가 날까봐 신경이 쓰이고 빨래통에 오줌 묻은 레깅스를 넣어 놓는 게 왠지 부끄럽다. 임신하지 않았대도 비난 받아선 안 되는 일인데, 임신 후기의 자연스런 증상임에도 내 마음에 상처가 난다.
2018년 8월13일
요가도 힘들고, 걷는 것도 힘들고, 이젠 누워있는 것도 힘들다. 뒤척일 때마다 온 관절이 다 아프니까. 그러다 동네 수영장에 수영해보러 갔다가 신세계를 경험했다. 수영장에선 이런 내 몸이라도 날아다닌다! 물 속에서 재빠르게 헤엄치면서 오랜만에 몸으로 이루는 자기효능감이란 것도 느꼈다.
내 사지의 자유로움을 느끼며 어릴 때 수영을 배워놓길 잘했어, 하며 나를 칭찬했다. 허나 그도 오래 가지 못했다. 레일 한 바퀴 돌고 왔다가 수영장 할머니들께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아가씨 임신했지? 여기 왜 와. 저쪽 가서 제자리 콩콩 뛰기나 해"
"누가 배 차면 어떡하려고"
"걸리적거리지 말고 나가"
어, 이상하다. 내가 이 레일에서 수영 잘하는 거 같은데. 레일이 좁아 수영하다 누가 내 배를 찰 수는 있지만 그럴까봐 앞 뒤 간격도 잘 재고 옆 사람이 평영 하는지도 잘 보면서 가고 있었다. 동네 수영장 텃세가 심하다곤 들었지만 할머니들 열댓 명에게 당하니 무서웠다.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했는데, 모르는 사람이 고나리질 할 때 꼭 나를 아가씨라고 부르더라.
초급레일이야말로 사람이 더 많아서 위험할 거 같으니 제가 조심히 다니겠다고 말씀 드리고 할머니들 말씀 뒤로 한 채 계속 레일을 돌았다. 두 세 바퀴 더 돌았을까. 결국 할머니들 괴롭힘을 못 이기고 결국 초급레일으로 가서 제자리 콩콩 뛰기나 하다 왔다. 콩콩 뛰기하던 누군가가 돌연 발차기 연습이라도 하면 깜짝 놀라 양팔로 배를 싸매면서.
나도 운동이란 걸 하고 싶다. 배가 지금보다 더 불러오면 어차피 못할 수영이었지만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하고 싶었다. 수영하면서 행복했는데 이렇게 또 좌절인가. 그 할머니들은 정말 내 걱정을 했던 걸까? 그랬다면 샤워장에서 내 물건을 떨어뜨리고선 나 몰라라 하지 않고 주워 주지 않았을까?
2018년 8월14일
얼마 전 내 임신일기를 날마다 잘 읽고 있고, 이 기록을 시작해줘서 놀랍고 좋다는 피드백을 받았다. 이게 다 우리 이야기이고, 출산 후에도 이야기 이어달라는 말까지.
다 우리 이야기란 말이 계속 마음에 남는다.
임신을 한 어느 평범한 여성이 평범한 일상의 이야기를 하는데 다같이 한 마음으로 분노도 하고, 슬퍼도 하고, 기뻐도 한다. 여성의 삶을 여성이 너무 잘 알아서일까. 내게 평생 없을 삶이래도 말이다.
2018년 8월16일
배가 고파 복숭아 2개를 허겁지겁 먹고는 숨이 잘 안 쉬어져 크게 호흡을 하고 가슴을 치며 답답해했다. 아빠는 "왜, 또 뭐" 하는데, 이거 너무 서럽네. 엄마가 나 가졌을 때의 기억을 왜 다 잊었다고 했는지, 그 때 아빠가 엄마를 어떻게 대했을지 눈에 선하다.
아빠가 엄마한테 나 좀 집에 가라 그래라, 하길래 손주는 기대되는데 임신한 딸이 힘든 소리 내는 건 귀찮냐 물으니 그럼 귀찮지 안 귀찮냔다. 우리집 아빠만 이런 걸까. 옛날 사람이라 그렇다며 핑계만 대는 아빠들은 왠지 다 비슷할 거 같은데.
아빠는 내가 댁에 방문할 때마다 갈 때 가져가라며 비싼 과일들을 잔뜩 사다놓고 맛있는 한우를 구워준다. 그렇지만 내가 임신한 몸으로 회사 생활 하면서 힘든 소리 내는 건 철 없는 소리고, 갖은 몸 변화에 아파하는 건 엄살이라고 한다.
"옛날엔 그러고 밭도 맸어."
"남들 다 하는 일에 왜 너만 그래."
임신한 나를 무례하게 대하는 아빠의 이야기를 종종 했지만, 우리 아빠 이야기는 우리 아빠만의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아빠들은 모두 여자의 몸에서 태어나 여자의 몸으로 자녀를 낳았으면서도 임신과 출산에 대해 몰라도 너무 모른다. 그들에겐 제 알 바도 아니고,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게 너무 괘씸하다.
배가 뭉쳐서 끙끙대며 누워있는데 아빠가 시끄럽다길래 아빠는 배가 뭉치는 게 뭔지 아냐고 물었다. "아기가 꼭 웅크리고 있나?" 하더라. 자궁이 수축하는 거라고 일종의 진통이라고 여기서 잘못되면 조산하는 거라고 말해줘도 아빠는 모른 척. 평생 몰라도 상관없다는 듯이. 이런 게 진짜 문제라고.
2018년 8월17일
요즘 고통 없이 아기 낳는 꿈을 종종 꾼다. 어떤 날 꿈에선 자궁 입구가 열려 침대에 누워 힘을 주는데 기름에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아기가 나왔다. 그렇게 출산한 지 일주일 만에 아기와 공원에 산책을 갔는데 아기가 뛰어다니면서 꽃 향기를 맡으며 ‘엄마’하고 나를 불렀다.
며칠 전엔 진통으로 병원에 도착한지 5분 만에 아기를 아프지 않게 낳았고 아기를 낳자마자 불룩했던 배가 이전처럼 쏙 들어가는 꿈을 꿨다. 조금 전 잤던 낮잠에선 아기를 쑥 낳았는데 아기가 나 어릴 때와 똑 닮은 게 신기해 갓 태어난 아기사진을 찍는데 사진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닮아있는 게 아닌가.
이젠 아기가 태어나도 스스로 호흡하며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출산이 임박할수록 아기와의 만남이 더 기대되지만 출산에 대한 공포도 같이 커져간다. 엄마라고 어찌 출산이 두렵지 않겠는가. 출산고통이 마땅히 경감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에서 여성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다를 거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