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30일
임신 8개월에 접어들었다. 날이 갈수록 아기가 뱃속에서 더 거세게 움직이는데 내 장기들은 정말 괜찮은지 모르겠다. 요즘 바라는 건 아기와 나 모두 건강히 남은 3개월을 보내는 것뿐이다. 다들 “태아” “태아” 할 뿐, 임신한 몸이 이렇게 힘든지는 관심도 없겠지.
2018년 7월2일
정부에서 지원하는 "임산부 혜택"이란 것이 있다. 그 내용은 임산부가 외래진료를 받는 경우 본인부담률 20%가 감면되고, KTX 탑승 시 일반실 운임으로 특실이용이 가능하며, 출국 시 패스트 트랙을 발부받아 입국 심사장까지 빠르게 입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몸 이곳 저곳이 아파 병원에 가도 "아기는 건강하다"는 얘기만 들을 뿐 나를 위한 치료는 영 받을 수 없었다며 지인에게 하소연을 하다가 그와 임산부 혜택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그는 임신 중 허리를 다쳐 병원에 갔지만 출산 후 오라는 소리만 듣고 진료비 천원을 지불한 후 발길을 돌렸다고 했다. 임부가 받을 수 있는 치료를 찾아도 대부분 비급여라 임산부 혜택이란 것이 적용되지 않았단다. 임부 커뮤니티에 가면 임산부 할인으로 진료비는 저렴할 지 모르나 정작 임부가 받을 수 있는 치료는 없다는 이야기가 넘쳐난다. 의학에선 임신한 여성보다 그 뱃속의 태아가 먼저이기 때문이다.
'맘편한 KTX'라는 임산부 혜택을 알고 나서 남편과 KTX를 이용한 부산여행을 생각했다가 금세 마음을 접었다. 일반실 운임으로 특실이용이 가능하단 건 혜택일 수 있지만 사실 대중교통으로 먼 곳까지 갈 수 있는 임부는 그렇게 많지 않다. KTX가 시간과 비용 모두 경제적일지라도 임부에겐 무리다.
공항에서 패스트 트랙을 발부해주며 임산부 혜택이라 명한 것엔 어쩐지 속이 상했다. 시민의식으로 보완되지 않는 임부에 대한 배려를 제도화한 것이겠지만 이건 너무 생색내기다. 임부의 몸으로 오랜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건 너무 힘든 일이란 상식이 없는 사회에선 이런 것마저 특별한 혜택이 된다.
2018년 7월3일
출산예정일이 다가올수록 아기 낳는 것에 대한 공포가 몰려온다. 아기 낳는 얘기만 들어도 무서워서 눈물이 난다. 이런 공포를 주변에 얘기하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순간이야." "그래도 다 낳아." 하는데 군대 간다는 남동생과는 눈물로 작별하면서 출산은 뭐가 그렇게 쉽다는 건지 모르겠다.
고위험 산모에 대한 지원으로 최근 몇 년간 모성사망비가 줄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의 모성사망비는 OECD 국가의 평균을 웃돌고 있는데, 꼭 애 낳다 죽는 산모에 대한 얘기를 해야만 출산의 공포를 얘기할 수 있냔 말이다. 나는 아기 낳는 모든 과정이 무섭다.
요가를 하면 좀 수월하게 걸을 수 있을까 하여 임산부요가를 등록했지만 수업에서는 기대와는 다르게 아기를 낳을 때 필요한 순산보조동작만 가르치더라. 요가선생님이 아기 낳는 과정과 때마다 필요한 호흡, 운동법, 힘주는 법 등을 알려주는데 듣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지고 인간성이 조각 나는 것 같았다.
자궁 문이 얼마나 열려야 하는지, 무통주사는 언제쯤 맞을 수 있는지, 회음부 절개는 언제 왜 해야 하는지, 산전 관장 이후엔 어떤 일이 벌어지는 지, 분만과정을 배우지 않은 초산인 산모들이 실제로 얼마나 어려움을 겪는지 등등의 이야기를 듣는데 무서워 눈물을 뚝뚝 흘렸고 출산을 두려워 하는 내 모습에 부끄러운 느낌마저 들어버렸다.
아기를 계획하기 전에 이 모든 걸 태연히 감수하겠노라 서약이라도 했어야 했던 걸까. 그렇지 않더라도 아기 낳는 공포는 자연스러운 거고, 누구에게 털어놨대도 존중 받아야 한다. 내 자궁 문이 10cm가 열리고 회음부가 절개되고 죽을 듯한 진통이 24시간 지속될지도 모르는데 이건 망상도 아니다.
사회에서는 출산을 두려워하면 그 모성을 가볍고 하찮은 것으로 폄하하거나, 그 모든 걸 견디고 출산을 해냈을 때 모성의 힘이라며 찬사를 보낸다. 이 두 가지 모두 모성혐오라 생각한다. 모성이란 이런 것들로 타인이 평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출산은 개별적이고, 저마다의 모성서사가 있다.
무슨 말을 늘어놓는대도 이 말만큼 내 말인 말은 없다.
아기 낳기 무섭다.
2018년 7월4일
지하철은 여전히 재미있는 공간이다. 배가 부를 대로 부른 나를 보고도 임부석에 앉은 젊은 남성은 하던 게임을 계속 한다. 그 옆에 계시던 할머니가 안절부절 하더니 내게 자리를 비워주신다. 서로 앉으란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데 남자는 그걸 지켜보다가 다시 게임을 한다. 대단하단 생각마저 들었다. 지하철엔 타도 타도 재밌고 신기한 사람들이 넘쳐난다.
오늘도 과로로 쓰러질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퇴근길, 상사를 마주쳐 인사를 하려는데 목소리가 잘 안 나오더라. 소진됐다. 임산부 배려석 앞에서 한 손으로는 손잡이를 부여잡고 다른 한 손으론 어지러운 머리와 뭉친 배를 번갈아 만져가며 간신히 서있는데 이 생활이 너무 지긋지긋하고 환멸이 났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너무 징징댄다 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내 성토가 이제는 지겹다고 하겠지. 이 삶에 지겨움과 환멸을 가장 많이 느끼는 건 나다. 회사에서의 생활도, 오고 가며 만나는 낯선 사람들도, 이건 정상이 아니다. 아니, 내 삶이 정상이 아니다.
2018년 7월5일
다리에 쥐나는 강도가 점점 강해진다. 임신중기부터 자주 자다가 쥐가 났기 때문에 다리 쥐 풀기 달인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임신후기의 다리경련은 또 다르다. 너무 강력하다. 서서히 쥐가 나는 게 아니라 내가 손 쓸 겨를 도 없이 쥐 남과 동시에 다리가 터질 거 같다.
쥐 났다 하면 나는 남편을 급하게 깨운다. 남편은 익숙한 듯 아주 능숙하게 쥐를 풀어주지만, 남편이 없는 지난 밤엔 혼자서 쥐를 못 풀어 가만 엉엉 울고만 있었다. 배가 뭉치기라도 하면 움직일 수도 없어 다리를 만지지도 일어나지도 못한다. 뭐 이렇게 맨날 힘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