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마지막주차. 사람들은 임산부를 싫어하지

생각하다임신과 출산

임신일기 마지막주차. 사람들은 임산부를 싫어하지

ND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2018년 9월2일

지하철로 이동을 할 때면 도착 예상시간보다 30-40분은 족히 더 걸린다. 역에 들어서면 먼저 엘리베이터를 찾아 헤맨다. 역 외부에서 역 내부로 한번, 거기서 승강장으로 갈 때 또 한 번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데, 두 번이나 엘리베이터를 찾느라 얼마나 걷는지 모른다. 계단을 이용해 최단 경로로 이동하는 게 두 세배는 빠를 거 같지만 이런 배를 하고서는 조금만 삐끗해도 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열차에서 하차해서는 개찰구로 나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표지판 먼저 찾는데, 그러면 사람들 동선과는 달라 "아 씨, 바쁜데 왜 꾸물대!"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둔탁한 몸이 여기저기로 밀쳐진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사람들 먼저 보내고 천천히 엘리베이터를 찾아 걷는다. 방향을 잘못 잡아 걸으면 허탕이다. 열심히 뒤뚱거리며 걸어 엘리베이터를 찾는대도 내 순위는 늘 밀린다. 간신히 찾았대도 이미 만원이다. 천천히 닫히는 문 안의 사람들을 그저 바라본다. 공간이 남았대도 그 문이 다시 열린 적은 없었다.

날이 갈수록 입을 다물고 체념하게 된다. ‘그래, 사람들은 귀찮은 걸 싫어하지. 사람들은 임산부를 싫어하지.’ 그러면서도 사회는 출생률이 떨어지는 건 재앙이라 생각한다. 임신한 여자들은 사람들 귀찮게 하지 말고 조용히 집안에만 있으라는 걸 텐데, 이런 생각이 드니 또 세포가 살아난다. 봐라, 내가 어디 입 다물고 가만 체념만 하고 있는지. 어디 한번 두고 봐라. 그러다 진짜 체념하는 날엔 무릎 꿇고 싹싹 빌어도 소용 없을 걸.

2018년 9월3일

자꾸 미련이 생긴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라도 뭘 더 해야겠어서 두세시간 거리의 펜션에 놀러 왔다. 펜션의 사장님이 잔뜩 부른 내 배를 보시더니 대번에 "어후 이달에 낳겠네~" 하신다. 놀러 왔으니 오늘 내일만 아기가 안 나오길 바라고 있다 하니, 초산은 10시간은 넘게 진통해야 해서 여기서 집까지 충분히 갈 수 있다고 하신다. 이제 내공이 늘어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씀 마셔요~ 저는 금방 쑥 낳을 거예요."

생을 먼저 시작한 윗세대는 본인의 세계에선 당연했던, 그저 익숙하게 들어오고 악의 없이 내뱉었던 말들을 내 세대에도 거리낌없이 한다. '아기가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 '출산까지 입덧하기도 한다. '초산은 원래 오래 진통한다.' 악의는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당사자에겐 저주와 다름 없는 말들이다. 묵과하지 말고 번거롭고 답답하더라도 천천히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했다. 어쩌면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고 계속 되새기는 게 내 선의 최선일거라 생각한다. 이 지옥 같은 임신의 여정을 지냈으니, 최소한 다른 임부에게 덜 폭력적인 사람은 되어야지.

임신의 장점은 없어도 정말 하나도 없는데, 그래도 뭔가를 겪었으니 내 이후의 임부들에겐 더 나은 삶이 제공되어야 한다고 소리 내는 사람은 되어야겠다. 그렇게 자기만족이라도 하면 괴로웠던 임신기가 마냥 밉지는 않겠지

2018년 9월9일

하늘이 노래졌다. 정말, 길거리에서 오줌을 싸는 줄 알았다. 들어갈 만한 곳을 둘러보는데 마땅한 곳이 없어 보였다. 보통 스타벅스엔 화장실이 딸려 있으니 간신히 스타벅스를 찾아 바로 계단을 올랐는데 2층이고 3층이고 잠금 장치가 걸려있었다. 상가에서 운영하는 화장실이라 상가고객만 이용 가능하단다.

매장에서 구매를 하고 화장실을 이용하는 게 상식이지만 염치불구하고 점원에게 임산부라 화장실이 너무 급한데 이용 좀 할 수 있겠냐 물었다. 점원이 흔쾌히 비밀번호를 주셔서 화장실에 다녀왔다. 급한 생리현상이란 게 언제든 발생할 수 있지만 만삭에 걷다가 양수라도 터지면 정말 망했다 싶겠더라.

북미나 유럽 등에선 임산부 방광 애로사항에 대한 공공의 이해가 있어, 공중 화장실에서 임산부가 줄 서서 기다리는 경우가 없단 얘길 들었다. 다들 급한 상황이겠지만 임산부는 언제든 방광이 자극되고 언제든 위급할 수 있어 모두가 양보를 한다고. 오늘 스타벅스에서 화장실 이용을 거절당했다면 정말 슬플 뻔했다.

일러스트레이션 이민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건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상식을 뛰어넘어야 가능하다. '보통 ~한 게 상식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가 당연하다.' 라는 말은 약자를 대할 땐 버려야 하는데, 약자에게도 그렇게 사고하고 말하는 게 세련된 시민의식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 같다. 그럴 거면 사회적 약자도 따로 없겠지.

실은 나도 임신하기 전에는 임산부가 무거운 몸으로 오래 줄 서있기 힘들 거란 생각에 공중화장실에서 양보했던 거지, 태아 때문에 수시로 방광이 자극되고 언제든 위급상황이 되는 것일 줄은 몰랐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선 임부의 화장실 이슈를 공론화할 땐 지하철처럼 또 곤혹을 치러야 할 지도 모르겠네.

임부의 방광 애로사항을 알리고 '매장을 이용하지 않은 임산부에게도 화장실을 이용하게 해주세요.' '임산부에게 화장실 줄을 양보해주세요.' 같은 캠페인이라도 진행하면 또 임신이 벼슬이냔 얘기를 들을 거 같다. 그저 보통 사람보다 방광에 이슈가 있고 힘든 건데요.

2018년 9월10일

아기를 낳으면 최대한 수유를 할 생각이다. 모유의 위대함 같은 것엔 관심 없다. 영양이나 수급이나 더 안정적인 건 분유이고, 모유 속 프탈레이트와 모성전이연구에도 이미 역사가 있다. 수유를 결심한 건 분유값을 알게 되고 나서다. 50만원쯤 되는 내 육아휴직수당으로 기저귀와 분유까지는 역부족이다.

조리원에서 배운 대로 가슴기저부 마사지와 유두마사지를 종종 하고 있다. 준비없이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 가슴이 돌덩이처럼 뭉치고 유두에 피가 난단다. 내 지인은 수유기의 젖몸살이 임신 출산의 모든 과정보다 아팠다고 했다. 얼마나 아팠는지 아기가 젖 달라고 울면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었다고.

임신 초기부터 부풀어 오른 내 가슴은 유두와 유륜만 한바닥이다. 포도알만큼 두꺼워진 유두를 엄지검지로 잡아 지긋이 누르고 비틀어 본다. 소리를 꺄악꺄악 지르면서. 처음 시작할 땐 손도 못 댔는데 조금씩 익숙해졌다. 유륜부도 미리미리 꼬집어 놓아 자극에 익숙해져야 한다는데 한숨부터 난다.

오르가즘을 느꼈던 내 질에는 지금 출산을 위한 분비물로만 가득 차 있다. 분만시엔 질구부터 항문까지 뜯어지면서 아기가 나오겠지. 애무로 쾌감을 얻던 내 가슴은 이제 아기 맘마의 도구가 된다. 그걸 준비하느라 유두를 꼬집고 비틀고 있노라면 동물의 왕국 속에 나오는 어미동물이 된 것도 같고.

이렇게 준비를 해놓는대도 출산 후 아기가 먹을 만큼의 젖양이 안 된다거나 젖몸살이 심하면 수유를 할 수 없게 된다. 저 스스로 힘들어 포기할 수도 있고. 출산 전 열심히 제 유두를 꼬집던 처량함의 기억만 남더라도 별 수 없지. 이제 저녁 먹고는 올리브 오일을 거즈에 묻혀 유두 때를 제거해야겠다.

2018년 9월12일

양수가 터졌다. 주르륵 주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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