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 14주차

생각하다임신과 출산

임신일기 - 14주차

ND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2018년 3월28일

이제 슬슬 배가 나오기 시작해 입을 수 있는 옷이 확 줄었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주말에 나들이를 다녀왔는데 입을 만한 옷이 없어 낙낙한 엄마 옷을 빌려입었다. 아직은 쌀쌀해서 회사갈 때 바지를 입고 싶은데, 버클은 안잠기고 밴딩팬츠는 너무 조인다. 상의도 펑퍼짐한 옷을 겨우 찾아서 입고 있다.

임신을 했고 아기가 뱃속에서 자라고 있으니 배는 당연히 커지는데, 나온 배가 옷에 밀착되어 드러날까봐 잘 입던 옷을 못 입고 있다. 임부복을 찾아봐도 대부분 배 모양이 드러나지 않게 낙낙한 스타일로 나온다. 사람들의 시선 때문이라는 생각에 머문다. 임신한 여성에 대한 편견과 불편한 시선 때문에 몸매가 덜 드러나는 옷을 찾는 건 아닐까. 배 나온 임부를 배불뚝이, 배사장, 배장군 등으로 부르는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지 너무 궁금하다. 사실 하나도 안 궁금하다.

두 사이즈는 족히 커보이는 엄마 원피스에 까만 레깅스만 신고 다니면서 우울해 하던 내게 친구들이 임부청바지를 선물해줬다. 임부바지는 배를 감싸는 부분이 부드러운 면으로 되어있고 배 사이즈에 맞게 밴딩을 조절할 수 있다. 이제 펑퍼짐한 원피스 안 입어도 되니 좋다. 불룩 나온 내 배 그대로 내 옷 입어야지.

2018년 3월29일

인체의 신비를 느끼고 있달까. 초기에는 자궁이 커지면서 방광을 압박해서 자다가 세네 번씩 화장실에 가야했던 게 참 힘들었는데, 중기가 되면서 더 이상 빈뇨와 야뇨로 고통받지않는다. 자궁이 위로 올라와 방광을 누르지 않게 된 것이다. 대신 자궁과 골반의 인대가 늘어나면서 사타구니와 엉덩이 통증이 생겼다.

또 없던 현기증이 갑자기 생겼다. 계속 어지러워 몸이 안 좋은가, 했더니 흔한 임신 중기 증세란다. 임신 중기에는 혈액이 자궁으로 몰리면서 뇌에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아 현기증과 두통이 나타난다. 태반이 완성되고 아기가 스스로 혈류를 펌프질하게 되면서 입덧이 확 줄었다. 이제는 다른 양상으로 몸이 불편해졌다.

내 행복은 맛있는 라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거였다. 임신 극초기에는 호르몬으로 인한 불면증 때문에, 그 후에는 지독한 입덧 때문에 커피를 끊었는데, 그 생활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커피를 좋아했던 때가 상상도 안 될 정도였다. 입덧이 줄자마자 라떼가 너무 생각났고 요즘은 매일 다시 라떼를 마시고 있다.

커피를 마시고 있으면 보는 사람들마다 한 마디씩 한다.

"설마 지금 마시는 거 커피야?"
"임산부는 커피 마시면 안 돼~"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아기 낳으려고?"

다량의 카페인이 자신과 아기에게 안좋을 건 임신 당사자가 더 잘 안다. 임신한 여성은 작은 행복을 누리려고만 해도 별 고나리를 다 듣는다.

임산부의 카페인 하루 권장량은 300mg이다. 스타벅스 아메리카노 톨 사이즈 한 잔에 카페인 150mg이 들어있으니, 하루 한 잔 정도는 일반적으로 무리 없이 마실 수 있다. 임신하면 여기저기서 먹지 말라는 것도 참 많은데 술, 담배, 약물이 아닌 이상 임부나 태아에 크게 유해할 것도 아니고, 심지어 술, 담배, 약물을 먹는다 해도 그만 고나리하자. 여성의 몸은 여성의 것이고, 임신한 여성에게도 마찬가지다. 

2018년 3월30일

초기에는 극심한 무기력과 입덧 때문에 지하철에서 서서 가는 게 힘들었는데, 중기가 되니 움직이는 지하철에 서 있으면 배에 힘이 들어가서 배가 뭉치고 당긴다. 뱃속 아기가 크면서 뚱뚱해지는 내 몸이 싫었는데, 오늘 같이 임산부 뱃지도 안 달고 나온 날은 배라도 티 나게 나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임산부라도 쉽게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아니지만 임산부 배려석이 나의 비빌 언덕이라 생각했는데, 임산부 뱃지도 없고 배도 크지 않은 때에 만원 지하철을 타니 딱히 어디에도 앉을 방도가 없다. 내가 겪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임산부가 드러나게 제 눈 앞에 있어도 임산부 배려석이 아니면 임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이 제 몫이 아니라 생각한다. 꽉 찬 지하철에서 사람들 틈을 비집고 임산부 배려석 앞까지 가는 일도 무리라 지금 내 위치에서 임산부 배려석이 멀면 임산부 뱃지도 별 소용 없기는 하지만, 뱃지도 없고 자리도 없는 지금은 배는 뭉치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네.

2018년 4월2일

아빠가 내게 유난이다, 유난이다 했는데 요즘은 내 몸이 정말 유난스럽단 생각이 든다. 입덧으로 그렇게 고생하고서는 입덧이 나으니 이제 두통으로 아무것도 못 하겠다. 걸을 땐 엉치뼈가 아파 뒤뚱거리고, 서서는 배에 힘이 들어가 금세 뭉친다. 몸뚱아리가 정말 유난이다.

그 많은 임산부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엄마에게 물어보기를 포기했다. 엄마는 나를 가졌을 때가 모두 고통스러운 날들이어서 그 때 기억을 모두 지웠다고했다. 복기하고 싶지 않은 건지, 뇌가 정말 기억을 지운 건지 알 수 없지만. 엄마의 고통을 나는 되풀이하지 말아야지, 했지만 나 혼자서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입덧이 나으면 회사를 다닐 만 할 줄 알았다. 중기가 되면 다들 체력이 돌아올 거라했다. 단축근무가 끝나자마자 업무를 바로 정상화시켜야 했다. 사람들은 그간 분에 넘치게 배려 받았으니 이제 네 몫을 다하라는 듯이 업무 해내기를 요구한다. 고통을 호소하기도 민망하다. 회사가 나 스스로 유난스럽게 느끼도록 만든다.

임신 초기엔 힘들다, 아프다, 고통스럽다, 열심히 소리쳤다. 사람들이 임신한 여성의 어려움을 이렇게 몰라서는 안 된다 싶었다. 헌데 그것도 한두 달이지, 임신 4개월째 그러고 있으니 더 혼자가 되는 거 같다. 왜 임신한 여성들이 혼자 끙끙대며 참거나 임부 커뮤니티에서만 호소했는지 이제는 너무 잘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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