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27일
나와 내 남편과 내 뱃속 아기는 모부의 훌륭한 트로피다. 나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외모와 성품이 준수한 남자와 결혼을 했고 국가가 허락한 '정상가족' 내에서 아기까지 가졌다. 이는 행복이나 고통, 인생, 미래 같은 나의 서사와는 별개로 내 모부에겐 자랑거리가 되었다.
모부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 다녀왔다. 가정의 달이란 명목으로 교회에서 이 날 예배에 가족 모두를 참여시키라고 했나 보다. 본 가족과 떨어져 제 교회를 다니거나 교회와 전혀 관계 없는 삶을 사는 가족 구성원들도 있을 텐데 어떻게 이런 기획을 했을까. 게다가 오늘 모인 가족끼리 단란하게 점심식사 교제를 하고 가족사진을 찍어 제출하면 추첨해 선물을 주겠다며 교회에서는 식사 제공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혈연이나 혼인으로 구성된 가족만 가족으로 인정하는 교회에서 자타의로 1인 가족이 된 교인들의 점심식사를 명목 좋게 없애 버린 셈이다. 이렇게 고민 없는 게으름은 너무 큰 죄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나는 오늘 트로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자고 마음먹었다.
나처럼 동원된 가족들이 많았는지 교회에 사람이 북적거렸다. 그 인파를 지나다니는데 가는 길마다 사람들이 아는 척을 하며 내 배를 만져댔다.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권사님 딸이지? 배가 많이 나왔네.” 하고 내 배를 스윽.
“얼마 전에 결혼했다더니 아기 가졌나 보네.” 하고 스윽.
“권사님이 기도를 많이 하시더니 하나님의 은혜로 예쁜 아기까지 생겼구나.” 하고 또 스윽.
입만 웃는 얼굴로 “네, 네” 건성으로 대답하고 배를 붙잡은 채 뒤뚱뒤뚱 사람들 사이를 달리듯 걸어갔다. 그냥 지나만 가도 온 교회 사람들이 내 배에 한번씩 손을 대본다.
저기서부터 여기까지 10m 걸어오는데 스무명은 내 배를 만진 거 같다고 펄펄 뛰면서 엄마에게 화를 내니, 나도 (감히 사나워서) 못 만져본 내 딸 배를 그렇게들 만졌냐면서 어이없어한다. 그래도 교회에선 예의 있게 행동하라며 내게 주의를 준다. 예의 없는 건 내가 아니었을 텐데 말이다. 그 옆에서 또 아빠는 그러면 남들도 다 만졌는데 이제 자기도 좀 만져보면 안되겠냐며 다 성장하여 임신까지 한 딸에게 헛소리를 한다. 공공재 배의 삶, 시작된 건가.
교회에서 이야기 하는 가족이란 참 재미있는 개념이다. 화목한 가족을 강조하는 한편 가정 내 아내에 대한 폭력과 아동학대의 해법은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용서라고 이야기한다. 가정의 달 행사를 진행하지만 동성커플은 성경에 어긋나니 보기에도 없는 가족이고, 혼자 사는 노인이나 비혼인구에 대한 이해도 없다. 아기는 누군가가 기도를 많이 해 하나님의 은혜로 생기는 것이라 불임가족에겐 기도와 은혜가 더 필요하고, 임신한 여성은 주체라기보단 아기를 담은 저장소에 가까워 인격도 감정도 없어 그 몸을 만지는 건 무례라기보단 따뜻한 관심의 표현이란다.
오늘날 한국의 교회는 다양한 가정의 형태를 없는 것 취급한다. 최소한 정상가족이라도 잘 수호해야 할 것 같은데, 실은 그마저도 제대로 못한다.
2018년 5월28일
임신 초기였던 몇 달 전, 임신 이후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들과 사회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때 녹음 했던 파일을 오늘 받아 듣는데 입덧으로 고생했던 그 시간들이 내 음성으로 고스란히 재생됐다. 그러면서 이 임신일기를 기록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망각하는 동물이라 현재의 감각이 아니면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이 일기는 임신을 경험했단 오만함만 남을지 모르는 내 미래에 주는 선물일 수도 있겠다.
임신 중에 타인에게 들었던 불쾌한 말과 그 상황들을 기록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내가 느꼈던 불쾌함을 누군가에게 다시 전가하지 않기 위해서. 사람들이 나를 불쾌하게 할 목적으로 그런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라 생각하진 않지만 더 이상 변명은 안 된다. 나조차도 내 일기를 되돌아보지 않았더라면 초기 임산부한테 실례를 범했을지 모른다. 이건 정말 끔찍한 일이다.
2018년 5월29일
아침에 눈 뜨면 바로 체중을 재고 그 매일의 변동을 기록하고 있다. 46kg에서 시작한 내 몸무게는 임신 23주가 되면서 52kg를 넘어섰다. 임신한 사람이 이렇게 말라서 되겠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중기가 되면서 쑥쑥 늘어만 가는 몸무게가 나는 두렵다. 사람들은 내가 살찌는 걸 왜 이렇게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임신성비만이나 임신성당뇨를 걱정하는데 말이다.
BMI에 따라 권장되는 체중이 다른데 내 경우 만삭까지 10kg 증가가 알맞다고 한다. 덜 찌면 아기에게 양분이 부족할 테고 더 찌면 임부나 아기에게 당뇨가 온단다. 이래도 무섭고 저래도 무섭다. 많이 좀 먹으라는 얘기도 싫고, 임신당뇨 온다고 그만 먹으라는 얘기도 싫다. 내 정신을 붙잡기가 힘들다.
2018년 5월30일
태동을 영상으로 찍으면 드러나게 배가 삐죽삐죽 움직인다. 겉으로 보일 만큼 아기가 움직일 때면 모체가 느끼는 충격은 더 크다. 만삭의 태동은 파도치듯 배 전체가 출렁이더라.
태동이란 사실 흔히들 말하는 것처럼 귀엽다거나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다. 편안한 자세로 누워 의식적으로 태동을 기다릴 땐 아기가 삐죽삐죽 제 움직임을 드러내는 게 재미있기도 하지만 회사에서 업무에 집중하던 중에 아기가 마구 움직이면 너무 아프고 성가시다.
요즘 모성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매일 태동을 관찰하며 생명의 신비란 것을 느끼고 있는데 이런 과정들을 통해 모성애 역시 내 안에서 태동하는 것 같다. 내게 모성애란, 임신을 했다고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나만의 특별한 시선으로 자궁 속 아기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아기에서 비롯한 내 고민을 발전시키고 결정하는 등의 여러 체험을 기반으로 자라나는 거라 생각한다. 저마다 모성이 나타나는 방식이 다르고, 그래서 각기 다른 모성애의 서사를 인정해야 한다.
2018년 6월1일
아주 가끔씩 가던 카페에서 라떼를 주문하니 점원이 날 보고는 "에스프레소 반샷이시죠?" 하고 묻는다. 동료가 "어, 아시나봐요~"하니 "임산부들은 샷을 줄여달라고 하시더라고요." 한다.
커피 한 잔이 임부나 아기에게 문제가 없지만 나를 비롯한 임부들은 스스로 더 조심하고 자제하기도 한다. 선택이란 걸 한단 얘기다.
임산부들은 커피에 넣을 에스프레소 샷을 줄여달라고 한다는 말에 마음이 이상했다. 커피라는 기호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아기와 내 몸을 돌보는 일도 나름의 기준으로 해내고 있는 그들에게 동지애를 느낀걸까. 임신한 여성은 생각이란 걸 하고 판단이란 걸 하고 스스로를 돌볼 줄 알고 행복을 누릴 줄도 안다. 아주 놀랍게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