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일기 7. 11주차

생각하다임신과 출산

임신일기 7. 11주차

ND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2018년 3월7일

아침에 위장약을 먹느라 물을 마셨는데 몇 분 후 마신 물을 그대로 토했다. 이물질 없이 물만 토해낸 건 또 처음이라 새로운 괴로움이네. 입덧하는 임산부들은 ‘12주의 기적’이란 걸 기다린다. 내게도 12주의 기적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히 입덧이 사라지기만을 바란다.

2018년 3월9일

매일매일 나의 지하철 탑승기가 아주 스펙타클하다. 임산부 배려석을 두고 날마다 새로운 일이 벌어져서 이러다 정말 언젠가 한 대 맞는 거 아닌가 싶어 심장이 두근두근하다.

오늘은 이런 일이 있었다. 지하철의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서 있으니 내 임산부 뱃지를 본 그 옆자리의 중년 여성이 임산부석의 젊은 남성에게 말했다.

저 핑크색 뱃지 보이지? 그럼 자리에서 일어나야 해.

그녀의 아들이었나 보다. 내가 처음 그의 앞에 섰을 때, 그는 내 눈을 마주치고 나서 내 뱃지를 봤는데도 눈만 천천히 꿈-뻑했다. 거기에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이 성인 남성에게 어린이 가르치듯 임산부 배려석과 임산부의 존재를 알려주는 것이 왠지 생경했다. 이런 정보들로 인해 혹시 장애가 있는 사람인가, 싶었는데 여성의 말에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며 너무나 멀쩡하게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임신 초기에도 뱃지 같은 걸 주나 보네? 임신한 티도 안 나는데 굳이 비켜줘야 해?

임산부 뱃지를 달고 지하철을 타다 보면 내가 투명인간인가 싶을 때가 많다. 정말 내가 안보이나? 당사자가 바로 앞에 두 눈을 바로 뜨고 서 있는데 어쩜 그렇게 거리낌 없이 마음의 소리를 내뱉지?

초기임산부일수록 유산의 위험이 크고 입덧으로 지독하게 고생한다는 걸 전혀 모른다는 그 무지를 경멸할 새도 없이 나를 인격체로 여기지 않는 그의 태도가 놀라워 한동안 멍했다. 임신한 여성은 그렇게 만만하다.

2018년 3월12일

임신일기가 이젠 좀 지하철 일기 같지만 이게 임신한 나의 일상이고, 임부를 대하는 이 사회의 현실이기에 계속 기록하고자 한다. 임신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겪지 않았을 테지.

퇴근 길 지하철에서 임산부 배려석 앞에 쭈뼛쭈뼛 서 있었다. 진짜 임산부가 임산부 배려석 앞에 서 있는 건 생각처럼 당연한 일도 아니고 편한 일도 아니다. 서 있다 보면 자리를 양보 받기도 하지만 불필요하거나 불쾌한 일을 겪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후자가 더 우세하게 나타난다. 그럼에도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계신 분을 쳐다보았다. 그도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나를 빤히 보더라. 그리고는 내게 물었다.

왜~ 뭐~?
아, 제가 초기 임산부라서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옆자리에 앉은 젊은 여성이 내게 자리를 양보해주셨다. 자리에 앉으니 임산부석에 앉은 분이 계속 말을 건다.

얼굴은 애기 같은데 애기엄마야? 나는 계속 쳐다보길래 내 얼굴에 뭐 묻은 줄 알았지~
아. 그 자리가 임산부석이어서요...
그래? 나 아무 생각 없이 앉았어~ 원래 잘 앉아~
일러스트레이션 솜솜

도대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묻고 싶지만 무례한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아 적절히 짧게 대답하고 내 일을 하려는데 이 분은 또 계속 내게 쓸데없는 말을 건네셨다. 그리고는 평안히 계시다 "애기 잘 낳아~"하시며 작별 인사까지 하고 내리시더라. 혼자 평안하셔서 참 좋겠다. 임산부 배려석을 앞에 둔 진짜 임산부의 내적 갈등과 고민 같은 건 조금도 관심 없는, 그러니까 ‘내 알 바 아닌’ 사람들의 평안함이란.

회사에서 집에 돌아오면 남편에게 매일 지하철에서 겪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늘 일도 말해주며 덧붙였다.

여보, 나 지하철에서 매일매일 겪는 일, 너무 스펙타클하지 않아? 너무 매일 새로워.
제대로 된 사람이라면 애초에 임산부석에 앉지 않았을 거야. 이상한 사람들만 앉으니까 당신이 이상한 사람들만 겪네.

비워져있지 않은 임산부 배려석에 앉는 일, 너무 전쟁이다. 그 사람들을 마주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에너지 소모가 크다.

2018년 3월13일

임신 후 무력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언제나 내 몸은 내 것이었는데, 더 이상 내 통제 하에 있지 않은 것 같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먹고 마시는 작은 일부터 내 평범한 일상, 그리고 출산 방법을 선택하는 일까지도 내게 선택권이 없는 것 같다. 온 사회가 내 몸의 주권을 주장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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